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식
[clearfix]
1. 개요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의 1군 타격코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신일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와 상무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1996년에 신일고 시절에 2차 8순위 지명을 받았는데, 사실 신일고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997년의 일이니, 그는 그 시절의 바로 직전에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셈이다. 그래도 고려대학교로 간 것을 보면, 고교 시절 활약은 괜찮았다. 대학에서는 주로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해서 2군 홈런왕을 차지하였다. 프로 경험이 없는 타자가 2001년 퓨처스리그 홈런왕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리고 각종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한 경력까지 이를 인정한 현대 유니콘스도 재정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계약금 1억 6,000만 원을 주고 팀에 입단시켰다.
2.2. 프로 선수 시절
[image]
현대 유니콘스 시절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현대 유니콘스는 사기급 라인업을 자랑하는 강팀이었기에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클리프 브룸바라는 거물 외국인 선수가 있었고, 이숭용도 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외야로 가자니, 여기에도 심정수, 전준호, 송지만 등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결국 계속해서 2군에만 머물면서 실력이 정체되었다. 아주 가끔가다 1군 선발출장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1군에서 살아남기에는 수비가 너무 수준 이하였다. 그래도 대타로는 꽤나 괜찮은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꾸준하게 프로 엔트리에 남을 수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대타 홈런 3위로 9개를 기록했다.[3]
[image]
넥센 히어로즈 시절
과거 영광의 멤버들이 대부분 흩어지고, 팀도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후인 2010년에야 비로소 기회를 많이 부여받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 1군 107경기 300타석에 출전해 9홈런 30타점에 0.287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8,000만원의 연봉도 받았다. 2,700만원 오른 성과.
2010 시즌을 끝으로 고령의 이숭용이 주장직에서 사임하자 코칭스텝의 결정으로 주장직에 올랐다. 이숭용 외에도 송지만이라는 훌륭한 베테랑이 있었지만, 역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보다 더 젊은 강병식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1 시즌에는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일단 2군으로 내려간 상황. 첫 주전을 차지한 작년에도 좋은 활약을 해 올해도 기대를 받았지만 4월까지의 기록이 2할 타율도 안 되는 처참한 성적을 찍어 버렸다. 그나마 출루율은 꾸준히 3할을 유지했던게 다행. 그래도 5월 3일 아킬리노 로페즈를 상대로 3:3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작렬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5월 들어서 타율은 2할까지 끌어올렸긴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이후 다시 2할도 안되는 타격감을 보이면서, 타율 0.174로 2011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성적이 워낙 처참한것은 물론이거니와 1군에 잘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왜 강병식이 주장이 됐지?' 하고 의문을 가지는 넥센 팬들도 많았다.
2011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게 될 예정이었지만 팬들은 강귀태와 강병식보다 다른 선수를 데려오는 걸 희망하고 있었다. 송신영이라든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2011년 시즌에 거하게 삽질을 했기 때문인지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건 강귀태도 마찬가지. 송지만, 김수경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에 '''이택근'''이 돌아오면서 그의 존재는 다시 잊혀져갔다.
2012년에도 주장이었지만 2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잠시 1군에 올라왔다가 결국 7월에 주장을 이택근에게 물려주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구단과 합의하여 8월 11일 이후로는 남은 시즌을 2군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인성 그리고 성실함으로 선수들과 코칭스텝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팀 특성상 선수 이동이 대단히 잦아 팀 캐미 유지가 힘든데 강병식은 성적은 부족했을지언정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도록 해 주었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넥센에 온 심수창, 박병호와 자주 대화하면서 무리없이 팀 분위기에 융화시켰다. 성적으로는 뛰어난 족적을 남긴 야구선수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야구인이라는 평가에는 부족함이 없다.
3. 지도자 시절
2011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을 위시한 코칭스태프가 꾸준히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한 선수 생활에 강한 미련을 갖던 강병식은 2012 시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 갔지만, 같은 포지션의 1루수 박병호가 대단히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지명타자로 나온 오윤과 오재일이 시즌 초까지만 해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결국 1군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못하고 2군에서 전전하자 주장직을 이택근에게 넘긴 뒤, 얼마 후 구단과 합의하여 플레잉 코치 전환을 선언하였다. 커리어는 부족했지만, 주장과 코치직을 먼저 제안받은 걸 보면 노력과 인품은 인정받은 셈.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하고 정식으로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2군 수위 타자들이 1군으로 승격 및 트레이드된 상태에서도 2군의 타격 성적이 최상위권을 랭크하고 있자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2군 선수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서 지도를 잘 한다는 증언이 2군 경기를 직관한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으며, 선수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는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실 선수 시절에도 후배들에게 타격에 관한 조언을 자주 한다는 인터뷰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누가 뭘 조언해 ㅋㅋ'''라며 까이곤 했지만 은퇴 후에 타격코치로 부임하자 '''병식매직''' 폭발! 넥센 팬들 사이에서 드디어 적성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image]
2013년 7월 7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유난히 많은 2군 출신 선수들이 출장했는데, 스승의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맹타를 휘둘렀다.
사고를 치거나 부상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고자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간 , 김지수, 안태영 등이 맹타를 휘두르는 활약을 보여줘 "병식매직"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거기다 전전 캡틴이 약밍아웃을 해 팀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과 대비되어 혀갤에서는 '''내 마음속의 영구결번 강병식'''이란 드립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2014 시즌 후 1군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군 타격코치로는 송지만이 선임됐다.
[image]
2016 시즌 후 심재학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자, 1군 메인 타격코치가 됐다.
2017 시즌 신인왕 이정후를 배출하고, 개인이나 팀이나 타격 스탯 상으로는 중상위권을 꾸준히 마크하고 있지만, 찬스에서 심각하게 물타선이 되는 점으로 인해 선수 개개인을 지도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으나, 팀 전체의 타격흐름을 조율하는 1군 타격코치로서의 면모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인게, 강병식이 1군 메인타격코치가 된 2017년 이후 넥센타선이 개개인의 성적은 그럴듯 하나 찬스상황에서 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장 목동보다 넓다는 고척돔으로 옮기고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팀 장타력도 크게 줄었다는 2016년에도 팀 타율 2할 9푼, 팀 득점권 타율 3할 7리[4] 를 기록했는데, 2017년에는 팀 타율과 팀 득점권 타율이 모두 2할 9푼[5] 이다. 거기에 잔루가 심각하게 증가했는데, 2016년과 17년 사이 팀 총 타석 수는 10여개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잔루가 200개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출루시킨 주자들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2016년 같이 50홈런 치는 4번 타자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6] , 오프시즌 중 선수단에 그 외에 다른 심각한 전력누수가 일어난 것이 아닌데도 이렇다.
2018 시즌 박병호가 돌아왔음에도 찬스상황에서의 타격 부진[7] 은 여전하며, 4월 초 넥센이 기아와 롯데[8] 를 상대로 졸전[9] 을 펼치며 5연패를 하자, 그 원인이 된 타선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감독과 함께 비판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타선이 다시 맹타를 휘두르자 욕이 줄어들었다.
2020시즌엔 9월 이후 타자들이 단체로 삽질을 거듭하다 보니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지난 19시즌의 좋은 타격 성적은 히어로즈 역대 최고의 타자 용병인 제리 샌즈 빨이라고 폄하당하는 중.
4. 연도별 성적
5. 기타
- 별명은 뵹식씨, 강캢 등이 있다. 뵹식씨는 '봉식씨~' 하는 사채 광고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안습.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 한정으로 주자분쇄기, 주자살인마 라는 별명도 2010 시즌 자주 쓰였다. 루상에 주자가 없으면 타격이 김현수급이지만 만일 주자가 나가있으면... 또 못할 때는 강병신이 된다. 하필 초성도 같고, 그가 주장직을 맡았을 때는 '강캡 + ㅄ'이 되어 강캢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가 된 후 넥센 히어로즈 2군이 불빠따를 앞세워 2군을 평정하자 갓병식이란 별명도 자주 쓰인다.
- 강병식의 현역 시절 응원가 '괜찮아요'는 안태영이 이름만 바꿔서 물려받았는데, 안태영이 2군에서 있던 시절 강병식이 아껴줬다고 한다. 둘이 수비 포지션도 비슷하다.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고.
6. 관련 문서
[1] 마해영의 경우처럼 프로 지명을 받은 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먼저 수행한 뒤 팀에 입단했다.[2] 넥센 히어로 안타 강병식! 안타 강병식! 안타 강병식! 넥센 히어로 안타 강병식!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강병식!(...)[3] 1위는 이재주의 20개.[4] 팀 타율은 2위, 팀 득점권 타율은 1위이다. 팀 장타력이 떨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넥센이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원동력 중 하나.[5] 팀 타율은 4위, 팀 득점권 타율은 7위이다. 다만 1위팀인 기아를 제외하고는 2위부터 7위까지 차이가 6리 정도고 2할 9푼이 그렇게까지 낮은 수치는 아니긴 하지만, 작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특히 9월 이후 이기고 있던 경기를 추가점을 못내서 뒤집힌 사례가 폭증함에 따라 이 부분이 훨씬 뼈아프게 다가온 것이 사실.[6] 물론 이 부분은 현재진행형 이었으므로 참작의 여지는 있다.[7] 팀 득점권 타율이 4월 12일 현재까지 2할 2푼 4리밖에 안된다. 당연히 꼴찌[8] 4월 11일 전까지 2승 11패로 그야말로 최악인 상태였다.[9] 4월 12일 경기에서는 선발투수 송승준이 허벅지 통증으로 2회 1사 후 급작스레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7회 2사 김하성의 안타가 나올때까지 퍼펙트로 꽁꽁 묶였다. 경기는 결국 12:0 완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