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테카베 카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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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てかべ和也
1934년 7월 25일 ~ 2015년 6월 18일 (향년 80세)
1. 약력
2. 에피소드
3. 작품 목록


1. 약력


일본성우. 본명은 타테카베 카즈야(立壁和也)이며 1970년대까지는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다가 나중에 성씨를 히라가나로 풀어 쓴 예명을 사용했었다. 혈액형은 A형으로 홋카이도 시리베시 종합진흥국 키모베츠정 출신이다.
소년 시절, 홋카이도로부터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이사. 대화 관련 문제 때문에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제1기생으로서 도쿄 교육대학 부속 코마바 중학교(현 츠쿠바대학 부속 코마바 중학교)에 입학, 동고등학교를 거치고, 일본 대학 예술 학부 연극 학과를 졸업. 그 후 극단천좌를 거쳐 도쿄 배우 생활협동조합에 소속하게 된다.
프로덕션 바오밥[1]에 소속해 있었을 무렵, 매니저업도 맡아 상무 이사로서 야지마 아키코, 미즈타니 유코, 오리카사 아이 등을 발굴하였다. 특히 야지마한테는 짱구는 못말려의 오디션을 알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제14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에서 도라에몽(아사히 1작)의 오리지날 레귤러진 4사람[2]과 함께 타야마 츠토무 재상(田山力哉賞)을 수상하였고, 2006년 11월. 제11회 애니메이션 코베에서 같은 오리지날 레귤러진 4사람과 함께 특별상을 수상, 2007년 3월에는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페어 2007에서 같은 오리지날 레귤러진 4사람과 함께 제3회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2015년 6월 18일에서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이때가 향년 80세. 일본 성우계 최고령 유닛이었던 삼악 멤버 중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2. 에피소드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대장 역이나 힘센 사람, 중노년, 외계인을 비롯한 여러 배역을 맡는다. 삼악의 떡대/뚱보 부하는 바로 이 남자가 전담했다. 2000년대 이후는 온화한 노인역도 많이 연기하는데, 본인에 의하면 오디션은 아니고 「타테카베에는 이런 역이 어울린다」라고 추천으로 결정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도라에몽(아사히 1작)에서는 쟈이안의 소리를 26년간 담당, 하지만 캐스트의 고령화에 의한 총교체로 2005년 3월부터 그만두었다.
그는 '후임 쟈이안 역의 성우와 술을 마시고 싶다'던 소원이 있었는데, 그 소원을 바로 이루진 못했다. 후임 키무라 스바루가 당시 15살로 손자뻘이었기 때문. 그래서 "5년 동안 버텨서 함께 마시고 싶다"고 말했고, 키무라 스바루가 스무 살이 된 직후에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생전에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자신은 독자(외아들)로, 어린 시절에는 주위에서 신경을 쓰고 있던 노비타 같은 사내 아이였다고. 쟈이안은 자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깊은 생각이 있는 역할이었다라고 코멘트하고 있다. 쟈이안의 레퍼터리인 「나는 쟈이안님이다!」(おれはジャイアンさまだ!)도 타테카베 스스로가 작사 한 것이다. 스탭에게 「여기는 타테카베씨가 생각하고, 적당하게 노래를 불러 주세요」라고 말하자 어쩔 수 없이 애드립으로 노래한 것이 최초라고 한다.
2003년 2월 18일에 「타모리의 굿 잡! 가슴 펴 이 일」(タモリのグッジョブ!胸張ってこの仕事)의 스튜디오에 출연, 쟈이안의 소리로 아무로 레이의 더빙을 했을 때, 아무로 레이의 아버지에게도 맞은 적이 없는데!(親父にもぶたれたことないのに!)를 '''엄마에게도 맞은 적이 없는데!(母ちゃんにもぶたれたことないのに!)'''라고 애드립으로 대사를 바꾸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쟈이안을 그만둔 뒤로도 「네가 주인이고 집사가 나」(君が主で執事が俺で)나 리메이크판 얏타맨등에서 쟈이안의 패러디(혹은 모델로 한 캐릭터)를 실시하는 것도 많다.
여담으로 생전에는 비실이 성우인 키모츠키 카네타와 50년 가까이 친구였다. 도라에몽 TV 방송 25주년 특집 인터뷰에서는, '그는 극단을 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을 키우고 있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격도 삶의 방법도 전혀 다른데 나는 그를 존경하고 있다. 인정해 버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몇 사람도 없는 친한 친구의 하나네요' 라고 말한다.
한신 타이거즈의 열혈팬으로, 특히 후지무라 후미오의 팬이라고 한다. 데일리 스포츠(デイリースポーツ) 잡지를 빠뜨리지 않고 애독했다. 또 성우의 대우 개선에 열심이라서, 동료 성우들과 조합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 파업을 실행한 일도 있다. 그 외 결혼식의 사회 역할에도 정평이 있다고 알려진다.

3. 작품 목록



[1] 이전에는 오피스앙이라는 사무소를 일으켜 사장직과 성우를 겸무하고 있었지만, 1984년 흡수된다.[2] 도라에몽, 노비타, 시즈카, 스네오를 맡은 성우들[3] 츠나시 요우타를 괴롭혔던 3인의 불량배 중 한 명.[4] 해당 작품이 고인의 유작이 되었다.[5] 2대는 와카모토 노리오[6]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