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마루 요시노부
1. 프로필
2. 개요
프리 신분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스즈키군의 일원으로 참가 중인 프로레슬러.
비록 스타성이 부족해서 실력에 비해 인기가 모자라지만 한때 일본 메이저 단체 중 최고의 주니어 헤비급 라인업을 자랑하던 프로레슬링 NOAH 주니어헤비급의 대들보였던 최상급 워커이다.
3. 경력
3.1. 전일본 프로레슬링 1기(1996 - 2000)
야마나시학원 부속 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투수)로 활동하던 카네마루는 점보 츠루타 후원회 관계자의 주선으로 자이언트 바바와 면담한 후에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다.
입단 후에 체중이 전혀 늘지 않아서 레퍼리 전향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체격이 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연구해라'라는 자이언트 바바의 조언을 듣고 연습생 생활을 충실히 이어온 끝에 1년여 후인 1996년 7월 6일 같은 야마나시현 출신인 이노우에 마사오와 팀으로 아사코 사토루 & 시가 켄타로와 경기를 가지며 데뷔했다.
이후 코바시 켄타의 심부름꾼이 되어 코바시의 스테이블인 'BURNING'에 들어갔으며, 당시 전일본에 참전 중이던 자도&게도콤비를 만나 영감을 얻으며 원래의 공중기 위주의 선수에서 기본기에 충실한 힐 스타일의 선수가 되었다. 2000년 5월에 버닝 해산과 동시에 코바시의 심부름꾼을 졸업하고 아키야마 준의 스테이블로 들어갔으나 곧바로 1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벌어지자 한달 뒤인 6월에 전일본을 탈단하여 새로 창단한 프로레슬링 노아로 이적하며 노아 개국 공신 18인 중 한 명이 되었다.
3.2. 프로레슬링 NOAH(2000 - 2012)
3.2.1. 전반기 (2000 - 2009)
노아 창단 후 주니어 전선에서 착실히 활동해오던 카네마루는 이듬해인 2001년 노아의 첫 번째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가리는 GHC 주니어 헤비급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대활약 끝에 결승전까지 진출, 후벤투드 게레라와 노아 주니어 역사상 첫 타이틀전을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6월 24일에 나고야 아이치현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17여분만에 후벤투드에게 문설트를 작렬시키며 승리를 거두고 영광의 '''초대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11]
반년 후인 2002년 4월 4대 GHC 주니어헤비급 챔피언 하시 마코토(橋 誠)의 타이틀 자진 반납[12] 으로 인해 5월 27일 삿포로 미디어파크 스피카에서 치뤄진 챔피언 결정전에서 16분만에 수직낙하식 브레인버스터로 KENTA를 꺾고 다시 GHC 주니어 챔피언이 된 카네마루는 이보다 앞서 노아 역사상 최고의 명언인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노아의 주니어는 최강입니다' 발언에서 시작된 이후 치열하게 벌어지던 신일본과의 단체간 주니어급 대항전에서도 참여, 8월 29일에 키쿠치 츠요시(菊地 毅)와 함께 수신 선더 라이거#s-2 & 미노루(稔) 팀을 꺾고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노아 주니어 최강의 상징'''인 GHC 주니어헤비급 챔피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불꽃 튀기게 경쟁하던 상대 단체의 태그팀 챔피언까지 겸임하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2003년 1월 파트너를 카네모토 코지(金本 浩二)로 바꿔온 수신 선더 라이거 & 카네모토 코지 팀에게 150일여만에 IWGP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타이틀을 다시 내준 데 이어 3월에는 300여일을 지켜오던 GHC 주니어헤비급 벨트까지 마이클 모데스트에게 빼앗기며 카네마루는 순식간에 두 개의 타이틀을 모두 잃게 되었고, 절치부심하여 하시 마코토와 태그팀으로 9월에 초대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 ''''마루KEN''''(마루후지 & KENTA)에게 도전했지만 연일 상종가를 갱신하던 마루KEN은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루KEN전 패배 후 극심한 부진에 빠진 카네마루는 2004년 7월 10일에 그해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링 월드 2004[13] 에서 스기우라 타카시가 수신 선더 라이거에게 패하면서 유출된 GHC 주니어 헤비급 벨트를 4.5성을 부여받는 명경기 끝에 도쿄돔에서 다시 되찾아오는 저력을 보여주며 부활, 방어전 5번을 성공시키며 1년을 집권하던 도중 2005년 6월 5일에 스기우라와 팀을 맺어 '''9번'''의 방어전에서 전부 승리하고[14] 2년간 초장기 집권 중이던 '마루KEN'에게 1년 반만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30분이 넘어가는 지독한 대혈투 끝에 34분 51초 스기우라가 기어코 KENTA에게 설붕식 올림픽 예선 슬램이 작렬시키며 극적인 승리를 거둔 카네마루 & 스기우라가 제 2대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 챔피언에 올랐고[15] 카네마루는 단체 사상 최초의 주니어 2관 타이틀 동시 보유 선수가 되었지만 7월 18일 마루KEN이 깨지고 싱글 레슬러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KENTA에게 도쿄돔에서 패배하면서 GHC 주니어 헤비급 벨트는 뱉어내고 말았다.
2006년 3월엔 주니어 태그 타이틀마저 히다카 이쿠토 & 후지타 미노루 팀에게 내주며 무관이 되어버렸으나, 8월에 스기우라와 타이틀 재탈환에 성공했으며 대외적으로는 NOAH의 선수회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를 이어나갔지만, 2007년이 되기가 무섭게 브리스코 형제(제이 브리스코, 마크 브리스코)에게 타이틀을 뜯기고 커리어 두 번째 부진에 빠지고 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체중을 감량하며 몸을 가다듬은 끝에 다시 싱글 전선으로 뛰어들어 10월 27일 일본무도관 대회에서 무시킹 테리[16] 를 꺾고 통산 4번째 GHC 주니어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8년 7월에는 리키 마빈에게 배신당한 스즈키 코타로를 끌어들여 코타로와 함께 KENTA & 이시모리 타이지 팀에 31분의 혈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또다시 주니어헤비급 타이틀과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으나, 9월 14일 디파 아리아케에서 ROH가 주최한 흥행 '도쿄 서밋'에 참전했다가 브라이언 다니엘슨에게 패배하며 1년 가까이 지켜오던 GHC 주니어헤비급 벨트를 ROH에 유출시키고 말았다.[17]
3.2.2. DIS OBEY (2009 - 2011)
2009년 3월에는 모하메드 요네, 리키오 타케시, 히라야나기 겐바, 스즈키 코타로와 함께 악역 군단 ''''DIS OBEY(디스오베이)''''를 결성, 코타로와 주니어헤비급 태그 챔피언 자리를 계속 지켜오다 2009년 10월 KENTA의 부상으로 인한 타이틀 반납으로 인해 개최된 GHC 주니어헤비급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JCB홀)에서 우승을 거두고 통산 5번째 주니어헤비급 챔피언에 올라 또다시 2관왕이 되었지만, 12월에 스즈키 코타로가 십자인대 파열상을 당하며 태그팀 타이틀은 반납했다. 그와 별개로 주니어헤비급 벨트는 5차 방어까지 성공하며 1년여를 지켜왔지만 그동안 주니어급의 슈퍼스타인 KENTA와 스즈키 코타로가 부상 중인데다 마루후지도 IWGP전에 집중하고 있어서 빈집털이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카네마루의 활약과는 별개로 주니어헤비급의 인기는 저조해져갔으며, 이로 인해 부상에서 복귀한 KENTA에게 "벨트를 가지고 있기만 한 챔피언"이라고 디스를 당하며 대립하였다.
2010년 9월 18일에는 자신에게 엘보 공격을 오폭한 스즈키 코타로를 집단 린치하며 DIS OBEY에서 쫓아냈으며, 9월 26일에 대립을 진행 중이던 KENTA와 6차 방어전을 치뤄 터치 아웃으로 6차 방어에 성공했으나 12월 5일 일본무도관에서 DIS OBEY에서 쫓겨난 후 복수를 노리던 스즈키 코타로와의 7차 방어전에서 14분 49초에 타이거 드라이버를 얻어맞으며 패배하고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2011년 1월 23일에는 갑작스레 숙적 KENTA에게 태그팀 결성을 제의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KENTA는 카네마루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카네마루는 "알았다"고 말한 후 그대로 퇴장했다. 그리고 1월의 투어 최종전 제 4경기. 시오자키 고, 오가와 요시나리, KENTA vs 모하메드 요네, 카네마루, 히라야나기의 경기 도중 KENTA는 시오자키와 오가와를 급습하며 DIS OBEY에 가입했다. 경기 후 KENTA가 '조건은 성립됐다'라고 말했지만, 카네마루에게 한 귓속말의 내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3.2.3. NO MERCY (2011 - 2012)
모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중, 3월 5일에 DIS OBEY vs 켄스케 오피스의 8인 태그매치 도중 갑자기 카네마루와 KENTA가 모하메드 요네에게 체어샷을 날리고, 머뭇거리던 히라야나기마저 끌어들여 체어샷을 강요하며 모하메드를 쫓아내고 3인 체제 선언을 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이윽고 마이크웤에서 KENTA가 카네마루에게 제시한 '조건'이 바로 '''모하메드 요네의 축출'''임이 밝혀졌다. 3월 11일에는 새로운 3명의 군단의 이름이 ''''NO MERCY''''임을 공표했다. 그 즉시 모하메드가 요청한 NO MERCY 3인 각자와의 싱글매치에서 3경기 모두 모하메드를 린치한 후 카네마루는 KENTA와 함께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마루후지&아오키 아츠시가 가지고 있던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도전선언을 한다.
그러나 전초전에서 마루후지가 경추 부상을 당해 타이틀을 반납하자 목표를 잃은 둘은 챔피언 결정전을 개최할 것을 요구하고 거기에 뛰어들어, 노 머시의 대항마로 결성된 ''''ANTI NO MERCY UNION(ANMU)''''와 항쟁을 치루며 ANMU의 스즈키 코타로와 태그팀 챔피언을 반납한 아오키 아츠시의 태그팀을 상대로 5월 25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고 제 14대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며 노 머시 결성 이후 첫 번째 타이틀을 획득한다.
7월에는 제5회 니혼테레비 G+컵 쟁탈 주니어 헤비급 태그 리그전에 KENTA와 같이 참전하여 우승 결정전까지 갔으나, 우승 결정전에서 ANMU(스즈키 코타로 & 아오키 아츠시)에 패하며 8월 24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1차 방어전이 결정되어 1차 방어는 성공했지만 2달 후 10월 16일의 2차 방어전에서 이 둘에게 패배하며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KENTA의 본격적 헤비급 참전으로 붕 뜬 상황에서도 이듬해인 2012년 5월에 나카지마 카츠히코에게 승리를 거두며 통산 7번째 GHC 주니어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이어가던 카네마루였으나 그당시 NOAH 경영진 내부의 심각한 비리와 주먹구구식 경영 등 속으로 곪아 들어갔던 NOAH의 내부 문제가 폭로되었고, 이와 더불어 파벌 갈등에서 밀려난 아키야마 준 파벌[18] 의 소속이었던 카네마루는 12월에 퇴단을 발표하고 12월 24일 아리아케 대회를 마지막으로 12년간의 NOAH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3.3. 전일본 프로레슬링 2기(2013 - 2015)
2013년 1월 카네마루는 같이 퇴단한 아키야마 파벌 전원과 함께 12년 전 스스로 떠났던 전일본에 재참전하였다. 카네마루의 NOAH 퇴단 직전 스승이기도 한 코바시 켄타가 은퇴를 발표했는데, 코바시가 2013년 1월 결기대회에서 아키야마 준에게 자신의 유닛 '버닝'의 부활을 부탁하여 아키야마가 카네마루, 시오자키 고,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와 버닝을 재결성하며 장장 13년만에 다시 '버닝' 소속이 된다. 그리고 2월 23일 카네마루는 고라쿠엔 홀 대회 메인이벤트에서 콘도 슈지(近藤 修司)를 꺾고 '''제 35대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며, 전일본에서의 첫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7월 5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버닝의 나머지 4명과 함께 전일본 정식 재입단을 발표했지만 5인 체제의 버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서 10월에 아키야마랑 태그를 맺고 세계 태그 챔피언에 올라있던 시오자키 고가 방어전에서 패배한 후 아키야마와 갈등을 빚으며 탈퇴하였고, 카네마루가 여전히 가지고 있던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에 도전을 선언한 스즈키 코타로도 덩달아 탈퇴, 아오키 아츠시마저 그 둘을 따라 탈퇴하여 신유닛 'Xceed'를 만들자 버닝 내에는 아키야마와 카네마루 달랑 둘만 남게 되었다. 이 와중에도 도전을 걸어온 스즈키 코타로를 격침시키는 등 챔피언 방어전에서 꾸준히 승리해오며 7차 방어까지 해냈으나 12월 15일 고라쿠엔 홀에서의 8차 방어전에서 울티모 드래곤에게 패배하며 10개월을 지켜오던 타이틀을 내주었다.
이듬해인 2014년 1월에는 아키야마 준과 함께 태그 팀을 맺고 버닝 소속이던 전년도 4월 25일부터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을 유지 중이었던 스즈키 코타로 & 아오키 아츠시에게 도전하여 승리하고 제 93대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에 올라 3번을 방어해냈으나 4월 29일 이리에 시게히로 & 이시이 케이스케에게 패배하며 다시 무관이 되었다.
한동안 타이틀과 인연을 전혀 맺지 못하다가 2015년에 울티모 드래곤과 태그 팀을 맺어 3월 22일에 나가이 미츠야 & 미나미노 타케시에게 승리를 거두고 다시 한 번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에 올랐으나 전일본 사정이 또다시 뒤숭숭해지자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을 내려놓고 11월 20일에 전일본 재탈단을 공식 발표, 12월 15일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전일본을 떠났다.
3.4. NOAH의 프랜차이즈 스타, 외적이 되다 (2016)
몰락해가던, NOAH에 여러가지 평이 갈리지만, 도움의 손길 중 하나인 스즈키군의 침공 스토리라인이 시작되었다. [19]
스즈키군이 모든 타이틀을 획득하고[20] , 노아 소속 선수들은 힘을 합쳐 대항한다. 카네마루 요시노부도 초기에는 대항군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스즈키군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이시모리 타이지를 꺾고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 스즈키군 소속으로 슈퍼 J컵에 출전하여,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준우승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3.5. 신일본 프로레슬링
엘 데스페라도와 함께, 주니어헤비급 태그팀으로서 주로 활동한다. 함께 IWGP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벨트를 획득한 적도 있으며, [21] 이 벨트의 최장보유 기록을 갱신할 뻔하지만, 아쉽게도 결국 빼앗긴다.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상당 수의 외국인 헤비급 선수들이 일본에 오지 못하자, 뉴 재팬 컵 2020에 참가한다. 첫 라운드에선 영 라이온인 우에무라 유야를 꺾고, 두번째 라운드에서 자신의 먹잇감인 이시모리 타이지와 맞붙게 된다. 경기 초반에 등장하는 이시모리의 뒷통수를 기습하며, 기선을 제압하려 했지만, 결국 패배하여 탈락한다.
한편 도미니언에서 마스터 와토가 자신의 동료인 DOUKI와 데뷔전을 치뤄 승리했는데, 이때 기습해서 백드롭을 날려, 공격하며 대립이 시작된다. 일명 Way to the GrandMaster VS Heel Master. 그리고 21년만에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와토의 공격을 롤업으로 뒤집으며, 승리를 챙긴다.
이후, 엘 데스페라도와 함께 공석이된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7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신일본 내에서 첫 결장을 가진다.
4. 여담
- 커리어 20년 이상의 베테랑임에도 남들이 한 번씩은 다 겪는 장기결장을 잘 겪지 않는 금강불괴이다. 어느 정도냐면 2002년 10월 17일 코바시 켄타의 미완성 살인기 다이아몬드 헤드의 첫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실신+갈비뼈 골절로 병원에 실려가고도[22] 단 이틀만에 GHC 주니어 벨트 방어전을 치뤘을 정도. 단 한번 조금 오래 쉰 적은 있는데, 이유는 집 계단에서 굴러 발가락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2020년에 무릎 부상으로 첫 결장을 가졌다.
- 이시모리 타이지의 천적으로, 이시모리는 노아 시절부터 단 한번도 카네마루를 싱글전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23] 이시모리가 불릿 클럽에 가입한 이후 신일본에서 둘이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카네마루가 나이를 먹고 태그팀 선수 정도로 위상이 내려가고 이시모리는 주니어 헤비웨이트 탑 클래스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네마루를 이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에서 카네마루가 죽을 쑤다가도 이시모리만 만났다 하면 승점자판기 수준으로 승점을 털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뉴 재팬 컵 2020에서 악역인 이시모리가 토너먼트 2회전에서 카네마루를 만나기 싫다고, 1회전에서 카네마루와 붙게 될 불릿 클럽의 가장 큰 적 정규군의 영 라이온 우에무라 유야를 응원할 정도(...)
- 신일본 이적 후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보내며 신체 능력이 둔해진 이후의 모습으론 상상도 안되겠지만, 왕년에는 일본 전 단체 최강이었던 노아의 주니어급의 상징이자 그 자체라고 불리웠던 어마어마한 실적의 베테랑이다. 노아의 GHC 초대 챔피언이자, 최다 획득(총 7회) 챔피언이기도 하다.
- 더욱이 전일본에서도 주니어 벨트를 획득한 적도 있기 때문에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만 획득한다면 일본 메이저 3단체 모든 곳에서 주니어 타이틀을 딴, 즉 주니어급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3번째 인물이 되게 된다.[24] 게다가 노아와 신일본에서 각각 주니어급 태그 벨트도 먹었으니, IWGP 주니어만 먹으면 메이저 3단체의 주니어급 벨트와 주니어급 태그 벨트를 모두 차지한 슈퍼 그랜드 슬램이 될 수 있다.[25]
5. 둘러보기
[1] 상대를 코너에 거꾸로 매달아놓은 다음 달려가 점프하여 딜레이드 드롭킥을 갈기는 기술.[2] 상대를 가드레일에 얹어 놓고 가드레일 위로 점프해서 올라간 다음 레그드랍으로 상대의 목을 찍는 기술. 카네마루의 장외 난투의 상징같은 기술이다.[3] 카네마루가 한 경기에 4~5발을 상대에게 꽂아넣을 정도로 애용하는 카네마루의 목 공략기의 진수와도 같은 기술. 수직낙하식을 터치 아웃의 셋업 무브로 자주 써왔으나 신일본 참전 이후로는 수직낙하식은 봉인된 상태이다.[4] 과거엔 할리우드 스타 프레스(RVD도 사용한 스플릿 레그드 문설트) 등도 사용했었다. 현재 유일하게 사용하는 공중기이다. [5]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정면에서 상대 한쪽 다리를 잡고 앞차기로 까는 방식과 뒷발차기 방식.[6] 언제나 가지고 입장하는 산토리 가쿠빈을 입에 머금었다 상대에게 뿜는 기술. 다만 그린 미스트 등 다른 미스트류 기술들보다 반격당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잦다.[7] 다이빙 DDT. 전일본 시절인 1998~1999년경부터 써온 유서깊은 기술. 탑 로프에서 뛰어내리면서 그대로 상대에게 DDT를 시전하는 기술로, 물론 안전상 문제로 땅에 살짝 발을 디뎠다가 쓰지만 그럼에도 상대 머리를 링 바닥에 고스란히 심어버리듯하는 훌륭한 임팩트가 돋보이는 기술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력 피니셔로 쓴다. 미들 로프식으로도 쓰는데 이 경우에는 핀을 따내는 경우가 없다고 봐도 무방. 기술 이름은 당시 전일본의 링 아나운서였던 키하라 후미히토가 지어줬으며, 물론 동명의 영화에서 따왔다고 한다.[8] 선회식 브레인버스터. 상대를 들어올린 후 제자리에서 돌면서 상대를 찍는 기술로 시그니쳐인 브레인버스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카네마루의 진 피니셔. 기술명은 자신이 고등학생때까지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야구의 터치 아웃(태그 아웃)에서 따왔다. 신일본 이적 이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2020년에 봉인을 해제했다. 여담으로 후배 KENTA에게 '자기가 이기고 있는데 터치아웃이라니 이게 뭔...'라고 태클당한 적이 있다(...)[9] 프로레슬링 NOAH시절 별명.[10] 프로레슬링 NOAH 시절 사용하던 테마곡.[11] 이 벨트는 2번을 방어해낸 뒤 4달 뒤인 10월 19일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에서 '초룡'타카이와 타츠히토(高岩 竜一)에게 수직낙하식 미치노쿠 드라이버 II에 핀을 따이며 내줬다.[12] 마루후지와 타이틀전을 치뤘다가 마루후지가 무릎을 부상당하며 레퍼리 스톱으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이 되었는데, 이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합이 끝난 직후에 타이틀을 스스로 반납해버렸다.[13] 신일본 레슬킹덤의 전신.[14] 마루KEN이 카네마루 & 하시와 2003년 9월에 치룬 방어전은 2번째 방어전이었다.[15] 이 경기는 데이브 멜처에게 '''4.75성'''을 부여받았고, 노아의 태그팀 경기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16] 스즈키 코타로의 또다른 기믹.[17] ROH로 유출된 주니어헤비급 벨트는 한달 뒤인 10월 13일 KENTA가 되찾아왔다.[18] 멤버는 아키야마, 카네마루, 시오자키 고,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19] 신일본이 스즈키군을 보내어, 흥행을 돕겠다는 의도로 보였으나. 실상은 신일본이 노아를 이용해먹었다는 의견도 있다.[20] 스즈키 미노루가 헤비급 타이틀을, K.E.S가 헤비급 태그팀 타이틀을, 타이치가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을, TAKA 미치노쿠와 엘 데스페라도가 주니어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21] 여담으로 이 벨트가 파트너, 엘 데스페라도가 첫 신일본에서 얻은 벨트다.[22] 물론 이후 코바시는 다이아몬드 헤드를 그대로 봉인시켜버렸으며, 은퇴 때까지 두번다시 꺼내지 않았다. 여담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코바시 켄타의 은퇴전을 앞두고 은퇴전 상대 중 한 명이 된 카네마루는 "코바시에게 다이아몬드 헤드를 먹여주겠다"라고 한 적이 있다.[23] 노아시절 대 이시모리 타이지 10전 9승 1무, 신일본 이적후 2전 2승을 거뒀다! 다만 2020년 06월 24일 뉴 재팬 컵 2020에서 첫 패를 내주며 총 13전 11승 1패 1무가 되었다.[24] 첫번째는 마루후지 나오미치, 두번째는 타나카 미노루.[25] 전일본에는 따로 주니어급 태그팀 챔피언 벨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