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일랜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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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일랜드'''
1. 개요
2. 상세
3. 역사적 관계
3.1. 20세기
3.2. 21세기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아일랜드의 관계.
한국아일랜드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꽤 오래 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중국 단둥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은 아일랜드인이었던 조지 쇼(George L. Shaw)[1]가 세운 무역 선박 회사로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가의 중국 망명, 독립운동 자금 모집, 무기 구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했다. 의친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1961년에 처음 외교 접촉을 했고 한때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겸임해 왔다가 1983년에 가서야 공식 외교 관계가 성사되었다.

2. 상세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그동안 정부 간의 교류보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통한 민간 교류의 비중이 높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유명 관광지인 이시돌 목장은 1954년 아일랜드인 신부들이 주축이 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담당 지역은 전라남도 지역(천주교 광주대교구)이었는데, 제주특별자치도는 8.15 광복 이전에 행정 구역이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제주 지역(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사목했다. 아일랜드인 사제들은 4.3 사건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가난에 시달렸던 제주도 중산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목축업을 장려하기로 하고 제주도 한림읍 금악리 일대에 농장을 건설했다. 뉴질랜드호주에서 면양, 소, 돼지를 들여와서 한때 가축 수백만 마리를 사육했던 동양 최대의 목장으로 성장시켰고 제조 설비까지 들여 와서 우유와 치즈 같은 낙농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재 이시돌 목장은 가톨릭 성지화되어 각종 종교 복지 시설이 세워졌고 말과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와 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 소속의 수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가톨릭 교회와 비영리 단체를 통하여 6.25 전쟁 이후 여러 지역에서 교육과 빈민 구호 활동을 펼쳤다.
미군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써놓은 최초의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은 동양의 아일랜드인이다."라고 써놓은 것이 기록 조사 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수많은 전쟁을 하면서 자주국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천자국을 지향했으므로 아일랜드와 비교하긴 어렵다. 대한민국에선 아일랜드가 영국의 침략, 수탈, 학살에서 항거하여 결국 독립을 맞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 근대화에 성공해 선진화를 이룩했듯이 대한민국 역시 일본에게서 일제강점기를 겪고도 자신을 지켜내며 일어섰다는 점을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인은 엽전이다" 라고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의 역사를 폄하한 일본의 주도로 널리 퍼진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주한 아일랜드 대사관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이웃 국가인 영국과 일본이 섬나라이자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점,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 옛 식민지 통치국 못지 않게 선진국으로 올라섰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2]
미국캐나다 이민자 사회에서 한국인 = 동양의 아일랜드인 드립은 적어도 1950년대부터 퍼졌던 농담인데 술 마시는 문화나 술 마시고 싸우는 문화나 술 마시고 싸우고 화해한 뒤 친구 먹는 문화 등 양 민족의 음주 문화와 관련된 말이 많다. 사회 권력적인 관점에서 주로 약소 민족으로 시작하여 억척스러운 근성으로 수많은 고생 끝에 나름 번영하는 이민자 사회를 건설하고 이 과정에 생긴 집단적 스트레스를 강력한 종교성과 유흥으로 풀어 내는 문화와 역사를 통한 스테레오 타입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70년대에 일본 신문 기자가 아일랜드 역사를 홋카이도아이누족의 역사를 비교하며 칼럼을 쓴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일본 신문 기자는 일본의 아이누족과 부라쿠민들의 차별에 대한 칼럼을 썼다. 도래인야요이들이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일본 선주민인 아이누족과 하야토들은 홋카이도로 이주하거나 부라쿠민이 된 것이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일본 기자들은 그것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고 그래서 아일랜드와 역사가 비슷한 건 한국이라는 식으로 칼럼을 자주 썼다. 그것이 와전되어 한국 사람들도 한국 역사와 아일랜드 역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두 나라의 역사의 흐름이 서로 다른 관계로 한국과 아일랜드의 현 상황도 다르고, 무엇보다 한일관계영국-아일랜드 관계는 1:1로 동치-비교하기가 상당히 곤란할 정도로 상이하고 오히려 아이누족과 일본의 관계가 유사하다. 이 부분은 해당 문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3. 역사적 관계



3.1. 20세기


아일랜드는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3.2. 21세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본선에도 진출하여 E조 예선을 일본에서 치른 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스페인16강전을 치를 때 선수단과 응원단이 방한한 바 있다.
2018년 11월 14일에 한국 외교부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4개 고등학교 1학년과정에 지난 8월부터 한국어가 선택과목으로 포함되었다고 밝혔고 아일랜드에서 한국어교육과정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11월 14일에는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강화방안을 두고 논의했다.#
아일랜드의 맥주브랜드인 기네스도 한국의 마트, 편의점에서도 팔리고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아일랜드 정부는 한국으로부터 마스크 1억2000만장을 확보했으며 물량은 수주 내 수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


현재 서울부산에서는 더블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아일랜드로 가려면 환승해야 한다. 주로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등에서 환승하는 편이다.

5. 대사관


대한민국은 더블린에, 아일랜드는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6. 관련 문서


[1] 1963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그의 후손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관하다 2012년 후손에게 전달하였다.[2] 아일랜드는 아예 영국의 1인당 GDP를 넘어버렸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대신 한국은 일본과 군사력이 대등해지거나 오히려 더 앞서지만 아일랜드는 그렇지 못한 것도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