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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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 완공 직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1 (종로2가) 소재 건물. 지상 33층, 133m짜리 건물로, 종로의 랜드마크격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3-1번 출구와 가까이 있다.
세 개의 기둥이 고층부의 고리모양의 스카이라운지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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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 부지에 위치했었던 옛 화신백화점의 1960년대 모습.
종로타워 터는 조선 시대 포도청이 있었던 곳이고, 일제강점기 때는 반민특위 1호 검거자로 유명한(...) '''박흥식의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로 대한민국의 대형 백화점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적어도 2020년 현재 40대 이상 연령들은 기억하고 있는 네임드한 백화점이었다.[5] 그러나 화신백화점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1960~70년대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고[6] , 결정적으로 종로 확장계획과 맞물려 1978년 공평동이 도심재개발 사업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화신백화점마저 철거 대상에 오르게 된다. 백화점 건물 면적의 절반이 도로확장 예정 부지에 포함되어버린 것. 이 소식에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과 전문가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시대가 시대였고, 결정적으로 건물주인 화신그룹이 몰락하고 있었기 때문에...1980년, 화신그룹은 결국 해체되었고, 신생 등 몇몇 기업을 거쳐 1986년 최종적으로 한보그룹이 화신백화점의 주인이 되었다.
어쨌든 철거는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한보그룹은 그 자리에 새로운 백화점 신축 계획을 세웠으며[7]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건축가 김무언의 설계안이 확정되었다. 김무언의 설계안은 이왕 건물을 원형보존할 수 없다면 새로 짓되 적어도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그러니까 파사드만 남긴 뒤 이를 신축 건물에 대입하는 방식[8] 으로 화신백화점의 장소적 역사성을 살려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1987년, 마침내 신규 건축 허가가 떨어지면서 화신백화점은 폐업되고 그 해 철거가 시작되었다.[9] 계획대로였다면 1989년에는 지하 5층 지상 18층 규모의, 하지만 전면부는 옛 화신백화점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초대형 백화점이 종로 한복판에 세워졌겠지만...
'''같은 해 부지의 주인이 한보건설에서 동방생명, 그러니까 지금의 삼성생명으로 바뀌게 된다.'''
자금 압박으로 인해 돈이 필요했던 한보[10] 와, 영등포역과 청량리역 민자역사를 노렸으나 롯데백화점에게 연속으로 물을 먹은(...)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의 점포 확장을 원했던 삼성의 목적이 서로 맞아 떨어졌던 것. 1987년 말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미국의 건축가 엘레비 베켓에게 건물의 설계를 의뢰했다. 그리고 1990년 확정된 계획안은 기존 김무언의 설계도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건물이었으나,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전체에서 주 출입구로 한정하는 방향으로 그 범위는 줄었지만 어쨌든 파사드 계획은 살아남으면서 화신백화점의 역사를 신축 건물에 계승시키려는 의도 자체는 유지되는 듯 보였다. 동방-화신백화점(혹은 신세계백화점 종로점)으로 명명된 건물은 그렇게 확정된 설계안대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1993년 드디어 골조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골조를 끝냈으니 이제 마감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다.'''
다름아닌 당시 건축주가 설계방침 및 용도변경[11] 을 확정한 것. 1993년 당시의 삼성은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으며, 신축중인 건물도 이러한 방침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신축 건물의 골조공사가 완성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기존 골조를 철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건물을 개축하는 형태의 새로운 설계안을 공모했고 1995년 라파엘 비뇰리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지상 18층으로 계획되었던 건물이 33층으로 확장되면서 기존 골조의 대대적인 보강이 필요했고, 세 개의 타워형 코어 위에 고리 모양의 스카이라운지-탑 클라우드-를 얹는 오늘날의 모습이 이 때 확정되었다. 반면 종로의 역사적 장소성의 유지보다는 새로운 삼성, 삼성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건축주의 의도에 충실한 새 설계안 속에서 아쉽게도 구 화신백화점의 역사성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던 이전 건축가들의 시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설계안이 확정된 1995년 공사가 재개되었고, 1999년 9월 드디어 우리가 아는 종로타워가 완공되었다.
1999년 완공당시에는 국세청이 신청사 건립을 위해 종로타워를 3년간 임차하여 사용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건물을 아직도 '''구)국세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과거에는 국세청 측에서도 유의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일부에서 이 건물을 '''땡전타워'''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 [12]
국세청이 돌아간 후로는 삼성증권 등의 삼성그룹 산하의 금융회사가 들어와 있다. 또한 지하 1층에는 이랜드그룹의 애슐리[13] 와 재설립된 종로서적이 입점해 있다. 사실은 지하 1층 서점가에 대한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인근에 있던 종로서적을 입점시키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로서적은 당시 자리를 고수하려 들었고, 결국 재부흥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14] 그래서 지하 2층은 이상한 쇼핑몰을 만들었고, 지하 1층에 푸드코트를 차렸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푸드코트가 꽤 다양한 배치에 양도 나쁘진 않았지만, 맛이 정말이지 끔찍할 지경이였다. 결국 지하 2층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가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이 들어왔었다. 현재는 영풍문고 전무 출신의 인물이 재설립한 종로서적이 입점했다! 근처에 교보문고, 영풍문고 두 거대 서점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7년 12월 20일, 스타벅스의 국내 초대형 플래그십 스토어인 스타벅스 더종로R점이 오픈했다. 매장 규모가 무려 330평으로 국내 스타벅스 매장 중에 가장 넓은 편.
2018년 9월 3일, 레스토랑인 탑클라우드가 있던 33층 최상부에 공유오피스 공간인 위워크 종로타워점이 오픈하였다.#
2019년 2월 25일, 한국맥도날드 본사가 교보빌딩에서 이전하여 14층에 입주하였다.
종로 건너에는 보신각이 있고, 우정국로 건너에는 SC제일은행 본점이 있다.[15] 대각선 방향으로 영풍문고 서린동 본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생김새가 호불호가 갈리는 탓인지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랭킹 3위에 올랐다. 서울특별시청이 압도적으로 1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가 2위였는데 종로타워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의 표차는 불과 2표차라고(...)
사실 도쿄국제포럼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라파엘 비놀리의 작품이지만, 건설 당시부터 라파엘 비놀리가 도쿄국제포럼 만들 때의 섬세한 디자인과 달리 종로타워는 선이 정리되지 못하고 투박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건축가들에게와는 달리 우리나라 건축가들에게 대충 적당히 설계의뢰한 걸 넘겨준게 아니냐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유도 있지만 국내 건축가들이 이 건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먼저 상징성 문제. 옛 화신백화점 건물은 서울, 아니 한국 건축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주요 건축물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었는데, 이를 철거해 버리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는 것에 대한 반감과 '''종로'''라는 전통이 오래된 거리 및 거리의 다른 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튀는' 외향이 싫다는 것.[16] 물론 도심 재개발로 종로1가(청진동)에 비슷한 건물들이 많이 생겨서 지금은 같이 튀지만. 만일 이 건물이 이 모양 그대로 여의도나 강남대로, 영동대로, 테헤란로에 있었다면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제는 공평동 재개발로 바로 북쪽에 센트로폴리스가 들어서고, 앞으로 새 건물들이 더 올라갈 계획이라서 종로타워만 비난 받기에는 뭐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서울 시내에 '''튀는''' 건물들이 지어지지 않은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첫번째로 도심에 위치하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의 역사가 길어서 당시의 시공기술이나 건축 경향이 복잡한 건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정주영 회장은 아파트 같은 주거건물을 빨리 지어 올리기 위해서 기둥보다는 벽이 하중을 지탱하는 방법을 선호했는데 이렇게 하면 벽에 별 장난을(...) 치기가 어려워서 건물이 단순해진다.
그리고 둘째로 군사독재 시절이 한국 현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분들의 건축 취향은 군대 내무반이나 생활관을 떠올려 보자. 더군다나 이런 이유로 인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단조로워지고 건물들이 다들 성냥갑을 눕혀놓은 것 같다고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 그렇게 보자면 종로타워는 도심의 단조로운 스카이 라인에 압도적인 높이가 아니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색다른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위의 옹호론이 약간 설득력없는 부분이라면, 저 건물은 아예 처음 지어질 1990년대 말 당시 건설사와 협력 설계사무소 내의 건축가들에게 이미 디스를 당했다는 점이다. 당시 지어진 라파엘 비놀리의 도쿄국제포럼의 우아함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건축가들의 찬사가 쏟아진 마당이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 난 건축가들이 종로타워 설계안을 보고 그 투박한 선에 아연실색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보생명 본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니,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님, 일본에 멋진 건물 지어주셨다면서여? 우리도 그런 설계 하나 해주세여'''라는 식의 접근은 독창적인 건축에 방해가 될 뿐더러 일본 건축물을 베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거기다가 건축가 본인을 뿔나게 만들 가능성 마저 있다.(...)[17]
라파엘 비놀리에게 도쿄국제포럼과 똑같은 유선형의 건축을 요구하기도 뭐한게 교보생명 본사 건물은 건축가의 의견을 무시해버리고 그냥 일본에 있는 동일한 디자인의 건물을 베껴서 만들었다.(...) 같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똑같은 디자인을 요구할 수는 없다. 건축 부지가 도쿄국제포럼[18] 은 넓게 퍼질 수 있는 반면에 종로타워는 위로 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투박한 선 속에 층수가 올라갈 수록 다양한 변주를 주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고,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있다. 만약 종로타워가 수직으로 솟아올린 도쿄국제포럼의 변종일 뿐이었다면 교보생명 본사의 연장선상에서 가루가 되도록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도쿄국제포럼은 종합문화시설이지만 종로타워는 건축 당시나 지금이나 '''사무빌딩'''이다.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이 입주하고 있고 국세청도 사무용도로 사용했었다. 종합문화시설은 내부에 여러 공간을 비워두고 그 비워둔 공간에 다양한 변주를 주어 이런저런 실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용 빌딩이라면? 내부를 일단 사무공간으로 채워넣는 것이 우선이고 그 이후에나 지하나 옥상층에 간단한 문화시설이나 사원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축 내부에 변주를 주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아무리 진보적인 회사라도 회의실이나 남들보는 로비 정도나 좀 신기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주 사무공간은 그냥 직사각형이 관리하기 쉬운 공간을 원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회사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회사라면.(...) 변주를 주고자하면 외부에 주어야 하고 기왕 변주를 줄것이면 강렬하게 주어야 한다. 네모박스, 원통, 원형링(...), 텅빈 공간 등등 보기 쉬운 주제로 이해하기 쉬운 변주를 외부에 준 것이다. 관리하기 쉬운 금융회사의 사무공간을 요구하면서도 독특한 건축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까다로운 요구에 이만큼 부응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종로타워는 고층 빌딩의 형태를 선택해서 주변 환경과의 이질성을 다소 완화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외부 디자인이 변경되고 아예 중심부를 뚫어버리는 파격을 주어 주변 환경과 대비되는 신선함을 보여준다. 퐁피두 센터 수준은 아니지만 유리와 철제 구조를 노출 했고 철근과 유사한 데코레이션을 통해 콘크리트와 대리석 장식속에 숨은 철근콘크리트와 유리라는 재료의 인상을 남긴다. 높으신 분들의 입김과 비평가들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비판속에서 나름 타협점을 찾으면서도 서울 시내에 파격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무슨 건물을 배꼈다는 비판은 받지 않는 건물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신기하게 비추어지기는 하지만 혐오스럽게 비치지는 않으니까. 건축에 대해 보수성과 동시에 신선함을 요구하는 한국 건축계에서 이정도면 선방했다고 평해야 할듯.
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외국에도 좀 알려졌는지 심시티 5[19] 와 스타크래프트 2 맵인 금속도시[20] 에 우정출연했다. 이터널시티에서도 종로의 국세청 건물로 등장한다. 패러렐시스템이 위치하고 있어 상당히 중요한 건물. 만화가인 키무라 아스카는 '로봇으로 변신할 듯한 건물' 이라 극찬했다.
2016년 7월 20일 화재가 발생해 약 '''33제곱미터'''가량이 불에 탔고 '''55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SNL에도 등장했다. 유튜브 링크
종로타워 완공 직후.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1 (종로2가) 소재 건물. 지상 33층, 133m짜리 건물로, 종로의 랜드마크격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3-1번 출구와 가까이 있다.
세 개의 기둥이 고층부의 고리모양의 스카이라운지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다.
2. 건설 과정
2.1. 화신백화점의 몰락과 공평동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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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 부지에 위치했었던 옛 화신백화점의 1960년대 모습.
종로타워 터는 조선 시대 포도청이 있었던 곳이고, 일제강점기 때는 반민특위 1호 검거자로 유명한(...) '''박흥식의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로 대한민국의 대형 백화점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적어도 2020년 현재 40대 이상 연령들은 기억하고 있는 네임드한 백화점이었다.[5] 그러나 화신백화점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1960~70년대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고[6] , 결정적으로 종로 확장계획과 맞물려 1978년 공평동이 도심재개발 사업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화신백화점마저 철거 대상에 오르게 된다. 백화점 건물 면적의 절반이 도로확장 예정 부지에 포함되어버린 것. 이 소식에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과 전문가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시대가 시대였고, 결정적으로 건물주인 화신그룹이 몰락하고 있었기 때문에...1980년, 화신그룹은 결국 해체되었고, 신생 등 몇몇 기업을 거쳐 1986년 최종적으로 한보그룹이 화신백화점의 주인이 되었다.
2.2. 순탄치 않은 건설과정
어쨌든 철거는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한보그룹은 그 자리에 새로운 백화점 신축 계획을 세웠으며[7]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건축가 김무언의 설계안이 확정되었다. 김무언의 설계안은 이왕 건물을 원형보존할 수 없다면 새로 짓되 적어도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그러니까 파사드만 남긴 뒤 이를 신축 건물에 대입하는 방식[8] 으로 화신백화점의 장소적 역사성을 살려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1987년, 마침내 신규 건축 허가가 떨어지면서 화신백화점은 폐업되고 그 해 철거가 시작되었다.[9] 계획대로였다면 1989년에는 지하 5층 지상 18층 규모의, 하지만 전면부는 옛 화신백화점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초대형 백화점이 종로 한복판에 세워졌겠지만...
'''같은 해 부지의 주인이 한보건설에서 동방생명, 그러니까 지금의 삼성생명으로 바뀌게 된다.'''
자금 압박으로 인해 돈이 필요했던 한보[10] 와, 영등포역과 청량리역 민자역사를 노렸으나 롯데백화점에게 연속으로 물을 먹은(...)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의 점포 확장을 원했던 삼성의 목적이 서로 맞아 떨어졌던 것. 1987년 말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미국의 건축가 엘레비 베켓에게 건물의 설계를 의뢰했다. 그리고 1990년 확정된 계획안은 기존 김무언의 설계도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건물이었으나,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전체에서 주 출입구로 한정하는 방향으로 그 범위는 줄었지만 어쨌든 파사드 계획은 살아남으면서 화신백화점의 역사를 신축 건물에 계승시키려는 의도 자체는 유지되는 듯 보였다. 동방-화신백화점(혹은 신세계백화점 종로점)으로 명명된 건물은 그렇게 확정된 설계안대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1993년 드디어 골조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골조를 끝냈으니 이제 마감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다.'''
다름아닌 당시 건축주가 설계방침 및 용도변경[11] 을 확정한 것. 1993년 당시의 삼성은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으며, 신축중인 건물도 이러한 방침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신축 건물의 골조공사가 완성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기존 골조를 철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건물을 개축하는 형태의 새로운 설계안을 공모했고 1995년 라파엘 비뇰리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지상 18층으로 계획되었던 건물이 33층으로 확장되면서 기존 골조의 대대적인 보강이 필요했고, 세 개의 타워형 코어 위에 고리 모양의 스카이라운지-탑 클라우드-를 얹는 오늘날의 모습이 이 때 확정되었다. 반면 종로의 역사적 장소성의 유지보다는 새로운 삼성, 삼성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건축주의 의도에 충실한 새 설계안 속에서 아쉽게도 구 화신백화점의 역사성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던 이전 건축가들의 시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설계안이 확정된 1995년 공사가 재개되었고, 1999년 9월 드디어 우리가 아는 종로타워가 완공되었다.
3. 입주 현황
1999년 완공당시에는 국세청이 신청사 건립을 위해 종로타워를 3년간 임차하여 사용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건물을 아직도 '''구)국세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과거에는 국세청 측에서도 유의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일부에서 이 건물을 '''땡전타워'''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 [12]
국세청이 돌아간 후로는 삼성증권 등의 삼성그룹 산하의 금융회사가 들어와 있다. 또한 지하 1층에는 이랜드그룹의 애슐리[13] 와 재설립된 종로서적이 입점해 있다. 사실은 지하 1층 서점가에 대한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인근에 있던 종로서적을 입점시키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로서적은 당시 자리를 고수하려 들었고, 결국 재부흥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14] 그래서 지하 2층은 이상한 쇼핑몰을 만들었고, 지하 1층에 푸드코트를 차렸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푸드코트가 꽤 다양한 배치에 양도 나쁘진 않았지만, 맛이 정말이지 끔찍할 지경이였다. 결국 지하 2층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가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이 들어왔었다. 현재는 영풍문고 전무 출신의 인물이 재설립한 종로서적이 입점했다! 근처에 교보문고, 영풍문고 두 거대 서점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7년 12월 20일, 스타벅스의 국내 초대형 플래그십 스토어인 스타벅스 더종로R점이 오픈했다. 매장 규모가 무려 330평으로 국내 스타벅스 매장 중에 가장 넓은 편.
2018년 9월 3일, 레스토랑인 탑클라우드가 있던 33층 최상부에 공유오피스 공간인 위워크 종로타워점이 오픈하였다.#
2019년 2월 25일, 한국맥도날드 본사가 교보빌딩에서 이전하여 14층에 입주하였다.
4. 주변
종로 건너에는 보신각이 있고, 우정국로 건너에는 SC제일은행 본점이 있다.[15] 대각선 방향으로 영풍문고 서린동 본점이 있다.
5. 평가
5.1. 극단적으로 갈리는 호불호(...)
그러나 이런 독특한 생김새가 호불호가 갈리는 탓인지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랭킹 3위에 올랐다. 서울특별시청이 압도적으로 1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가 2위였는데 종로타워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의 표차는 불과 2표차라고(...)
사실 도쿄국제포럼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라파엘 비놀리의 작품이지만, 건설 당시부터 라파엘 비놀리가 도쿄국제포럼 만들 때의 섬세한 디자인과 달리 종로타워는 선이 정리되지 못하고 투박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건축가들에게와는 달리 우리나라 건축가들에게 대충 적당히 설계의뢰한 걸 넘겨준게 아니냐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5.2. 안 좋은 평가의 원인
물론 이런 이유도 있지만 국내 건축가들이 이 건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먼저 상징성 문제. 옛 화신백화점 건물은 서울, 아니 한국 건축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주요 건축물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었는데, 이를 철거해 버리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는 것에 대한 반감과 '''종로'''라는 전통이 오래된 거리 및 거리의 다른 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튀는' 외향이 싫다는 것.[16] 물론 도심 재개발로 종로1가(청진동)에 비슷한 건물들이 많이 생겨서 지금은 같이 튀지만. 만일 이 건물이 이 모양 그대로 여의도나 강남대로, 영동대로, 테헤란로에 있었다면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제는 공평동 재개발로 바로 북쪽에 센트로폴리스가 들어서고, 앞으로 새 건물들이 더 올라갈 계획이라서 종로타워만 비난 받기에는 뭐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서울 시내에 '''튀는''' 건물들이 지어지지 않은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첫번째로 도심에 위치하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의 역사가 길어서 당시의 시공기술이나 건축 경향이 복잡한 건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정주영 회장은 아파트 같은 주거건물을 빨리 지어 올리기 위해서 기둥보다는 벽이 하중을 지탱하는 방법을 선호했는데 이렇게 하면 벽에 별 장난을(...) 치기가 어려워서 건물이 단순해진다.
그리고 둘째로 군사독재 시절이 한국 현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분들의 건축 취향은 군대 내무반이나 생활관을 떠올려 보자. 더군다나 이런 이유로 인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단조로워지고 건물들이 다들 성냥갑을 눕혀놓은 것 같다고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 그렇게 보자면 종로타워는 도심의 단조로운 스카이 라인에 압도적인 높이가 아니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색다른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위의 옹호론이 약간 설득력없는 부분이라면, 저 건물은 아예 처음 지어질 1990년대 말 당시 건설사와 협력 설계사무소 내의 건축가들에게 이미 디스를 당했다는 점이다. 당시 지어진 라파엘 비놀리의 도쿄국제포럼의 우아함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건축가들의 찬사가 쏟아진 마당이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 난 건축가들이 종로타워 설계안을 보고 그 투박한 선에 아연실색했었던 것이다.
5.3. 좋은 평가를 하는 이유
하지만 교보생명 본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니,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님, 일본에 멋진 건물 지어주셨다면서여? 우리도 그런 설계 하나 해주세여'''라는 식의 접근은 독창적인 건축에 방해가 될 뿐더러 일본 건축물을 베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거기다가 건축가 본인을 뿔나게 만들 가능성 마저 있다.(...)[17]
라파엘 비놀리에게 도쿄국제포럼과 똑같은 유선형의 건축을 요구하기도 뭐한게 교보생명 본사 건물은 건축가의 의견을 무시해버리고 그냥 일본에 있는 동일한 디자인의 건물을 베껴서 만들었다.(...) 같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똑같은 디자인을 요구할 수는 없다. 건축 부지가 도쿄국제포럼[18] 은 넓게 퍼질 수 있는 반면에 종로타워는 위로 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투박한 선 속에 층수가 올라갈 수록 다양한 변주를 주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고,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있다. 만약 종로타워가 수직으로 솟아올린 도쿄국제포럼의 변종일 뿐이었다면 교보생명 본사의 연장선상에서 가루가 되도록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도쿄국제포럼은 종합문화시설이지만 종로타워는 건축 당시나 지금이나 '''사무빌딩'''이다.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이 입주하고 있고 국세청도 사무용도로 사용했었다. 종합문화시설은 내부에 여러 공간을 비워두고 그 비워둔 공간에 다양한 변주를 주어 이런저런 실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용 빌딩이라면? 내부를 일단 사무공간으로 채워넣는 것이 우선이고 그 이후에나 지하나 옥상층에 간단한 문화시설이나 사원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축 내부에 변주를 주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아무리 진보적인 회사라도 회의실이나 남들보는 로비 정도나 좀 신기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주 사무공간은 그냥 직사각형이 관리하기 쉬운 공간을 원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회사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회사라면.(...) 변주를 주고자하면 외부에 주어야 하고 기왕 변주를 줄것이면 강렬하게 주어야 한다. 네모박스, 원통, 원형링(...), 텅빈 공간 등등 보기 쉬운 주제로 이해하기 쉬운 변주를 외부에 준 것이다. 관리하기 쉬운 금융회사의 사무공간을 요구하면서도 독특한 건축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까다로운 요구에 이만큼 부응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종로타워는 고층 빌딩의 형태를 선택해서 주변 환경과의 이질성을 다소 완화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외부 디자인이 변경되고 아예 중심부를 뚫어버리는 파격을 주어 주변 환경과 대비되는 신선함을 보여준다. 퐁피두 센터 수준은 아니지만 유리와 철제 구조를 노출 했고 철근과 유사한 데코레이션을 통해 콘크리트와 대리석 장식속에 숨은 철근콘크리트와 유리라는 재료의 인상을 남긴다. 높으신 분들의 입김과 비평가들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비판속에서 나름 타협점을 찾으면서도 서울 시내에 파격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무슨 건물을 배꼈다는 비판은 받지 않는 건물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신기하게 비추어지기는 하지만 혐오스럽게 비치지는 않으니까. 건축에 대해 보수성과 동시에 신선함을 요구하는 한국 건축계에서 이정도면 선방했다고 평해야 할듯.
6. 기타
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외국에도 좀 알려졌는지 심시티 5[19] 와 스타크래프트 2 맵인 금속도시[20] 에 우정출연했다. 이터널시티에서도 종로의 국세청 건물로 등장한다. 패러렐시스템이 위치하고 있어 상당히 중요한 건물. 만화가인 키무라 아스카는 '로봇으로 변신할 듯한 건물' 이라 극찬했다.
2016년 7월 20일 화재가 발생해 약 '''33제곱미터'''가량이 불에 탔고 '''55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SNL에도 등장했다. 유튜브 링크
7. 관련 문서
[1] '''공식적'''으로는 1995년을 주장하고 있으나...건설 과정 참조.[2] 23층 다음이 바로 33층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상층은 24개이다.[3] 서울 '''도심'''에서는 세번쨰로 높다. 삼일빌딩(114m)보다도 더 높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SK서린빌딩(160.2m)이며 두번째로 높은 건물은 롯데호텔 서울(138m)이다.[4] 432 파크 애비뉴를 설계한 사람이다.[5] 화신백화점에 대한 평가는 둘로 나뉜다. 민족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이라고 호평하는 쪽. 그리고 박흥식의 부는 조선총독부에 부역하며 만들어진 것이니 민족자본이 아니라 친일자본의 상징이라고 혹평하는 쪽. 백화점이 없어지고 꽤 시간이 지난 후까지도 그 앞 버스정류장 이름이 '화신앞'이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으로.[6] 화신쏘니와 화신전기는 일본 소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각각 손잡아 AV기기 및 백색가전을 만들었고, 화신레나운 등 섬유산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죄다 말아먹어 결국은 화신백화점까지 망하는 막장 테크를 타게 된다.[7] 계획했던 백화점의 이름도 한보 화신백화점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종각 네거리의 터줏대감이었던 화신백화점의 명성을 그냥 버리기 아까웠던 것.[8] 구 대법원 청사인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서울특별시청이 이렇게 외형이나마 보존되었다.[9] 건축허가가 떨어진 다음 날인 87년 3월 17일에는 동아일보 등 각종 주간지에 전면광고까지 실어가면서 임대를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올 컬러로 당시의 설계안 및 분양계획을 볼 수 있으니 다행일지도...[10] 이 매각으로 위기를 넘긴 한보는 앞으로는 주력인 철강, 탄광, 건설사업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년 뒤 찾아온 것은(...) 설령 한보가 매각 없이 계획대로 백화점을 지었더라도 그룹과 새 백화점의 미래는 아마...[11] 상업시설에서 업무시설로 변경.[12] 물론 현재 구)국세청이라하면 수송동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 건물을 지칭한다. 종로타워는 재건축 관계로 3년간만 임시로 머물렀던 것 뿐이다. 국세청은 원래부터 수송동에 있었고, 수송동 신청사로 돌아간 후로도 2014년 세종시로 다시 이전하기 전까지 12년간이나 수송동에 있었다. 즉, 가장 오랜기간이자, 가장 최근의 구)국세청은 수송동 청사이다.[13] 2012년 12월에 들어왔다. [14] 옛 종로서적 자리에는 현재 다이소가 개점하였다.[15] SC제일은행 본점 터는 과거에 신신백화점(신신아케이드)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16] 하지만 반론을 하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비놀리는 그냥 건축주의 의도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다(...)[17] 또다른 대표적인 예가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타워다. 여긴 심지어 다 지어놓고 멋진건물 해달라는 말도안되는 요구로 뿔난 건축가가 건물 파사드에 배양접시를 박아버렸다. 참고로 이 건축가는 다니엘 리베스킨트로 온타리오 박물관과 같은 유명 건축물을 다수 지은 건축가다.[18] 지금의 도쿄도청이 건립되기 전에 도쿄도청이 있었던 자리이다.[19] 전자 제품 협회.[20] 현재는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