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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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과거 부산 아이파크의 주장이였다.
2. 클럽
창원 상남초등학교와 부산 동래중학교와 동명정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하였으나 컵대회 단 한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쳤다.
2.1.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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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으나 그 해 부상을 입어 재활치료를 받다가 2006년 복귀하였고,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최윤겸 감독에게 팀의 주전으로 중용받으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2.2. 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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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여 활약하고 있다. 11시즌에도 주전 수비수로 뛰면서 6년만의 부산의 가을축구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한편 부상의 정도가 심각해서 시즌 아웃을 당했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다행히 11월까진 복귀해 스플릿리그 몇경기는 치룰거라고 한다. 본인이 직접 지방언론[5] 인터뷰에서 한 말이니만큼 믿어도 될듯..
'''그런데...'''
2.3. 가시와 레이솔
2013년 1월 29일, 갑작스럽게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했다는 공식 발표가 떴다. 순식간에 모든 국내축구팬들이 패닉에 빠졌으며, 당연히 소식을 접한 축구 팬사이트들은 왜 하필이면 해외진출이 다른 나라도 아니라 일본이냐고 광분했다.(유럽은 비자발급이 안되어서 못간다.)
이미 부산 아이파크 공홈과 가시와 레이솔 공홈에 관련 기사가 떡하니 뜨면서 사실상 끝난 거래. 팬들은 단숨에 폭발했으며 국가대표 기량을 유지하고픈 김창수 선수의 마음을 알겠지만 좋은 선수가 J리그에 갔다가 멸망한 사례가 넘쳐나기에 우려의 시선만 커져가고 있다.[6]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제대로 적응해서 팀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2013시즌에는 24경기에 출장하였다. 2014시즌2015시즌 좋은활약을 했다
2.4. 전북 현대
결국 2015 시즌이 끝난 후, K리그로 돌아온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2016 시즌부터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게 되었다. 등번호는 가시와 시절과 동일한 27번을 받았다. 전북의 주전 라이트백은 전북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최철순이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다.[7] 그러나 초반에 잦은 퇴장에 시즌 중반에는 7개월짜리 부상을 당해 시즌 중반을 거의 날려버려 그의 계약이 성공적이었나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는 편.
2.5. 울산 현대 2기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자신이 데뷔한 팀인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울산에서 은퇴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편. 선수 소개 멘트는 '''쉽게 내주지 않는다, 열정메이커'''
김창수는 울산의 오른쪽 측변 수비진에서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수비력,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선보이며 활약했으며, 2017년 6월 이달의선수상을 받으며 시즌 중반 울산의 상승세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이어 치러진 광주 FC와의 경기에서도 김인성의 결승골을 도우며 자신의 수상 이유를 몸소 보여주었다.
하지만 10월 22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상대 선수의 허벅지를 발로 밟은 위험한 플레이로 인한 경기중 퇴장으로 인한 출장정지를 포함한 4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400만원의 징계가 내려지면서 일찍 시즌을 마감했으며, 2017시즌 한해 29경기 출장을 기록했으며, 2018시즌에도 리그 26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9년 중앙의 불투이스와 윤영선과 오른쪽 측면에서 굳건히 버티면서 울산 특유의 짠물 수비를 책임졌는데, 특히 상하이 상강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뛰며 활약했는데, 이날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와 전반전부터 활발한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수비력을 선사하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이주의 선수로 선정됐다.
2.6. 광주 FC
2020년 1월 7일 승격팀 광주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6라운드 부산전에서 펠리페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20시즌동안 광주 FC에서의 기록은 24경기 출전 1도움으로, 해당 시즌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통산 기록 : 383경기 출전 8골 26도움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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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에서 지역예선 풀타임을 뛰었지만.감독이 핌베어벡에서 박성화로 교체되면서 정작중국에선 벤치만 지켰고, 국가대표 데뷔는 2009년 시리아전[8] 에서 했다. 그리고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엔트리에 포함되는데 성공했다!
2011시즌과 2012시즌의 맹활약에 힘입어 2012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승선하였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 평가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K리그는 모르는 사람들이 "저선수는 누군데 저렇게 잘하나요"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신의 한 수 드립까지 나오는 가운데, 올림픽 예선 그룹에서도 오른쪽을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주며 순식간에 전국구 네임드로 올라서게 된다. 허나, 8강 영국전에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착지를 잘못해 전반 6분만에 부상으로 아웃되었다. 이후 오재석이 들어왔으나 영국에 내준 두 번의 패널티가 모두 오른쪽 풀백이 조금만 더 잘했어도 되었을 상황이었어서 아쉬움을 일으켰다. 그리고 4강 브라질전서 네이마르 마르셀루라는 세계 최정상급 라인에 오른쪽이 영혼까지 털리자 역시나 '그나마 김창수가 있었으면..'하는 말이 많이 나왔다.
11월경에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 발탁 되어서 뛰었지만, 경기 컨디션은 썩 좋지않아 미비한 활약을 보였다.
홍명보호에서도 꾸준히 뽑혔지만, 이용과 꾸준히 주전 경쟁을 하다월드컵을 3개월남기고 발목골절 삼각인대파열이라는 큰부상을당했지만 기적같은재활로 월드컵을 가게됐지만..결국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선 이용에게 밀려 한 경기도 뛰지 못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욕 먹었던 이용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안 나온 게 다행인 걸지도.
슈틸리케호에서는 신태용 감독 대행 때, 국대에 뽑혔다. 우루과이 전에서는 특이하게도 '''레프트 윙백'''으로 선발 출전. 결과적으로는 차두리와 이용에게 라이트백 경쟁에서 밀렸으나 우루과이 전에서 레프트 윙백으로 출전했을 때는 의외로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에는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
아시안컵을 앞둔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다른 수비 라인들이 까인것과 비교해 괜찮은 경기력을 선보였으며, 남태희의 크로스를 받아 이정협에게 어시스트를 해주기도 했다. 아시안컵 본선에서는 같은 포지션 차두리와 번갈아가며 나름 출전 횟수를 가지기도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홈에서 치뤄진 예선경기를 끝으로 감독이 신태용으로 교체되면서 국가대표와는 멀어졌다.
3.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7년 6월 16일 기준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우측 풀백으로 출장하며, 100m를 12초대에 끊는 걸출한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이 특징. 특히 적극적이고 재기 넘치는 오버래핑과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싱이 주 무기이며, 수비 지역에서의 전술 이해도가 높고, 안정적인 볼 간수와 패스 공급, 경기 조율 능력으로 극찬을 받는다. 주 포지션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이지만 왼쪽도 가능하다.[9] 꾸준함과 성실함 또한 김창수의 강점 중 하나이다.[10] 또한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력 수비수들 중에서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축이라 차두리가 은퇴한 후에는 같은 30대인 곽태휘와 함께 수비진의 베테랑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리드하고 격려하는 역할도 어느 정도 맡고 있다.
5. 여담
- 등번호로 27번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23번 이상의 등번호를 달 수 없는 국가대표팀 경기를 제외하면 리그에서는 대부분 27번을 달고 뛰었다.
- 2017년 10월 22일 울산 현대 vs 제주 유나이티드전 경기중 정운의 허벅지 부근을 밟은 적이 있다. 링크 이날 경기로 인해 경기 중 퇴장으로 인한 출장 정지를 포함한 네 경기 출장정지 및 400만 원의 벌금 징계를 받았다. 정운 선수는 '절대 고의적으로 벌어진 게 아니다. 스플릿 돌입한 상황에서 치열하게 경기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일'이라며, 상당히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링크
[1] 現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2] 라이트백[3]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와일드카드로 발탁[4] 와일드카드 출장기록 포함[5] 부산일보와 인터뷰함[6] 하지만 사실 상황을 곰곰히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 '''나이와 경력'''을 생각해 보자. 유럽은 물론 중동이나 중국조차 가급적이면 어린 선수를 데려가 오래 써먹을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고, 그나마 나이가 든 선수가 많이 진출하는 곳이 아시아 타 리그인데, 중국이나 중동에 진출하는 나이가 많은 선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창수보다 경력이 훨씬 화려하다. 이런 메리트가 전혀 없다면 선택지가 상당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면 그냥 K리그에 남는 방법도 있겠지만, 부산 구단이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마당이라 기껏 축구 인생이 풀리는 시점에 의리만 보고 남기도 힘든 노릇이다. 이근호와 이승렬의 사례도 사실 적당한 예는 되지 못하는 것이, 이근호는 K리그 시절부터 기복이 있는 선수여서 잘 안풀릴 때는 부진한 적도 여러번 있었던 선수다. 더 발전하지 못한게 아쉽다면 몰라도 멸망까지는... 이승렬은 J리그 가기 이전부터 부진했고...[7] 둘의 스타일은 꽤 다른 편인데, 김창수는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스타일인 반면, 최철순은 본래 중앙 수비수 출신이었던지라 수비에 더 집중하는 스타일이다.[8] 2009년 2월 1일. 이 경기를 포함해 국가대표 경기 2경기를 뛰었다. [9] 2010년 당시, 국가대표 출신 박진섭이 우측에서 뛸때 당시 황선홍 부산 감독은 김창수를 좌측에서 뛰게 했으나... 그냥 왼쪽도 '가능은 하다' 수준이었다. 당시 왼쪽에 서다 오랜만에 오른쪽에 뛰게 된 김창수를 보던 한 부산팬은 김창수가 '꺄르륵'하며 즐거워했다는 목격담을 남겼지만... [10] 그렇기는 한데 일본 진출 이후 국대에서 기복이 심해졌다. 컨디션 좋을 때는 미칠듯한 스피드와 체력으로 상대 측면을 붕괴시킴은 물론이고, 공격 차단도 잘해준다. 그런데 안 좋을 때는 욕나오는 똥크로스에 미칠듯하게 공 뺏기고, 수비도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