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토 케이지
1. 프로필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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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은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
일본의 프로레슬러. 신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WCW, WRESTLE-1 등에서 활동했으며 2021년 부터는 프로레슬링 NOAH 소속'''"무슨 낙으로 사세요?" 라고 누군가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프로레슬링입니다" 라고. [...] 프로레슬링이란게, 참 재밌다. 무릎만 좀 괜찮으면 아주 평생토록 하고 싶다. 난, 정말로 프로레슬링이 좋다.'''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 가운데서 아무런 수식어구 없이 '''천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뛰어난 경기력과 강렬한 캐릭터를 겸비한 링 퍼포먼스로 일본과 북미 프로레슬링계에 큰 영향을 남겼다.
3. 커리어
학생 시절 유도 선수로 활동하며 올림픽 대표 후보군까지 올랐으나, 1984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한다. 영 라이온으로 활동할 때부터 문설트 프레스를 개발해 사용했고, 미국 플로리다로 무사수행을 떠나 문설트 프레스로 본인을 어필하며 상당한 반응을 얻었다.[16] 이후 "스페이스 론 울프"라는 SF 컨셉의 기믹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복귀하였으나, 실전 방식의 프로레슬링을 지향하던 UWF군과의 항쟁이 진행되던 시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믹이었다. 실패를 맛본 무토 케이지는 곧장 두번째 북미 무사수행을 떠났다.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WWC로 갔으나, WWC의 부커 겸 프로레슬러인 호세 곤잘레스가 브루저 브로디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 직후 미국 텍사스 주의 WCCW로 활동 무대를 옮긴다. WCCW에서 활동할 때는 프리츠 폰 에릭에게 아이언 클로를 당해 사망한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온 일본인이란 설정이었다가 이후 그레이트 가부키의 아들로 바뀌었다.[17][18] 이후 NWA와 WCW에서 '''그레이트 무타'''라는 악역으로 활동하면서 스팅, 릭 플레어 등과 명승부를 펼치며 북미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매체에도 영향을 줘서, 파이어 프로레슬링 시리즈의 레드 드래곤은 이름 외에는 완벽한 그레이트 무타이고, 머슬 봄버의 미스테리어스 부도 그레이트 무타가 모티브이다.
일본에서 그레이트 무타는 무토 케이지가 마계에서 데려온 프로레슬러라는 설정으로, 선역인 무토 케이지와 대조적인 악역이다. 처음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레이트 무타 기믹은 저조한 반응을 얻지만, 1990년 9월 14일에 하세 히로시와의 경기를 통해 일본에서도 성공적인 기믹으로 정착한다.
귀국한 후에는 쵸노 마사히로, 하시모토 신야와 함께 '''투혼삼총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는데,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스트롱 스타일과 다른 색채를 선보인다. 2000년대엔 기량은 여전해도 앞대머리를 감추려고 삭발을 하고, 몸도 후덕한 상태가 되었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고 뜰 때만 해도 잘생긴 외모에다가 헤비급 프로레슬러라고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빠른 몸놀림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고, 체형도 아주 잘 빠져서 푸쉬가 대단했다. 같이 데뷔한 동기인 쵸노 마사히로가 그 덕에 한동안 묻혔고, 그 시절엔 은근히 소외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잠시 WCW에서 활동한 후 일본에 돌아와서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상태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해 2001년 6월 8일에 텐류 겐이치로를 이기고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이어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세계 태그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6관왕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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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이노키즘 및 프로레슬링 NOAH의 왕도스타일로 인해 프로레슬링이 지나치게 투기(鬪技)화되었고, 프로레슬링 특유의 연출과 위트가 사라진 상황에 대한 반발로, 프로레슬링의 원점회귀를 위해 선역 무토 케이지를 상징하는 프로레스 러브 포즈를 밀기 시작했다.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졌을 때 카와다 토시아키를 제외한 전일본 5강을 비롯해서,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등의 유망주를 포함한 다른 전일본 소속 프로레슬러들도 대거 이탈한다. 이때 카와다 토시아키 외에 후치 마사노부와 타이요 케어만 남은 암울한 상태의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코지마 사토시와 켄도 카신을 데리고 이적하여 사장직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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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다 토시아키 등과 명경기를 만드는 한편 착실히 '''프로레스 러브'''를 외치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색깔을 무토 케이지의 프로레슬링 철학으로 바꾸었다. 어느 정도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회복세로 돌려놓았지만 전일본의 사장으로서 고충이 만만치 않았다. 단기 계약을 맺고 빌 골드버그를 섭외했으나 스쿼시 매치가 진행되어 코지마 사토시, 타이요 케어가 싱글 매치에서 골드버그에게 초살당했다. 무토 케이지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재정을 위해 별의별 스폰서를 다 끌어왔기 때문에 링 바닥이 광고로 도배되었다. 성인 비디오 제작사 S1도 스폰서 중 하나였기 때문에 S1의 유명 AV 여배우인 요시자와 아키호와 대회 흥행 포스터를 찍었다. Bakky도 스폰서로 끌어들였다가 Bakky 사건이 터지면서 단체가 망할 뻔했다. 2009년엔 격투가로썬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해 일본 예능에 주로 모습을 보이던 최홍만을 전일본 프로레슬링 무대에 세우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흑사무쌍(黑士武双: 고쿠시무쏘. 한신의 고사에서 나온 사자성어이자 마작의 역만 중 하나인 국사무쌍과 발음이 같다.)이라는 기믹으로도 활동했는데, 신자키 '하쿠시' 진세이와 태그팀 경기를 할 때 2번 정도 등장하였고, 싱글 매치에서도 1번 등장한 전례가 있다. 그간 시달리던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2010년 4월에 무릎수술을 받았다.[19] 그리고 2010년 9월 10일에 후나키 마사카츠와 복귀전을 가졌고, 30분 시간초과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복귀 직전의 인터뷰에서 지방 흥행에는 참가하지 않고, 수도권 쪽의 흥행에서만 시합을 가지며 될 수 있는 한 오래 프로레슬러로 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재정은 개선되지 못했고, 당시 전일본의 사장인 시라이시 노부오가 무토 케이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사사건건 간섭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과의 마찰이 한계에 다다르자 2013년 7월에 전일본을 탈단해 WRESTLE-1을 설립했다. 그리고 단체의 홍보를 위해 TNA, 신일본 프로레슬링 등과 연합하여 흥행을 개최하였고, TNA에서 뛰게 된 WRESTLE-1의 선수 사나다 세이야를 밀어주기 위해 본인도 10여년만에 미국 무대에 그레이트 무타로서 등장해 경기를 가졌다.
사실상 선수로서는 일선에서 물러난 후, WRESTLE-1 전문 경영인으로 DDT 프로레슬링 CEO인 타카기 산시로를 영입하는 동시에 WRESTLE-1에 선수를 보급하고자 프로레슬링 전문 학원을 설립하는 등 단체 경영과 후학 양성에 힘쓴다. 그러다 양쪽 무릎의 치료를 위해서 문설트 프레스를 봉인하게 되는데, 2018년 3월 15일 WRESTLE-1 흥행에서는 무토 케이지로 8인 태그 매치에서 3번의 시도 끝에 문설트 프레스를 시전해 승리했고, 열흘 뒤 25일 DDT 프로레슬링 21주년 기념 대회에서는 그레이트 무타로 등장하여 DAMNATION의 사사키 다이스케 & 엔도 테츠야와 함께 남색 디노 & 이시이 케이스케 & 오오카 켄을 상대로 드라마틱 드림 매치에서 마지막으로 문설트 프레스를 시전하며 승리함으로서 1985년 커리어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문설트 프레스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을 맺게 된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이후로 관절의 기동범위가 넓어진것 때문에 욕심을 내서 재활운동을 하다 이식한 오른쪽 무릎 관절에 금이 가서 재활기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본인도 거기에 고무되어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자책하면서 이게 내가 문설트를 쓰고 싶어도 못쓰는 이유라고 밝혔다. 실제로 양쪽 무릎 관절을 모두 인공으로 대체한 상태인 2018년의 무토는 절대로 문설트를 쓸수가 없는 상태이며 의사도 실수로라도 절대 문설트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인공관절이 아무리 좋은거라도 그 충격을 멀쩡한 상태의 무릎처럼 견딜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다가는 이식한 인공관절이 부러지거나 하는 사고가 날수도 있다. 그리고 인공관절은 나중에 교체시기가 왔을때 재수술이 아주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다. 그런데 밝혀진바에 따르면 인공관절이 금이 간게 아니라 그걸 이어주던 원래뼈에 실금이 갔다고 한다.
2018년 12월 28일 고라쿠엔 홀에서 열린 쵸슈 리키의 프로듀싱 흥행에 등장하여 내년 4월에는 뉴욕에서 그레이트 무타를 불러올 예정이고, 쵸슈 리키의 은퇴 경기가 열리는 6월 26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복귀 할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6일에 펼쳐진 G1 슈퍼카드에서 그레이트 무타로 깜짝 출현하면서 프로레슬링으로 복귀했다.
계속 WRESTLE-1소속으로 매치를 뛰어오던 무토였으나 만성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2020년 4월 1일 대회를 마지막으로 WRESTLE-1 의 무기한 활동중지를 선언했으며, 소속 선수들이 모두 이적했다. 이후 자신도 프로레슬링 NOAH에 참전했으며 마루후지 나오미치, 드래곤 게이트의 모치즈키 마사아키와 함께 이름의 이니셜 첫 자가 모두 'M'인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테이블을 만들어 이윽고 스테이블의 이름을 M's alliance(M의 동맹)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2021년 2월 12일 프로레슬링 NOAH 일본무도관 대회에서 시오자키 고를 꺾고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3번째로 메이저 3단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20] 그리고 동시에 일본 메이저 단체 최고령 챔피언 기록도 갈아치웠다. [21] 이후 15일, 공식적으로 NOAH 소속이 되었다.#
4. 스타일
북미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뛰어난 운동 신경을 바탕으로 한 경기력을 통해 이후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미 프로레슬링계의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짐 코넷조차 무토 케이지는 그 경기력만으로도 충분히 WCW에서 선역으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
문설트는 무토 케이지를 통해 북미 및 일본에서 널리 보급된 기술이다. 초창기 무토 케이지의 문설트는 매우 높고 크게 호를 그리는 방식이었으나 #, 이후에는 점점 대신 빠르고 간결히, 낮고 세게 상대를 덮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상대가 거의 링 중앙에 있어도 날아가서 덮친다. # #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선수들은 흔하지만, 단체 탑 선역과 탑 악역, 두 상반된 기믹으로 '''동시에''' 대활약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를 남겼다. 이처럼 경기력 뿐만 아니라 프로레슬러로서의 카리스마, 색기, 이른바 "꽃"이 있는 것으로 손꼽혔다.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켜나간 것과 더불어 화려한 캐릭터를 중시하는 "북미 프로레슬링" 스타일의 대변자로 유명하다. 이는 무토 케이지가 2000년대 초반 격투기 노선으로 흘러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으며, 비단 무토 자신의 경기만이 아닌 단체 운영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무토 케이지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레슬링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UWF 계열의 프로레슬링 자체가 당대에 하나의 상품으로서 성공적인 어필을 한 점은 높게 평가한다. 링크
젊은 시절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무토 케이지로 활동할 때는 날렵한 경기력과 쾌활한 기믹을 바탕으로 탑페이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이런 노선은 이후 nWo Japan에 합류하게 되며 턴힐을 했을 때도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데뷔전에서 덤블링 백엘보우인 '''스페이스 롤링 엘보#'''라는 기술을 선보이고, 그냥 엘보 드롭인데도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간지를 가진 플래싱 엘보#를 만들었다. 유도부 출신이라서, 프로레슬링 기술을 개발할 때 유도기술에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레이트 무타 기믹일 때 북미에서는 무토 케이지 식의 날렵한 프로레슬링으로 활동했으나, 일본 귀국 이후에는 보다 괴기스럽고 유혈이 난무하는 경기 방식으로 개성을 발휘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한 후부턴 지속적인 문설트 프레스 사용으로 인한 심각한 무릎 부상 때문에 경기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그래서 로우 드롭킥과 드래곤 스크류 등으로 상대의 다리를 집중공략한 뒤 4자 굳히기로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샤이닝 위저드# #를 개발한 후에는 4자 굳히기까지 셋업무브로 하고, 다리에 힘이 빠진 상대가 자연스레 무릎앉아 자세를 취하면 적의 관자놀이를 샤이닝 위저드로 공략하는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문설트 프레스를 사용하곤 했으나, 결국 2018년에 무릎에 인공 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문설트를 봉인했다.
5. 프로레슬링 외적 활동
- 영화 역도산에서 역도산을 프로레슬링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헤럴드 사카다 역으로 분한다. 역도산 역할의 설경구를 화려한 프로레슬링 기술로 몰아붙이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화려한 경기 장면이다. 작중에서 다른 경기 장면은 역도산 시대의 1950~60년대 프로레슬링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 코에이의 모바일 게임 신장의 야망 우리들의 전국과의 콜라보로 다케다 신겐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 용과 같이: 극 2에서는 악덕 부동산 회사인 무토 부동산의 대표이사 무토 케이지로 카메오 출연한다. 마지마 고로의 카무로쵸 힐즈 건설권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쵸노 마사히로, 쵸슈 리키, 후지나미 타츠미, 텐류 겐이치로 등과 함께 마지마 건설과 무력 충돌을 펼친다. 투기장에서 결투도 가능하다.
6. 여담
- 원형 탈모가 제법 일찍 찾아와서 30대 중반 이후에는 가운데가 휑한 캇파 머리가 되어버린 것이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탈모가 심해졌고, 결국 WCW 원정을 마친 후인 2000년 12월 31일 오사카 돔에서 열린 이노키 봄바예 흥행에서 스킨헤드로 탈바꿈해서 등장, 이후로도 스킨헤드를 유지 중이다. 머리는 집에서 아내가 직접 밀어줬으며, 밀었을 때 아들이 그걸 보고 울었는데 너도 머리 이렇게 할래라고 했더니 조용해졌다고(...) 덤으로 소감을 묻자 스티브 오스틴와 골드버그같은 모습을 생각하고 밀었는데 밀어보니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다고 한다.
- 더 락이 그레이트 무타의 팬이라 WWE가 일본 투어를 왔을 때 그의 전화번호를 가져가서, 동료들에게 "나 그레이트 무타랑 통화한다. 굉장하지?"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더 락의 피플즈 엘보우는 플래싱 엘보를 보고 만든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 허큘리스 광고를 위해 간 더 락 앞에 무토 케이지가 허큘리스의 사자 가죽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 외에도 릭 플레어 등 많은 프로레슬러들이 그레이트 무타를 좋아한다.
- 아내와의 결혼 과정이 꽤 재밌다. 90년대 초 동기인 쵸노 마사히로의 소개를 받아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을 위해 예비 장인과 장모를 자신이 나오는 흥행에 초대했다. 나름 자신이 얼마나 건실한 청년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 그날 경기인 그레이트 무타 vs 쵸슈 리키전이 무토의 커리어에서 가진수 많은 경기들 가운데 역대급으로 살벌한 경기였고, 경기 뒤에는 얼굴도 피칠갑을 한 탓에 일반인들은 엄청난 거부감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본인은 나름 훌륭한 경기를 가졌다고 생각해 장인 장모를 찾아가 경기 재밌게 보셨냐고 물었지만 당연히 그걸 본 장인은 헤어지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무토와 아내가 잘 설득한 덕분에 결혼에 골인해 1남 1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 프로레슬링 해설자로서는 빵점이라는 견해가 많다. 시합이랑은 상관없는 자기자랑만 해대는게 주된 이유. 하지만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튀어나오는 돌발 발언, 가끔씩 튀어나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코멘트 등을 그나마 높게 평가해주는 견해도 있다. 악역 캐릭터와는 거리를 둔 사려깊은 해설을 하는 라이벌 쵸노 마사히로와 극히 대조되는 부분.
- 2019년 2월에는 트위터에 온천욕을 하는 본인 사진을 올렸다. 문제는 중요부위를 가린다고 바가지를 들었는데, 아래로 삐져나온 것(...). 졸지에 전 세계에 자기 거시기 사진을 뿌린 셈이 되고 말았다.
- NWA 스타케이드, ROH 파이널 배틀, TNA 바운드 포 글로리 등등 북미 메이저 단체 대형 PPV 메인 이벤트 경기에 전부 참여한 선수다.[22]
7. 둘러보기
[1] 1차 해외원정때 사용했던 링네임.[2] WWC - WCCW 해외원정 당시 사용했던 링네임.[3] 무토 케이지를 대표하는 또다른 악역의 자아. 설정 상으로 무타는 마계 출신이며, 무토는 무타의 대변인이다. 특기는 독무. 독무 외에도 불꽃 공격을 사용하기도 한다. WCCW를 떠나 NWA에 스카웃되었을때 첫선을 보였다. 왜 '무토'가 아니고 '무타'인가하면 원래 이 기믹 자체가 WCW에 출전했을 때 선보인 기믹인데 링 아나운서들이 영어로는 'Mutoh'인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링 콜이 통일이 안되자 통일을 위해 발음이 좀 더 쉬운 'Muta'로 바꿨기 때문.[4] 2000년생. 프로덕션 오기 소속으로 아역배우 출신의 배우. 무토 케이지 슬하 1남 1녀중 둘째로 오빠와는 4살 터울. [5] 첫 미국 원정 귀국 이후의 첫 기믹이자 별명. The Final Countdown에 맞춰 손에 우주비행사 헬멧을 들고 '우주'를 모티브로 하는 기믹이었으나, 기믹 자체가 애매해서 무토의 유일한 실패 기믹으로 남고 말았다.[6] 1998년 7월 무릎 수술 복귀 이후로부터 사용하던 별명.[7] 2001년 경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 후 샤이닝 위저드를 개발 하고 올해의 레슬러에 뽑히는 등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자, 매스컴이 "천재를 초월한 마술사"라는 문구를 영어로 바꿔서 만든 별명.[8] '스페이스 론 울프' 시절의 입장곡. 이 곡을 사용하는 것을 그만둔 이유가 걸작인데, 미국 원정 시절 스트립쇼를 보러 갔을때 스트리퍼가 이 곡에 맞춰 스트립댄스를 추고있는걸 보고 사용하기 싫어져서(...)[9] 덴마크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로얄 헌트의 리더 안드레 안데르센이 작곡한 테마곡.[10] nWo Japan 가입 후에 사용하기 시작한 TRIUMPH의 어나더 버전. 인트로 부분이 바뀌고, 전체적인 반주를 기타가 담당하는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11] 무토의 전일본 시절을 대표하는 테마곡. 심심하면 나오는 특유의 유리 깨지는 소리는 2003년경부터 쓰였다고 한다.[12] 스트리퍼 쇼크를 겪은 무토가 바꾼 테마곡. 이 곡도 사용을 그만둔 이유가 걸작인데 친우이자 장난의 화신 하시모토 신야가 이미 탈모가 진행중이었던 무토를 놀려먹으려고 이 곡 시작 부분에 맞춰 'ムトちゃんがハゲるぅ~(무토 머리가 벗겨진당~)'라고 개사해서 놀려대서라고(...) 2013년 WRESTLE-1 창단 이후에는 다시 이 곡을 쓰고 있다.[13] HOLD OUT의 일본 전통음악 버전.[14] 그레이트 무타 협주곡. 이쪽은 TRIUMPH의 일본 전통음악 버전. 영어로는 Great Muta Concerto이라고 표기하며 뜻은 동일하다.[15] 같은날 입문한 동기, 쵸노 마사히로도 이 경기가 데뷔전이었다.[16] 당시 쵸슈 리키 등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선수들이 대량으로 이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스터가 얇아지며 본인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고, 기본기를 다지게 하고자 기초적인 기술들로만 경기를 해야 하는 영 라이온이 문설트 프레스 같이 화려한 기술을 써도 아무도 자신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고 무토 케이지는 회고한다.[17] 최초로 독무를 선보인 프로레슬러인 그레이트 가부키는 1948년생인데, 2017년에 은퇴할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일본 프로레슬러 중에선 두번째로 고령이었다. 일본에서 그레이트 카부키보다 나이가 많은 최고령 현역 프로레슬러는 그레이트 코지카로, 2017년 기준 75세다.[18] 여담으로 그레이트 가부키의 딸이 TV 보고 난 이후 아버지한테 혹시 사생아 뒀냐고 물어봤었다고...[19] 무서운 사실은 그 무릎에서 나온 연골들을 포르말린병에 넣은 인증샷을 찍었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그리고 지금도 보관중이라고(...)[20] 무토 이전의 그랜드 슬램에 해당되는 두 사람은 바로 사사키 켄스케와 타카야마 요시히로다.[21] 이전에는 텐류 겐이치로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으로 52세였다.[22] 미국의 프로레슬러 AJ 스타일스 또한 ROH 파이널 배틀, TNA 바운드 포 글로리, WWE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에 1회씩 참여한 또 한명의 선수다.[★] A B C D E F G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