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게게의 키타로

 

'''게게게의 키타로
ゲゲゲの鬼太郎
'''
'''작품 정보'''
'''장르'''
호러, 요괴
'''작가'''
미즈키 시게루
'''묘지 키타로'''
'''출판사'''
[image] 토게츠 쇼보 etc
[image] 미발매
'''연재 기간'''
1960년 ~ 1964년
'''게게게의 기타로'''
'''출판사'''
[image] 카도카와, 코단샤 etc
[image] AK 커뮤니케이션즈
'''연재처'''
주간 소년 매거진
주간 소년 선데이
'''레이블'''
[image] 소년 매거진 코믹스 etc
[image] AK 코믹스
'''연재 기간'''
1965년 ~ 1997년
'''단행본 권수'''
[image] 일본 위키백과 참고 (完)[1]
[image] 7권 (2010. 05. 09. 完)
'''애니메이션 시리즈'''
'''시리즈 시작'''
1968년 1월 3일[2]
('''시리즈 시작부터 56년째''')
1. 개요
2. 특징
3. 연재 이력
5. 수상
6. 미디어 믹스
7. 기타
8.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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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즈키 시게루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장수 애니메이션.[3]
요괴만화의 고전으로 현존하는 모든 일본 요괴를 다룬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원조이자 '''일본 요괴만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의 일본 요괴물에서 미즈키 시게루와 이 만화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오늘날의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요괴의 이미지는, 이 작품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4] 세대를 초월한 '''일본의 국민 만화 중 하나'''로 오랜 시간에 걸쳐 애니메이션화 되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2. 특징


원작 만화는 다양한 연재처와 출판사에서 나와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시리즈마다 작풍도 다르고 설정도 통일되지 않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연재 이력 문단을 참고.
애니메이션도 1기의 후속작인 2기를 제외하면 매번 시리즈마다 새로운 설정으로 그려진다. 오래된 작품이라 원래는 명랑만화급의 그림체였으나 후속작이 나올수록 시대의 취향에 맞게 그림체가 변화, 최신작인 5, 6기에서는 히로인네코무스메모에화되는 등 현대풍으로 바뀌었다. 키타로도 한쪽 눈이 기형적으로 큰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 수준으로 변경. 아래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캐릭터별 그림체 변화다.
[image]
위에서부터 네코무스메, 유키온나, 자시키와라시, 마녀, 키타로. 5기작의 자시키와라시는 남성 버전도 존재한다. 해당 사진에 나온 다른 캐릭터들이 전부 적절한 현대풍으로 변했는데 자시키와라시는 유일하게 원작에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온 모습이다.
사실 원작 만화인 연재판 '게게게의 키타로' 그림체는 미즈키 시게루가 '테레비군'으로 잡지에 데뷔할 당시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그림체로 변경한 것으로, '묘지의 키타로' 원작 만화와 '악마군' 만화판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원래 그림체는 미국 코믹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극화체에 가까웠다.
게게게는 작가 자신이 어렸을 적 이름을 시게루가 아닌 게게루로 잘못 불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후문이 있다.

3. 연재 이력


사실 원래는 만화가 아니라 그림연극 작품인 묘지의 키타로가 원조이며, 만화 잡지가 생기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초기에는 대본소에서 유통되는 만화였다. 소년지에 연재를 시작하고 묘지의 키타로가 애니메이션화 되면서 '묘지'라는 단어가 어린아이에게 부적절한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게게게로 바뀌었다. 작풍도 정통 호러만화에서 소년만화 색채가 강해졌고, 애니메이션 역시 아동용 애니 시리즈가 되었다.[5]
1950년대 중기, 미즈키 시게루는 그림 연극 회사의 사장의 권유로 1930년대 후기에 발표된 '하카바 키타로'를 소재로 몇몇 그림 연극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몇년이 지나 대본소 만화가로 전향한 1960년엔 한 서점의 만화 잡지에 '유령 일가'를 발표했다. 해당 잡지 제2호에는 '유령 일가 묘지의 키타로'가 게재되었으나 반응이 호응적이지 않은 관계로 해당 잡지는 폐간되었다. 그러나 이에 항의하는 독자들이 팬레터를 보내면서 묘지의 키타로 만화의 발표는 지속되었고, 이 작품들 중 한 작품에서 생쥐인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경영난으로 인해 사측에서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자 미즈키 시게루는 다른 출판사로 이적해 '키타로 야화'를 발표하였다.
시간이 지난 1965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처음으로 묘지의 키타로가 게재되었는데 당시 데즈카 오사무의 W3 연재 중단과 소년 선데이와의 경쟁으로 인하여 밀리던 소년 매거진을 부흥하기 위해 편집장 우치다 마사루가 미즈키 시게루를 주목해 연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부정기적 게재와 동시에 괴기한 내용으로 별다른 호응이 보이지 않자 얼마 못가 연재 중단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늦여름에 몇몇 독자들이 엽서를 만들어 출판사 측에 전달하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편집장 우치다 마사루의 한 저서에는, 키타로가 독자 투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하자 인기를 올리기 위해 애니메이션화 시도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의 친구인 토에이의 전무 이사 TV 사업부장에게 상담하자 '제목이 무덤이라면 조금...... 스폰서가 붙지 않을것 같으니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로 가봅시다'로 설득했다고 한다. 대신 그의 다른 작품 <악마군>이 TV 연속 드라마화 된다.
악마군이 성공을 거두어 미즈키 시게루가 인기 만화가로 자리잡자, 1967년부턴 정기 연재로 전환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색채를 소년만화스럽게 바꾸었다. 만화에서 요괴란 단어도 이 시점부터 빈번하게 나타나며, 대본소 만화가 시절 그린 작품을 리메이크한 만화 중 하나인 '요괴대전쟁'에선 스나카베바바와 코나키지지, 잇탄모메, 누리카베가 등장하게 된다. 주독자층인 소년에게 눈높이를 맞춰서 주인공 키타로가 슈퍼맨같은 히어로가 되어 각종 요괴와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그려달라고 편집부가 주문했다고 한다. 미즈키 시게루는 그런 돈 한 푼도 안 받고 영웅적인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서 싫었지만, 잡지에 연재해서 돈을 벌고 생활을 위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런 식의 스토리를 그렸다. 그리고 그런 키타로와는 대비되는 인간의 현실적인 간사함과 돈을 밝히는 속물적인 면을 보여주는 네즈미오토코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이에 같은 해 주간 소년 매거진 11월호에서부터 제목을 게게게의 기타로로 바꾸었고, 애니메이션화에 따라 여러 잡지에 연재가 진행되기도 했다. 가로에선 키타로의 탄생을 게재한 후에 키타로 야화를 연재했는데, 두 작품 모두 대본소 시절 그린 만화를 일부 내용과 디자인을 바꾸어 새롭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월간 보석에선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키타로 베트남 전기를 연재해, 베트콩 편에 선 키타로 일행과 요괴들이 미군과 싸우는 전개가 진행된다. 1969년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를 종료했으나 이듬해 별책 소년 매거진 7월호에 '그 후의 게게게의 키타로'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후 1974년에 발간된 사신대전기가 이 버전의 후속편이며, 키타로가 지옥에서 요괴들과 싸우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만화가 인기작으로 자리잡으며 두번째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됨에 따라 주간 소년 선데이에도 연재가 진행되었고, 소학관의 학습 잡지를 포함해 여러 잡지들에 연재하였다. 각각 단행본마다 결말에도 세세한 차이가 있어서, 소년 선데이판의 최종화에선 키타로가 야칸즈루에 삼켜져 7년간 나오지 못한다는 결말이 나온다. 이외로 1973년에 단편으로 '키타로와 생쥐인간'을 연재하기도 했고, 1976년 후타바사에서 키타로 일행이 세계의 요괴를 상대하는 '키타로의 세계 오바케 여행'를 연재하기도 했다. 1977년부터 이듬해까지 주간 실화에서 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주간 실화 편집자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키타로를 청년만화 잡지에 연재하는 것은 불안할 것 같았는데 당시의 미즈키 시게루 팬들 중에선 대학생이나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도 많았고, 독자도 분명이 알아주는 것 같다는 의견을 감안해 키타로가 성인의 세계에서 활약하게 됐다고. 이 연재판은 총 3편으로 나뉘는데, 1편에선 키타로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줄거리가 나온다.
1980년엔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단편 만화 '대포라 키타로'가 게재되고, 같은 해 '유키히메와 게게게의 키타로'가 소년화보사에서 연재가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유키히메가 주역인 작품으로, 여기서 유키히메는 키타로의 여동생으로 나와 키타로를 구조해주기도 하나 연재지가 폐간됨으로 인해 중도에 막을 내렸다. 1985년 3기가 방송되기 시작한 후 코믹 봉봉에서 연재된 '최신판 게게게의 키타로'에선 누라리횬 일당과 키타로 일행이 대립하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이 만화는 미즈키 시게루 본인이 아니라 미즈키 프로에서 작화를 담당했으며, 일본 위키에 의하면 21화부터 단행본으로 발행이 중단되어 현재는 절판되어 있다고 한다. 동시기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키타로가 매번 새 요괴와 싸우는 줄거리의 '신편 게게게의 키타로'가 연재된 바 있었다.[6] 얼마 뒤 월간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한 '게게게의 키타로 키타로 지옥편'에선 키타로 일행이 지옥으로 여행을 하며, 키타로의 엄마와 생쥐인간의 일족들이 묘사되기도 한다.
1990년에 코믹 봉봉에서 '키타로 국도리 이야기'를 연재해 2년 후 디럭스 봉봉으로 연재지를 옮겼다. 해당 만화판에선 키타로 일행이 지하에 위치한 뮤 제국과 싸우는 줄거리가 진행되어 권선징악적인 스토리텔링이 표현되지만 당시 버블경제 시기 일본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장면들도 있다. 동시기 테레비 매거진에서 연재되기도 했었고, 1996년 4기 애니메이션화로 같은해 소학관의 빅 골드에서 키타로 유키무라를 연재하나 캐릭터 저작권 침해 문제로 인해 1회 연재에 그쳤다.

4. 등장인물




5. 수상





6. 미디어 믹스



6.1. 애니메이션


1966년, 토에이가 같은 작가의 작품인 악마군을 실사화하게 되면서 토에이 동화(토에이 애니메이션)는 묘지의 키타로를 자본 계열이 같은 NET[7] 계열 방송국으로 애니메이션을 기획하였다. 하지만 "무덤"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하기 꺼려했었던 스폰서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방송 계획은 후지 테레비로 옮겨졌고, 처음엔 원제 그대로 '묘지의 키타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스폰서는 "무덤"을 제목에 싣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으며, 최종적으론 원작의 제목을 바꾼다는 당시로썬 드문 결정을 하였다. 작가의 자전적 만화인 "나는 웃음소리"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게게게의 기타로"는 어때요?"고 제안했다고 한다.[8] 결국 원작의 제목은 애니메이션화 직전에 '게게게의 기타로'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오프닝 테마와 일부의 엔딩 테마는 "묘지"라는 가사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작품의 제목만 문제가 된 듯.
2008년 전 11화로 제작된 묘지의 키타로도 있는데 게게게의 키타로 연재 전의 작품을 영상화한 거라 '''키타로가 악당 짓'''을 하거나 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일본에서는 시청률도 잘 나오고 DVD도 잘 팔렸다. 성우부터 초대 성우들로 깔아놨으니... 한국에서는 한때 까이는 분위기였으나 현재에는 기존 키타로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에 호평하는 분위기이다.
2017년엔 요괴워치 극장판 섀도사이드 도깨비왕의 부활과 콜라보되기도 했다.
  • 1기 (1968)
대체적으로 저연령층 시선에 맞게 원작의 그로테스크함, 사회풍자적, 야설적 내용이 삭제 및 순화되었으며, 1960년대 당시의 일본 요괴 붐의 원동력을 일으켰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음악감독은 이즈미 타쿠가 맡았으며 가수는 그와 친분이 있던 쿠마쿠라 카즈오가 주제가를 불렀고, 주제가 레코드는 3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또한 일본의 레전드 성우로 꼽히는 노자와 마사코가 처음으로 주인공 역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자막과 로고 표시, 나레이터가 매번마다 다른 것도 2기와 더불어 이 시리즈의 특징으로 꼽힌다. 80년대에 재방송되었을 땐 '이 프로그램은 흑백으로 보내드립니다'로 자막을 첨부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21일, 토에이 만화 축제에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요술공주 샐리, 울트라 세븐과 동시상영으로 극장판이 공개되었다. 21화, 22화는 나중에 3기 67화, 68화로 리메이크된다.[9]
  • 2기 (1971)
다른 시리즈가 별개의 세계관인데 비해 유일하게 1기 이후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전작의 속편임을 유지하는 분위기인만큼 리메이크 에피소드가 없었고, 전체 에피소드가 컬러 애니로 방송되었다. 보통의 권선징악적인 결말의 에피소드와 다르게 중반부 들면서 키타로가 도움에 처한 사람을 방관해버리거나 구원을 하지 못한 에피소드도 나왔으며, 이런 배경엔 당시 게게게의 키타로가 아닌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들을 함께 채용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네코무스메의 장기 출현이 확정된 시리즈.
  • 3기 (1985)

  • 4기 (1996)

  • 5기 (2007)

  • 묘지의 키타로 (2008)

  • 6기 (2018)


6.1.1. 주제가


1기 오프닝과 6기 오프닝을 비교해보면 50년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비교해볼 수 있다. 격세지감.

6.1.1.1. 1기


전설의 시작인 1기 오프닝 게게게의 키타로. 원작자 미즈키 시게루가 작사한 키타로의 상징과도 같은 곡으로 매 시리즈마다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오프닝으로 삼는 전통이 있다. 어떤 오프닝이든 서로의 싱크로율이 거의 일치해 다른 영상에다가 갖다 붙여도 별 위화감이 없다. 3기나 4기의 오프닝을 6기 장면에 갖다 붙인 결과 아주 살짝 빠른 것만 제외하면 거의 일치하는 싱크로율을 보여주었을 정도. 그리고 어째서인지 3기 오프닝을 제외한 모든 오프닝의 첫 소절이 나올 때 개구리가 나온다.

원곡 가수 쿠마쿠라 카즈오의 2014년 라이브. 당시 87세였는데도 불구하고 당대와 같은 곡을 들려주었다. 2015년 10월 12일에 작고했다.

1기 엔딩. 키타로 애니메이션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엔딩곡인 '카랑코롱의 노래'. 한국어로 번역하면 대략 '딸그락딸그락 노래' 정도 된다. 가수는 카토 미도리(加藤みどり)와 미스즈 아동합창단이 맡았다.

6.1.1.2. 2기


2기 오프닝, 엔딩

6.1.1.3. 3기

게게게의 키타로(애니메이션 3기) 문서 참고.

6.1.1.4. 4기

게게게의 키타로(애니메이션 4기) 문서 참고.

6.1.1.5. 5기

게게게의 키타로(애니메이션 5기) 문서 참고.

6.1.1.6. 묘지의 키타로

묘지의 키타로 문서 참고.

6.1.1.7. 6기

게게게의 키타로(애니메이션 6기) 문서 참고.

6.2. 게임




7. 기타


  • 일본을 대표하는 요괴 만화다. 2020년 일본인 11,761명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요괴 애니메이션 인기 랭킹에서는 압도적인 1위(4,085표)를 기록했다. 2위는 요괴워치(890표).# 2019년에는 진정한 국민 만화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위는 드래곤볼, 2위는 도라에몽.#
  • 작가의 고향인 사카이미나토시에는 게게게의 키타로의 캐릭터들을 활용한 관광지 미즈키 시게루 로드(水木しげるロード)가 있다. 돗토리현 최고 인기의 관광지라고 불릴정도.# 요괴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카이미나토시 지역은 인구 감소와 더불어 오랜 불황으로 상권이 점점 줄어가고 있었는데,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공무원의 제안으로 미즈키 시게루가 만든 게게게의 키타로 캐릭터를 적극 활용해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그래서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인 사카이미나토시는 그의 창작물들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 곳은 매년 평균 25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2019년 한 해에만 관광객 300만명 돌파[10]#, 누계 4,000만명을 돌파했다. 사실상 사카이미나토시와 돗토리현을 살리고 있는 효자 관광지라고 봐도 될 정도다.
  • 원작 중에서는 한국 요괴에 관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애니메이션 게게게의 키타로 3기작 66화에 한국이 등장하지만 한국에서 공존의 시작 방영 때는 방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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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소년이 도라지, 분홍색 한복을 입은 소녀가 도라지의 누나, 녹색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둘의 어머니이다.[11] 요괴 이름은 아리랑.[12] 또 조역 중 한 명은 얼굴이 하회탈이다. 미즈키 시게루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요괴에 관심이 깊어 요괴대백과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한국 요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몇 번씩 방문해 시골에서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기록했다고 한다.
  • 매 시즌마다 기존 시리즈의 설정이 많이 바뀌는데, 원래 키타로 시리즈 자체가 그때 그때 방영한 시대에 따라 자잘한 변경점이 있는 편이다. 거의 각 시리즈마다 별개의 세계관으로 봐도 될 정도.. . 그런 키타로 시리즈지만 유일하게 눈알 아버지 성우는 타노나카 이사무가 전담으로 했다. 허나 타노나카 이사무가 2010년 1월 13일 작고했기에 추후 눈알 아버지의 성우가 누가 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6번째 시리즈에서 상술한 대로 1대, 2대 키타로 역을 맡았던 노자와 마사코로 교체됐다.
  • 07년에 애니 방영에 맞춰 실사판 영화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소지섭이 출연한 것으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5기가 투니버스를 통해 2008년 5월부터 '요괴인간 타요마'라는 제목으로 정식 방영되면서 제법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타요마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우주인 타로나 닌자보이 란타로의 아류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내부에서도 또 타로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그런 제목이 되었다고 한다. 3기 또한 2011년에 '공존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일부 에피소드가 따로 방영되었다. 이쪽은 자막판에 제목은 '타요마' 그대로, 더빙도 되었다. 밤 12시를 넘긴 한밤중에 하기 때문에 나름 어울리는 방영시간일지도 모른다.
  • 추억의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6기는 더빙 방영되지 않고 방영권을 애니플러스에서 가져갔다.요괴명 번역은 일반적으로 원어 발음을 그대로 가져오는 식이지만 직역이 쉬운 요괴명은 직역하는 식. (예 - 모래 할멈, 요화)
  • 부천만화축제에서 만화 왕국 돗토리현 홍보에서 이 만화를 홍보하기도 했다. SICAF때도 인형탈 등으로 홍보도 했는데, 이때 인형탈을 쓰는 분들은 일본에서 오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고 한다.
  • 페르소나 3주인공이 본 작품의 주인공 키타로와 헤어스타일이 유사해서 페르소나 3를 클리어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키타로 애니판을 보면 순간적으로 '어, 어어?!!'하고 잔뜩 놀라기도 한다고.
  • 미국 애니인 대니 팬텀과 굉장히 흡사하며 둘다 악귀를 무찌르는 히어로란 점이 비교해보면 뭔가 닮았단 것을 느낄 수 있으며 히어로 활동 목적이 매우 흡사하다. 셈 : 네코무스메, 터커 : 네즈미오토코, 누라리횬 : 블라드, 대니의 부모님 : 스나가케바바, 코나키지지, 재즈: 잇탄모멘.

8. 바깥 고리



[1] 출판사가 상당히 많아 단행본 수가 제각각이다.[2] 게게게의 키타로 1기[3]연대마다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다. 1기(1960년대), 2기(1970년대), 3기(1980년대), 4기(1990년대), 5기(2000년대), 6기(2010년대)[4] 미즈키 시게루의 최대 업적은 20세기 들어와 멸종할 뻔했던 일본 요괴를 현대에 되살린 것이다.#[5] 일본에서는 만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온 가족이 본다'라는 느낌으로 수위를 만화처럼 높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6] 이 만화판에서 나온 레귤러 요괴 캐릭터 중 하나인 시사는 나중에 애니메이션에서 레귤러 캐릭터로 출연하는 등 비중이 올라가게 된다.[7]TV 아사히, net이란 명칭은 PBS의 과거 이름이기도 하다.[8] 이와 반대로 코믹스판에 게재된 경위는 작가가 그림 연극, 대본 만화 시대를 거쳐 정착시켜 소년 매거진에 연재한 묘지의 키타로를 애니메이션화 할시의 스폰서에서 요청도 있어 당시의 소년 매거진 편집장 우치다 마사루의 제안에 따라 '게게게의 키타로'로 변경했다고 적혀 있다.[9] 여담으로 리메이크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연구원 야마다의 성우는 후루야 토오루.[10] 과거에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관광객 300만명을 달성 한 것은 아사도라 '게게게의 여보'가 방영 된 2010년과 이듬해 2011년이다. 리뉴얼이 호평을 받으며 관광객이 늘어난것으로 보인다.[11] 애니메이션으로 1기작에선 그 당시 일본과 한국이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래서인지 한국이 아닌 오키나와로 변경되어 등장한다.[12] [image] 미륵 보살 입상의 모습으로 마법이 담긴 아리랑으로 매료시켜 아리랑 합창을 하게 한 후, 젊음을 빼앗아간다고 한다. 도라지도 그 희생자들 중 하나. 그러나 이 요괴의 정체는 알고보니 일본 요괴 눗페라보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