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퀴즈
1. 개요
1973년 2월 18일부터 방영 중인 고등학생 대상의 퀴즈 프로그램. TV프로그램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올해로 벌써 48년째 방송하고 있으며, 흔히 장수 프로그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전국노래자랑보다 역사가 더 길다.[2]
2006년에는 '다시 보고 싶은 20세기 MBC 프로그램 100선'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1위는 수사반장이다. 오프닝곡은 요제프 하이든의 Trumpet Concerto in Eb major(트럼펫협주곡 3악장). 1998년 3월부터 1999년 4월에는 자체 제작한 로고송이 잠깐 사용되었다가 그 이후로는 리믹스 버전으로 되돌아 와 유지되고 있다.
2. 스폰서
이 프로그램은 대기업의 풀 스폰싱으로 제작되는 거의 유일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선경그룹(현 SK그룹)'''이 프로그램 '''초창기부터 스폰싱을 전담'''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3] 그래서 장학퀴즈 프로그램 방송 전에는 일반적인 15초 짜리 여러 광고들이 방송되지 않고, 지상파 방송 광고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100초 길이의 '''SK그룹의 이미지 광고가 항상 나왔다.''' 장학퀴즈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한정판(?) 광고로 내용은 상당히 교훈적이며, 초창기의 광고들의 경우 그룹 이미지 메이킹보다는 공익광고 스타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으나 90년대부터 제작된 광고의 경우 그룹 이미지 메이킹의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유공 등의 모든 SK 계열사 광고도 틀어줬다.
장원을 차지한 학생들에게 선경그룹에서 전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였으며 기장원에게는 4년간 대학 등록금, 기차석은 2년 등록금, 월장원에게는 입학금 혹은 1년 등록금, 전액 지원을 약속하는 장학증서가 수여됐다. 이는 SK그룹 2대 회장이었던[4] 최종현 회장의 강력한 의지[5] 에서 비롯되었기에 90년대에 프로그램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에도 지속적인 지원의사를 내비쳐 결국 프로그램을 다시 살려내는 등 현재까지 SK그룹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3. 변천사
3.1. 초창기와 전성기
MBC는 당시 신인이었던 차인태 아나운서에게 진행을 맡겼으며, 일단 몇 달 정도 한 다음 반응이 안 좋으면 막을 내릴 생각이었는데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순수 교양 퀴즈 프로그램의 틀을 갖춰나가자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면 스튜디오 녹화를 보려는 학생들이 수천명씩 몰려드는 통에 정동 MBC 공개홀 앞에 청원 경찰들이 진을 쳤으며, 방송국 수위는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방청객들을 줄 세우느라 법석을 떤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장학퀴즈는 명문고교 간 자존심 싸움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혼자서 예심을 보고 나온 서울의 명문 K여고 학생은 주장원전에서 5명 중 4등 밖에 못하자 개교이래 4등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는 학교에서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죄(?)와 교장이나 담임 추천 없이 장학퀴즈에 나왔다는 것으로 무기정학(특별교육 이수)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학부형으로부터 그 사실을 들은 담당 PD와 차인태 아나운서가 학교를 찾아가 학생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선처해 줄 것을 청했고 결국 학교는 유기정학(사회봉사)으로 '감형'(?)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다른 명문 K고에서는 장학퀴즈 출전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학기 중에 담임 선생님을 교체시킨 사례가 있다.[6]
녹화장에 교장 선생님까지 출동해 단체 응원단을 이끌고 대규모 응원전을 벌인 학교가 있었으며, 개교이래 주장원을 처음으로 배출한 동두천 한 여고는 교악대를 앞세워 동두천역까지 시가행진을 벌인 사례도 있고 주장원만 되어도 교문 위에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3.2. MBC 장학퀴즈의 종영, EBS에서의 부활
그 뒤 시대 조류가 각종 오락프로 쪽으로 흘러가면서 연예인이 출연하는 쇼 프로들에 비해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방영 시간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제작부서도 '예능국') 1996년[7] 가을 개편으로 인해 1162회로 프로그램이 종영되었다가,[8] 장학퀴즈 열혈 팬들의 요청 및 프로그램의 메인 스폰서인 SK그룹의 지속적 프로그램 지원 의사에 힘입어 EBS가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1997년 1월 12일부터 방송하고 있다. 일설에는 뒤늦게 장학퀴즈의 브랜드적 가치를 깨달은 MBC가 다시 가져가려 했으나 EBS와 SK, 출연학생 모임인 '수람' 모두 반대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애청자들의 요청으로 프로그램이 부활한 예는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2009년 10월 17일에 가을 개편에서 종영되었다가 애청자들의 수많은 요청으로 인해 이듬해인 2010년 1월 9일부터 다시 방송하고 있으며, 라디오에서는 DJ 처리와 함께 아자아자가 SBS 러브FM의 가을개편으로 인해 2014년 9월 14일 부로 종영되었다가 2014년 11월 1일부터 경기방송에서 3달 동안 방송되었다.
장학퀴즈와 같이 방송사를 옮겨서 계속 방영하고 있는 유사한 사례를 보면 OGN에서 주관/중계했던 스타 2로 치러진 스타리그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예로 들을 수 있다. 스타리그/프로리그는 tving 스타리그 2012/SK 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를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해 치러졌으나, OGN이 채 1년 만에 스타크래프트 2 중계에서 철수하면서 스타리그는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을 끝으로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부터 SPOTV GAMES가 프로리그의 중계권을 취득해 단독 중계하는 것은 물론 Starcraft 2 StarLeague라는 명칭의 사실상 스타리그를 대체한 스타 2 대회를 다시 개최하고 있다. 그 외에도 OGN에서 방영했던 액션 토너먼트 등의 여러 넥슨 게임 리그도 SPOTV GAMES에서 방영하는 중.
4. 장학퀴즈 출신 유명인들의 근황
출연 학생들은 이후 장학퀴즈 MC를 맡게 되었거나 법조계, 의료계 등 각 분야에 퍼져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CEO로 유명한 연출자 송승환[9] , 연예계 최고의 엄친아로 꼽히는 가수 김광진[10] , 강용석 前 의원[11] 또한 여기에 출연했으며 월장원전 우승으로 대학 입학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 밖에 영화감독 이규형[12] , 김두관 정치인(국회의원)[13] , SBS 한수진 앵커 등도 장학퀴즈 출신.
일부 학생들은 '수람'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한다. 장학퀴즈 출연자들은 장학퀴즈 출연자들의 모임인 '수람'에 가입 자격의 기회가 주어지며, 활동 여부는 개인 자유.
5. 역사
5.1. 장학퀴즈의 세계화
1993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세계로 가는 장학퀴즈'로 개편했으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에게 세계문화탐방의 기회를 제공했다.
2000년 중국의 SK좡위안방(壮元榜)이 첫 전파를 타면서 이듬해 7월, 한중 청소년들의 교류를 위해 제1회 한중 SK청소년 캠프가 개최되었으며 2012년 12회까지 개최되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중퀴즈제왕전이 매년 개최되었으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대표와 중국 대표가 팀을 이루는 특집을 매년 했다. SK좡위안방은 2021년 현재까지도 방영되고 있으며, 방송은 매주 일요일 6시에 BTV에서 방영되다가 2016년 10월 23일부터 CCTV로 방송국을 바꿔 극지소년강으로 방영되고 있다.
6. 역대 MC
6.1. MBC 문화방송 (1973년 2월 ~ 1996년 10월)
6.1.1. 남성 진행자
6.1.2. 여성 진행자
6.2.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1997년 1월~)
7. 자료
- 48년 전통을 이어온 장원 방식의 개인전부터 팀을 구성해서 대결하는 팀제, 주장원을 따로 뽑지 않는 서바이벌 형식과 연승제 등 다양한 방식들로 진행되며, 대개 반복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보통 MBC는 개인전과 장원전, 서바이벌제가 대부분이었으며, EBS부터는 팀전과 연승제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장원제는 이름을 바꾸어서 진행된다.
-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학교대항전 방식으로 진행되어 기존의 장학퀴즈의 진행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었으며, 2016년 상반기부터는 도전 골든벨처럼 학교를 방문해서 촬영하는 학기별 시즌제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 옛날에는 1년 간격으로 진행 방식과 출연 방식을 개편했으며, 2005년부터는 학기마다 진행 방식과 출연 방식을 개편했다.
- 여름방학 때(1학기 말)엔 다양한 특집을 방영하며, 겨울방학~봄방학 때(2학기 말)에는 왕중왕전(퀴즈 제왕전) 특집을 1~2월 중에 방영했다. 또한 왕중왕전 방송 말미에는 장학퀴즈 우승자들이 장학퀴즈에서 주최하는 세계캠프를 가는 장면을 짤막하게 보여준다.
8. 여담
- 2010년 11월 13일에 방영된 718회에서는 대안학교 학생이 파이널라운드까지 진출했다.
- 2000년엔 광주방송에서 '고교생 퀴즈세상'이라는 장학퀴즈와 유사한 형태의 퀴즈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 2012년 6월부터 청주방송에서는 CJB 장학퀴즈라는 제목으로 퀴즈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며, 고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이라는 공통점만 빼면 EBS의 장학퀴즈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장원제 형식으로 3기까지 방영했으며 여기서 출연했거나 우승한 학생들이 EBS 장학퀴즈에 나와서 우승한 사례가 있다.
- 2009년 초까지는 출연자가 맞히지 못한 문제를 방청객 대상으로 문제를 내 맞힌 사람에게 상품을 주던 적도 있었다.
- 대한민국에서 중대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나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시안게임 기간[19] 에도 방송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2006년 최규하 대통령의 사망[20] , 2009년 김대중[21] 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태,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22] , 2015년 김영삼 대통령의 사망 때에도 정상 방송되었다. 다만 2004년~2011년에는 EBS에서 주관하는 EIDF 방송으로 인해 편성이 연기되거나 재방송 시간대에 본방송이 편성된 경우도 있었다.
- 도전 골든벨과 마찬가지로 장학퀴즈 형식을 차용한 퀴즈 행사를 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으며, 도전 골든벨 형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예를 들어 장학퀴즈, 장학 퀴즈 제목으로 진행된다.)
- 예전 장학퀴즈 스튜디오 녹화는 격주 토요일마다 2, 3회 방영분을 녹화했으며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2016년 4월부터는 촬영 장소가 학교 내로 변경되었으며 월요일과 금요일에 촬영을 한다. 그 뒤 2018년 2학기부터는 방송국에서도 녹화를 하고 있다.
-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1980년대 중반에 KBS에서 방송됐던 중학생 퀴즈로서[23] 이쪽의 경우 제일합섬 스폰서로 했다. 재밌게도 원종배 아나운서는 장학퀴즈가 흥했던 1980년대에 KBS의 '중학생 퀴즈' 진행자였다. 이 프로는 도마다 따로 열려 지역총국마다 자체방송을 했다.
- 옛날 장학퀴즈 홈피는 EBS 홈페이지와 달리 따로 회원가입을 하는 사이트로 운영되었으며 2017년 이후에는 EBS 홈페이지에 통합되었다.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자료는 EBS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가 불가능하며, EBS 미디어를 통해 복사 주문을 해야 한다.[24]
- 100회 단위 특집보다는 주로 ~주년 단위로 특집을 꾸미며 40주년 제왕전 방송에서 보듯이 EBS에서만 방영된 역사만 따지기보다는 MBC 시절부터 이어온 역사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1] 이전에는 토요일 본방, 일요일 재방이었다.[2] 단, 방송사를 MBC에서 EBS로 이관하는 동안 잠시 휴방하기는 했다. 그나마도 전국노래자랑 쪽은 프로토타입격 프로그램인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 1971년 10월 16일부터 방영되었기에 이 시기까지 포함한다면 오히려 전국노래자랑 쪽이 1년 4개월이나 더 길어진다.[3] 1950~1960년대 TV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가 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OB그랜드쇼"나 "크라운쇼"처럼 프로그램 명칭에 상품 내지는 브랜드명을 붙인 프로그램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으나 방송 규제가 강화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4] 창업주는 최 회장의 친형인 최종건 회장이다.[5] 한 번은 최종현 회장이 생전에 장학퀴즈 장원 학생들을 만찬에 초대하여 당부한 말이 만약 회사의 사정에 의해 장학금 지원이 어려워질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장학금을 빠짐없이 지원한다는 것이었으며, 이를 증명하듯 학생들에게 수여한 장학증서에 기록된 후원자 명의가 법인인 SK그룹이 아닌 최종현 회장 본인 명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아들인 최태원 현 회장도 장학퀴즈에 대한 애착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최태원 회장도 인재 육성에 대해서는 관심의 수준이 상당하다. EBS의 프로그램은 사실상 시청률 집계가 무의미한데다 장학퀴즈 본방송 시간이 무도나 불후의명곡 등 타 지상파 메인 예능프로 방영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SK의 광고효과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장학퀴즈가 SK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SK와 최태원 회장의 애착이 크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6] 당시 장학퀴즈는 교장이나 담임선생님의 추천이나 예심을 보고 나오기 때문이다.[7] 그 당시에는 '논술세대 장학퀴즈'로 방영되었다.[8] 설상가상으로 이듬해(1997년)에 학교방문 쇼 1318 힘을 내! 종영 이후 MBC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9] 서울 휘문고 재학 시절이던 1975년 출연해서 '''월장원'''에 올랐으며 훗날 장학퀴즈 출연자 출신자로는 최초로 프로그램 진행까지 맡는 영광을 누렸다. 여담으로 송승환의 고등학교 동기생인 손석희도 MBC 아나운서 시절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다.[10] 인천 제물포고 재학 시절이던 1979년 주장원에 올랐으며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룬 성과였다. 당시 출연한 방영분이 '진심' 뮤비에 삽입되기도 했다.[11] 당대 최고 명문고였던 서울 경기고 재학 당시인 1987년 월장원을 거쳐 기장원전에 올랐으며 여기선 뒤에서 1등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12] 서울 신일고 재학 당시 출연해 장학퀴즈 최고의 영예인 '''기장원'''이 되었다. 또한 1990년대 중후반 장학퀴즈 프로그램 내 공익광고에서 자주 얼굴을 비추었다.[13] 1976년 주장원전에 나와서 아깝게 차석을 했다고 한다. 당시 진로를 묻는 차인태 아나운서의 질문에 "체대에 진학해서 권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A] 1982년 입사[B] 1986년 입사[14] '열려라 큐빅박스'에서만 진행을 맡았다.[15] 2008년 1월 13일과 1월 20일은 단독 진행했다.[16] 총선 출마로 중도 하차.[17] 역대 최단 MC며 전임 MC인 유정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신영일이 MC가 되기 전까지 대타로 뛰었기 때문.[18] 1999년 퀴즈크래프트부터 MC를 맡았으며 이 때부터 16년 동안 사회를 맡았다.[19] 다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서울 올림픽 기간에는 장학퀴즈가 결방했다. 서울올림픽 개최 주간의 경우, 본방송 시간이던 일요일 아침 7~8시는 올림픽 경기 중계 시간과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겠지만 MBC가 서울 올림픽 주관방송사로 선정되면서 보도, 스포츠 중계방송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EBS로 옮겨진 이후에는 EBS에 중계권 자체가 아예 없으니 정상 방영되는 건 당연하다.[20] 다만 최규하 대통령은 별다른 업적이 없는 데다 인지도가 얼마 없어서인지 사망 당시에는 지상파 3사에서 모든 예능이 정상방송되었다.[21] 이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2009 한중제왕전과 겹쳤다.[22] 대신 사고 현황을 자막으로 내보냈다.[23] 국산 TV 애니메이션 영심이에 이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극중 오영심은 운으로 중학생 퀴즈 주장원을 차지했다. 당시 중학생 퀴즈 규정상 버저를 눌렀다가 오답을 말하면 감점되는 규정이 있었는데 극중 다른 참가자들이 오답을 연거푸 말하면서 무더기 감점을 당했다. 이 때 아는 것이 없었던 그녀는 끝까지 버저를 못 누르고 뻘쭘하게 앉아 있었다가 마지막 문제에서 그림 작자를 묻는 문제를 풀 때 "몰라요"라고 답했는데 답이 작자 미상이라서 어부지리로 우승했다.[24] 2020년 기준으로 848회부터 다시보기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