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터 음모사건
1. 개요
오스터 음모사건(Oster Conspiracy)은 1938년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얻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와 전쟁을 일으킬 시 군부가 나치 정권을 전복시키고 빌헬름 2세를 복위 시키려 한 쿠데타 계획이다.
2. 배경
1932년 집권한 퓌러 아돌프 히틀러는 민족자결주의와 대독일주의를 내세우며 1935년 1월 13일에 자르 국민투표를 통해 자르 위임통치령을 합병했고, 1938년 3월 15일, 남부의 이웃나라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합병한다. 그리고 300만명의 독일인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폴란드 제2공화국과 함께 로카르노 조약을 체결한 상태인지라 나치 독일이 녹색 작전을 실시하여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 양면전쟁을 치룰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독일 국방군 내부에서는 히틀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리려 했다.
3. 계획
방첩국 국장보 한스 오스터(최종계급 소장)가 핵심 주동자였으며, 그 외에 국방군의 정통보수 성향[1] 고위 장교 다수가 연관되었다. 이들은 상단에 서술되어 있듯이 독일이 아직 전쟁을 이길 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면 필패할 것이라 여겼기에 이런 쿠데타를 준비했다. 계획이 실행되면 쿠데타 병력으로 국가수상부를 들이닥쳐 히틀러를 체포 또는 살해하고 네덜란드로 망명 간 카이저 빌헬름 2세를 복위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리고 1938년 9월 20일, 베를린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계획안을 짜기 시작했다.
4. 참가자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한번쯤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이다'''.
- 한스 오스터 - 주모자.
- 발터 폰 브라우히치 - 국방군 최고사령관
- 빌헬름 카나리스
- 프란츠 할더 - 육군 참모총장
- 한스위르겐 폰 블루멘탈
- 에르빈 폰 비츨레벤
-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
- 카를 프리드리히 괴르델러 - 전직 라이프치히 시장.
- 테오도어 코르트
- 에리히 코르트
- 루트비히 베크 - 육군 최고사령부 장군참모장
- 한스 번드 지세비우스
- 빌헬름 아담
- 폴 폰 하세
- 헬무트 그로스커스
- 에두아르 브뤼클 마이어
- 카를 하인리히 루돌프 폰 스투르노 우그
5. 페이퍼 플랜
그러나 이 계획은 '''"독일이 녹색 작전을 전개하여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시"'''를 전제로 두었기 때문에 실현되진 못했다. 그것 때문에 테오도어 코르트가 영국 정부 고위층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히틀러의 요구를 거절할 것을 청원했으나 히틀러의 공갈에 겁을 먹은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가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의 중재로 아돌프 히틀러와 1938년 9월 30일에 뮌헨 협정을 체결.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면서 페이퍼 플랜으로 끝나고 말았다.
6. 세상에 드러나다
한스 오스터는 그 후에도 1943년 까지 현역으로 복무했으나, 유대인들의 탈출을 도운 혐의로 다른 방첩국 장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리고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과 반나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게슈타포가 카나리스 제독의 일지를 접수했고, 오스터의 장기간에 걸친 반나치 행위가 밝혀지게 되었다. 빌헬름 카나리스의 일기장에서 이 계획을 알게되자 히틀러는 길길이 날뛰며 주동자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에서 빌헬름 카나리스와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2]
7. 대중 매체에서
호이4에서 독일의 이벤트로 구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