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1년
1. 개요
1991년 프로야구 결산을 모은 영상(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함).
1991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프로야구 출범 10주년 시즌이기도 하다.[1]
팀당 126경기씩 504경기가 열렸다. 제 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참가하면서 2012년까지의 8구단 체제가 시작된 시즌이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의 참가로 인해 7구단 체제로 인한 선수수급과 경기 질적 저하 문제 때문에 이 시즌부터 8구단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2]
전년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한 듯 해태 타이거즈와 빙그레 이글스가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해태는 강력한 투수진, 빙그레는 막강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다.
한편 롯데 자이언츠는 강병철 감독이 복귀하여 4위의 호성적을 거두면서 프로야구 최초 1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1.1. 1991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11월 26일에 태평양 돌핀스 선수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허위진단서를 발급받는 식의 병역비리 사건 관련조사를 받게 된 사건이다.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보다 규모는 작은 편.
2. 정규시즌 최종순위
제과업계 천하 시즌 1
해태 타이거즈가 89, 90년과는 달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전년도 우승팀 LG 트윈스는 백인천 감독과 구단측의 갈등 끝에 6위로 마감했다. 사실 5월만 해도 4위권을 유지했으나 여름부터 물타선+마운드 과부하로 인한[3] 투타 부조화에 내려가버렸다(...). 거기에 당시 '무승부=0.5승'이라는 규정 때문에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와 공동 6위를 하는 굴욕을 안았다.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공동순위 기록이다.[4] 이 쌍방울의 승률 0.425는 신생팀 역대 최고 승률이자 신생팀 역대 최다승 타이기록이다.[5]
한편 OB 베어스는 삼청태나 달성했던 2년연속 꼴찌는 물론 '''프로야구 최초 8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재우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시즌 중도 사퇴하고 윤동균 대행체제에서 그나마 승률 5할대로 상위팀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등 분전하며 승률 4할대로 올려 윤동균은 정식감독으로 승격했다.
3.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3.1. 정규 시즌 기록 1위
이하 '''실제로 수상이 이루어지는 1위 타이틀은 굵게 표시'''한다.
3.1.1. 타자, 공격
3.1.2. 투수, 수비
4.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92년/신인드래프트
5. 포스트시즌
한국프로야구/1991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동.
6. 다른 시즌 보기
[1] 한국프로야구 리그 출범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일 슈퍼게임을 신설하였으며 이 대회는 1991년, 1995년, 1999년 총 세 차례 진행되었다.[2] NC 다이노스의 참가로 인해 2013년 시즌에도 이같은 문제가 일어났다. 그래서 86~90시즌의 교훈을 삼아 kt wiz를 2013년 창단하여 2015년 시즌부터 1군에 참가하게 된다.[3] 지난해 원투펀치였던 김태원과 문병권의 부진으로 인해 정삼흠, 김용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심했다. 지난해 신인왕 김동수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으며 거기에다 지난해 재미를 보았던 백인천 감독의 힛앤런 작전도 다 간파된 상태였다.[4] 이후 1994년에 한화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가 나란히 공동 3위를, 2011년에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가 나란히 공동 6위를 기록한다. 1991년의 LG와 쌍방울과는 달리 이들은 승무패까지 똑같았다. 2019년 SK와 두산도 승무패까지 같았으나 상대전적을 따져서 9승7패로 우세했던 두산이 1위를 차지한다.[5] 신생팀 최다승 타이기록은 2013년 NC가 세웠다. 이 해 NC의 승률은 0.419(52승 72패 4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