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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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領山
1. 소개
2. 역사
3. 산을 오르는 길
4. 편의시설
5. 황령산 봉수대
6. 여담


1. 소개


높이 427m의 전형적인 도심지 야산으로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구, 연제구, 부산진구에 걸친 시의 중심에 있으며 금련산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 정상부는 특이하게도 남미대륙안데스 산맥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데사이트(andesite), 즉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령산과 장산 일대의 수영만 지역 자체가 백악기 말 화산 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지형이다. 때문에 산에서 화산지형에서 발견되는 암석이나 형상이 많다. 한국지리에서 배우는 중생대 말 불국사 변동.
산역이 그리 넓지 않아 3시간 안팎이면 돌아볼 수 있고 체육시설과 야영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산정은 비교적 평탄하며 소규모의 성채 경관을 나타내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금련산과 연결되어 있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굳이 엄밀하게 구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일상적으로 금련산도 구별 없이 전부 황령산이라 부르는데, 올라가 보면 능선이 완만하게 연결되어있는 느낌이기 때문인 듯. 최상단 사진에서 좌측 부산진구에 가까운 쪽이 황령산, 우측 수영구 및 바다에 가까운 쪽이 금련산이다.

2. 역사


고대시대에는 진한 국가 중 하나인 거칠산국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동래에서 황령산 일대에 이르는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 누를 황(黃)자를 써서 황령산(黃領山)으로 기록,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동래부읍지》에는 거칠 황(荒)으로 기록하여 화시산으로 뻗어 있으며 마하사가 있다고 하였다. 부산 토박이 민간에서는 망령산('''亡靈'''山)이라 불렀는데, 부정적이다 하여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 1950년대~1960년대 기성세대 몇몇 분들도 망령산이라 부르는 때가 종종 있었으며 쌍팔년도부터 1990년대 초의 도로 지도에 표기에서도 망령산이라 적혔던 적도 있었다.
동래부 때인 1422년(세종 7)에는 군사상 중요한 통신수단인 봉수대(봉화를 피우는 곳)가 산 정상에 설치되었다. 이 봉수대는 동쪽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범어사, 계명산, 봉수대 등과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해마다 산신제와 더불어 봉화를 재현하고 있다.
산에는 탄광이 여럿 있었다. 광안4동의 공무원교육원 자리에 있던 광산이 규모가 가장 컸는데 일제강점기구리을 캐던 광산이다. 천연기념물 제267호로 지정된 구상반려암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석으로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식어 만들어졌다. 반려암이 있는 쪽 루트는 서면 옆의 전포동 쪽에 가깝다.

3. 산을 오르는 길


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부산진구의 중심에 있는 산이라서 여러 동네와 맞닿아 있기에 다양한 코스가 존재한다. 90년대까지는 제대로 된 등산로, 편의시설도 거의 없는 산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부산의 산복도로사업으로 인해 현재는 산 정상까지 2차선 차로가 존재해서 차만 타고도 갈 수 있다. 보통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금련산역에서 내려서 도로 따라 올라가는 경우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반적인 등산로를 택해도 산역이 넓지 않고 땅도 그리 거친 편이 아니라서 가볍게 오르기 좋고 어느 길을 택하든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등산로로 가든 도로를 따라 올라가든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유의해야 한다. 망미동과 연산동부터 올라오는 루트는 중턱에 식수대가 하나 있어서 그래도 훨씬 낫다. 산중턱에 위치한 대다수의 학교의 뒷편으로 돌아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
전포동 코스로 올라오면 산 아래 초입에 무허가 텃밭과 폐가들이 드문드문 있어 밤에는 으시시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올라가다 보면 무연고 무덤도 꽤 많다.[2]
광안동 코스도 있다. 그러나 주택가 밀집 지역인데다가 길 치고는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바로 앞에 사는 사람도 산으로 가는 길인지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 길로 가면 정상인 봉수대로 다른 길보다 비교적으로 빠르게 갈 수 있고, 남천동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4. 편의시설


그리 높지 않은 부산진구를 대표하는 동네 뒷산이라서 오래전부터 지역주민들이 조성한 약수터가 드문드문 있었고 연산동 쪽엔 1번가의 기적 촬영 장소였던 물만골이 있으며 정상에서 바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 산복도로 정비사업과 동시에 도로가 놓아지면서 곳곳에 체육시설과 간이 화장실 등의 설비가 들어섰다. 전포동 코스에는 진구청이 꽤 공을 들인 지역 주민 건강사업으로 청소년 수련원과 소규모의 체육시설, 인조잔디구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등과 조그마한 비닐하우스 원예원도 있으며 중간에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 동네 주민들이 오래전에 만든 연죽정이라는 약수터가 하나 있다. 정상 쪽 벛꽃길 체육시설에 약수터가 하나더 있다. 그리고 화장실도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된다.
산정상에는 전망대와 쌍안경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봉수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정상에 지하로 파고드는 건물을 세우고, 거기에 카페를 운영 중이다. 커피와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카페가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조악한 카페가 아니라 제대로된 카페가 있다. 가격은 어느 카페보다 1,000~2,000원 정도 비싸다.
산 정상에는 송신탑이 있다. 2개가 있는데 하나는 KBSMBC가 공용으로 쓰는 송신탑이고 다른 하나는 KNN에서 사용하는 송신탑이다. 이 중 '''KBS'''와 '''MBC'''가 공용으로 쓰는 송신탑은 야간에 점등을 한다. 부산시내와 광안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간 점등 및 야경들. 통신 수단 측면에서는 어찌 보면 이 송신탑들이 봉수대를 계승한 셈.

5. 황령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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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탑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선시대 때 사용된 봉수대가 나온다. 장산에 위치한 간비오산 봉수대와 더불어 부산에서 사용된 가장 오래된 봉수대이다. 임진왜란 당시 1592년 4월 14일 오전 6시에 황령산 봉수대에 근무하던 배돌이가 전쟁이 벌어졌다는 봉수를 올렸다.
이 봉수대를 등지고 바라봤을 때 정면에서 약간 우측으로 광안리해수욕장이 보이고, 좌측엔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의 야경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봉수대에선 보이지 않지만 봉수대 올라가는 도로가를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봉수대 북쪽으로 동래의 야경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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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서면의 모습
이 때문에 황령산 봉수대는 아마추어 / 프로 사진사들이 찾는 단골코스 중 하나.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또한 부산불꽃축제때 바라보는 경치가 좋아 그즈음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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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야경
날이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볼수 있다. ##
더구나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의 패러글라이딩 동호회가 정모를 자주 가지는 지역으로 봉수대에 패러글라이딩 도약대가 설치되어있다. 날씨 좋은 날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동호인들의 라이딩을 보면 누구나도 글라이딩에 대한 로망이 생길 정도.
2008년까지는 봉수대만 달랑 있었고 봉수대 올라가는 길이 맨바닥에 비만 오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패여 있던 진흙탕에 포장마차들이 줄지어서 막걸리와 파전냄새를 풍겼지만 현재는 대대적인 보수를 통해 바닥을 정비하고 공원으로 정비가 되어 있어 벤치, 포토기, 전망대, 조명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는 카페도 있다. 그 아래에 공터에 가끔 미군들이 산악훈련을 오는 캠프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부산의 명소가 된 이후로 관광객들을 위한 조그마한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날씨 좋은 주말이나 봄, 가을철엔 자리잡기가 꽤 어렵다.
가을만 되어도 굉장히 쌀쌀하므로 여분의 옷을 챙기는 게 좋다. 낮아도 산 정상이라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기 때문에 여름에도 서늘하다.

6. 여담


  • 이 산 아래에 있는 어느 여고에서 빼빼로 데이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 산에 걸쳐있는 학교들이 하도 많고, 교가 마다 황령산의 무언가를 빨아먹는 통에 남아나는 정기가 없을 거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동의학원의 동의중과 동의공업고등학교. 유명한 산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항상 있는 이야기.
  • 2014년 황령산과 금련산 일대에서 구리 및 금 등 광맥이 외부로 노출되어 다시 광산 개발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으나 해당 구청과 동네 주민들의 반발로 현재 중지 상태이다.
  • 앞서 언급하다시피 정상의 봉수대 옆에 방송 송신탑이 2개 있어서 부산 시내[3] TV, FM 라디오, 지상파 DMB 송출의 키 스테이션 역할을 한다. 다만 라디오 중에서 불교방송, 극동방송, 국악방송은 이 곳이 아닌 영도송신소에서 송출한다. KBS, MBC는 영도에서 황령산으로 이전하였다. 여담으로 이 곳에서 송출하는 일부 FM방송은 대구경북 칠곡군에서도 수신 가능하다.
  • 이 산 밑으로 황령터널번영로를 구성하는 대연터널, 광안터널, 수영터널이 비집고 통과한다.
  • 이 산 골짜기 부분에 대동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 90년대 중후반 까지 젖소를 키우는 낙농가들이 경동아파트에서 남부경찰서 올라가는 길에 많이 있었으며 현재 낙농마을이라는 지명으로 흔적만 남아 있다.
  • 1992년 9월 27일 오전 황령산 송신탑 아래 등산로에서 용암 분출이 일어나 긴장감에 휩싸였다. 당시 용융된 암석의 분출로 인해 현장 주변의 나무들이 불타고 마치 분화구와도 같은 두 개의 작은 구멍이 생겼다. 당시의 기온은 섭씨 20도를 밑도는 선선한 날씨였지만, 분출지점의 온도는 수일 동안 섭씨 50도가 유지되었다.
당시에 부산 가운데에 있는 황령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부경대학교 박맹언 교수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당시 하와이대 화산연구소 소장 마이클 가르시아 교수가 당일 비행기로 방문했고, 부산시 부시장과 내무국장도 현장 방문을 했다. 마이클 가르시아 교수는 지표균열과 지진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초기 폭발 이후 점차 식고 있으며, 분출된 용암이 지하가 아닌 지상의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화산폭발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원인은 불명이지만, 한국전기연구원의 박승재 팀장은 송신탑 아래에서 용암이 분출되었다는 점과 지표면의 용암이라는 점 때문에 송신탑 근처의 지중 케이블에서 전기가 땅으로 흐르는 지락(地絡)사고로 용암이 발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었다.
  • 1999년 9월 10일 산사태가 일어났다.
  • 가끔 오류로 산에서 화재경보가 울릴때도 있다고 한다
  • 타짜에 나오는 비닐하우스 도박씬이 이 산에서 촬영되었다.

[1] 무덤이 없어서 그렇다.[2] 물만골 코스는 그나마 낫다.[1][3] 서부 지역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