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츠네카즈
1. 개요
前 크리쳐즈(前 APE)의 게임 디자이너이자 現 주식회사 포켓몬 CEO 겸 크리쳐즈의 회장.
타지리 사토시가 포켓몬스터 게임을 창조해냈다면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포켓몬스터를 전세계적인 미디어 믹스로 성장시킨 인물이며, 타지리 사토시를 발굴해내고 한국을 필두로 한 비디오 게임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도 포켓몬스터 붐을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 상세
원래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전문 디자이너였으며, 1983년에 쓰쿠바대학에서 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게임 개발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CG를 전문으로 한 후지 테레비 산하 영상 프로덕션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가 1989년 APE에 입사했다. APE는 야마우치 히로시 당시 닌텐도 사장이 닌텐도 내부의 게임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외부의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독창적이고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를 연구하고자 이토이 시게사토를 CEO로 앉히고 설립한 회사인데, 이시하라도 그러한 외부의 전문가 중 하나였다. 이시하라는 APE에서 부사장 직까지 역임했으며, MOTHER 2, 마리오의 피크로스 등의 게임 디자이너 및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후 1995년에 APE사가 해체되고, 이와타 사토루 당시 HAL 연구소 사장의 지원을 받아 이전에 있던 APE사의 직원들이 크리쳐즈를 설립.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크리쳐즈의 CEO가 된다.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APE에 입사하기 전 '게임을 소재로 한 TV 애니메이션' 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에[2] 당시 게임 프리크가 동인 서클 수준에 불과했던 시절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체계화된 지식을 보여주면서[3] 게임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이시하라는 타지리 사토시가 게임에 대해 적합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두 사람은 친분을 맺게 된다.
이시하라가 APE에 입사한 뒤 타지리 사토시는 그와의 인연으로 APE에 게임보이의 통신 케이블을 통해 여러가지가 오가면 재미있겠다는 기획서를 제출했는데, 이 기획에서 '''포켓몬스터'''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기획은 게임에 적용되기에 다소 부실했던데다 게임 프리크의 경영문제 때문에 1년 반이 지난 뒤에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포켓몬스터의 기획을 잠시동안 미루자고 제안하고 3년 가량 연기되었는데, 포켓몬스터의 기획이 다시 재개되고 지금과 같은 포켓몬스터 게임의 방향성을 이끈 것은 이시하라 츠네카즈의 공이 컸다.[4] 이런 우여곡절 끝에 첫 작인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은 새로운 하드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자는 목표로 1990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당초에는 1991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개발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게임보이의 끝물인 1996년 초가 되어서야 정식 발매되었다. 이시하라는 막차를 겨우 탔다는 표현을 했을 정도로 기대치가 매우 낮았으며, 초창기 판매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포켓몬스터의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그는 일찍이 후속작을 내다보게 되었으며 그것이 궁극의 포켓몬 게임이 되기를 바라며 금·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초기에 계획한 "게임을 소재로 한 미디어 믹스" 와 "궁극의 포켓몬 게임" 을 완성시키기 위한 밑바탕으로 거의 동시기에 머천다이즈, 애니메이션, TCG, 극장판, 외전 게임 등을 빠르게 기획하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판권 회의도 매주 1차례씩 했었다. 이시하라는 구체적으로 이 포켓몬의 상품은 여기에 쓰이는 것이 좋다면서 포켓몬 미디어 믹스의 기획 방향이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한다. 1998년에는 포켓몬의 상품을 판매하는 포켓몬센터가 설립되기에 이르었다.
원래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포켓몬스터 금·은이 궁극의 포켓몬이라고 언급한 만큼 금·은까지만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보다 레드·그린은 시간이 갈수록 대박이 나게 되고[5] , 타지리 사토시는 블루 버전을 내고 피카츄 버전까지 기획하게 된다. 특히 피카츄 버전을 계획했을때는 한창 금·은이 개발 단계에 있었고 레드·그린의 해외판 개발도 겹쳐지느라 인력도 부족해서 결국 금·은 개발은 중단되기에 이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레드·그린 개발이 끝난 직후 기획한 금·은은 3년 반이 지난 1999년 11월에 발매되었다. 금·은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는 타지리 사토시에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고 말했을 정도였으나 적·녹보다도 더 무서운 기세로 팔리고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자 이대로는 끝낼 수 없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포켓몬이 계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애니메이션이 끝나지 않는 것, 매년 영화가 계속 제작되어야 하는 것 등을 생각했으나 이에 필요한 업무량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시하라는 게임 프리크가 차기작 개발을 원할하게 진행하기 위해 포켓몬의 라이선스 관리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설립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2000년 6월에 기존의 포켓몬센터 관리를 위해 설립한 법인을 포켓몬 라이선스 및 브랜드 관리를 위한 기업으로 변경하고 주식회사 포켓몬이 출범하게 된다.
그래서 2000년까지는 본가 및 외전 시리즈의 프로듀서로서도 게임 개발을 해왔으나 포켓몬 카드 GB 2를 끝으로 주식회사 포켓몬이 출범한 이후부터는 게임 개발에서 손을 떼고, 현재는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의 경영 쪽에만 집중하고 있다. 주식회사 포켓몬의 CEO인만큼 게임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시리즈, TCG, 상품, 행사 등의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크레딧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포켓몬스터는 헬로키티, 곰돌이 푸를 제치고 미디어 믹스 총 매출 1위(약 950억 달러)를 달성하고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게임 개발은 더 이상 안하지만 포켓몬스터 외전 작품 중에서는 여전히 이시하라의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 많은데,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도 이시하라가 톨네코의 대모험 이상한 던전을 해보고 감명을 받아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고, 포켓몬 GO도 탄생 배경 자체가 Ingress에 대한 이시하라의 빠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게임 개발 과정에는 터치를 잘 안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본가 시리즈의 경우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의 기획 과정에서 많은 것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마스다 준이치한테 보고를 받았을 때 정말 이래도 되겠냐며 되묻는 정도밖에 없었다고 하며 전적으로 게임 프리크의 제작진들을 믿는다고 말했을 정도. 게임 프리크의 타지리 사토시 또한 본인은 게임 개발자일 뿐이며, 다른 미디어 믹스에까지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분업 체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포켓몬스터 관련 판권을 관리하는 회사의 CEO라 현재까지도 포켓몬스터 관련 사업에서 얼굴마담을 맡고 있으며, 포켓몬 관련 닌텐도 다이렉트나 각종 인터뷰에서 주로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은 이시하라 츠네카즈다. 닌텐도 온라인 매거진, 사장이 묻는다 같이 닌텐도에서 진행하는 포켓몬 관련 게임 개발자 인터뷰에서 이시하라는 거의 매번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때문에 포켓몬스터의 창시자인 타지리 사토시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타지리 사토시는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잘 비치지 않는다.
3. 휴대용 완구의 왕
이와타 사토루를 포함해서 크리쳐스 창립에 관여한 사람들이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가지고 다니면서 놀 수 있는 게임에 큰 관심을 보여서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그는 가지고 다니는 완구를 통해 친구와 교환하고 그러면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기도 하는 특성 때문에 예전부터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철학이 포켓몬을 휴대용 게임기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와 교환하고 배틀하는 지금의 포켓몬스터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셈이며, 포켓몬스터의 메인 시리즈가 지금까지도 휴대가 가능한 콘솔로만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포켓몬스터가 완성된 이후에도 그는 포켓몬에 적용시킬만한 휴대용 완구에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포켓몬스터 TCG의 탄생에 큰 관여를 했으며, 포켓몬스터 피카츄가 개발되는 동안 포켓 피카츄라는 만보기 + 다마고치형 완구를 내기도 했다.
포켓몬스터 파이어레드·리프그린에 있는 와이어리스 어뎁터도 휴대용 완구의 왕인 이시하라한테 꼭 보여줘야겠다며 닌텐도가 제작한 것이고, 만보계를 통해 닌텐도 DS와 연동해서 생활 리듬을 측정하는 기능성 게임인 걸어서 아는 생활 리듬 DS(歩いてわかる 生活リズムDS)[6] 도 만들고 난 뒤 이시하라한테 보여줬다고 한다. 그것을 시연해본 이시하라는 과거에 제작한 포켓 피카츄를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포켓워커가 탄생된다. 포켓몬 GO에 쓰이는 포켓몬 GO 플러스와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레츠고! 이브이용 컨트롤러인 몬스터볼 플러스도 포켓워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닌텐도는 모바일 앱 시장에 2016년이 돼서야 끼어들었지만 포켓몬은 휴대용 완구의 왕인 이시하라의 영향력 때문인지 무려 2011년부터 iOS와 안드로이드 용 앱을 개발했다. 첫 앱은 일본 한정으로 나온 포켓몬 말할 수 있을까? 노래를 베이스로 한 리듬 게임인 ポケモン言えTAP?으로, 2011년 7월 15일에 iOS와 안드로이드 용 앱으로 나왔다.
특히 게임 외에도 포켓몬 이름을 단 여러 기능성 앱이 나오고 있는데, 포켓몬스터 본가 사운드트랙을 들을 수 있는 포켓몬 주크박스라던가 스노우 같이 사진에다 갖가지 포켓몬 관련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포켓몬 포토 부스라던가 특이한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고 있다. 빠르게 서비스 종료되는 것들이 많지만 2020년에도 현재진행형이라 수면 보조 애플리케이션인 포켓몬 슬립이 2020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모바일 시장을 눈여겨보고 포켓몬을 이용해서 이런 저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다가 포켓몬 GO를 내는 것을 보면 여전히 휴대용 완구의 왕이라는 칭호가 어디가지 않는 것 같다. 포켓몬 GO는 다시 한 번 사회 현상을 일으켰고, 2019년 10월까지 약 30억 달러의 매출을 냈다.
2017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닌텐도 스위치가 발매되기 이전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닌텐도 스위치와 같은 비디오 콘솔 시장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다고 했다. 그가 모바일 시장의 잠재성을 크게 평가하고 있는데다 휴대가 가능한 것에 대해 여전한 관심을 볼 수 있는 부분.# 그렇지만 이에 대해선 자신이 틀렸으며, 좋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만 있다면 콘솔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7] 그러면서도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한단계 더 발전해야한다고, 잠재력이 있지만 그것이 과대 평가돼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본가가 아닌 외전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 유나이트를 대형 프로젝트라고 칭한 점에서도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얼마나 모바일 게임을 높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 여담
- 포켓몬스터 초기작의 프로듀서로서 원로 개발자이면서도 현재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인데다,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계속 내비치고 있지만 창시자인 타지리 사토시나 게임 프리크 개발자인 마스다 준이치, 스기모리 켄 등과는 다르게 인지도가 상당히 낮다. 상술했듯이 이시하라를 타지리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게임 개발자 출신이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사장직을 맡은 경력으로 따지면 경영 부문에선 오히려 타지리 사토시가 더욱 선배다.[8]
- 상술한 생활 리듬 DS 외에도 여러가지 닌텐도의 상품을 시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Wii Fit를 해본 후 개의 체중을 잴 수 없다고 미야모토 시게루한테 말하자 마야모토는 이시하라의 말에 자극을 받고[9] 후속작인 Wii Fit Plus에서는 개와 고양이, 아기의 체중을 잴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고 한다.
5. 외부 링크
[1] 크리쳐스에서 2000년 이후로는 공식적인 업무는 더 이상 하지는 않으나 창립 회장 직위는 남아있다.[2] 즉, 포켓몬스터는 탄생 당시부터 미디어믹스를 염두해두고 있었다는 소리다.[3] 타지리 사토시는 제비우스가 어떻게 생겨나고 본인이 어떻게 플레이했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4]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의 프로듀서이자 닌텐도의 홍보실 기획부 부장이였던 카와구치 타카시의 말에 의하면,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당시 TCG 같은 카드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이 요소를 포켓몬에 적용시키면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한다. 포켓몬스터가 MOTHER 2의 영향을 받은 것은 MOTHER 2의 라인 프로듀서였던 이시하라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5]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의 주간 판매량 1위는 발매된 지 1년 반이 지나서 달성하게 되었다.[6] 마침 소프트웨어 개발을 본인이 창립한 크리쳐즈에서 개발했기 때문에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한다.[7] 이는 현재의 모바일 게임 시장을 어느정도 저격한 면도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질 나쁜 양산형 현질 유도 게임이 시장을 장악해버렸고, 그로 인해 콘솔 시장은 좋은 품질의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 덕분에 스마트폰의 공세 속에서도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8] 타지리 사토시는 1989년 게임 프리크 설립 이후로 줄곧 사장이지만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1995년 크리쳐즈 설립 이후로 처음 사장직을 맡았다. 타지리가 게임 프리크와 크리쳐즈의 병합을 고려했을 때, 이시하라는 오히려 본인이 타지리한테 회사 경영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을 정도.[9] 원래도 애완동물의 체중을 잴 수 있는 기능을 생각해두었다고는 하는데 넣진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