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엘란트라
'''HYUNDAI ELANTRA'''[3] / '''LANTRA'''[4] / '''BIMANTARA NENGGALA(비만타라 넹가라)'''[5]
1. 개요
현대자동차에서 1990년 10월 26일부터 1995년 11월 1일까지 생산한 전륜구동 준중형차. 코드명은 J1.'''휴먼 터치 세단'''
'''고성능 엘란트라'''
현대자동차에서는 엘란트라 시절을 정식으로 아반떼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아반떼의 누적 판매량에도 엘란트라 시절을 포함해서 계산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출시 된 아반떼인 CN7의 7은 7세대를 의미하는데 그 기준인 1세대가 이 엘란트라이다. 사실상 아반떼의 조상님인 셈. 해외에서는 2020년인 현재까지도 아반떼를 엘란트라로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2. 상세
프로젝트명은 J1이며, 1987년에 등장한 3세대 미쓰비시 랜서/미라쥬[6] 의 파워트레인과 언더 바디를 이용하여 개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텔라의 후속으로 개발되었다고[7] 하는데, 원래 1500cc 엔진 등을 볼 때 스텔라의 후속으로 개발된 건 사실이지만 정작 포지셔닝과, 코드네임(Y카), 생김새 등을 봤을때 진정한 스텔라의 후속은 쏘나타다.[8] 1세대 '''소'''나타(Y1)는 스텔라의 고급 트림[9] 으로 만들어진 차였다. 2세대 '''쏘'''나타(Y2)부터 지금처럼 그랜저와 플랫폼을 공유하게 된다. [10] 대신에 엘란트라는 "준중형차"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개척자로 보는게 더 맞다. 당시 중형차를 가지고 싶지만 크기 문제나 비용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차로써 태어난 준중형차의 시대를 열어 간 차라고 하겠다. 엘란트라의 후속인 아반떼 시리즈가 대한민국에서 대박 행진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11] 준중형차 장르를 개척한건 정말 성공적인 한 수였다.
1990년 10월 26일에 출시되어 미쓰비시의 직렬 4기통 오리온 1.5리터 SOHC 엔진과 시리우스 1.6리터 DOHC 엔진을 탑재하였다.[12][13] 형태는 세단이지만 패밀리 세단 이미지는 엑셀이, 고급 세단 이미지는 쏘나타가 이미 담당하고 있었기에 엘란트라는 체급상 이들 사이에 끼여 어정쩡한 모델이 될 수도 있는 관계로 차별성을 두고자 출시 초기부터 "휴먼 터치 세단"이라는 어정쩡한 컨셉을 설정했다가 곧바로 '고성능' 컨셉으로 바꾸었으며 단종 될 때까지 '''고성능 세단'''이라는 이미지를 밀어붙였다.
초기 모델의 경우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을 넘어서 '''고성능 세단이라는 이름값'''을 실제로도 톡톡히 해냈는데, 특히 시리우스 1.6리터 DOHC 엔진을 장착한 1.6 GLSi와 1.6 GLi[14] 모델은 '''시대를 뛰어넘은 넘사벽 구동성능을 갖춘 레전드 모델'''로 유명하다. 이 엔진은 시리우스 1.8리터 DOHC 엔진에서 실린더 높이를 줄여 배기량을 맞춘 형태[15] 인지라, 스트로크가 짧아서 레드존이 6,000 ~ 6,500rpm이였던 기존 엔진들의 회전수에 비해 훨씬 높은 '''최대 7,600rpm'''까지 회전수 사용이 가능했고, 리미트를 풀어 주면 8,000rpm도 거뜬히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이 1.6 DOHC 엔진의 경우, 엘란트라에 플랫폼을 제공한 미쓰비시 미라지의 퍼포먼스 핫해치 트림인 CYBORG 트림에 들어가던 스포츠카용 엔진[16] 인데, 1987년에 개발된 1.6리터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126마력의 출력과 15kg*m 이상의 토크'''를 내는 괴력을 발휘하며[17] 코너링이나 가속시에 고rpm을 이용한 강력한 주행이 가능했다. 이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공식 발표한 이 모델의 최고속도는 180km/h이었다고는 하나, 실상 아날로그 계기판이 탑재된 수출용 모델[18] 이나 디지털 계기판이 탑재된 내수용 모델[19] 의 경우 200km/h 이상의 주행도 가능했고, 내수용 아날로그 계기판이 탑재된 모델의 경우 200km/h까지 표시되어 있었지만 소위 '''계기판 꺾기'''를 실현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을 정도.[20]
1991년~1993년 호주 랠리 비개조 부문에서 연속 1위를 한 차종도 바로 이 1.6리터 엔진을 장착한 모델인데, 사실 이것은 내수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을 겨냥해 개발된 것이었기에 이런 국제 랠리 참가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국내 내수용의 경우 세금문제로 인해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며 일찍 단종을 맞았지만, 수출용 모델의 경우 양산형 일반세단으로는 상당한 성능을 뽐내며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2년에는 매일경제신문이 히트상품으로 선정했고, 1994년에 한국능률협회 조사 결과 소비자 만족도 1위로 올랐다.
전반적으로 스텔라에 비해 단단해진 주행성능과 곡선 위주의 차체 디자인, 강력해진 출력으로 인해 호평받았고, 1994년 단일 모델로서 100만대 판매를 돌파할 정도로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 양쪽 모두 좋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1993년 4월 5일에 부분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한 뉴 엘란트라를 출시하여 기존의 1.5리터 오리온 엔진 이외에 판매량이 적었던 시리우스 1.6리터 DOHC 엔진을 단종[21] 시키는 대신에 시리우스 1.5리터 DOHC 엔진과 1.8리터 DOHC 엔진을[22] 추가하여 판매되었고 ABS와 운전석 에어백이 옵션으로 추가되었다.[23]
1.5 DOHC 엔진의 경우는 출시 초 1.6에 비해 다소 처진다는 인상이었지만 이 엔진의 문제는 '''내구성'''이었다. 하지만 경쟁차종 에스페로에 얹힌 1.5 DOHC 모델에 비해 가벼웠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24]
이후 1995년 3월에 2세대 모델인 아반떼(J2)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며 아반떼와 중복되는 모델인 DOHC 엔진이 장착된 엘란트라는 1.5 DOHC, 1.8 DOHC 고급형 사양의 모델이 단종되고 이후 1.5 SOHC 저가형 모델만 생산하게 되었으며 수출용 모델은 기존처럼 SOHC와 DOHC 모델 모두 생산하였다. 1.5 SOHC 사양의 저가형 모델은 1995년 11월에 단종되어서 '엘란트라'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3. 외국 판매
외국에서는 로터스 엘란(Elan) 때문에 이름이 바뀌어서 '란트라'로 팔렸지만, 이후 기아자동차가 엘란에 관한 모든 설계와 권한을 로터스로부터 인수하여 대한민국 시장에 출시하고[25] , 이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지자 아반떼 XD부터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수출 중이다.
대한민국 내수 시장에서 아반떼로 팔리는 차는 수출 시장에서 엘란트라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반떼 MD는 엘란트라의 5세대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2008년 현대자동차 최초로 단일 브랜드로 500만대 판매량을 돌파했고, 2014년엔 1천만대 판매량을 돌파했다.[26]
4. 여담
고성능 세단이라는 점을 광고하기 위해 좀 무리수인 광고를 찍은 적이 있는데, '''엘란트라가 아우토반에서 포르쉐 911 964를 발라버리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광고에서의 911은 964 turbo 모델로 추정된다. 964 터보의 성능은 385마력 53kgm 토크. 엘란트라는 126마력 15kgm 토크. 대충 봐도 마력, 토크에서 모두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광고 마지막에 911을 몰던 드라이버가 엘란트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 '''난 1단 기어로만 달렸다.'''라는 뜻이라며 PC통신 유머 시리즈에 올라가기도 했다. [27] [28] 여담으로 2020년 기준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인 아반떼의 최신형 CN7은 123마력에 15.7kg-m의 토크를 가지고 있으며 신형 911 터보s는 650마력에 81.6kg-m의 토크를 가지고 있어서 차이는 훨씬 더 벌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일반 세단이기 때문에 딱히 불필요한 출력을 늘릴 필요가 없어서 출력이 거의 그대로인 아반떼에 비해 슈퍼카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능 향상으로 출력이 거의 2배가 된 터보s. 그러나 가격도 그만큼 올랐다. 2000만원대인 아반떼에 비해 터보s의 출고가가 약 2억 8천만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서에 삽입된 국내 광고 영상들의 내레이션은 김기현이 담당했다. 1992년까지 전속 모델은 인기 모델 김종헌[29] 이었다.
이 광고는 28년이 지난 뒤 현대에서 자체적으로 다시 패러디했다[30] .
현대자동차의 상징이 된 타원 H 엠블렘이 1990년 엘란트라 출시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휠 캡에만 사용되었지만 이후 1991년에 차체에도 붙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서 쏘나타, 엑셀 등의 승용차 차종에도 적용된다.[31] 현대자동차의 정식 엠블럼으로 채택된 것은 1992년 9월 2세대 그랜저가 나오면서 부터였다. 룸 미러 방식은 천장식이며 이후 나오는 후속 모델은 전부 유리창 방식이다.
자동차 전문지 자동차생활에서 일본 열도를 이 차로 주파한 적이 있다. 한국 고유모델 차가 일본을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32] . 당시 기사 보기
5. 모형화
엘란트라 역시 1:35 스케일로 출시되었다. 초기형은 구,크로바 미니카와 세창기업에서 생산되었고 뉴 크로바 미니카에서 뉴 엘란트라가[33] 생산되었다. 크로바제 초기형은 엘란트라가 아닌 엑셀을 본떠서 만들었나 생각할 정도로 퀄리티는 떨어졌다. 반면에 세창에서 생산한 모델은 완벽한 퀄리티를 자랑하며 동호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뉴 엘란트라는 크로바 초기형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발전하여 그런대로 동호인들이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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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국내 시장 한정[2] 수출 시장 한정[3] 차명의 뜻은 프랑스어로 정열의 뜻인 엘란(Elan)과 영어로 수송 운반의 뜻인 트랜스포트(Transport)의 합성어라고 한다. #[4] 일부 지역에서 로터스 엘란과의 상표권 문제로 E자만 빼서 사용했다. 이는 아반떼(구아방)도 동일. XD부터는 대한민국 빼고 모두 엘란트라로 판매된다.[5] 인도네시아 수출명으로 이 이름은 동남아시아에서 1세대 아반떼에도 사용되었다.[6] 정작 3세대 미라쥬는 일본내에서는 따로 준중형차로 분류되지 않고 엑셀의 기반이 되었던 이전 세대의 미라쥬처럼 계속 소형차로 판매되었다. 하지만 3세대 미라지는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이전 세대의 미라지/랜서 피오레 보다 전장이 10cm나 길어질 정도로 차체가 확연히 커진 데다가 중형차였던 갤랑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물러받음과 동시에 거품 경제 절정시기에 나온 차량인 만큼 인테리어 질감도 중형차 수준으로 크게 향상되었고 성능도 많이 개선되면서 이전 세대 보다 확연히 뛰어난 중형차에 근접하는 수준의 고급스러운 차량이 되었던 만큼 현대자동차에서 3세대 미라지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가져오면서 이를 포착하여 엘란트라를 엑셀보다 윗 급으로 포지셔닝하고 구형 미라지 플랫폼 기반의 엑셀을 병행 판매하는 식으로 준중형 승용차라는 새로운 분류를 만들어낸 것이었다.[7] 이는 어디까지나 쏘나타가 등장하면서 스텔라가 아래급으로 내려앉았고, 그 자리를 엘란트라가 대체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대우자동차로 따지면 누비라가 에스페로를, 기아자동차로 따지면 세피아가 캐피탈을 대체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8] 참고로 Y2의 차명 후보 중에서 엘란트라가 있었는데, 미국 현지 딜러들의 요구로 인해 쏘나타로 이어갔다.[9] 자동차생활에서 '10년전의 차를 비교시승'하는 시승기에서 스텔라와 짝을 지은 차가 쏘나타다.[10] 스텔라 최후기형은 자가용 사양이 1.5 새턴엔진이 단종되는 대신에 엘란트라가 나오기 몇달 전에 1.8 시리우스MPI엔진으로만 출시되었고, 자가용 사양 단종 이후에도 1997년까지 연장생산된 스텔라 택시는 1.8, 2.0 LPG 엔진이 탑재되는등, 스텔라는 말년에는 엄연한 중형급으로 재포지셔닝 되면서 엘란트라와는 확실히 다른 급의 차량이 되었다. 다만 스텔라에 엑셀, 프레스토, 엘란트라 1.5의 휠캡을 달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11] 일례로 과거 자동차 전문지인 자동차생활에서 2000년도 초반쯤 설문조사와 차량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산 차 중 제일 잔고장이 적은 차는 아반떼였다. 그리고 쏘나타와 더불어 진정한 한국의 국민차 Top5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12] 덕분에 엔진 마운트가 같은 랜서 에볼루션 3까지는 별 무리 없이 엔진 스왑이 가능하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한 차량도 있었다고.[13] 일본에서는 마케팅 정책상 '사이클론'이라는 명칭을 거의 모든 엔진에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엔진도 사이클론 엔진이라고 불렸다.[14] 1.6 GLSi 모델에서 각종 편의사양들을 대거 배제하여 가격을 낮춘 모델로 실제 구성은 수출형 모델에 가깝다고 하다.[15] 엔진 배기량을 끌어올리는 튜닝인 보어 업의 반대 개념.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기아 캐피탈에 들어가던 DOHC 엔진이 있다. 원래는 마쓰다의 핫해치인 파밀리아 GT에 쓰이던 엔진을 가지고 터보를 뻬고 배기량을 1.5리터로 맞추기 위해 스트로크를 줄인 것인데, 역시나 고RPM 엔진이었다. 게다가 배기량을 맞추기 위해 스트로크를 줄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스퀘어 엔진이 되어버렸다.[16] 이것과 동급으로 볼 수 있는 스포츠카 엔진으로 토요타의 4A-GE(AE86 기본 엔진), 혼다의 ZC 엔진이 있다.[17] 수동변속기 기준 다이나모머신 계측 수치. 2004년에 출시된 아반떼 XD의 현대 알파 엔진 1.6리터 탑재 버전인 '뉴 아반떼 XD 1.6ℓ 알파Ⅱ'의 카탈로그상 수치가 110마력에 14.8kg*m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뛰어난 수치인지 잘 알 수 있다. 참고로 현대 자체 기술력으로 이 스펙을 따라잡은 것이 2006년으로, 추가로 한 세대가 지나서 현대 감마 엔진을 채용한 HD에서야 겨우겨우 비슷한 라인까지 올라왔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반떼가 엘란트라를 따라잡기까지 무려 16년이나 걸린 셈.''' 물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리우스 1.6 DOHC는 스포츠카에 들어갈 것을 상정하고 만든 엔진이라 어디까지나 일반 사양인 감마와 직접 비교가 어렵긴 하다.[18] 계기판 속도 최고수치가 220km/h까지 표시되었다.[19] 계기판에 설치된 디지털 속도 표시기의 백단위가 일반적인 8의 형태가 아닌 1로 고정되어 있었기에 최고수치가 199km/h까지 정상 표시될 수 있었고, 200km/h를 넘기고서 부터는 뒤의 십단위와 일단위의 두자리로만 유추해낼 수 있었다.[20] 계기판이 표시수치 끝까지 치고 올라가서 덜덜덜 떨며 '''계측 한계치를 초월'''하는 걸 말한다. 다이노 계측상 최고 속도가 '''195km/h'''였는데, 이론상으로 뒷바람을 충분히 맞으면 순정 상태로도 200이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각종 자동차 잡지나 PC통신 등에서 190km/h를 넘겼다는 무용담은 흔하게 주워들을 수 있었고, 그런 이야깃거리들이 인터넷 초창기까지 이어졌다.[21] 세금 문제로 인한 판매량 저조가 가장 결정적 이유였다. 500cc 단위로 세금을 차등하던 당시 자동차세법 기준에 따라 1.6리터 모델의 경우 2.0리터 배기량의 중형차와 동일한 수준의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 배기량 단위 기준이 변경되어 후속 모델인 아반떼에서는 1.6리터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22] 현대 쏘나타 엔진을 얹은 엘란트라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오히려 1.6리터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기판에 200km/h까지 찍혀 있었고 카탈로그상 195km/h가 가능하다고 표기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계측되었다.[23] 운전석에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는 모델은 운전석 스티어 링(핸들)이 기존의 3스포크 핸들이 아닌 쏘나타2에 달려 나온 4스포크 핸들이 장착되어 있었다.[24] 다음의 엘란트라 동호회에서는 1.5 DOHC 차주가 직접 "1.5 SOHC나 1.6/1.8은 내구성 좋기로 정비사들한테 정평이 났는데, 1.5 DOHC를 2016년 현재까지 몰았다 하면 다들 놀랄 정도이니 말 다했죠."라고 할 정도였다! 엘란트라를 구입하려는 회원 또한 1.5를 안 찾는다는 것이 함정(...)[25] 이 때는 반대로 '엘란II'로 나오려던 것이 현대자동차의 반발로 엘란으로 축약하여 출시되었다.[26] 국내에서는 아반떼 1천만대 판매로 광고했다.[27] 실제로 1993년 장학퀴즈 20주년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28] 엔진의 원래 주인인 미라지 사이보그는 골프 GTi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형 핫 해치였다. 하지만 당시 골프를 비롯한 준중형 - 소형 해치백이 한국에서 빠른 차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식도 싸늘했던 것을 생각하면 달리 방법이 없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포르쉐를 등장 시킨 건 너무했지만.[29] 1995년 배우로 전업해 영화 <큐>, SBS 드라마 <까치네>, <장미의 눈물> 등지에 출연했다.[30] 따봉의 패러디도 들어가 있다. 성우도 김기현이 아닌 당시 델몬트 오렌지주스를 맡았던 김종성. 다만 김종성이 녹음한 엘란트라 광고도 있긴 있었다.[31] 각그랜저라 불리우는 1세대 그랜저는 후드탑 엠블렘이 일본 데보네어V와 유사한 형태의 둥근 H 엠블렘이었지만 1991년 경부터 타원 H 엠블렘이 달리게 되었다.[32] 당시 엘란트라와 함께 대우 에스페로도 부관훼리에 싣고 일본 열도를 건너가서 달렸다.[33] No. 4607[34] 언더 위시본이 2개의 링크로 나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