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길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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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길(曺永吉)'''
[image]
'''1940년 5월 9일 ~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61년 ~ 2001년
'''임관'''
갑종 172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합동참모의장
1. 생애
2. 가족관계
3. 기타 등등


1. 생애


대한민국군인, 공무원. 합동참모의장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1933년 생 군인인 조영길(趙英吉)과는 한자가 다르다.
1940년 5월 9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광주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1년 갑종간부후보생 172기로 지원하여 같은 해 12월에 소위임관한 뒤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사단이나 연대에서 참모를 거치지 않은 특이경력자이지만 베트남전에서는 최우수 중대장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군사령관 시절인 1998년 북한군잠수정 격퇴에 공헌했다. 이듬해인 1999년에 전임 김진호(제1 연평해전 당시의 합참의장) 대장의 뒤를 이어 합동참모의장으로 취임했다. 합참의장 시절 인터뷰
2001년 합참의장직을 떠남과 동시에 전역했고, 2003년 2월노무현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취임했다. 2003년 국군의 날 당시에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준 것을 두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국방장관 재임 시절 원자력잠수함 개발을 추진했지만, 불과 1년만인 2004년 초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2004년 5월북한군 경비정이 NLL을 넘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고 누락을 이유로 사임했다. 군 사법 개혁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 물러났다는 설도 있다.
군 생활을 40년 했는데[1] 17세에 입대한 정호근 대장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군에서 가장 군 생활을 오래 한 사람 중 하나이다.

2. 가족관계


부인 강숙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다.

3. 기타 등등


인터넷에서는 조영길 전 장관이 이등병 출신이란 소문이 퍼져 있다. 군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전역자들이 많다. 관련 페이지 그런데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1961년에 영광안마도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에 갑종장교에 지원해 시험을 쳤다고 밝히고 있다. 광주 숭일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는 갑종간부로 소위로 임관했다.[2] 다만 한국경제신문의 기사 가운데 조영길 대장이 이등병 출신이었단 언급이 있긴 하다.[3] 다만 기사에선 한 줄로 언급할 뿐 정확한 출처가 있음을 밝히진 않는다. 관련기사
경력을 돌이켜보면 관운이 진짜 강한 인물이다. 원래 조영길 전장관은 김영삼 정부시절 갑종출신에 호남 출신이라 소장시절 진급이 안돼서, 계급정년으로 전역을 몇 달 앞두고 있을때 겨우 중장 진급을 하고, 2군단장이 됐다. 하지만 군단장을 마치고 다시 한직인 제2야전군 부사령관으로가서 그때도 전역을 할 뻔 했으나 마침 그 타이밍인 제15대 대통령 선거때 같은 호남(전남 신안군)출신인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장 진급을 했다. 제2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을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비육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까지 역임해 군인 경력의 마무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2012년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다. 관련기사
2019년 5월, 회고록 <자주국방의 길>(플래닛미디어)을 출간했다.

[1] 여기서 군 생활은 사관생도를 제외한 정식 군인을 말한다.[2] 중졸은 일등중사로 임관했다. 이는 오늘날의 중사에 해당한다.[3] 갑종장교는 군번이 2 개였다. 21X 기 기준으로 병으로 입대하지 않고 지원해서 바로 소위로 임관할 경우 먼저 논산훈련소에서 병으로 10주간 교육을 받은 후 상무대에서 후보생으로 40 주간 훈련을 마친 후 장교로 임관했다. 중간에 휴가 2 주를 포함해서 총 52주로 총 1년이 된다. 따라서 논산 군번(병), 상무대 군번(장교)로 군번이 2 개였다. 이 것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와전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