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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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세번의 윌드컵에 출전하며 브라질의 월드컵 첫 우승과 두번째 우승을 함께한 선수[2] 로 이메르송 레앙,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지다, 줄리우 세자르, 알리송 베케르로 이어지는 브라질 골키퍼 계보의 시초다. 이렇게 뛰어난 국가대표팀 활약으로 그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어린 시절
지우마르는 1930년 상파울루 산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지우마르는 그의 아버지 지우베르투와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합쳐 지어진 이름이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지우마르는 1951년 SC 코린치안스에 입단했고, 10년간 486경기를 뛰면서 상파울루 주립 리그에서 3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1961년에는 산투스 FC로 이적했고, 펠레 - 쿠치뉴 - 지투 - 주제 마시아 페페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했고 거기다가 지우마르까지 합류했으니 그 전력은 어마어마했다.산투스 FC는 1962~1963년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달성했고, 지우마르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리고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의 SL 벤피카, 지아니 리베라의 AC 밀란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지우마르는 1969년까지 브라질 세리에 A '''5회''' 우승을 이끌어 내었다.
3.2. 국가대표 경력
이렇게 클럽 경력도 좋았지만 국가대표팀 경력은 더욱 좋았다. 지우마르는 1953년부터 국가대표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195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 195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4위를 차지했고,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또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지우마르는 조별리그와 8강전을 모두 클린시트로 막아내었고, 펠레와 가린샤의 활약으로 공격력이 대폭발, 쥐스트 퐁텐과 레몽 코파가 이끄는 프랑스를 5:2로 격파, 결승전에서는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 쿠르트 함린이 이끄는 스웨덴을 5:2로 격파하며 마침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195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또 준우승에 그쳤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펠레가 부상으로 낙마했으나 가린샤의 원맨쇼로 결승전에 진출하고, 1962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맞수 빌리암 쉬로이프와 선방 대결을 펼쳤는데 둘다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쉬로이프가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며 맞대결은 지우마르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월드컵 2연패에 성공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펠레와 가린샤 등 브라질 선수들 전체가 부진해서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지우마르는 한동안 국가대표 경기에 나오지 않다가 1968년에 펠레와 함께 타사 오스바우두 크루즈에서 복귀하여 한 경기를 뛰었고, 1969년에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에 나서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그는 골키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잔실수가 적은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리더십 또한 뛰어나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이러한 활약 속에 브라질은 월드컵 2회 연속 우승을 이룰수 있었다.
5. 기타
1964년 산투스 FC와 그레미우의 경기에서 지우마르는 퇴장을 당했는데 그에 대한 대책으로 산투스가 골키퍼로 세운 선수가 바로 '''펠레'''이다. 펠레는 이 경기에서 이미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골키퍼로도 여러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 왼쪽은 축구 황제 펠레 이다.[2] 이러한 활약으로 남미 최고의 골키퍼 순위에 흔히 우발도 피욜,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츠,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등과 함께 최일선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