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

 


'''이상아
李尙雅 | Lee Sang Ah
'''
[image]
'''본관'''
덕수 이씨
'''출생'''
1972년 2월 14일 (52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체'''
163cm, 45kg, B형
'''학력'''
신용산초등학교
용산여자중학교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전문학사)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 미용학전공 (학사)
'''가족'''
부모님, 언니, 여동생
'''자녀'''
딸 윤서진(2000년생)[1][2]
'''소속사'''
후이엔이(후엔터테인먼트)
'''데뷔'''
1984년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
'''종교'''
개신교
'''링크'''

1. 개요
2. 활동
3. 여담
4.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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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배우. 1984년 중학교 1학년 때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연기자 데뷔하여,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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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80년대는 그야말로 가위질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암암리에 테이프나 LP, 영화 등을 소비하면서 문화 소비층이 되었고 이런 트렌드에 80년대 중후반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이상아였다. 당시 남자 중고생들의 일명 3대 여신이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의 대항마로 떠오른 한국 여배우가 이미연과 이상아였다.[3]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 연기 인생에 고난이 많았는데, 1985년 영화 '길소뜸'에서는 당시 중2였는데 임권택 감독의 협박[4]으로 미성년자 베드신 및 알몸 노출씬을 찍었다고 한다.#[5] 단, 영화에선 뒷모습만 노출되었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70년대에는 이영옥, 임예진, 강주희 등이, 이후 이상아와 비슷한 시기에는 강수연조용원, 최수지, 김혜수, 하희라 등이 하이틴 스타로 크게 활약을 했다.[6]
이후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너와 나의 비밀일기'를 비롯해 특히 대학생들한테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각종 광고에 등장했다. 1997년 동갑내기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했으나, 1년 뒤 이혼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후 방송활동이 뜸했다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SBS 아침 드라마 '순결한 당신' 등으로 복귀하였다가 다시 활동이 뜸해졌다. 이 시기에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는 루머가 들리기도 했으나, 나중에 본인이 '병원 광고모델로 활동했을 뿐 방송계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으며 9년 공백기 끝에 2015년 연예계로 복귀하였다.

3. 여담


  • 개신교 모태신앙 신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당 촬영 당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상아는 교회 목사로부터 그만 두라는 충고를 받았고, 신앙적 문제로 초기부터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원래 넉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집안이었지만[7], 이상아가 연기 생활을 한 이후부터 어머니가 이상아의 매니저를 하면서 가족들은 딸의 수입에 의존, 흔한 헐리우드 아역배우의 부모처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굴곡이 심한 편이었다.
  • 1997년에 동갑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하고, 2000년 가수 겸 영화 기획자 전철과 재혼했으나 또 1년만에 이혼했다.[8] 이후 2003년 윤기영과 재혼을 해 잘 살고 있었지만, 2016년에 결국 이혼 보도 기사가 나왔다.
  • 이혼 전 누드 화보 촬영을 했었다.
  • 이후 2019년 1월 1일 tvN 둥지탈출 시즌3에 첫 출연해 딸 윤서진과 함께 출연하였다. 하지만 악플이 이어졌고 사유는 계속된 3번의 결혼과 이혼.. 방송에서 언급했지만 "딸도 이제 컸고 검색하면 엄마의 사생활은 다 나온다.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싫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고백했다.
  • 방송 이후 이상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둥지탈출 어떠셨나요? 화려한 댓글들 여전하더군요. 우리 주니어가 상처를 안 받았음 좋겠네요"라고 글을 올렸다. "참나. 아직도 결혼 3번째.. 뭐 이런 얘기 이제 식상하지 않나요? 남 얘기 너무들 쉽게 하는 세상. 요즘 세상.. 모든 일들이 나한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쉽게 말하지 못할텐데 아쉽네요"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인생 한 치 앞도 못 보는데.. 내일을 점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란 글을 더했다.
  • 다만 이후에도 딸을 향한 악플이 계속 이어지자 2019년 1월 4일 "살면서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지만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수준"이라며 고통을 토해냈다. "부득이하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정리하게 됐다며 게시물 30개 이하, 비공개인 분들은 차단할 것. 이해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으며, 소속사 마라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자신과 딸에 대해 악성 댓글을 게시한 네티즌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을 알린 바 있다. # ##

4. 출연



[1] 2018년에 고3이었던 딸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6만 명이 넘는 수여서 화제가 되었다.#[2] 2번째 남편 소생.[3] 소피 마르소는 66년 11월생, 브룩 쉴즈는 1965년 5월생, 이상아는 72년 2월생으로 훨씬 더 앞선 세대지만(세 여배우 모두 이상아가 데뷔하기도 전에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연기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외국 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 2-4년 걸렸었다. (물론 일본 영화 잡지를 통해 개봉 전 먼저 알려지긴 했다.) 참고로 70년대 후반에 이미 유명해진 두 여배우에 비해선 조금 늦게 데뷔한 피비 케이츠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데뷔한 두 여배우와는 다르게 파라다이스를 찍던 1981년에 이미 줄리어드 스쿨을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 연기 생활을 한 이상아는 고등학생 때부터 제대로 활동한 이미연과는 같은 학년이자 5개월 차이가 나며, 전성기는 좀 차이가 난다.[4] 대본도 안 주고 연기를 시키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자 '''전라 베드신 안 찍으면 찍은 장면 다 물어내야 된다'''라고 협박했다고 한다.[5] 당시 사회 인식이 얼마나 뒤쳐졌었는지 보여주는 한 방증. 21세기인 지금엔 꿈도 못꿀 일이다.[6] 비슷한 연배의 최진실은 성인이 되어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하이틴 스타는 아니었다. 나이 차는 4년 최진실이 많지만, 이상아가 널리 알려진 시기가 더 빨라 5년쯤 차이가 난다.[7] 아버지가 일할 형편이 안 되어 거의 이상아의 수입으로 생활해 왔다고 한다. 오죽하면 소녀가장이라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8] 딸의 돌잔치 사진만은 남겨두고 싶어, 딸의 돌잔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