안필립

 

[image]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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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안필립
PHILIP AHN
'''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84년 11월 14일'''
'''}}}#ffd700 위치}}}'''
'''}}}#ffd700 6211 Hollywood Blvd.}}}'''

'''안필립'''[1]
安必立/ Philip Ahn
'''출생'''
1905년 3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사망'''
1978년 2월 28일, (향년 72세) 미국 캘리포니아
'''직업'''
배우
'''가족'''
아버지 '''안창호''', 어머니 이혜련, 남동생 안필선[2], 안필영[3][4] 여동생 안수산[5], 안수라[6]
'''데뷔'''
1935년 영화 'A Scream in the Night '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상세
3. 가족 관계
4. 출연 작품
5. 기타


1. 개요


한국계 미국인 배우.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할리우드에서 1세대 동양인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유일한 한국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에 선정되었다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 상세


할리우드 이름은 필립 안(Philip Ahn).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긴[7] '''유일한 한국계 배우'''이다.[8] 안필립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의 하일랜드 파크(Highland Park)에서 출생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최초의 사람[9], 그러니까 최초의 재미교포 2세로 여겨진다.[10]
미국의 공업고등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흥사단에 잠시 소속되었다가 북캘리포니아에서 농업관련 사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잘 되지 않았고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가 파트타임으로 배우 일을 시작했다. 1934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국제통상학을 전공하고 웅변을 부전공으로 졸업했으며 영화학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다.
배우를 본업으로 삼기로 결정했을 때 모친 이혜련 여사가 그의 결정을 반대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배우 일을 천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을 떠나있었던 부친 안창호가 귀국하여 "영화도 예술이다. 기왕 할 것이라면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고가 되어라."라며 그의 결정을 지지를 해 준 덕분에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됐다.[11]
하지만 당시 할리우드에서 동아시아계 배우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처음 스크린 테스트를 봤을 때 떨어진 이유가 동양인치고는 영어를 너무 잘해서였을 정도였다.[12][13] 그는 그의 2번째 작품이 될 Anything Goes의 인터뷰장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는데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에게 퇴짜를 맞고 나갔던 안필립이 잠시 후 다시 돌아와 "You no like me...aligh. Me no care. Hip saber? Me go school...aligh"(당신 나 안 좋아함...괜차늠. 나 안 상관. ??? 나 학교를 간다...괜차늠)이라고 말하며 어설픈 영어를 흉내냈다고 한다. 이에 마일스톤이 박장대소 하고 "Okay...the part's yours!"라며 그를 캐스팅했다. 원래 엑스트라로 지원할 생각이었던 안필립은 조연 자리를 꿰차게 된다.[14] 이때의 인연을 계기로 훗날 마일스톤이 신상옥의 신필름과 한미합작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안필립이 도움을 준다. 원래는 감독직을 제안 받았으나 사양하고 Tay Garnett을 추천했다.[15]
이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다. 당대의 스타인 빙 크로스비, 존 웨인, 게리 쿠퍼, 험프리 보가트, 밥 호프, 토니 커티스, 윌리엄 홀든, 록 허드슨, 리처드 위드마크, 로버트 미첨, 프랭크 시나트라, 셜리 템플, 줄리 앤드루스, 그레고리 펙 등과 호흡을 맞추며 조역을 연기했다. 일본인[16][17], 중국인[18], 한국인[19] 등 주로 아시아인 역을 연기했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이 한창이던 시절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한 아시아 배우였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 성공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배우였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애 오른 하야카와 셋슈나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우메키 미요시, 안나 메이 웡[20], 케예 루크, 낸시 콴, 타카 미이코, 제임스 시게타 등 다른 동아시계 배우들은 여럿 있었지만 한국계 배우는 필립안을 제외하고 그나마 활동했다고 볼법한 한국계 배우는 오순택[21] 정도였다. 1978년 2월 28일 새벽 5시 폐암으로 별세하였다.

3. 가족 관계


안필립의 동생이자 안창호의 차남인 안필선(필슨 안 Philson Ahn, 1912~2001)도 배우로 활동했으며 삼남이자 막내인 안필영(랄프 안 Ralph Ahn, 1926~)도 2011년도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안창호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을 떠난 탓에 부친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안필영은 안필립을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여동생이자 안창호의 장녀인 안수산은 1915년 로스앤젤레스 출생으로, 미합중국 해군 장교로 방공 분야에서 근무하다 소령으로 전역 후, '''NSA'''의 정보 분석가로 복무했다.

4. 출연 작품


'''연도'''
'''제목'''
'''비고'''
1936년
스토우어웨이(Stowaway)

1936년
장군 새벽에 죽다(The General Died At Dawn)

1940년
샤도우(The Shadow)

1941년
데이 멧 인 봄베이(They Met In Bombay)

1942년
쉽 아호이(Ship Ahoy)

1942년
차이나 걸(China Girl)

1943년
돈 윈슬로 오브 더 코스트(Don Winslow Of The Coast Guard)

1943년
데이 갓 위 컨버드(They Got Me Covered)

1943년
더 어메이징 미시즈 홀리데이(The Amazing Mrs. Hollida)

1943년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

1943년
12월 7일(December 7th)

1944년
퍼플 하트(The Purple Heart)

1944년
왕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1945년
백 투 바탄(Back To Bataan)

1945년
블러드 온 더 선(Blood On The Sun)

1949년
스테이트 디파트먼트: 파일 649(State Department: File 649)

1949년
임팩트(Impact)

1950년
몬테주마의 영웅들(Halls Of Montezuma)

1952년
마카오(Macao)

1953년
배틀 서커스(Battle Circus)

1953년
차이나 벤처(China Venture)

1955년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

1956년
80일간의 세계일주(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

1957년
서부의 파라딘(Have Gun - Will Travel)

1957년
전송가(Battle Hymn)

1959년
보난자(Bonanza)

1959년
네버 소 퓨(Never So Few)

1961년
애꾸눈 잭(One-Eyed Jacks)

1963년
충격의 복도(Shock Corridor)

1963년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1964년
첩보원 0011(The Man From U.N.C.L.E.)

1966년
파라다이스(Paradise, Hawaiian Style)

1967년
0011 나폴레옹 솔로 - 가라데 킬러

1967년
모던 밀리(Thoroughly Modern Millie)

1968년
하와이 5-0수사대(Hawaii Five-O)

1972년
매쉬 - 시리즈(M*A*S*H)

1972년
쿵후 - TV 시리즈(Kung Fu)

1973년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

1974년
여형사 페페(Police Woman)

1976년
불멸의 사자(The Killer Who Wouldn't Die)


5. 기타


  • 모탈컴뱃2의 악역인 젊은 섕쑹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으나 동명이인으로 밝혀졌다.[22]
  • 한국의 유명 배우 안성기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안필립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1]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단 의미를 담아 부모님이 지어주셨다고 한다. 시대가 시대인데다, 님이 부모님인지라...[2] 둘째 동생(1912 ~ 2001)[3] 막내 동생 (1926 ~)[4] 무한도전에 출연하였다.[5] 셋째 동생 (1915 ~ 2015)[6] 넷째 동생 (1917 ~ 2016)[7] 손도장이 새겨져 있다고 잘못 알려져있는데 원래 명예의 거리는 손도장을 찍지 않는다. 손도장을 찍는건 후술할 안성기와 이병헌의 케이스인데 후술하겠지만 이건 정식 명예의 거리 입성 행사가 아니다.[8] 무한도전 등을 통해서 안성기와 이병헌도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 둘이 이름을 올린 건 TCL Chinese Theater의 핸드프린팅 행사다. 해당 극장이 명예의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헷갈린 듯한데 이 행사는 명예의 거리와는 다른 행사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홈페이지에서도 안필립의 이름은 찾을 수 있지만 안성기와 이병헌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이병헌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았다면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한국 활동에 더 치중하는 편이라, 아마 명예의 거리까지는 힘들 것이다.[9] 속인주의를 따르는 한국과 속지주의를 따르는 미국의 법에 따라 지금 한국인 부모 둘 밑에서 미국 출생한다면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갖게 된다. 자세한 것은 복수국적 참조. 물론 1905년에 태어난 안필립에게 한국 국적 유지 같은 건 불가능했고 미국인으로 살았을 것이며, 당연히 어떠한 한국 국적 행사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아버지가 안창호인 만큼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나.[10] 이 점은 소위 박헌영 간첩사건에서 유력한 증인으로 파악된 현엘리스를 최초로 보지만 안필립이 최초라는 것이 정설이다.[11] 정혜승, Hollywood Asian: Philip Ahn and the Politics of Cross-Ethnic Performance, Temple University Press, 2006, p. 9[12] 당시 유색인종이 나올수 있는 역할은 엉성한 영어에 백인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루저들뿐이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아 동양인 배우들은 보통 중국인, 일본인 역할을 배역했다.[13] 카라테 키드에서 미야기 사부로 나온 패트릭 모리타도 영화계에서 배역을 따내기 위하여 동양인 억양이 들어간 영어를 다시 배워야 했다.[14] 정혜승, p.9[15] 정혜승, p.23[16] 리처드 위드마크가 나온 2차 대전물 "몬테주마의 영웅들"에서 메이지대학 출신 일본장교.[17]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일본인을 연기한다는 게 꺼려질 수 있지만 안창호 선생은 예술은 별개의 봐야한다며 격려했다.[18] 윌리엄 홀든이 한국전 종군기자로 나왔던 모정에서 주인공 수인을 사모하는 중국인 의사나 초기 TV 시리즈에서 홍콩 첩보원,[19] 전송가에서 한국노인[20] 중국계 미국인 배우로써는 거의 첫 줄에 올라와 있는 전설적인 배우. 할리우드를 떠나 영국과 유럽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인종차별로 고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안필립과도 몇 번 호흡을 맞췄다. 랄프 안이 밝히길 호흡을 맞춘걸 넘어서 소꿉친구 사이로 썸이 있었다고 한다. 썸까지는 불확실하지만 희소한 동양계 미국인 배우에, 서로 사는 동네도 가까웠으니 친분이 있을 가능성은 높다. 출처 [21] 1933~2018.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홍콩요원, 미씽 인 액션2에서 베트남 수용소장 등으로 나온 한국인 배우. 뮬란에서 뮬란 아버지 목소리로 유명하다. 밀덕후들에겐 최후의 카운트다운에서 현대식 항공모함으로 잡혀와 진주만 폭격작전에 대한 면모를 다 듣고 멘붕하는 제로센 파일럿으로도 유명하다. 2018년 4월 4일, 만 84세로 별세했다.[22] 해당 배우는 1966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