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 히로시(정치인)
1. 개요
일본의 교사,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 당적은 자유민주당으로, 제17대 일본 참의원 의원(이시카와현 선거구), 이시카와현 제1구 중의원, 제20대 문부과학대신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흔한 망언제조기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프로레슬러로서는 당대를 대표하는 엘리트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우라나게와 노던 라이트 수플렉스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2. 경력
2.1. 프로레슬러
1961년, 도야마현 오야베시에서 태어났다. 출생 이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자랐다. 가나자와시립 나루와 중학교, 세이료 고등학교를 거쳐 센슈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인 세이료 고등학교에서 잠시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레슬링 종목(라이트 헤비급)에 출전하지만 예선 탈락한다.
이후 1985년에는 교사를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초슈 리키가 운영하던 재팬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며 프로레슬러로 활동한다. 1987년 재팬 프로레슬링의 내부 불화로 초슈 리키의 신일본 복귀파와 같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다. 1996년 신일본을 탈단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다. 2000년 전일본 대규모 탈단사태일때 정치활동으로 공백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사와 미츠하루 세력과 동조하지 않고 카와다 토시아키, 후치 마사노부, 타이요 케아와 전일본에 잔류한다. 2006년 은퇴경기를 치루고 프로레슬러 생활을 마무리한다.
2.2. 정치인
1995년 7월 경, 이시카와현이 지역구인 모리 요시로의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이시카와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일본 참의원이 된다. 당선 이후 자민당에 입당해 자민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한다. 참의원 당선 이후에도 프로레슬러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2000년, 참의원 직을 사퇴하고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이시카와현 제1구 중의원으로 출마해 민주당 오쿠다 겐을 누르고 당선된다.
이후 지역구인 이시카와현 제1구에서 지역구 당선과 석패율제 구제 당선을 반복하며 중의원을 역임하고 있으며,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는 지역구에서 3연속으로 당선되어 현재까지 중의원 7선을 기록했다.
중의원을 역임하면서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자민당 문부과학부 회장을 맡는 등 자신의 교사 경력 및 프로레슬링 선수 경력과 가장 밀접한 분야인 교육, 문화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는 문부과학대신을 역임했으며, 대신직 퇴임 이후에도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 본부장을 역임한 것을 보면 확실히 교육, 문화 분야를 전문 분야로 삼는 듯 하다.
3. 성향 및 정책
-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이라는 특징 때문인지는 몰라도, 각종 스포츠 단체의 임원을 맡거나 스포츠 정책에 자문을 하는 등 스포츠 관련 활동을 많이 한다. 현재 맡고 있는 스포츠 단체의 직책으로는 도쿄 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고문, 학교법인 일본체육대학 이사, 일본레슬링협회 부회장, 일본피구협회 회장, 일본킨볼스포츠연맹 명예회장 등이 있다.
-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는 우파 성향으로 추정된다. 또한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이라는 모임에도 가입되어 있다.
- 2009년 6월 경, 새역모에서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대해 개정된 교육 기본법을 지킨 유일한 교과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대한민국이 해당 교과서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며, 근린 제국 조항과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주장했다.
-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을 규제하는‘청소년 건전 육성 기본 법안’이라는 법안 제정을 담당했었다.
4. 여담
- 프로레슬러 시절에는 특유의 一자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정치계 진출 이후 정리했다.
- 1990년 6월 '미스터 백드롭'이라고 불리우는 백드롭의 달인 고토 타츠토시와의 싱글 매치 도중 고토의 고각도 백드롭을 맞을 때 접수 미스로 옆 관자놀이에 충격이 제대로 가는 바람에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기는 끝냈으나, 다음 시합에 세컨드로 참여하러 링으로 가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그대로 쓰러졌다. 링 닥터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동공마저 열려있던 위험한 상태였으며, 링 닥터와 경찰관의 빠른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로 1분만에 살아나긴 했으나 끝내주는 편두통을 겪으며 1주간 입원해야 했고 두달간 경기 출전 금지 판정을 받았다. 여담으로 하세는 쓰러져 있을 때 대표적인 임사 체험인 유체이탈을 겪어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이 보였다고 진술한 바 있으며, 이후 고토의 백드롭에는 '살인 백드롭'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문부과학대신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교사 시절 학생들을 죽도로 체벌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스스로 밝히면서 당시 체벌을 받은 고교생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체벌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평소라면 정치 인생이 바로 끝났겠지만 바로 사과를 해서 큰 문제는 안됐다.
- 문부과학대신 재임 시절인 2016년, 기후 대학 졸업식에서 기미가요가 제창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해당 발언에 대해 헌법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었다.
- 모모이로클로버Z의 팬이다.
- 2016년 3월 31일, 도쿄돔에서 개최된 러브 라이브의 μ’s FINAL LOVE LIVE! ~μ’sic forever~에 초청되어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러브 라이브 대신이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말한 건 덤.
- 2020년 4월 30일 아베 도시코, 스즈키 하야토, 이데 요세이, 아사히 겐타로 등 동료 의원 4명과 보좌진들을 이끌고 일본의 성폭력과 학대 피해 소녀를 지원하는 시설에 몰려가 허가 없이 사진을 촬영하거나, 소녀들이 하는 텐트 설치를 하세가 "여자니까"라며 텐트 등 약간 무게가 있는 짐을 소녀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젊은 의원이나 비서들이 나르도록 했고 이런 태도에서 "여성에 대한 멸시를 느낀 소녀들이 큰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하세 의원은 이날 텐트 안에 라이트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한 소녀에게 "좀 비켜달라"고 말하며 뒤로 지나가며 양손으로 소녀의 허리를 만지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져 비판받고 있다. 관련 기사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허리에 손을 댔는지 어떤지는 전혀 의식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죄송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덧붙였다.
5. 둘러보기
[1] 10년 선배 초슈 리키와 함께 프로레슬링계의 최대 파벌 중 하나인 센슈대학 파벌의 기틀을 닦았다.[2] 1959년생 탤런트로, 두번째 부인이다.[3] 데뷔 맨 처음에 썼던 링네임. 스페인어가 주언어인 푸에르토리코에서 데뷔하였기 때문에 H가 묵음 처리되어서 실제 발음은 '이로 아세'에 가까웠다고 한다.[4] 출생 당시에는 니시토나미군(西礪波郡) 토츄마치(砺中町)였으나 태어난 다음 해인 1962년 8월에 오야베시로 옆의 이스루기마치와 함께 신설합병되었다.[5] 존 파의 Two Hearts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신일본 시절부터 쓰기 시작하여 전일본 이적후 은퇴할 때까지 계속 썼다.[6] 2017년 7월 26일에 무토 케이지가 프로듀스한 프로레슬링 마스터즈 메인 이벤트 스페셜 6인 태그매치에 은퇴 11년만에 출전, 후지나미 타츠미 & 초슈 리키와 함께 그레이트 무타 & 그레이트 카부키 & TNT를 상대하여 TNT에게 노던 라이츠 수플렉스 홀드로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7] 하세 히로시 은퇴기념흥행[★]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8]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인 스타이너 브라더스와 신일본의 IWGP 태그팀 챔피언인 하세 히로시 & 사사키 켄스케가 서로의 벨트를 걸고 대결했으며, 사사키 켄스케가 스캇 스타이너의 프랑켄슈타이너를 맞고 무너지면서 스타이너 브라더스가 승리하여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겸 IWGP 태그 팀 챔피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