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무시나

 

'''마이크 무시나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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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마이크 무시나'''
헌액 연도
201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6.70% (6회)

'''1996년 ~ 1999년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크 랭스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마이크 무시나
(볼티모어 오리올스)'''

케니 로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2001년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케니 로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무시나
(뉴욕 양키스)'''

케니 로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2003년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케니 로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무시나
(뉴욕 양키스)'''

케니 로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2008년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트윈스)

'''마이크 무시나
(뉴욕 양키스)'''

마크 벌리
(시카고 화이트삭스)


'''마이크 무시나의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42번'''
론 키틀
(1990)

<colbgcolor=#000000> '''마이크 무시나
(1991)
'''

셔먼 오반도
(1993~1995)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35번'''
데이브 갤러거
(1990)

'''마이크 무시나
(1992~2000)
'''

조시 타워스
(2001~2002)
'''뉴욕 양키스 등번호 35번'''
클레이 벨린저
(1999~2000)

'''마이크 무시나
(2001~2008)
'''

데이브 아즈마
(2012)



'''마이클 콜 "마이크" 무시나
(Michael Cole "Mike" Mussina)
'''
'''생년월일'''
1968년 12월 8일 (55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 주 윌리엄스포트
'''출신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신체조건'''
188cm / 83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0번 (BAL)
'''소속구단'''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1~2000)'''
'''뉴욕 양키스 (2001~2008)'''
'''수상'''
'''5× All-Star (1992~1994, 1997, 1999)
7× AL Gold Glove Award (1996~1999, 2001, 2003, 2008)'''
AL wins leader (1995)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2.2. 메이저리그
3. 피칭 스타일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소개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뉴욕 양키스의 전 투수였으며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 학사라는 학력까지 가진 '''MLB 역사상 보기드문 엄친아+콩라인 투수'''이다. 별명은 성에서 딴 대로 Moose.[1]
통산 성적은 270승 153패, 3562.2이닝, 3.68 ERA, 2813삼진, 785볼넷, K/9 7.1, BB/9 1.98, K/BB 3.58, HR/9 0.94, 57완투, 23완봉을 기록했다.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등학교 때 기록은 '''24승 4패에 평균 자책점은 0.87이였다.''' 또한 축구와 농구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2]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으나 입단을 대학 졸업 후로 보류하고 당시 고등학교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한다.[3] 무서운 점은 재학 당시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는 점과 3년반 만에 '''조기 졸업''',[4] 대학교 진학 후에도 그 실력은 상승세를 보였으며 졸업 후 바로 오리올스에 입단하였다. 오리올스에서도 애지중지하던 투수로, 마이너에서조차 불펜 투수로 등판한 적이 없고 전부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

2.2. 메이저리그



2.2.1.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1년 빅 리그 데뷔, 1992년 본격적으로 풀 타임을 뛰며 18승 5패에 2점대 중반의 자책점을 기록하며(당시 경기영상) 돌풍을 일으켰으나 사이 영 상에선 4등을 하며 고배를 마셨다.[5]
[image]
하지만 이후에도 15승을 넘나드는 활약을 보이며 오리올스의 에이스 역할[6]을 했으며 2001년 FA로 6년 88.5M규모의 계약으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다.

2.2.2. 뉴욕 양키스


[image]
이후 꾸준히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2007시즌에는 노쇠화로 인한 직구 구속 하락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무시나는 마이너를 포함해서 전 경기를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2007년 시즌 중반에 성적 부진으로 인해 불펜 계투로 잠깐 돌린 적이 있고, 딱 한 경기 불펜 투수로 등판했는데, 그게 무시나가 프로가 되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펜 투수로 등판한 경기가 되었다. 부진의 이유는 직구 구속이 너무 떨어져서 변화구랑 구속 차이가 크게 안 난다는 게 핵심적 문제였는데... 그는 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를 '''변화구 구속을 낮춘다'''는 획기적(...)방법으로 타개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시즌 초반에도 부진이 이어지자 공동 구단주 자격으로 있던 행크 스타인브레너가 '무시나는 제이미 모이어처럼 던질 필요가 있다' 라며 듣기에 따라서 빅 리그 짬밥이 2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투수에게 상당히 치욕적인 말을 한 바가 있는데 이에 '나에겐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다'고 간단히 응수했다. 왕젠민을 더불어 그와 앤디 페티트를 제외한 모든 선발 로테이션 멤버가 부상으로 들락날락하는 최악의 팀 상황에서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분투, '''선수 생활 최초이자 최후로 20승을 달성'''하고 몇 시즌만 더 던지면 통산 300승이 유력한 상황에서 팀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며[7][8] 깔끔하게 은퇴해버리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시나는 통산 270승/2,813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실제로 3년 정도 더 뛰었다면 300승 클럽과 3,000K 클럽에 동시에 가입한 메이저리그 역대 11번째, 실질적으로는 10번째[9] 투수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 아무리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무시나가 3년 정도 더 뛰면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하고 은퇴했더라면 명전 입성은 당연한 것이고 첫 턴 입성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10]

3. 피칭 스타일


[image]
결정구였던 너클 커브

전성기 시절 무시나는 90마일 중반대에 육박하는 패스트볼너클 커브, 자신만의 고유한 그립을 잡고 던지는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파워 피쳐였으며,[11] 그이외에 투심, 커터, 슬라이더도 간간히 던졌다. 나이를 먹고 빠른공의 평균 구속이 88~89마일 정도로 떨어지면서 상황에 따라 완급조절이나 팔각도 조절 같은 지능적인 투구로 상대 타자를 현혹하는 타입으로 변신에 성공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커리어 말년을 보냈다. 릴리즈 후 살짝 앞으로 뛰는 특유의 투구폼이 인상적.
그 명성과 실력에 비해, 유독 상복이 없었던 투수. 거기다가 모든 투수들의 목표이자 꿈인 퍼펙트게임을 달성 직전에 세 번이나 놓친, 불운한 투수.[12] 그리고 이상하게 그 화려하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양키스 우승 신화가 공교롭게도 무시나가 영입된 2001년부터 끊겨버린지라 양키스 팬들이 간혹 '무시나가 오고 나서부터 우승 못했다. 재수없다.' 하는 식으로 대차게 까는 경우도 있었다(...). 지못미. 그리고 그가 '''은퇴한 직후'''인 2009 시즌. 양키스는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Mr. Almost'''. 그나마 위안이라면 골드 글러브는 7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수비 능력이 민첩하고 빈틈이 없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 첫 해인 2014년 20.3%로 무난한 출발을 했다. 몇 년간은 쟁쟁한 선수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이 정도 득표율에서 장기 투숙(?)할 것으로 예상됐다.
  • 2년차인 2015년에도 24.6%의 득표율을 보였다. 승산은 있어 보이지만 자격유지 한도가 10년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쉽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 2016년에는 43%로 두 배 가까이 수직상승 하면서 충분히 입성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투표인원 숫자가 줄어든 수혜를 크게 본 케이스이긴 한데,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커트 실링 등이 투표자 수는 크게 변화가 없거나 약물 선수들의 경우는 오히려 줄어들었음에도 득표비율이 상승한 케이스라면 마이크 무시나는 확실히 투표자수가 늘어난 케이스라는 것이 긍정적이다. 다만, 앞에 열거한 선수들보다는 득표비율이 낮다는 것이 문제.
  • 4년차인 2017년 득표율은 51.8%이다. 전년도만 해도 오히려 50%를 넘었던 커트 실링이 화려한 아가리질의 결과로 잔뜩 어그로를 끌어 45%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긍정적인 신호였다.
  • 2018년에는 63.5%를 득표.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 비교대상이었던 커트 실링은 50% 초반, 본즈와 클레멘스는 50% 중반이라는 것과도 비교되는 상승폭이었다.
  • 2019년, 76.7%의 득표율로 결국 6수만에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하였다. 자신은 볼티모어와 양키스 두 모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고 밝혔고, 결국 자신의 의견대로 빈 모자를 썼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마이크 무시나
15
250
121
54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9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마이크 무시나
82.8
44.5
63.6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3
50.0
61.6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91
BAL
12
4
5
0
0
87⅔
2.87
77
7
21
1
52
1.118
139
1.7
2.2
1992
32
18
5
0
0
241
2.54
212
16
48
2
130
1.079
157
5.3
8.2
1993
25
14
6
0
0
167⅔
4.46
163
20
44
3
117
1.235
100
2.8
1.6
1994
24
16
5
0
0
176⅓
3.06
163
19
42
1
99
1.163
164
3.4
5.4
1995
32
'''19'''
9
0
0
221⅔
3.29
187
24
50
1
158
1.069
145
5.1
6.1
1996
36
19
11
0
0
243⅓
4.81
264
31
69
3
204
1.368
103
5.3
3.7
1997
33
15
8
0
0
224⅔
3.20
197
27
54
3
218
1.117
137
5.4
5.5
1998
29
13
10
0
0
206⅓
3.49
189
22
41
4
175
1.115
130
5.1
5.0
1999
31
18
7
0
0
203⅓
3.50
207
16
52
1
178
1.274
133
6.1
4.4
2000
34
11
15
0
0
'''237⅔'''
3.79
236
28
46
3
210
1.187
125
6.3
5.6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1
NYY
34
17
11
0
0
228⅔
3.15
202
20
42
4
214
1.067
143
6.9
7.1
2002
33
18
10
0
0
215⅔
4.05
208
27
48
5
182
1.187
109
4.7
4.6
2003
31
17
8
0
0
214⅔
3.40
192
21
40
3
195
1.081
130
6.1
6.6
2004
27
12
9
0
0
164⅔
4.59
178
22
40
2
132
1.324
98
2.9
2.4
2005
30
13
8
0
0
179⅔
4.41
199
23
47
7
142
1.369
96
2.5
3.4
2006
32
15
7
0
0
197⅓
3.51
184
22
35
5
172
1.110
129
5.1
5.0
2007
28
11
10
0
0
152
5.15
188
14
35
4
91
1.467
88
2.6
1.0
2008
34
20
9
0
0
200⅓
3.37
214
17
31
8
150
1.223
131
3.6
5.1
<color=#373a3c> '''MLB 통산'''
(18시즌)
537
270
153
0
0
3562⅔
3.68
3460
376
785
60
2813
1.192
123
81.3
82.8

6. 기타



  • 오프시즌에 고향 고교 팀에서 풋볼, 농구 코치를 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며,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한 선수임에도 승부 근성이 강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2006년 디트로이트 전에서 6-1로 완투승을 앞두고 있던 9회 2사에[13] 주자를 출루시키고 나서 조 토레 감독이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올라오려 하자 'No, You stay there'라 얘기했다. 다만 이 한 사건으로 은근히 성질 있는 선수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미 감독이 같은 이닝에 올라온 적이 있었기에 라인을 밟는 즉시 무조건 교체되는 상황에서의 급한 제스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김성근 감독이 코치가 먼저 마운드에 올라간 걸 깜빡 잊고 나온 바람에 김광현이 강제 리타이어된 상황에서 김광현이 '거기 그냥 있으세요'라고 소리 질렀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 슬하에 아들이 둘 있으며[14] 트랙터[15] 클래식 카 덕후이다.
  • 은퇴 후에 YES 네트워크의 양키스 경기 중계에 출연하거나 고향 고교 팀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모습이 알려진 바 있다.
  • 201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박경림과 직찍을 한 적이 있다(...) 박경림 항목 참조.

7. 관련 문서




[1] 한국식으로 말하면 말코손바닥사슴이지만 학자들이 아닌 이상은 다들 '''무스'''라고 부른다. [2] 무시나는 마이너리그 시절 부족한 월급 때문에 중고등학교 농구 코치로도 활동한 바가 있다. [3] 이때 전교 2등으로 졸업한 이유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카더라로 떠도는 말이 "고등학교 졸업 연설을 하기 싫어서 일부러 2등을 했다"는 것이다. [4] 이와 비슷한 인물로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졸업학점(GPA) 3.8을 받고 졸업한 로스 올렌도프, 예일 대학교 분자생물학을 전공해 의대까지 합격했지만 밀워키 브루어스의 지명으로 모든걸 포기하고 MLB에서 활약한 크레이그 브레슬로우, 바르셀로나 의과대학에 입학한 파우 가솔, 의학박사이자 소아과전문의였던 소크라치스, 약학대학을 졸업한 디켐베 무톰보, 예일 대학교를 포기한 맷 보너, 스탠포드 대학교 출신의 랜드리 필즈, 수학장학생으로 조지아 공과대학교을 입학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테디어스 영,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데이비드 로빈슨, 에메카 오카포,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제레미 린, 그 외 엘튼 브랜드, 그랜트 힐,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영, 라이언 가코 등 생각보다 공부 잘 하는 운동선수가 많다. [5] 이 해 1위는 데니스 에커슬리 [6] 이 시기 볼티모어는 지독하게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 그 극강의 타고투저 시즌에도 불구하고 타선은 약했으며 불펜도 부실했다. 단적인 예가 2000년. 팀타율 리그 11위, 팀장타율 11위, 팀홈런 10위였고, 더 심각한 것은 구원 투수진으로 팀 전체 세이브 33개로 15위. 결국 마이크 무시나의 팀동료였던 시드니 폰손이 방어율 4.82로 222이닝을 던져서 리그 이닝 5위에 오르는 처참한 상황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무시나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제외하고 지구인 중에서는 아메리칸 리그 투수 중 최고의 활약을 했다. 이닝 237 2/3(1위). 방어율 3.79(3위) Whip 1.19, 탈삼진 210개(3위). 하지만 그의 성적은 11승 15패.[7]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양키스가 FA 사냥에 나서기 위해 다년 계약을 제의하지 않았고 300승 도전을 위해 3년 연장 계약이 아니면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8] 통산 270승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2~3년 정도 더 뛰었다면, 양키스 전력에 비춰볼 때, 본인만 삽질하지 않으면 300승은 무난했다. [9] 2016년 기준으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월터 존슨,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돈 서튼, 게일로드 페리, 필 니크로,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10] 2016년 기준으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 10명 중 약쟁이를 제외한 9명은 전부 명전에 입성했다. 다만 전부 첫 턴에 간 것은 아니고 게일로드 페리가 3수, 돈 서튼필 니크로가 5수 하긴 했는데, 기록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부정투구 논란과 너클볼러라는 트집(...) 같은 기록 외적인 마이너스 요인에 발목잡혔던 것. 별다른 기록 외적 마이너스 요인이 없었던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은 전부 95% 이상의 득표율로 첫 턴에 입성했다. (월터 존슨은 83.63%의 다소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그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최초의 5인'''이므로 예외적인 사례이다.) 무시나에게 야구 외적인 마이너스 요인은 없었으므로 그가 만약 300승과 3,000K를 전부 채우고 은퇴했다면 지금처럼 명전을 가냐 마냐 아웅다웅하는게 아니라 첫 턴도 충분히 노려볼만하고, 설령 첫턴에 미끄러져도 최소 3수 안에는 무조건 갔을 것이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들어가긴 했으니. [11] 이 체인지업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양키스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무시나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마다 홈런을 때렸다. 무시나가 어이없어하며 포사다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자, 포사다는 던질 때 잡는 방법이 보인다고 귀띔해줬다. 이 말을 듣고 개량한 것이 무시나의 체인지업. 결국 포사다는 무시나의 너클 커브를 대신할(포사다의 수비 능력을 생각해 보라) 체인지업을 만들어준 셈이다. [12] 1997년 9회 1사후 안타, 1998년 8회 2사 후 안타, 2001년 9회 2사 후 안타(심지어 펜웨이 파크에서였다!)... 2004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7회 1사 후 안타를 포함하면 4번. [13] 그나마 저 1점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실책이다. [14] 그의 아내는 무시나와 결혼하기 전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15] 농기계 트랙터가 아닌 큰 트럭. 즉 뒤에 트레일러라는 무동력 차량을 달고 다니는 것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