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삼국지)

 

1. 후한 말의 군벌인 유표의 아들
1.1. 개요
1.2. 미디어 믹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
2.1. 미디어 믹스
3. 서진의 인물
3.1. 개요
3.2. 미디어 믹스


1. 후한 말의 군벌인 유표의 아들


劉琦
(? ~ 209)

1.1. 개요


후한 말의 군벌인 유표의 장남이자 유종의 형. 어머니는 진씨(陳氏).
유표와 닮은 풍모가 있어 평소 큰 총애를 받았지만 유종을 후계자로 지지하는 채씨 일가에게 미움을 받아서 유종이 하는 것은 다 감싸준 반면, 유기의 공적은 아무리 커도 묻혀졌고 작은 잘못이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났다고 한다. 안에서는 채부인이 밖에서는 채모가 선전에 열을 올리니 유표도 더 이상 유기를 신뢰하지 않게 되어 결국 강하태수로 내쫓기게 된다.
유기가 외지로 나가자 그나마 있던 유기의 지지세력도 자연 약해졌고 채씨 일족의 비방도 한층 계속되어 결국 유표가 유종을 공식적 후계자[1]로 삼음으로써 후계자 레이스에서 완전히 리타이어 당하고 만다.

유기는 그래서 제갈량을 데리고 후원을 걸으며 구경하고는 함께 높은 누각에 올라가 잔치를 베푸는 동안 사람을 시켜 사다리를 치우게 했다. 곧이어 제갈량에게 말했다.

'''“오늘 위로는 하늘에 닿지 않고 아래로는 땅에 닿지 않습니다. 말이 그대 입에서 나오면 제 귀로 들어갈 뿐이니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갈량이 대답했다. “그대는 '''신생(申生)이 나라 안에 있다가 위험해지고 중이(重耳)가 나라 밖에 있어서 안전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유기가 마음으로 크게 깨닫고는 몰래 외지(外地)로 나갈 계획을 꾸몄다. 때마침 황조(黃祖)가 죽어서 외지로 나가 강하태수가 될 수 있었다. 얼마 뒤에 유표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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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 제갈량전

다만 제갈량전의 묘사에 의하면 유기가 강하 태수로 나가게 된 것은 유기 스스로도 줄곧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에 중앙에서 유종과 후계를 다투다가 살해당하느니 차라리 변경으로 나가 자발적으로 퇴진함으로써 목숨이라도 건지려는 의도였던 모양. 제갈량전에는 제갈량이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문공(晉文公) 중이(重耳)의 고사를 들어 유기에게 알려주고[2] 유기가 깨달은 바가 있어 황조가 죽어 공석인 강하 태수로 자임해서 나간 것으로 나온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런 제갈량의 조언을 더 극적으로 각색함으로써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제갈량을 띄워주는 데 사용된다. 연의에서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기는 이런저런 시련을 당하고 있었는데, 유비가 유표를 보러 왔을 때 유비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이전에 비육지탄 사건으로 유표의 의심을 산 적이 있었던지라 망설였지만, 생각 끝에 "내일 작별인사를 공명에게 맡기겠다. 그러니 그에게 부탁해 보라"며 달랬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유비는 복통을 핑계로 공명을 유기에게 보내 자기 대신 작별인사를 하게 했다.
유기는 그가 오자 어제 유비에게 말을 들었던 터라 그를 보내주지 않고 보신책을 물었지만 공명은 남의 집안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유기는 공명이 공부를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여 "저한테 오래된 서적이 있는데 감정 좀 해주시겠습니까?"라며 미끼를 던졌고, 공명이 말려들자(연의에서 '''공명이 낚시를 당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그를 높은 누각으로 불러냈다. 공명이 책을 찾자 유기는 무릎을 꿇고 울며 매달렸다. 이에 공명이 화를 내며 가려고 했지만 사닥다리가 치워지고 없었다. 그럼에도 공명이 끝까지 말하지 않자 유기는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찌르는 시늉을 했고, 공명이 황급히 그를 말리면서 계책을 말해 주었다. 말해준 계책은 대략적으론 정사와 비슷하고 이후 강하태수로 가라고 조언해 준다. 이후 공명이 유기와 헤어져 돌아오자 유비는 시치미를 떼고 좋은 계책을 내었다고 칭찬했다.[3]
한편 유표는 유기가 공명에게 들은 대로 자진해서 최전방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마침 들어온 유비에게 그 까닭이 뭔지 알겠냐고 물었고, 유비는 자기가 꾸민 일이기에 "첫째 아드님께서 손권을 막겠다는데 그 의기가 가상하지 않습니까."라며 유기를 띄워주면서 허락하게 했다. 덕분에 유비와 유기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유기는 채부인을 비롯한 채씨 일족의 음모를 피했다고 한다.
전략과 후한서에 따르면 이후 중병에 걸린 유표를 문병가지만, 혹시나 유표가 후계자 선택 과정에서 마음이 바뀔까봐 우려한 채모와 장윤에게 방해를 받아 병문안은커녕 들어가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임지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이를 듣고 가슴아파했다고 한다. 하지만 들어갔다간 채모와 장윤, 채부인이 무슨 술수를 꾸며서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결과적으론 다행.[4] 유표가 죽고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주전파의 대표인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에게 저항한다.
원래 후계에서 점점 밀려날 때부터 유종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유표가 죽는 시점에서는 둘 다 서로를 원수로 여겼다고 한다. 후한서 유표열전에 따르면 이후 유기가 유종과 채모 일당에게 후의 인수를 받자 분노하여 땅에 내던지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려 했는데 조조의 침공으로 강하로 회군했다. 그 후 유비가 장판파에서 쫓겨 도망칠 때 배를 끌고 나타나서 협동체제를 굳혔다. 적벽대전 때는 유비군의 병사로 1만 명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5] 정사 삼국지 선주전 주석 한위춘추에 따르면 어떤 이는 유종과 형주의 관원을 위협해 남쪽 강릉으로 데려가 농성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유비는 '유형주(劉荊州, 형주목 유표)가 죽을 때 내게 고아를 맡겼으니, 신의를 저버리고 스스로를 구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오. 죽은 뒤 무슨 면목으로 유형주를 만나겠소'라고 거절한다. 기록으로 보면 유표는 유비를 아들들의 후견인 격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일 유기와의 합류는 유기 입장에서도 유비의 합세로 더 버틸힘이 생겼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후한서에 따르면 조조가 이후에 적벽(赤壁)에서 패하고 유비는 표를 올려 유기를 형주자사로 삼았는데 다음해(209년)에 죽었다. 유기의 세력은 자연스레 유비가 흡수한다.
연의에서는 남군을 오가 빌려준 것이 아닌 유비가 뒤통수로 얻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숙이 형주 돌려달라고 징징대러 왔을 때 제갈량에 의해 협상카드로 사용되기도 했다.[6] 그런데 형주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병사한 것에서 따왔는지 이때는 분명 적벽대전까지만 해도 직접 군대를 지휘할 정도로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새 오늘 내일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골골거리면서 나온다. 그리고 결국 얼마 안 돼 진짜 죽는다.
결국 후계자 싸움에서 발려서 쫓겨났다가, 유비와 협력해서 조조군을 몰아내고 형주자사가 되는 거까지는 좋았지만 그 덕도 보기 전에 죽은 셈. 결정적으로 조조가 '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7] 비교 대상이 손권이다. 본래 유표에게 줄곧 총애를 받고 효성스러웠다며 평가되던 반면에, 당시 사람들이 유종을 도왔던 채씨 일가를 비웃고 경멸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딱히 능력이 특출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특별한 결격 사유도 없었고 나름대로 평판도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조조 입장에서 유기는 자기 숙적 유비를 도와준 괘씸한 놈이니 띄워줄 이유도 없으니 폄하했다고 볼 수 있다.

1.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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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10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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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조조의 개돼지 발언이 반영되어서인지 삼국지 시리즈에서 능력치가 엄청 우울하게 나온다.
삼국지 시리즈에선 전형적인 문관형 쩌리무장으로 등장한다. 정치력, 매력이 70대일 뿐. 특히 무력은 병약했던 점을 반영하여 한 자리대인 게 보통. 강하태수로 밀려났지만 딱히 손권에게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유비를 지원한 걸로 볼 때 통솔력마저 낮은 건 너무 박한 대우가 아닌가 싶다. 그나마 지력이라도 80대 이상이면 글쟁이이라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니 글쟁이만도 못하게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6/무력 10/지력 56/정치력 72으로 전형적인 내정용 문관. 하지만 수군 최강 병법인 '''투함'''과 배반이 있어서 투함 띄우는 용도로 쓰인다. 투함이 워낙 좋아 수상전에는 쓸 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1/무력 9/지력 54/정치력 73/매력 73에 특기는 상업, 명사, 제독. 명사 특기가 있어서 어느 세력이든 고용만 해놓고 방치해도 밥값은 하며 정치력은 괜찮아서 내정셔틀로 쓸만하다. 통무지가 암울한데다 본작은 수전의 비중도 적어서 전투용으로는 폐급.
삼국지 12에서는 연의에서 적벽 대전 이후에 병에 걸려 쇠약해진 모습으로 나온 점을 반영해서인지 일러스트 마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왔다. 자세히 보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기가 병약한 체질이라는 기록은 없고 그저 단명한 걸로 병약한걸로 묘사한다면 단명의 저주로 유명한 오나라 측 다수의 무장들이 병약하다는 논리가 되기에[8] 유기의 모습을 병약하게 묘사한건 지나친 면이 있다. 전법은 전방어강화로 유기치고는 좋은 전법이기는 한데 유기의 전투 능력치가 매우 좋지 않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2/12/63/71. 특기는 상업 3, 문화 3, 교섭 2, 수영 3. 전수특기는 상업으로 전법은 공격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1, 무력 10, 지력 62, 정치 71, 매력 73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과 지력이 각각 1, 무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개수, 소욕, 허약, 주의는 예교, 정책은 지역진흥 Lv 3, 진형은 방원, 학익, 전법은 연노, 시람, 친애무장은 유비, 혐오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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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등장하여 유비랑 제갈량에게 도와달라고 징징대다 일찍 죽는다.
삼국지 공명전 windows95판에서는 유종이 등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기가 등장하고 대화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입촉 이벤트 때는 유괴 일러스트가 유기의 얼굴로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딱 한번 대사하느라 등장하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 등장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
삼국지 조조전 3장 장판파전투에서 퇴각하는 유비가 강가에 당도하면 제갈량과 함께 구원군으로 등장하는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등장이다. 병과는 궁기병이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한층 더 암울해져서 유비와 제갈량에게 형주를 집어 삼키기 위한 장기말 취급을 당하며 이용 당하고,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하루하루 꿈도 희망도 없는 하루를 보내며 주색만 즐기다가 몸이 허약해저 요절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오죽하면 한 색녀와 성관계를 가지다가 '어차피 거지와 같은 인생. 거지의 움막 따위는 불태워 버리는게 낫다'라며 심정을 토로하고, 그 여자도 '가엾으신 분......'이라며 유기를 동정할 정도.
'고우영 삼국지'를 베이스로 한 배철수의 만화열전 '고우영 삼국지'에서도 행보는 마찬가지인데, 여기선 '''샤우리'''라는 어마어마한 거유의 육체파 미녀와 주색을 즐기다 양기를 너무 많이 빨리는 바람에 그만 요절하고 만다(...). 성우는 조운, 헌제, 손권등을 연기한 송준석.
진순신의 제갈공명전에는 나름 능력과 야망을 가진 비운의 적장자로 등장한다. 제갈량과의 상담도 나름 유표세력의 적장자와 유비세력간의 정치적 결탁을 상징하는 중요한 회의로 묘사되고, 강하태수로 부임하는 것도 진문공의 고사를 인용하며 개인적인 도주가 아닌 황조의 군사적 기반을 자기에게 끌어들이기 위한 고도의 술책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나중에 유표 사후에 채씨 세력이 그를 회유하려 하자 사자에게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폭풍간지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유비는 호의를 가지지만 제갈량은 살짝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단명하는 결말은 동일하고 제갈량은 이를 매우 안타까워 하는 것으로 나온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시무라 신파치로 등장했다. 신야2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는 모습으로 선행 등장했다.
신야2 전투 편에서는 유표의 요청들을 얼버무리고 돌아가는 유비를 붙잡고 채부인이 동생 유종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자기를 죽이려 한다며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제갈양의 서신을 받고 황조의 후임을 자청한 뒤 강하로 떠났다고 묘사된다.
적벽 전투 편에서는 먼저 출발했던 관우를 받아들인 뒤 조조의 추격대에 쫓기던 유비 세력 나머지를 픽업하는데 성공했다. 강하로 가던 중 괴선박이 나타나 길을 막자 자세히 확인하라고 명하는데, 유비가 조조의 정탐선일 것이라며 주포를 발사하라고 하자 소세지 자르는데 꽃등심 가위를 쓸 생각이냐며 급하게 말리는 개그씬도 보였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동관 전투 편에서 죽었다고 언급됐다. 죽고 나서 유비가 (축내는 밥이) 아까운 천하의 '''잉재'''라고 주유에게 말했다.
제갈공명 와룡전에서는 2시나리오에서 등장하고 난이도가 쉬운 약소국 세력으로 등장한다. 적 세력인 조조를 이용해서 유비 세력 멸망시키고 저장과 불러오기 노가다를 이용해서 사기캐릭터 제갈량과 방 통그리고 손건을 얻으면 제갈량과 방통은 적의 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손건으로는 원하는 외교 전략을 사용하면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천항로에서는 순욱, 하후연, 조인, 우금 등이 이끄는 조조군에게 쫓기는 유비 일행을 한진에서 관우와 함께 지원하여 조조군을 퇴각시켰다고 언급된다. 본인 입으로 밝히기를 제갈량의 조언으로 강하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하며, 유종일당이 조조에게 형주를 들어서 바치고 유비를 곤경에 빠뜨린 것에 대해 유비에게 눈물로 사죄하며 유비를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맹세를 하지만 더이상의 출연은 없다. 참고로 작중 출연하는 오리지널 캐릭터인 유비의 맏아들 '유기 공덕'과는 별개의 인물로 한자도 劉冀로 다르다. 이 유비의 아들은 위의 한진전투에서 유비의 대오각성 일장연설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다가 조조군에게 추격당해 화살과 칼에 맞아 죽는다.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서도 유표의 아들로 등장한다. 거기다가 '''이 작품 최고의 승리자'''.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신삼국에서는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할때 부터 등장한다. 연의의 내용처럼 유표의 사망이 가까와 졌을 때, 유비의 조언을 통해 누각에서 공명을 낚아서 계책을 듣고 강하 태수로 가게된다. 드라마에서는 심지어 이 누각 에피소드가, (전투장면이 생략된) 박망파 전투와 동시간에 이뤄진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



劉基
(184~232)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 유요의 장남으로 자는 경여(敬輿).
197년에 14살의 나이로 부친의 상을 치루면서 곤경과 고초를 겪어 숨어 살아 도리를 살폈지만 슬픔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여러 동생과 함께 살면서 항상 밤에 자고 일찍 일어나 처첩들도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드물었으며, 여러 동생들이 존경해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함부로 교류하지 않아 문중에 잡다한 빈객이 없었다고 하며, 모습이 아름다워 손권이 그를 아끼고 공경해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자 동조연으로 부름받았다가 보의교위, 건충중랑장이 되었다.
220년에 손권이 오왕이 되자 대사농이 되었으며, 한 번은 손권이 연회를 베풀 때 우번이 술에 취한 척해 땅에 엎어져 손권이 주는 술을 받지 않다가 손권이 떠날 때 쯤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이에 화가 난 손권이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고 하자[9] 오직 유기만이 손권을 끌어안고 손권에게 간언해서 죽음을 면하게 했으며, 손권 또한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술취해서 한 행위를 반성하게 된다. 이때 한 말을 대강 요약하자면 손권이 ''조조도 공융이 맘에 안 들어서 죽였는데 난 왜 이놈을 죽이면 안 된단 말인가?'' 라고 하자, 유기가 ''주군께선 평소에 옛 성현들을 본받겠다고 하셨으면서 왜 조조가 저지른 짓을 답습하려 하십니까?''라고 대답한다.
또한 손권이 배에서 연회를 베풀 때 배의 누각 위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자 손권은 오로지 자신과 유기에게만 덮개를 덮으라고 명령할 정도로 손권에게 총애받았으며, 낭중령으로 옮겼다가 손권이 황제가 되자 광록훈이 되어 상서의 업무를 나눠 맡다가 향년 49세로 사망했다. 후에 손권이 아들 손패를 유기의 딸에게 장가보내면서 좋은 집 한 채를 하사해 사시사철로 은혜를 내렸다고 하며, 그의 동생인 유삭, 유상은 기도위가 되었다고 한다.

2.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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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력 33, 무력 35, 지력 60, 정치력 69, 매력 79이며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올리면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다. 개성은 명성, 교화, 소욕, 주의는 왕도, 정책은 세출개선 Lv 3, 진형은 방원, 투석, 전법은 구축, 친애무장은 손권, 장온,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184년, 몰년은 232년까지 되어있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그랜드 캠페인에서 유요 휘하의 미성년으로 설정되어 203년부터 임관한다. 유형은 선봉장, 칭호는 전사, 특성은 영리함, 야심참, 차분함,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37, 결의 50, 책략 36, 본능 80, 권위 58.

3. 서진의 인물


劉旂
생몰년도 미상

3.1. 개요


서진(西晉)의 장군으로 270년에 양주에서 호열독발수기능과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사마량의 명령으로 경염과 함께 이를 구원하는 군사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아서 군법대로라면 참수당해야 했는데, 사마량이 자신의 책임으로 물어서 유기는 살아날 수 있었다.
사마염이 조서를 통해 유기는 깊게 나아가 지름길에 이를 능력이 없고 그가 갑자기 도망쳐와 머물러 앉아 호열이 다시 패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 참수당해야 마땅하지만, 그 죄가 유기에게 있지 않다면 마땅히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 했고 사마량은 면직되어 작위를 빼앗겼다.

3.2. 미디어 믹스


삼국전투기에서는 보노보노포로리로 등장하며, 독발수기능이 크르릉하는 것을 보고 땀을 흘리면서 머뭇거려 군사를 움직이지 않아 호열이 죽는 것이 나온다. 유기가 울면서 죽일꼬야?라고 묻는데, 사마량이 자신의 책임을 돌리고 관직을 빼앗기자 괜히 저 때문에 백수가 되셨다고 말한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291년 팔왕의 난 시나리오에서 사마량 휘하의 초기 장수로 235년생으로 설정되어 287년부터 임관한 것으로 되어있고, 291년 시점의 나이는 56세. 인간관계는 사마량과는 친구, 사마구, 사마수, 사마양과는 지인으로 긍정적인 관계이다.
유형은 감시자, 칭호는 호위대, 특성은 자긍심 있음, 신념이 굳셈, 차분함,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101, 결의 58, 책략 53, 본능 31, 권위 40.
[1] 사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사(嫡嗣). 정부인의 소생으로 대를 이을 아들의 의미이다.[2] 중이의 아버지인 헌공(獻公)의 애첩인 여희(驪姬)는 자신의 친아들인 해제(奚齊)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헌공이 자식들을 의심하도록 음모를 꾸몄는데, 자신의 몸에 꿀을 발라 벌들이 달려들게 하고는 형인 신생(申生)이 벌을 쫓고 여희를 지키려는 걸 겁탈하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에 분노한 헌공이 신생을 베어버리자, 중이는 도망을 가서 살아남아 뒤에 즉위하여 패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제갈량은 채부인을 여희에 비유하며 유기에게 중이처럼 도망가서 몸을 보존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3] 이는 유비에게도 나중에 좋은 일이 되었는데, 나중에 장판 전투에서 조조군에게 쫓기다 도망친 곳이 강하였고 실제로 유기가 수군을 이끌고 마중을 나왔다.[4] 사실 채씨 일족입장에서도 그냥 성에 불러서 몰래 죽여버리면 간단한 일이긴 했다. 어찌되었건 유표가 제대로 골골해졌으니 몰래 죽이고 숨기면 알 턱이 없다.[5] 본인이 직접 참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6] 노숙이 형주를 돌려달라 하자 제갈량은 "우리는 유표의 유지를 이어받아서 유기가 형주를 지키는 걸 도울 뿐이다."라고 주장했고, 노숙은 '유기는 강하에 있지 않나?'라고 따지자 몸져누웠던 유기를 불러내 인사를 시켜 노숙의 입을 다물게 한다. 이에 노숙은 유기가 죽으면 형주를 차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죽은 후에도 유비와 제갈량은 계속 다른 핑계를 대면서 반환을 거부했고 이는 나중에 형주 공방전의 원인이 된다.[7] "자식을 두려면 손중모(손권) 같은 아들을 두어야지, 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만도 못하다!"[8] 심지어 여몽은 평소에 지병이 있다는 기록까지 있지만 아무도 병약한 인물로 보지 않는다.[9] 손권은 술 취했을 때 망나니가 되는 것으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