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제

 

1. 개요
2. 헌법 상 총리의 권한
3. 어려움
3.1. 권한 분리의 애매함
3.2. 임명직이라는 한계
3.3. 행정부 제약에 대한 불만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책임총리 담론
5. 외국에서
6. 관련 문서

'''責任總理製'''

1. 개요


국무총리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을 분할, 상호 견제하게 하는 정치 체제.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분산하여 상호 견제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2. 헌법 상 총리의 권한


헌법에 명시된 국무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에 비해 명확하지 않아 권한행사에 한계가 있다. 그나마 있는 행정각부 장관의 제청권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의중에 따라 행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헌법에 나오는 국무총리의 권한이다.

'''헌법 제62조'''

① 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

'''헌법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 제86조'''

②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헌법 제87조'''

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헌법 제94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초기 제헌의회 당시 구상되었던 한국의 정치 체제는 의원 내각제에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존재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의 강화를 원한 이승만 등에 의해 상황이 바뀌어 의원 선거로 대통령이 선출되는 초기 제헌헌법이 발의되었다. 그리고 이후 그 유명한 발췌 개헌으로 인해 그마저도 무너지게 된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출직''' 대한민국 부통령 제도가 사라지고 대통령의 '''임명직'''으로써 국무총리가 부활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각종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통령 눈치를 봐야 하는''' 국무총리 직책이 탄생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시된 권한은 어찌보면 대통령에 맞먹을 정도의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권한은 그냥 '''대한민국 대통령아바타''' 수준으로 대통령이 비난에 직면해있을 때 대신 비난을 받고 해임당하면서 쇄신 국면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국무총리의 상황. 이전 김대중 정부 때 DJP 연합으로 정권을 공동 창출했던 김종필 역시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실권 총리가 될 것으로 전언되었으나 막상 정권이 시작되고 나서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어 총리 서리에 머물렀고, 김대중 대통령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씹어버리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밀어주기만 하면 총리가 갖는 권한과 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를 실현한 실세 총리로 손꼽히는 인물이 노무현 정부 당시 '''이해찬''' 총리다. 당시 실제로 이해찬 총리는 임명시 책임총리를 표방했다.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 이낙연 전 총리를 밀어주면서 사실상의 책임총리가 되었다. 이낙연 총리는 대통령 전용기로 해외 순방까지 다녔을 정도였으며, 아프리카와 중남미 외교는 그의 몫이었다. 후임자 정세균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감염사건으로 인해 대구에서 직접 사고 수습을 지휘함으로써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지 평가받는 자리라고 언론에서 언급했을 정도였으며, 이후 코로나가 어느정도 잡히자 K-방역이라는 선전물이 나오는 것도 그의 성실한 직무가 뒤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어려움



3.1. 권한 분리의 애매함


책임총리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실제 정책을 하다보면 외치/내치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YS 시절 이회창 총리는 내치 부분 책임총리를 천명하며 취임했지만, 4개월만에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자진사퇴한 바 있다. 물론 참여정부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본인의 권한을 많이 위임해줘서 실세총리라 불린 이해찬 총리가 책임총리급의 권리를 행사한 바 있지만, 그건 대통령과 총리 두 사람의 이념이나 생각이 많은 부분 일치하거나 아님 대통령이 통 큰 양보를 해야[1]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번 실현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3.2. 임명직이라는 한계


사실 한국에서는 책임총리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총리는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라는 점이 크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은 9차 개헌 이후 직선제 선거에서 아무리 못해도 800만 표 이상[2]을 득표했으며, 가장 많게는 1,500만표 이상[3]을 득표한 경우도 있다.
즉, 대통령은 대략 천만 명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아 탄생했지만 국무총리는 그렇지 않기에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4] 국무총리는 의전서열은 높겠지만 여, 야당 대표나 원내총무(원내대표)에게도 비교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회 주요 구성원이면서 본인들 모두가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 민주주의에서 선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총리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입지를 보이려면 의원내각제의 총리처럼 국회에서 선출되거나 총리직선제부통령제처럼 국민으로부터 선출되는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3.3. 행정부 제약에 대한 불만


책임총리제가 실행되면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는데 이는 행정부에 대한 권한에 대해 크게 제약이 가해진다는 의견도 많다. 보수측에서는 대통령들이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꾸준히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총리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국회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상당히 크다. 국가를 위한 발전을 모색하고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는 대통령들 vs 별다른 정책이나 대책도 없으면서 이를 막기만 하는 국회&국회의원들의 대립구도는 이들이 줄곧 언급해 온 전통적인 대립 구조이다.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책임총리 담론


이후 2016년 박근혜 정부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고, 박근혜정부의 신뢰도가 완전히 추락하자 여야를 막론하고 거국중립내각과 책임총리 도입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발생 자체가 대통령에게 과하게 권한이 집중된 현 상황의 문제라고 보는 개헌론자 입장 또한 있고, 반대로 제도보단 인물 문제가 크다는 입장도 있다.[5][6] 하여튼 현재의 대통령 자체가 이미 국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인건 사실이므로 박근혜 정부의 인사가 아닌 제3자가 다음 대선까지 포함한 국정 전반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 후자의 경우 책임총리제보다는 아무튼 책임총리가 될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11월 초 김병준 교수가 박근혜정부 책임총리로 내정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에서는 여야 합의가 없는 일방적인 대통령 지명이라며 제안을 거절해 난항에 부딪혔고,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비슷한 비판이 나왔다. 결국 11월 8일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합의에 의한 총리를 선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민심은 이미 떠나간 버스라 야권은 대통령의 탈당이나 총리에게 국정 전권 이양 같은 2선 후퇴 언급이 없다며 에둘러 제안을 거절했다.
국민의 즉각 퇴진 요구는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책임총리제는 제대로 실현되지도 못한 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며 기존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행사하게 된다. 기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책임총리 관련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타임라인도 참고해보자.

5. 외국에서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인 국가에선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고, 대통령은 제한된 권력을 가진 경우가 주로 해당된다. 책임총리의 권한이 행사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 이탈리아, 인도 같은 나라의 정치체제를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다.

6. 관련 문서



[1] 이낙연이나 정세균의 행보가 비교적 자율적일 수 있는 것도 문재인노무현과 방향성을 같이 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2] 노태우 전 대통령은 8,282,738 표를 득표하였다. [3] 박근혜 전 대통령이 15,773,128 표를 득표하였다. [4] 당장 노무현이나 박근혜 때 탄핵 정국을 살펴봐도 노무현 정권 당시 국민들은 왜 1,200만명의 국민들이 뽑아준 대통령을 국회에서 내려오게 하느냐며 다음 총선에서 정국을 완전히 뒤집었으며 박근혜 정권 때에도 1,500만명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 내려오라고 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는 천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의 집회로 국민들이 탄핵 지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탄핵이 가능했다.[5]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조언과 비판을 해야 할 국회(특히 자유한국당(前 새누리당)에서 일방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며 지지 선언을 해온 것을 지적한다. 즉 본인들의 이익과 당선을 위해 이들도 영합해왔으며 정작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을 극극 꺼려왔던 것을 일침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자리에 연연,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국회의 본연의 업무를 망각해왔던 것을 반론한다.[6]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초선은 물론이거니와 나경원을 위시한 유승민, 김무성등 중진 국회의원들도 다수 포함된다. 때문에 이들은 대통령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권한을 제약하지 말고 국회의원들 또한 자신들의 권한을 제약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을 반론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