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

 



1. 개요
2. 생애
3. 사극에서


1. 개요


李麟佐
(1695[1]~1728)
조선 영조 때의 역신(逆臣). 이인좌의 난을 일으켰다. 본명은 현좌(玄佐), 본관은 전주(全州).
역적으로 낙인찍혀 전주 이씨 종친부의 족보에 이름이 지워져있고 가문도 제명처리되어 있다.[2][3]

2. 생애


1695년에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9대손으로 태어났다. 이인좌의 조부는 관찰사를 지낸 이운징이었다. 나중에는 윤휴의 손녀사위가 되었다.
과격한 남인 인사로서 소론이라 했지만 이인좌는 본래 남인이었다. 기사환국으로 득세했을 때 군권을 쥔 훈련대장으로 있던 이의징이 이인좌의 종조부였으며 이인좌의 할아버지 이운징은 그의 동생이였다. 이인좌가 역모를 구성할 때 준론인 김일경의 아들과 결탁하였다. 신임사화로 득세하였으나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몰락하면서 함께 실각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남인과 소론파를 규합하여 영조 4년인 무신년(1728년) 소현세자의 자손인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기 위해 박필현, 정희량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4]
그 후 충청도 청주성을 함락하고 이봉상, 홍임, 남연년 등을 죽인 후 대원수라 스스로 칭했으며 3월 23일 경기도 안성에서 도원수 오명항의 군사를 공격했지만 신기전을 쏘자 이에 놀라 죽산으로 도주했다.
그렇게 청룡산으로 물러났지만 오명항이 이끄는 군사가 산으로 올라 공격하자 이인좌의 군사는 결국 무너졌으며 그칠 줄 모르는 추격으로 갑옷과 투구를 벗어 내동댕이 친 채로 달아나 산사에 숨었다가 신길만(申吉萬) 등 마을 사람들에게 3월 24일에 붙잡혔다. 여러 장수들이 이인좌를 죽여 이인좌의 살점을 떼내 분풀이를 하려고 하자 오명항이 거짓으로 이인좌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인 뒤 그 가짜 목을 매달고 적괴 이인좌라고 했다.
진짜 이인좌는 함거에 실려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1728년 3월 26일 친국에서 문초를 받다가 역모의 전모를 공술하고 1728년 3월 27일 대역모반죄로 군기시 앞에서 거열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인좌의 아내 윤자정[5] 역시 연좌제에 따라 청주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자녀들은 유배되었다.

3. 사극에서


34세라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처형당했음에도 반란군의 수장이라는 역할 때문인지 대중매체에서는 중년 이상의 나이 지긋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 SBS 2016년 작 드라마 대박에서는 전광렬이 연기하였다. 여기서는 본인이 왕족이라 왕위를 직접 탐하여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으로 등장하여 숙종 때부터 역심을 품고 숙종에게 숙빈 최씨를 접근시키는 등의 모략을 펼치는 최종보스 격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마지막에는 역사처럼 거열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1] 추안급국안 무신역옥추안에 따른 이인좌의 생년[2] 1900년에 편찬된 선원속보 임영대군편 3권을 보면 정확히 복주(伏誅)와 좌주(坐誅)라고 나와 있다.(복주는 토벌에 의해서 주살되었다는 의미이고 좌주는 연좌제로 주살되었다는 의미.) 이인좌 본인하고 이인좌의 첫째동생인 이웅좌(李熊佐)는 복주되었고 이인좌의 나머지 두 동생인 이준좌(李駿佐)와 이기좌(李麒佐)는 연좌제로 주살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인좌의 자손들은 황해도 평산에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대한제국 멸망 이후로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3] 선대이긴 하지만 고려무신정변을 일으켜 권세를 잡았지만 곧 암살로 몰락한 이의방과 이에 동참해 횡포를 부린 형 이준의도 전주 이씨 족보에서 지워져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들의 동생인 이린이성계의 선조라는 것.[4] 흔히 이인좌는 무신년 반란의 주도자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인좌뿐만 아니라 박필현, 정희량 등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일으켰고 이인좌는 경기도에서 반란을 주도했을 뿐이다. 이인좌가 반란 초기에 청주를 함락시키고 곧장 경기도로 진군하는 등 경기도 지역에서 크게 위세를 떨쳤기 때문에 반란의 명칭에 이인좌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5] 윤휴의 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