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일(1640)

 

'''도정궁의 역대 주인'''
5대 이정한

'''6대 이홍일'''

7대 이세정

'''도정궁 5대 사손'''
'''이홍일
李弘逸'''

'''본관'''
전주(全州)
'''이름'''
홍일(弘逸)
''''''
사안(士安)
'''양부'''
이정한
'''양모'''
정부인[A] 파평 윤씨(坡平 尹氏)
정부인[A] 청송 심씨(靑松 沈氏)
'''생부'''
이석한[1]
'''생모'''
정부인[A] 경주 김씨(慶州 金氏)
'''부인'''
정부인 기계 유씨(杞溪 兪氏)
'''자녀'''
3남 3녀
'''생몰
기간
'''
'''음력'''
경진년 9월 18일 ~ 무술년 12월 6일
'''양력'''
1640년 11월 1일 ~ 1719년 1월 25일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가족과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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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왕족 출신 문신. 도정궁 제5대 사손이자 제6대 주인이다.

2. 생애


양력 1640년(인조 8년)[2] 11월 1일[3]응천부정 이돈의 차남 이석한과 부인 경주 김씨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에 사마 양시[4]에 급제한 직후 현종의 명으로 아들없이 죽은 큰아버지 도정궁 제4대 사손 이정한양아들이 되었다. 이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 제수받아 덕흥대원군제사를 받들었다.
양아버지처럼 영위사(迎慰使)와 문안사(問安使) 등 청나라 사신을 맞이 및 전송하는 관리직을 맡았다. 1696년(숙종 22년) 6월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이 되었다.

3. 사망


양력 1719년 1월 25일[5]에 별세했다. 향년 79세.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덕송리, 지금의 현 남양주시 별내동 덕릉마을 수락산 뒤편에 있다.

4. 가족과 자손


정실부인 기계 유씨와의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다. 이후 도정궁 가계는 이세정(1661) 참조.
큰딸은 맹만택과 혼인하였다. 맹만택은 현종의 큰딸 명선공주의 부마로 결정되었다가 혼례 전 천연두로 명선공주가 사망해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부마[6]는 재혼을 못하지만 정식으로 혼인하기 전에 공주가 죽었으므로 재혼이 가능했던 것.
훗날 숙종 시기 맹만택의 딸이자 이홍일의 외손녀가 인현왕후 사후에 새 왕비 후보에 올랐었다.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 최씨의 싸움에 질려 있던 숙종은 간택을 하면서 규수의 도덕성과 순종을 특히 강조했는데, 맹만택의 딸이 딱 적합하였다. 그러나 이홍일의 평소 사치스러운 생활 습관과 거만한 언행으로 사람들에게 미움받던 게 결정적인 결함 사유가 되어 결국 맹만택의 딸은 탈락하였다.(...)


[A] A B C 사후 추증.[1] 이홍일의 양부 이정한의 동생.[2] 인조는 이홍일의 할아버지 뻘로 이홍일은 현종과 같은 항렬이다.[3] 음력 9월 18일.[4] 司馬兩試.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쳐 이르는 말.[5] 음력 무술년(숙종 44년) 12월 6일.[6] 임금의 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