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밤

 



1. 개요
2. 사건 과정
2.1. 발단
2.2. 원인
2.3. 6월 27일, 그 이후
3. 의의
4. 이야깃거리


1. 개요


"다른 사람의 손에서는 이건 그저 마이크에 불과하지만, 손에 들리면 이건 파이프 폭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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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RAW

'''CM Punk's 'Pipe Bomb' Promo'''
2011년 CM 펑크가 주도했던 WWE 각본으로 '''당시 전세계 프로레슬링 업계를 강타'''할 정도로 대히트를 친 사건.
파이프 폭탄을 의미하는 pipe bomb에서 유래했으며 과거 ROH 시절인 2005년 6월 18일에 "마이크가 나처럼 위험한 사람 손에 들어가면 파이프밤이 된다"라고 연설한 것을 2011년 7월 11일 WWE RAW에서 그대로 재인용하면서 퍼지게 된 용어다.
보통 파이프밤하면 2가지를 가리키는데, 하나는 2011년 6월 27일부터 7월 17일 머니 인 더 뱅크에 이르는 스토리라인까지 CM 펑크가 했던 세그먼트들을 모두 부르는 명칭이며, 혹은 11년 6월 27일에 CM 펑크가 진행한 세그먼트(위의 동영상) 하나만을 두고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11년 6월 27일 세그먼트'''에 대한 사항을 주로 다룬다.

2. 사건 과정



2.1. 발단


자세한 사항은 링크[1] 참조.
당시 WWE 챔피언존 시나였으며, 다음 PPV였던 머니 인 더 뱅크에서 그의 타이틀에 도전할 도전자가 CM 펑크로 정해졌으며, 마침 CM 펑크가 WWE와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아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승리하고 벨트를 들고 이 회사를 뜨겠다는 세그먼트를 한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패턴의 각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인 6월 27일 RAW는 존 시나알 트루스의 테이블 매치 메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여기서 위의 동영상이 시작된다.
CM 펑크는 존 시나를 방해해 알 트루스가 경기에서 승리한다. 그 뒤 펑크는 별안간 엔트런스에 앉아 마이크를 잡더니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가 내뱉은 말들은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펑크 스스로가 자존심이 엄청난지라 그동안 받은 푸대접의 원인을 지목하면서 WWE의 오너였던 빈스 맥마흔, 트리플 H 등 당시 WWE의 수뇌부와 각본진을 모조리 잘근잘근 씹어버렸고 경쟁 관계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 ROH등을 언급하는데다[2] 심지어 그런 WWE를 좋으니까 계속 남아달라고 자기 티셔츠를 사주는 관객들까지 모조리 개돼지라고 까버리질 않나, 제4의 벽을 언급하며 실제라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내뱉는 등,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현실적이고 충격적인 마이크웤이었다. 심지어, 이 마이크웤의 결말은 CM 펑크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빈스 맥맨의 사적인 부분을 까도록 하자'라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와중에 마이크 전원이 내려가면서 RAW가 끝이 나버리는 것이었다.[3] 또한, CM 펑크는 무기한 정직 처분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게 된다.
여담으로,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분명히 존 시나의 반대쪽이었으니 각본상 악역인 CM 펑크였지만, 선역이나 할법한 수준의 회사 디스를 보여주더니 관객을 디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서 보통 일관적인 마이크웍을 보여주던 선수들에게 반응하던 관객들이 어찌할바를 몰라 환호와 야유가 섞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당시 엄청난 사건이 터졌음에도 예상치도 못한 돌발상황에 당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2.2. 원인


우선, 이 세그먼트전에 각본진은 CM 펑크에게 대본이나 가이드 라인 같은 거 없이 자유롭게 마이크웍을 하라고 지시했다고한다. 대사 하나하나 엄격하게 내용이 정해져 있는 WWE의 세그먼트 특성상 매우 파격적인 지시라고 할 수 있다. 즉, 판을 벌려준건 WWE측이 맞지만, 마이크웍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펑크의 애드립이었고 그걸 토대로 분석해보면 이미 회사에 어느정도 불만이 있던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위의 요약 링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CM 펑크는 이 사건 이전까지, ECW의 평범한 미드카더에서 머니 인 더 뱅크 캐싱인 이후 두 차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면서 준 메인이벤터까지는 성장했지만, 본인의 상품 판매 실적이나 현장 반응 등 WWE에서 주목받는 메인이벤터급 선수임에도 다른 메인이벤터들이 밟고 올라가는 희생양 노릇만 하며 '''PPV 14연패라는''' 그야말로 푸대접을 받고 있었고 이를 두고 CM 펑크의 흑역사라고 정의내려도 무방할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걷고 있었다.[4] 이정도면 거의 "너 나간다며? 니가 나가봐야 갈데 뻔하지. 나가는 김에 할 말 있으면 하고 가던지." 뭐 이런 퇴직 기념 선물 정도 쥐어준 것.
애초에 CM 펑크가 2014년에 실제 WWE 탈단 이후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도 대부분의 팬덤은 이 사건에 대해 '당시에 CM 펑크가 내뱉은 말들은 예정된 것이 아닌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었는데, 뜬금없이 존 시나와의 대립을 준비중인 더 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든가 대립과는 아무 상관도 없던 빈스 맥마흔과 그 일가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까내리는 말을 하는 부분들이 그 근거였다.

2.3. 6월 27일, 그 이후



종합해보면, CM 펑크의 파이프밤 세그먼트는 펑크의 즉흥적인 세그먼트였고, 일종의 이었다. 하지만, 이후 WWE의 각본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파이프밤 세그먼트가 즉흥적인 세그먼트였다고 할 경우 이 대립 자체는 파이프밤 이후 다음주 RAW까지 '''1주일만에 만들어진 각본'''이다. 나쁘게 말하면 쪽대본인 이 각본은, 약 3주간 기존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기 시작한다.[5][6]
우선 존 시나가 CM 펑크의 정직 처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펑크의 복직을 요구한다. 빈스는 존 시나가 펑크와 대결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시나는 애초에 그런 캐릭터가 아닌 도전이 오면 정정당당하게 받아주는 절대선역 캐릭터였고 결국 빈스는 시나가 패배할 경우 시나를 해고해버리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시나와 펑크의 대결을 막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빈스는 CM 펑크와의 계약을 연장하려 한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악덕사장의 모습이 아닌 약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펑크는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타이틀전을 맞이하게 된다.[7] 결국 회사를 비판하고 챔피언 타이틀을 들고 회사를 떠나려는 CM 펑크, 그런 CM 펑크의 타이틀 매치 자체를 막으려는, 혹은 타이틀을 얻지 못하게 방해 하려고 하는 오너 빈스 맥마흔, 그리고 타이틀을 보유한 챔피언으로서 도전자와 정당한 대결을 하기 원하는 정정당당의 아이콘 존 시나까지 3인의 대립으로 진행이 된다.
마침 머니 인 더 뱅크가 열리는 장소는 CM 펑크의 고향인 시카고였다. 2006년 해머스타인 블룸의 악몽정도야 아니겠지만, 존 시나는 단체 탑 가이로 상상할 수 없는 야유를 들어먹고 CM 펑크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홈팬들의 압도적인 환호 속에서 존 시나와 경기를 가지게 된다. 경기 후반, 빈스가 스크류잡을 시도하려 하지만 존 시나가 이를 막고 빈스에게 이 경기를 막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시나는 링으로 돌아온 뒤 펑크에게 기습을 당해 패배하여 펑크가 승리하게 되고, 빈스는 당일 머니 인 더 뱅크 우승자인 알베르토 델 리오를 급하게 불러 펑크를 막으려했지만, 델 리오까지 때려눕힌 CM 펑크는 타이틀을 들고 관중석쪽을 통해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가게 된다.

3. 의의


  • 리얼리티 시대의 시작
크리스 벤와의 자살 이후, WWE는 PG 노선을 타게 된다. PG등급이 되면서 두터운 라이트 팬층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기존의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는 별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다. 일단 목표 시청자의 연령이 낮아지니 프로그램의 성향도 자연스럽게 순화됐고, 이런 모습은 매니아층의 눈엔 그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CM 펑크가 갑자기 제4의 벽을 넘나들며 현실적인 비판을 쏟아내자 매니아층의 마음을 순식간에 휘어잡았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WWE는 좀 더 현실성을 추구하는 각본을 짜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리얼리티 에라이다.
  • CM 펑크에게 주어진 거대한 푸쉬
CM 펑크의 커리어는 파이프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또한, CM 펑크가 WWE에 남긴 업적을 이야기 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항인 '존 시나의 상품 판매량을 넘긴 유일한 선수'라는 부분이 이 파이프밤 시점인 2011년이다. 이후 2011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다시 타이틀을 획득한 뒤 무려 434일동안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다. 저게 말이 좋아 434일이지, 풀타임 레슬러로서 저만큼 벨트를 보유했다는 소리이다. 즉, 하우스 쇼에 챔피언 자격으로 나갈 거 다 나가고 PPV에서 챔피언 자격으로 타이틀 방어도 하고 그야말로 뛸 거 다 뛰면서 했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경기 횟수를 다 합치면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40회이상의 타이틀 방어이다. 2018년 전반기까지 WWE 유니버설 챔피언십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브록 레스너의 방어전 횟수와 비교하면 대충 비교해도 10배 가량의 차이를 보여준다. # 물론, 이 덕분에 쉬지도 못해서 각종 부상으로 고통 받고 WWE를 나가면서 온갖 비난을 다 하게 되는 이유가 되긴 했으나, 이 시점에서 CM 펑크가 받았던 인기 및 상품 판매량과 물 들어올 때 노를 확실히 저은 WWE의 행동은, 당시 펑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며, 파이프밤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불러왔는지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정말로 뉴욕 양키스 입장이 된 존 시나
어떻게 보면 존 시나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각본. 이 사건 이전까지 존 시나는 언제나 강한 권력을 쥔 악역 챔프에 맞서 싸우는 베이비페이스 언더독이었지만, 문제는 해당 시점에서 존 시나는 이미 10-times 챔피언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이룬 WWE의 누구도 이길수 없는 끝판왕이었고 그 존재감은 WWE내에서는 마치 뉴욕 양키스같이 거대하다 보니, 약자들이 감정이입 하여 응원할 언더독 캐릭터를 자처하는 존 시나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주변에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선수도 은퇴나 다른 활동으로 인해 링 위에 없어서 미즈, 알 트루스와 대립을 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였다. 그로 인해 존 시나 기믹 자체도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 대립을 기점으로 존 시나는 이전 까지의 정의의 언더독이 아닌 WWE를 대표하는 거물으로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CM 펑크가 정말로 핵심을 찔러낸 것. 실권은 없지만 사위 트리플 H에 버금가는, WWE의 간판이자 상징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이는 이후 더 락과의 2년간에 걸친 대립[8]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존 시나는 2015년에 WWE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십 오픈 챌린지를 통해 '내가 최강이니 나에게 덤벼봐라' 라는 이 사건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리얼리티 에라에 걸맞는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속된말로 단물이 다 빠져서 더 나올게 없어보이던 존 시나라는 레슬러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효과를 가져왔다.

4. 이야깃거리


  • 2011년 6월 27일의 세그먼트가 파이프밤으로 명명이 된 건 2주 뒤의 세그먼트에서 나온 멘트에서 비롯되었다. 즉, 파이프밤이 최초 터졌던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CM 펑크가 슛을 날렸다'정도로 이야기 되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CM 펑크의 파이프 밤으로 이야기 되었다.
  • CM 펑크가 본인의 마이크에 '파이프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엄밀히 따지면 WWE가 최초는 아니다. CM 펑크는 ROH시절에 이미 이 표현을 썼던 적이 있다. # 즉, 이를 기반으로 봤을 때, WWE에 입사하기 전에 이 표현을 몇 번 썼을 가능성이 있으며, 메인 스트림인 WWE에서 이를 사용하여 뒤늦게 빛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 파이프밤 이후 파격적인 행보로 엄청난 인기를 끈 CM 펑크의 모습은 일명 'Summer of Punk'라 불리며 2011년의 최대 이슈가 되었고, 각본상으로나 실제로나 존 시나의 강력한 라이벌로 자리잡게 된다.
  • CM 펑크의 세그먼트 마지막에 나온 '빈스 맥맨의 사생활을 까보자'며 말하다 끊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 떡밥이다. 주 논쟁은 'CM 펑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인데, 일부 팬들은 CM 펑크가 말미에 'Bully Campaign'을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왕따 근절 캠페인을 하는 WWE가 정작 사내에서는 왕따가 만연하다'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한 신빙성 있는 근거가 되는 인물이 바로 JBL이다. 특히, 그는 최근에 마우로 라날로 사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것이 주요 추측이다. 아예 이를 기반으로 네티즌에 의해 잘 짜여진 페이크 번역 글도 있을 정도이다. #
  • 좋든, 싫든, 이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의외의 인물이 바로 더 락이다. 파이프밤 세그먼트 중에 CM 펑크가 더 락을 언급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풀 타임 프로레슬링 선수가 아닌 파트 타이머 레슬러가 계약 된 경기를 하러 잠깐 나옴에도 불구하고 업계 최고의 쇼에서 하는 메인 이벤트를 가져가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다. 이 세그먼트는 기본적으로는 WWE의 시스템을 비판하지만, 파트 타이머와 풀 타임 레슬러간의 대우 차이에 대한 디스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게 잘 드러난 게 머니 인 더 뱅크 전 주에 열린 비방용 하우스 쇼 중에 나온 CM 펑크와 존 시나의 마이크웍이다. # 재미있는 사실은 WWE를 나간 뒤, UFC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CM 펑크 본인이 UFC 베테랑들을 제치고 메인 카드에 올라가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가당착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당시에 함께 파트 타이머들을 비난한 존 시나마저도 훗날 영화계에 진출하면서 본인도 파트 타이머 레슬러가 되었고 영화 범블비 홍보 도중에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예전에 더 락을 비판한 것은 잘못된 일이며 사과한다"는 취지로 솔직히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모두 단체의 광대노릇을 하면서 끝나버린 씁쓸한 결말. WWE 입장에선 입맛이 쓰린데, 펑크는 그 이후로 이 바닥을 아예 떠버렸으며, 시나 역시 점점 파트 타이머이자 영화배우 존 시나 트랙으로 옮겨 타는 모습이라,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아 UFC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친 브록 레스너에게 굴욕적으로 매달리는 신세가 되면서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라는 1인자의 이미지까지 흔들리며 이 업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왔다.
  • 파이프밤 스토리의 결말인 머니 인 더 뱅크의 메인 이벤트 매치는 프로레슬링 매치에 평점을 매기는 데이브 멜처가 WWE에 별 5개를 준 몇 안되는 경기 중 하나이다. 보러가기 1997년 언더테이커 대 숀 마이클스의 헬 인 어 셀 매치 이후 무려 14년만에 WWE 경기에 5성을 준 것인데, 단순히 경기만 보면 경기 템포가 느린 편이어서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수준이라 '이게 왜 별 5개급의 경기이지?'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위의 파이프밤 영상과 두 수퍼스타의 극적인 캐릭터 반전과 함께 스토리 전체를 마무리 짓는 결말로써는 충분히 놀라운 경기였고, 결말조차 리얼리티 시대에 걸맞는 예측을 벗어난 결과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을 했다. 존 시나가 일방적으로 악당 취급을 받았다는 점에서 ECW 원나잇 스탠드 06과 비견되는 폭풍 야유를 먹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경기에서 진 존 시나도 상당한 이득을 본 나름 윈윈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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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M 펑크가 내뱉은 멘트 중 이 말이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서 자주 쓰인다. 보통 WWE가 엄청 구린 각본을 꺼내 들었을 때 이 짤이 올라오면서 '오늘도 1승'을 하는게 주요 레파토리이자 개념글 치트키. 물론, 좋은 각본이 나왔을 경우에도 쓰이면서 '오늘도 1패'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 이 사건의 상징적인 부분 때문에, 이후 발생하는 혹은 이전에 발생한 폭로성 세그먼트는(각본이든 슛이든) 'XX의 파이프밤'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인베이전 각본 당시 폴 헤이먼빈스 맥마흔앞에서 맹 비난을 했었던 세그먼트.
  • 비슷한 시기에 TNA에서는 스팅이 일명 '조커 스팅'이라는 희대의 기믹을 들고왔다. 자세한 내용은 스팅 항목 참조. 다만, 이쪽은 파이프밤과는 다르게 결말이 최악이 되면서 파이프밤과 동시대에 나왔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망했다.
  • 2016년의 한 기사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11년에 CM 펑크가 파이프밤을 기점으로 존 시나의 상품 판매량을 앞지르자 WWE측에서 CM 펑크 관련 상품의 새로운 디자인을 적게 만들고, 존 시나의 새로운 상품을 늘리는 식으로 하여 CM 펑크의 판매량을 억제했다고 한다. # 실제로, 2012년에 존 시나는 'Rise Above Hate'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들고와 이와 관련된 상품들을 줄창 찍어냈는데, 펑크는 그런 거 없다고 알려졌지만 데이브 멜처는 이는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대체 이런 개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본인도 궁금하다고.
[1] 링크 내용에서 정정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더 락존 시나레슬매니아 28 메인이벤트는 이미 머니 인 더 뱅크가 있기 약 2달 전 부터 공식적으로 확정되어있었다. 레슬매니아 27 다음날 열렸던 2011년 4월 4일 RAW에서 있었던 락과 시나의 세그먼트에서 두 선수의 매치업이 공개적으로 예고되었다.[2] 한국의 방송에서도 타 방송사를 언급할 때 풀 네임이 아니라 타방송, 혹은 K본부, M본부 등으로 에둘러 말하는 걸 보면 어떤 부분이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경쟁사에 대해 언급을 잘 안하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인데 이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특히나 빈스는 타단체에 대해 실제로 불이익 주는걸 서슴지않게 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 TNA 출신인 로우 키가 WWE에와서 TNA의 철자만을 은유하는 단어 조합을 세그먼트에서 언급한 것만으로도 푸쉬가 끊기고 자버가 되어 푸대접을 받다 쫓겨날 정도로 WWE에선 이러한 문제들을 매우 강하게 금지시키고 있는 수준이었다.[3] "저번에 (WWE에서 한) 왕따 방지 캠페인 기억나?"하는 말을 꺼낸 직후 마이크 전원이 꺼졌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그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4] 대표적인게 S.E.S 기믹. 그 이후에도 존 시나랜디 오턴의 한끼 식사급으로 그들에게 자주 패배했다.[5] 이미 WWE는 에지와 리타, 맷 하디의 실제 사내연애건으로 맷 하디가 쫓겨나는 사건까지도 꽤 깔끔하게 각본으로 만들어 이용했다. 쪽대본 쓰는 실력 자체는 수준급이었다.[6] 사실 그 덕분에 여러말이 있는데 WWE자체 각본진들은 각본을 쓰는 솜씨가 뛰어나나 모종의 이유로 다 까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점이 제기되기도 했다[7] CM 펑크는 자신이 쓴 계약서를 가지고 나와 빈스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조목조목 얘기했지만, 결국 그 계약서는 빈스가 사인을 하지 않았고 펑크가 찢어버렸다.[8] 여전히 WWE 레슬링씬을 지키는 수호자 존 시나와 한때 정점이었고, 지금도 정점이며 여전히 더 락이지만 결국은 본업은 배우인 드웨인 존슨이고 부업으로 프로레슬링을 하는 파트 타이머 더 락과의 대립을 위해서는 일단 존 시나가 WWE의 대표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그게 제대로 굴러가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