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일본 관계
1. 개요
터키와 일본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서. 일본과 터키는 19세기말에 관계를 맺었다. 대체로 일본과 터키는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라서 일본 내의 쿠르드족 커뮤니티를 두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일본이 개항하면서 서구 열강들이 일본과 수교를 맺기 시작하면서 오스만 제국 역시 일본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은 서구 열강들과 러시아를 견제할 우군, 상품을 팔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주목했다.
터키와 일본의 첫 접촉은 1873년 이와쿠라 도모미가 이끄는 이와쿠라 사절단이 유럽을 방문했을때 이와쿠라 사절단에 속해 있던 후쿠치 오우치와 정토진종 승려 시마지 모쿠라이가 오스만 제국을 공식 방문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1876년 일본 외교관 나카이 히로시가 이스탄불을 방문했고 1878년에는 일본 해군의 세이키(清輝)호가 이스탄불을 공식 방문함에 따라 오스만 제국과 일본은 무역 협정 체결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본은 타 유럽 열강들과 달리 오스만 제국에는 일본이 불리한 불평등 조약 대신 오스만 제국과 동등한 특권을 요구함에 따라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술탄 압뒬하미트 2세와 메이지 덴노는 우호 서신과 선물을 주고 받았으며 1887년 일본 황실의 고마츠노미야 아키히토 친왕 부부가 이스탄불을 방문해 1878년 압뒬하미트 2세가 일본 해군 장병들에게 수여한 훈장의 답례로 압뒬하미트 2세에게 훈장을 수여하자 오스만 제국은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결정, 1890년 6월 7일에 600여명의 오스만 제국 사절단과 해군 장병들이 탄 대형 군함 에르투으룰(Ertuğrul)호가 요코하마항에 도착한다.
오스만 제국 사절단은 메이지 덴노를 알현해 훈장을 수여했고 일본 정계 인사들및 황실과 교류하며 상당한 환대를 받았다. 3개월간 일본에 머물던 에르투으룰호가 귀로하던 길에 폭풍을 만나 와카야마현 근해에서 침몰하자 조난지 근처 마을 주민들은 의료진이 도착할때까지 비축했던 비상 식량까지 써가며 부상자들을 보살피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일본에서 해군 구조에 크게 기여(그래도 656명 승무원 가운데 생존자는 겨우 69명)하여 현지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을 비롯하여 일본에서는 유족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이 진행됐다. 부상자들은 일본의 공고, 히에이 두 군함으로 이스탄불로 귀횐했다. 이 일로 일본과 형제 국가 이야기가 나오던 바 있다. 에르투으룰 호가 일본에서 침몰한 것을 계기로 오스만 제국과 일본 간의 우호적인 감정은 더욱 높아졌다.
성금을 모금한 일본 기업인 야마다 토라지로(山田 寅次郎)는 언론인 노다 쇼타로와 함께 1892년 이스탄불로 가 압뒬하미트 2세를 알현했고 이슬람교로 개종, 압뒬 할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압뒬하미트 2세로부터 사관학교에서 일본어 교육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야마다 토라지로는 명예 영사로서 일본어 교육을 맡음과 동시에 1914년까지 이스탄불의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 근처에 나카무라 상점이라는 가게를 차려 일본 상품들을 팔았고 일본에 오스만 제국 전반을 소개하는 토루코 화관(土耳古画観)이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이때 일본어 강습을 받은 사람들 중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전 소식이 오스만 제국 내에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은 러시아 함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야마다 토라지로와 일본인 수십명을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다 보이는 이스탄불 한복판의 갈라타 탑에 보내 해협을 통과하는 러시아 해군 함정들을 감시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러일전쟁 기간 동안 봉천 전투, 뤼순 공방전에 영관급 장교를 파견해 전선을 참관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를 자극할까봐 공식적으로 중립을 지켰지만 19세기 이후 러시아에 시달려 왔던 오스만 제국 국민들은 일본의 승전에 크게 열광했다. 심지어 오스만 제국의 소설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할리데 에딥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도고 헤이하치로에서 따 와 '토고(Togo)'라고 지었을 정도. 압뒬하미트 2세의 반동 정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청년 장교층에서는 전제 군주제 국가인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패했다며 일본을 배우자는 말들이 나왔고 1908년 청년 튀르크당의 봉기로 압뒬하미트 2세가 폐위되고 1878년 압뒬하미트 2세의 반동 정치로 폐지됐던 헌법, 의회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2.2. 20세기
하지만 이러한 우호관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로 다른 진영에 들어가면서 시들시들해졌고, 공화국 수립 이후로는 터키의 외교관계가 유럽과 미국 정도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다.
1985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은 이란 상공에서 운항하는 항공기들을 적으로 간주, 무차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이란에 있던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는데 이란을 탈출할 항공편이 없던 이란 주재 일본인 215명이 테헤란 공항에 고립되었다. 타국 항공사들은 자국민을 수송하기에도 빠듯했고 JAL은 자사 승무원의 안전을 이유로 운항을 거부, 헌법9조 때문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터키가 일본을 돕겠다고 나섰다. 터키는 95년 전 에르투으룰호 조난 당시의 은혜를 갚겠다며 일본인 구출을 위해 특별기를 테헤란으로 보냈고, 그 덕분에 일본인 215명이 탄 터키 항공 여객기 두대는 격추 발효 시점 15분 전 공항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 5백여명의 터키인들도 있었는데 터키 항공이 자국민들보다 먼저 일본인들을 먼저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에르투으룰호 조난 사건 당시의 미담을 잘 알고 있던 터키인들은 이 결정을 비난하지 않고 군말없이 육로를 통해 이란을 탈출했다.
2.3. 21세기
1890년과 1985년에 있었던 두 미담을 고리로 일본과 터키 양 국가간 국민감정이 매우 좋은 편이다. 2015년에는 일본 터키 우호 125주년을 기념해 두 미담을 주제로 한 일본 터키 합작 영화인 해난 1890[1] 이 개봉했다.
2015년 나리타 국제공항에 1985년 당시를 재현한 터키항공의 특별기가 도착해 기념행사를 가졌다. 에르투으룰호 조난 당시 터키 승무원들을 구조했던 와카야마현 구시모토정 주민들을 기려 KUSHIMOTO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사 그리고 일본정부는 1985년 일본인들을 구출한 터키 항공 기장과 승무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이런 미담들 때문에 일본에서는 터키를 굉장한 친일 국가로 생각하며 넷상에서 터키를 추켜세우는 반응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터키는 달을 찾아 서쪽으로 간 겨례, 일본은 태양을 찾아 동쪽으로 간 겨례라는 등 낯뜨거운 찬사가 달린다든가. 범투란주의자들이 일본도 튀르크 형제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식 환빠들도 터키는 일본의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보인다. 때문에 한국에서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는 소리가 나오자 '''"터키는 친일국가인데 한국 따위와 무슨 형제냐?"'''라는 뜨악해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근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볼 수 있는데 평소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으로 알려져 있다가 터키랑 일본이 친하다는것이 알려지면 뜨악하는 반응을 한국 넷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터키에서 각종 수주전이 펼져질 때 일본 업체 대신 한국 업체의 손을 들어주거나 하는 사례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넷 우익들의 이슬람공포증적인 댓글들로 도배된다.
일본 정부가 터키와 경제연대협정협상을 본격화해 6월에 합의할 목표라고 닛케이가 2019년 3월 5일에 보도했다.#
3. 문화 교류
문화적으로는 터키 문화가 일본에서도 알려진 경우도 많은 편이다. 일본에서도 터키어를 학습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고,[2] 일본내에서도 터키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터키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은 의외로 역사가 깊고 일부는 러시아 제국, 소련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간 타타르족, 바시키르인 등도 포함되어 있었고 일본내에도 소수지만, 타타르인 공동체와 바시키르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또한 위구르족도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오는 사례도 있었고, 공동체도 있는 편이다. 러시아, 소련에서 건너온 투르크계 민족들도 터키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본에서도 터키 드라마인 위대한 세기가 방영되었다. 그리고 일본 애니는 터키에서도 방영되고 있어 인기를 몰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휴렘 술탄을 소제로 쓴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이란 만화가 일본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트리니티 블러드에 나오는 진인류제국은 오스만 제국을 모티브로 삼았다.
일본에도 터키와의 문화 교류를 위한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도쿄에는 주 일본 터키 대사관 소속의 도쿄 자미라는 터키 정부의 지원으로 세워진 모스크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과 교류가 많아서 튀르크학, 인도학, 슬라브학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편이고 자료도 풍부한 편이다. #
그리고 톱카프 궁전에도 중국제 도자기외에도 일본제 청화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19세기에 일본은 오스만 제국에다가 차 종자와 모종, 재배법을 전수해주고 오늘날 터키인들의 주류 음료수를 터키 커피에서 홍차로 갈아타게 하는데 기여했다.
일본내에도 터키와 일본간의 교류를 위한 단체들이 일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일본 터키 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이슬람권과의 교류쪽에선 대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일본에 정착한 튀르크족들의 영향으로 터키와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특히, 전술했다시피 도쿄 자미와 고베 모스크는 19세기부터 일본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들이 세웠다. 그 외에도 아랍권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4. 대사관
주 일본 터키 대사관이 도쿄에 위치해 있고 주 터키 일본 대사관은 앙카라에 위치해 있다.
5. 관련 문서
- 터키/외교
- 일본/외교
- 도쿄 자미
- 주 일본 터키 대사관
- 터키/경제
- 일본/경제
- 터키인 / 일본인
- 터키어 / 일본어
- 위구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