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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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 역정이 드러난 jobsN 인터뷰
대한민국의 前 개그맨, 사업가. 1974년 7월 6일 생 (50세)[1] 최종 학력은 백제예대 전문학사, 원광대 학사 졸업.
KBS 공채 개그맨 13기[2] 에서 로, 갈갈이 삼형제의 일원. 종교는 개신교이다.
1997년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 응시, 면접관으로부터 나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승환이 들은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 그리하여 박준형, 임혁필, 박성호, 김현기, 서동균 등과 함께 KBS 13기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대사 한 마디로 인해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고 3년 동안 방송을 못하게 된다'''[3][4] . 뭘 해보지도 못한 채 방송계에서 쫓겨난 이승환은 동기 박준형 등과 함께 박승대를 따르며 대학로에 '''스마일 매니아''' 공연을 한다. 스마일 매니아는 대호평을 치게 되고, 이승환 역시도 갈갈이 삼형제라는 코너를 통해 개콘에 입성한다.
박준형, 정종철 등과 같은 코너를 하면서 느끼남 컨셉으로 활동했다. 갈갈이 3형제 영화도 같이 찍었고... 그러나 이후 박준형, 정종철 등이 개그계에서 역할을 확고하게 잡으면서 본인은 상대적으로 개그계에서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이후 2002년, 유아용 셋톱박스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업에 뛰어든 그는 몇 번의 실패로 인해 파산하며 40억원을 날렸다. 그러다가 외식 사업을 같이 하자는 어느 선배의 제안으로 2007년 시작한 '''벌집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고깃집을 차렸고, 2013년에는 320여 개의 체인점, 매출 250억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연예인이지만 일부 지역광고 등을 제외하면 점포 홍보에 딱히 본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이승환 본인은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다가 직원의 횡령과 돼지고기 가격 상승 등으로 자금 압박을 받으며 큰 손해를 보면서 2014년 벌집삼겹살을 비롯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었고, 전재산 30억원도 날렸다. 이승환이 떠난 이후의 벌집삼겹살 역시 2016년 10월 폐업을 결정했고, 홈페이지도 문을 닫았다.
사업 은퇴 이후로는 기부와 봉사의 의미를 깨달아 다양한 기부 활동과 캠페인을 진행 중이며, 국제기후난민구호기금(W재단)의 추진위원장 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자영업자 대상의 창업 컨설턴트도 겸하고 있다. 2016년 12월 마케팅 컨설팅 회사 슈거브로스의 CMO 으로 있으며 거제 관광호텔 프래밀리 호텔을 소유하고 소상공인 강사 섭외에서 1순위에 오를 만큼 스타강사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2018년부터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중국에서 다시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정저우시에 한국인 셰프 4명과 중국인 셰프 2명이 참여한 글로벌 한식 프랜차이즈 ‘쿠킹S6’ 1호점을 오픈한 것. 최근에는 열대사막 채소인 아이스플랜트를 재배하는 파나세아바이오에 CMO로 합류했다.
개그맨은 물론, 여타 연예인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위너로 꼽히고 있다. 개그계에서 물러난 이후 지상파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접었지만, 오락성이 약한 케이블 방송이나 TV쇼 진품명품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에는 가끔씩 출연한다. 게다가 외모도 워낙 받쳐주다 보니 부인 되시는 분도 상당한 미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승환의 따뜻한 희망밥상'''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대기업, 중소기업, 복지관, 학교 등을 돌며 인생 강의를 해 준다.[5]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땐 주로 진로와 연관된 강의를 해 준다. 이때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인데, '''매일 책을 10장씩 읽기''', '''아침에 30분씩 일찍 일어나기''',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하지 않기''' 등이 바로 그 세 가지이다.
만약 이것을 실천하고도 10년 뒤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본인에게 찾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오면 인생을 성공시켜주겠다고...
개콘에서 하차한 후로 개콘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추석특집 코미디빅리그에서 모처럼 완전체 갈갈이 삼형제를 선보였다. 이때 SBS의 출신 느끼남 리마리오와 느끼함 배틀을 벌이기도... 2018년 8월에는 '''홍대 코미디위크'''에서 다시 모인 갈갈이 패밀리와 함께 공연을 했다.
1. 개요
그의 인생 역정이 드러난 jobsN 인터뷰
대한민국의 前 개그맨, 사업가. 1974년 7월 6일 생 (50세)[1] 최종 학력은 백제예대 전문학사, 원광대 학사 졸업.
KBS 공채 개그맨 13기[2] 에서 로, 갈갈이 삼형제의 일원. 종교는 개신교이다.
2. 활동 내역
1997년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 응시, 면접관으로부터 나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승환이 들은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 그리하여 박준형, 임혁필, 박성호, 김현기, 서동균 등과 함께 KBS 13기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대사 한 마디로 인해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고 3년 동안 방송을 못하게 된다'''[3][4] . 뭘 해보지도 못한 채 방송계에서 쫓겨난 이승환은 동기 박준형 등과 함께 박승대를 따르며 대학로에 '''스마일 매니아''' 공연을 한다. 스마일 매니아는 대호평을 치게 되고, 이승환 역시도 갈갈이 삼형제라는 코너를 통해 개콘에 입성한다.
박준형, 정종철 등과 같은 코너를 하면서 느끼남 컨셉으로 활동했다. 갈갈이 3형제 영화도 같이 찍었고... 그러나 이후 박준형, 정종철 등이 개그계에서 역할을 확고하게 잡으면서 본인은 상대적으로 개그계에서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이후 2002년, 유아용 셋톱박스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업에 뛰어든 그는 몇 번의 실패로 인해 파산하며 40억원을 날렸다. 그러다가 외식 사업을 같이 하자는 어느 선배의 제안으로 2007년 시작한 '''벌집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고깃집을 차렸고, 2013년에는 320여 개의 체인점, 매출 250억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연예인이지만 일부 지역광고 등을 제외하면 점포 홍보에 딱히 본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이승환 본인은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다가 직원의 횡령과 돼지고기 가격 상승 등으로 자금 압박을 받으며 큰 손해를 보면서 2014년 벌집삼겹살을 비롯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었고, 전재산 30억원도 날렸다. 이승환이 떠난 이후의 벌집삼겹살 역시 2016년 10월 폐업을 결정했고, 홈페이지도 문을 닫았다.
사업 은퇴 이후로는 기부와 봉사의 의미를 깨달아 다양한 기부 활동과 캠페인을 진행 중이며, 국제기후난민구호기금(W재단)의 추진위원장 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자영업자 대상의 창업 컨설턴트도 겸하고 있다. 2016년 12월 마케팅 컨설팅 회사 슈거브로스의 CMO 으로 있으며 거제 관광호텔 프래밀리 호텔을 소유하고 소상공인 강사 섭외에서 1순위에 오를 만큼 스타강사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2018년부터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중국에서 다시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정저우시에 한국인 셰프 4명과 중국인 셰프 2명이 참여한 글로벌 한식 프랜차이즈 ‘쿠킹S6’ 1호점을 오픈한 것. 최근에는 열대사막 채소인 아이스플랜트를 재배하는 파나세아바이오에 CMO로 합류했다.
개그맨은 물론, 여타 연예인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위너로 꼽히고 있다. 개그계에서 물러난 이후 지상파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접었지만, 오락성이 약한 케이블 방송이나 TV쇼 진품명품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에는 가끔씩 출연한다. 게다가 외모도 워낙 받쳐주다 보니 부인 되시는 분도 상당한 미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승환의 따뜻한 희망밥상'''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대기업, 중소기업, 복지관, 학교 등을 돌며 인생 강의를 해 준다.[5]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땐 주로 진로와 연관된 강의를 해 준다. 이때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인데, '''매일 책을 10장씩 읽기''', '''아침에 30분씩 일찍 일어나기''',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하지 않기''' 등이 바로 그 세 가지이다.
만약 이것을 실천하고도 10년 뒤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본인에게 찾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오면 인생을 성공시켜주겠다고...
개콘에서 하차한 후로 개콘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추석특집 코미디빅리그에서 모처럼 완전체 갈갈이 삼형제를 선보였다. 이때 SBS의 출신 느끼남 리마리오와 느끼함 배틀을 벌이기도... 2018년 8월에는 '''홍대 코미디위크'''에서 다시 모인 갈갈이 패밀리와 함께 공연을 했다.
3. 기타
- 개콘에 출연했을 당시 KBS 방송국 근처에 살아서 동기들이 회의 겸 휴식을 위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 그를 기억하는 개그맨은 그저 느끼남으로만 기억하고, 실제로 더 이상의 히트 작품은 없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코너에 투입되기만 하면 제작진이 안 어울리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라고 했기 때문. 박준형의 생활사투리에서는 세 기수 후배 이재훈으로 강판당하였고, 청년백서에서는 역시 세 기수 후배인 김시덕으로 강판당하였다.
[1] 전까지는 1976년이라고 알려졌지만, 잘못된 정보.[2] 해당 기수 남자들 중 막내였다. 그래도 동기 형들이 이승환을 많이 아꼈다고 한다.[3] 초창기 시절 개콘에 등장한 적이 있는데 누가 보면 스태프인 줄 알 정도로 초라한 비중이었다. 똑같이 물건을 건네주고 퇴장하는 역할이었던 임혁필은 이름 소개 자막이라도 떴지만 이승환은 그런 것도 없었다.[4] MBC 공채 개그맨이자 화니지니의 멤버인 최현진 역시도 신인 시절 NG로 인해 방송출연이 정지된 적 있다.[5] 한 번 강의할 때마다 최소 100씩 받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