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87년
1. 개요
1987년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08경기, 총 378경기를 치뤘다.
전년도 준우승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는 타격코치 박영길을 새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그 결과 그 해 삼성은 프로야구 최초로 팀타율 3할을 기록했다.[1] 김성래, 장효조, 이만수, 허규옥, 류중일 등 5명이나 세 자리 수 안타를 때려냈고 타격왕 장효조, 타점왕 이만수, 홈런왕 김성래 등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김동재 0.318, 오대석 0.326 허규옥 0.326, 박승호 0.286 장태수 0.282 등 하위타선까지 0.250 이하는 한 명도 없는 그야말로 쉬어갈 틈이 없는 역사에 길이 남을 타선을 구축했다.
또한 삼성은 1985년에 이어 전/후기 통합 우승을 다시 이루어내어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OB 베어스를 간신히 이기고 온 전년도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이번에야 말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유력했지만 현실은...
1.1. 5월 16일 해태 VS 롯데
이 경기에서 선동열과 최동원은 무려 15회까지 불펜투수 없이 완투한 경기다.
경기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VS 최동원 항목 참조.
그리고 이 경기는 약 24년 후 퍼펙트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2. 정규시즌 최종순위
이 시즌부터 무승부를 0.5승으로 간주하는 승률제가 채택되었다. 즉, ((승수+무승부 수*0.5)/전체 경기수)의 공식을 사용했다.[2]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리그를 지배한 시즌. OB 베어스는 여전히 강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해태 타이거즈는 후기 2위로 간신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3] 누가 봐도 삼성의 우승이 유력했다. 그러나...
MBC 청룡은 2년 연속 불운에 의해 눈물을 흘려야했다. 전기리그 김건우의 소포모어 징크스와 김재박의 실책, 유종겸의 부상 등으로 고전한 끝에 5위까지 내려앉으며 김동엽 감독이 경질되었다가 후반기 김건우의 부활과 이광은-김상훈의 맹활약과 함께 줄곧 2위 이내에서 머물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보였다. 그러다가 김건우가 교통사고를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 치명타가 되었으며, 시즌 막판에는 청보와의 경기에서는 김우근이 홈으로 달리다가 넘어져서 아웃당해 경기를 다잡았다가 놓치는 불운까지 겹쳤다. 결국 청룡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가을야구 실패를 확정짓고 말았다.
3.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3.1. 정규 시즌 기록 1위
이하 '''실제로 수상이 이루어지는 1위 타이틀은 굵게 표시'''한다.
3.1.1. 타자, 공격
3.1.2. 투수, 수비
4.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88년/신인드래프트
5.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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