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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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화재현장. 종로타워와 보신각 뒷편의 파이롯트 매장 건물이 보인다.
당시 사진 자료 1 당시 사진 자료 2
1. 개요
2. 화재 진압의 어려움
3. 죽어가는 피맛골
4. 방화 가능성
5. 붙잡힌 방화범
6. 사라진 추억
7. 대통령 취임 직전 방화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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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2월 17일 오후 8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255번지 식당 밀집지역[1]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불은 1시간 30분이 넘게 지속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사동 먹자골목의 건물 11채, 점포 23곳이 불에 탔다. 서울 중심가에서 일어났으므로 화재 상황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2]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인근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한국인 여성 6명과 일본인 여성 1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뒤 곧바로 퇴원하였다.

2. 화재 진압의 어려움


인사동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차 등 66대가 동원됐으나, 하지만 실제 진화에 활용된 소방차는 6~8대에 불과했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골목에서 불이 난 탓이다. 이날 종로소방서에 배치된 ‘골목형 소방차’는 출동 1시간여 만에 화재 현장이 아닌 소방서로 되돌아갔다. 이미 불길이 크게 번져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골목형 소방차는 골목길을 쉽게 지날 수 있도록 일반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차량이다. 대형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운 주택가 등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초기 진압에 투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화재 이후 이 골목 소방차가 계륵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당국이 활용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섣불리 도입해 버리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골목형 소방차의 활용이 제한되는 이유는 화재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번질 경우 진압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골목형 소방차의 물탱크 용량은 300~500ℓ로 일반 소방 펌프차 평균인 2000~3000ℓ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때문에 골목형 소방차가 사실상 ‘문화재형 소방차’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산화탄소 소화액을 200kg의 강한 압력으로 쏜 뒤 산소가 공급되는 것을 막아 진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화재 화재 초기 진압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당시 소방 당국 관계자는 “골목형 소방차는 그 이름에 맞게 골목을 누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며 “종로구과 동작구에 배치된 것은 높은 압력으로 문화재 지붕에 구멍을 내 불을 끄는 ‘문화재형 소방차’에 가깝다”고 설명하였다.

3. 죽어가는 피맛골


화재가 발생한 종로 인사동은 일명 피맛골이라고 불리던 곳으로써,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피마(避馬)' 에서 유래하였다.
피맛골은 서민들이 이용하던 길이라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했던 골목으로, 원래는 종로 1가(청진동)부터 종로 6가까지 이어졌으나 2013년에는 종로 2~3가 사이에 일부만 남아 해장국, 생선구이, 낙지볶음, 빈대떡 등을 파는 음식점이나 술집 등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상권이 거의 죽어있는 상태였다. 인사동 화재는 종로 2가에서 발생하였다.
사실 인사동 골목에서 발생한 화재는 2013년 뿐만이 아닌데, 짧게는 10여년부터 길게는 20여년까지 인사동은 크고 작은 화마(火魔)에 시달려왔다.
-1990년 1월 24일 저녁 11시 인사동 떡집골목 화재, 12개 점포 전소
-2002년 11월 12일 새벽 인사동 먹자골목 화재로 음식점과 술집 등 10여개 점포 전소
-2003년 5월 27일 새벽 3시 인사동 131-101번지 일대 일명 피맛골 화재로 10여개 점포 전소
-2008년 12월 13일 새벽 5시 인사동 금좌빌딩 방화 추정 화재
-2010년 4월 23일 오후 6시 인사동 234번지 음식점 화재
-2010년 10월 13일 출근시간대 인사동 YMCA 뒷골목 화재
-2013년 2월 17일 저녁 8시 인사동 255번지 화재로 19개 점포 전소
위의 화재사고 중 몇몇은 점포 10여개 이상을 전소시킨 대형화재로 종로 상공에 거대한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이후 해당 지역의 상권은 기존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다. 2002년과 2003년의 대형화재는 10여개 이상의 점포를 전소시켜 골목을 거의 초토화시켰고, 일부 점포는 화재보험 가입으로 보상을 받아 재건축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 점포는 건물 입구만 막아놓은 채 거의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

4. 방화 가능성


화재 직후 종로 공평상가 대책위원회 소속이었던 이승철 위원장은 인사동 화재가 재개발을 노린 방화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해당 지역(공평 1, 4지구)은 2013년 들어 재건축, 재개발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몇십년 동안 별탈없이 영업을 해오던 음식점에서 영업도 하지 않은 일요일 저녁에 불이 난 것, 화재 이후 피해를 입은 사업주들에게 돌아갈 보상금액이 영업을 재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방화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사건 발생 당시 네티즌들의 반응도 재개발을 노리고 저지른 방화일 것이라는 짐작이 많았다.

5. 붙잡힌 방화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방화범 검거 당시 뉴스

우리 대한민국이 쓰레기 천국이 돼 있습니다. 깨끗이 청소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제 한몸 희생 되더라도. - 안 모 씨, 방화 피의자 -

재개발을 노린 방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국 사건 발생 후 3주가 조금 안 되어 방화범 안 씨가 붙잡혔다. 50대 남성인 이 방화범은 붙잡히기 엿새 전 덕수궁 농성 천막에 불을 지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식당 내의 가스 폭발이 화재 원인이라는 사건 발생 초기의 추정과는 달리, 화재의 원인은 사건 당일 인사동 육미식당 1층에서 술을 마시던 안 씨가 발화 지점이었던 2층 직원 탈의실로 올라가 고의로 불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불을 지른 후, 안 씨는 맞은 편 건물로 올라가 불이 나는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찍어뒀는데, 그 사진이 자신이 방화범임을 입증해 버리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경찰이 덕수궁 농성 천막 화재 용의자로 안 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었는데, 안 씨의 휴대전화에서 불이 붙은 식당의 사진이 발견된 것이다. 경찰이 사진을 들고 추궁하자 안 씨는 위와 같은 말을 하며 결국 방화사실을 자백했다.
경찰 조사 결과 2004년 충동 장애 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는 안 씨는 인사동 방화와 덕수궁 농성 천막 방화 외에도 3건의 방화를 더 저질렀다고 한다.

6. 사라진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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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발생한 인사동 '육미'는 20년 동안 수많은 단골들을 확보한 식당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추억이 남아있던 모든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2013년 '위키트리 선정 SNS 10대 이슈' 중 두 번째로 '''전소된 인사동 '육미', 추억 트윗 모음'''이 선정되었다.#
2014년 서울 중구 을지로1가에서 육미식당이 다시 개장하였다.

7. 대통령 취임 직전 방화 징크스


여담이지만, 이 사건이 방화로 밝혀지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 취임식 직전 대형 방화사고 징크스는 그 맥을 잇게 되었다.'''
- 노무현 대통령 취임 7일 전, 김대중 국민의 정부 말기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
- 이명박 대통령 취임 15일 전, 노무현 참여정부 말기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월 10일 숭례문 방화 사건
- 박근혜 대통령 취임 8일 전, 2013년 2월 17일 종로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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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쉽게 말해 매년 1월 1일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보신각 건너편,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종로타워 뒷편 골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2] 바로 길 건너 연합뉴스, 세 블럭 거리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언론사 밀집지역이다.[3] 다만 이 사건은 실화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고, '''결국 입산자의 폐기물 소각으로 인한 실화'''였던 것으로 드러나 대통령 취임 직전 방화 징크스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