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이북5도위원회)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서북부에 있는 도. 이북 5도 중 하나. 인구는 약 7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평양을 제외하면 약 500만 정도.
북쪽에 평안북도, 동쪽에 함경남도, 남쪽에 황해도가 있다. 1896년 남북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평안도의 일부였다. 도청소재지는 평양시.[3]
2. 역사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였고, 고려 또한 서경을 두어 중시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북계였다가 조선 시대에 평안도가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남도가 되었다.
해방 이전에는 한국 개신교의 중심지였다. 개신교계 신학 학교가 거의 다 이곳에 있었고 개신교 모임이 활발하여 안창호같은 인물도 나왔다. 평양에 있던 개신교단과 신학교들은 해방 이후 공산집권을 피해서 대거 남하하여 현재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되었다. 주류 개신교단들이 노골적인 반북 성향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숭실대학교도 이때 서울로 이사 온 학교이다.
하지만 해방 당시 북한은 종교 신자 인구로 치자면 기독교는 천주교 신자와 수를 합쳐도 불교 신자에 비해 수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 3종교 모두를 합친 인구는 천도교 신자의 인구의 절반도 채 안 되었다. 신자 인구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평양 하나라면 모를까, 평안남도가 기독교 신자 일색으로 가득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없고 북한 정권의 탄생과 함께 주체사상의 핵심지역.(…)
3. 지역 특성
[image]
한국 북부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이며 인구 밀도도 가장 높다. 1944년 당시 인구는 182만 6441명으로 함경북도를 뺀 다른 북한 지역들보다 인구가 적었으나, 북한 정권의 수도가 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사실 평안남도는 북부 유수의 인구밀집 지역으로, 이북 5도 행정구역상 평안남도(인구 약 700만)는 경기도, 서울특별시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행정구역이 된다. 이건 그렇다쳐도 심지어 차포 다 뗀 현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남도를 가져다놔도 마찬가지로 인구 3위가 된다.
동쪽은 낭림산맥으로 함경남도와 접하기 때문에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띈다. 날씨는 냉량한 편으로 도내에서 가장 온난한 평양-남포 일대가 남쪽의 춘천-홍천의 연평균 기온과 비슷하고, 겨울 기온은 더 춥다. 동북쪽의 영원(寧遠)쯤 가면 날씨가 개마고원에 가까워진다.
주요 도시로는 평양시, 진남포시, 순천시(順川: 순천군), 안주시(안주군), 평성시(순천군 사인면), 개천시(개천군), 덕천시(덕천군) 등이 있다.
4. 교통
경의선, 평원선, 평남선, 만포선 철도가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원산간 고속도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평양희천간 고속도로를 깔았다.
대동강을 통한 수운교통도 이루어지고 있다.
5. 특산물 및 산업
이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 녹두지짐 등이 있다. 참조 평양만의 음식은 아니지만 개고기 식용 문화가 활발한 지역이라 단고기 요리도 주요 음식으로 꼽힌다.
평양평야, 안주평야를 중심으로 농업이 활발하며 특산물로는 남포 일대의 사과, 성천,함종의 밤(평양약밤), 담배 등이 있다.
그리고 석탄(무연탄)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평남남부탄전, 평남북부탄전을 이루고 있다. 북창 및 안주에 화력발전소가 있다. 한편 평남은 석회암 지대가 많으며 승호리(강동군)는 시멘트 생산지이다. 한편 대동강 하류는 강수량이 적어 연 800mm선까지 줄어든다. 따라서 이 지역은 진압농법이 발달했고, 남포, 용강 일대를 중심으로 제염업도 활발하다.
6. 관광지
평양에는 평양성, 대동문, 보통문, 을밀대, 대성산성 등이 있으며 그 외 평남 지역에는 동명왕릉, 안주성, 용강 쌍영총 고구려 고분군, 개천 송암동굴, 남포 와우도 해수욕장 등이 있다. 평안북도와의 경계선상에 묘향산이 있다.
7. 통일 후 전망
평양은 인구, 상징성, 인프라 같은 모든 면에서 봤을때 광역시 승격이 확실하며, 추후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북부지방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도도 가장 높으며 도시개발을 저해하는 산지가 적기 때문에 최우선 순위로 빠른 성장이 기대된다.
또한, 평양은 과거 북한을 상징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관광객의 증가로 인한 수입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머나먼 미래를 내다봤을때는 북부지방의 경기도와 같은 거대한 수도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고, 못해도 통일 한국 제3의 광역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4]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북부지방의 인구가 중부지방의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5] 어느정도 포텐을 가지고 발전할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
8. 출신 인물(실향민)
'''탈북자이거나 1953년 휴전 협정 체결 이전에 태어난 사람에 한정하여 작성할 것'''
9. 관련 문서
[1] 이북5도위원회 소재지[2] 분단 이전 도청 소재지[3] 현재는 북한 정권에 의해 평성시에 있다.[4] 지금도 인구수로만 따지면 부울경보다 약간 적은 정도다.[5] 통일 이후 급격한 인구이동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재 북한 주민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낮아 첨단 산업,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통일 이후 북한 리스크가 사라져 서울과 인천은 외자 유치로 초거대 업무지구를 이뤄 수도권에 이들이 이주하기는 지가가 지나치게 상승해 이주하기 너무나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저부가가치 산업의 지방 이전으로 남한의 지방으로의 인구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고 또한 돈 없는 북한 주민들이 1950~70년대와 달리 산기슭에 무허가 주택을 지어 사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무엇보다 정부에서 통일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구 북한 주민들의 거주이전의 이전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 역시 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