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훈
1. 소개
前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이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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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고를 졸업하고 2006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4라운드(전체 3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6년 현대가 얻은 희대의 대박 드래프트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선수다.[1] 2군에서 1년 담금질을 거친 후, 2007년부터 본격적인 1군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부상으로 인해 주춤한 박준수를 대신해 팀의 주축 사이드암 계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계투로서 맹활약하면서 한 때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지만, 결국 신인왕은 임태훈에게 돌아갔다. 대신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야구대상에서 신인상을 타기는 했지만. 이 당시 성적은 4승 7패 9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은 3.21. 문제는 당시 조용훈은 73경기에 출장해 81이닝씩이나 던졌다는 것이다. 이 혹사로 인해 조용훈의 선수생명은 사실상 끝이 난다. 박명환 방송 출연분에 따르면 이해 이렇게 구르고도 빡빡 우겨서 연봉 4천에 재계약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2007년 무리한 덕에 그 뒤로 큰 폭의 발전은 이루지 못한채, 그냥저냥 하는 중간계투 정도로만 활약했다. 2009 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했다. 박준수의 재기와 마정길의 합류가 아니었다면 팀의 사이드암 계투진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2011년 말 제대했지만, 2012년 내내 팔꿈치 문제로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에만 매진했다. 사실 상무에서도 팔꿈치 문제가 있어 수술을 받고 전출되었다.[2]
2013 시즌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빠졌고, 퓨처스리그에서만 뛰었다. 몸 상태로 인해 별로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2013 시즌 후 마무리 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야구대제전에 참가했다. 모교인 성남고는 결승에서 광주동성고에 패배했다.
2013 시즌 후 임의탈퇴 공시됐다. 사유는 재활 목적인 듯. 병원에서 팔꿈치 치료 중인 조용훈 그러나 이후로 해가 세 번 바뀌도록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재기를 포기한 듯하다.
3. 연도별 성적
4. 그 외
- 별명은 조잣[3] , 그리고 조감히.
- '조감히'라는 별명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비롯되었다.
마운드에서 집중타를 맞고 강판하면 덕아웃에서 오른쪽 주먹으로 벤치를 쿵쿵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네가 '''감히''' 내 공을 쳐? 내 공을 쳤단 말이야? 내 공을 치다니!" 그럴 때면 같은 팀 동료들도 그 곁에 가지 못한다.
- 최근에는 프로동네야구 PDB에 고수를찾아서 1편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구속 및 회전수 측정이 가능한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된 특수 야구공을 실험해 보는 영상에 출연했다.
- 이택근이 윤진서와 사귄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았다고 한다. 광주 원정경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구단 버스 앞에 아우디 승용차가 있길래 빤히 쳐다보다가 이택근한테 입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조용훈과 선배들이 아무도 룸메이트를 하고 싶지 않아해서 여러 차례 룸메이트가 바뀌었다. 황두성, 정민태, 그리고 화곡초등학교 20년 선배인 김동수까지. 김동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객실 커튼을 걷어버려서 술 먹고 늦게 잠자는 조용훈이 고생했다고 한다.
- 강진 2군에 있을 때 리그 오브 레전드에 열중하자 당시 채종국 코치가 '저 xx는 프로게이머 준비하는 xx냐?'라는 말을 했다고..
- 송신영이 조용훈을 부르는 별명은 풜랭이다.
- 은퇴 후 코치가 된 송지만은 현역 시절과 똑같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중한다고 했다.
- 중간계투로 올라왔는데 제구난으로 위기에 몰리자 유격수를 보던 강정호가 전라도 사투리로 '병x! 가운데로 못 던지냐~'고 말하자 그럼 너가 피쳐해 내가 숏 볼테니까 발끈했다고 한다.
- 받은 계약금으로 현대 쏘나타를 구매하고 난 뒤 남은 돈이 없다고 한다.
-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박명환의 보험 사례[4] 를 들으면서 보험 영업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 업소에서 일 한적이 있다. 손님들 사이에서 어깨깡패 별명이 있었다고.
- 전국 정상권의 사회인야구팀에서 뛴 적이 있다. 본인의 야구를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누가 어줍잖게 훈계를 하자 '야구 좀 아세요?'하고 대들고 서로 싸웠다고.
- 박병호의 고교 1년 후배다. 박병호는 후배들을 혼날 때 후배들이 다쳐서 잘못될까봐 야구방망이 대신 본인의 전완근으로 때렸다고. 반대로 3년 선배 박경수는 코칭스태프, 학부모들 아랑곳 하지 않고 방망이로 후배들을 혼냈다고 한다.
- 이장석을 싫어하고, 이장석도 본인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다. 이장석의 특유의 보여주기 식 행동(예, 팬들과 함께 관람하며 환호하는 컨셉)이 싫었다고.
- 연봉고과 1위였으나 큰 폭의 연봉 인상은 없었다고 했다. 당시 단장은 박노준. 고작 10% 오른 1천만원만 올려준다고 했다...... 당시, 조용훈의 성적을 보면 100% 인상률의 폭이 컸다. 연봉 잡음도 그 해 비슷하게 계투로 나와 좋은 성적을 기록한 타팀의 임태훈과 매우 비교 되었다.[5]
- 현대가 팀 스폰서를 관둔 뒤 팀 사정이 어려워져서 유니폼도 경기 직전에야 나오고, 팀에서 준 음식으로 라면과 냉동 고기가 나왔으며 꼭 타이어 고기를 씹는 느낌이었다고.
-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 도중에 공항 흡연실에서 김세현(김영민)과 담배를 피다가 김재박 감독에 걸렸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집합이 걸렸다.
- 임선동이 김영민의 머리를 만졌다가 '선배님 제 머리는 만지지 마세요'로 반항하자 또 집합이 걸렸다. 이번에는 김세현만 잘못한건데 조용훈 너도 나와 그래서 선배들에게 맞고 맞았다는 티를 일부러 코칭스태프들에게 내려고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다가 선배들한테 더 혼났다.
- 임선동의 입담이 그렇게 좋다고 칭찬했다. 짜파게티를 엄청 많이 먹는다고.[6]
- 친구 황재균은 입단 동기지만 클럽에 가도 음료수만 마시고 조용히 있어서 본인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 KT 입단 테스트를 갔는데 러닝을 하도 많이 시켜서 코오롱 마라톤[7] 부인줄 알았다고...ㅋㅋㅋ 피칭을 해야 하는데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던질 수 없었다고 했다.
- 외국인 용병들이 붙인 별명은 크레이지 레그. 다리를 떨면서 피칭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8]
- 이순철 당시 수석코치가 다카쓰 신고를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했는데 배운 건 별로 없고 술을 진짜 많이 마셨으며 그래서 통역이 힘들어했다고 한다.[9]
- 본인 말로는 성남고 짱이라는데 그래놓고는 정작 자신이 싸움썰을 풀면 이긴 기록이 한 번도 없어서 시청자들 입장에선 허세로 미는 거 아니냐는 의견. 왠지 모르게 안일권과 비슷하다. 특히 강정호와 맞짱을 깠는데 일방적으로 당했고, 화장실에서 분해서 울었다고 썰을 풀었다.[10] 자신이 강귀태한테 개기자 강귀태가 자길 안 건드렸다는데, 문제는 그 강귀태가 겉모습과는 딴판으로 야구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현피왕이라서 이를 들은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점(...).
- 의외로 야구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방송에서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언급하거나 유튜브로 마구마구를 하는 영상을 보여주거나 한다.
- 이현승, 장원삼하고 술 마시다가 오승환이 소개팅 명목으로 아는 여자들을 데리고 합석했는데, 술에 너무 취해서 여자한테 '한 잔 따라 봐'라고 헛막말을 작렬했다고 한다. 유흥업소 접객원으로 착각하고 저지른 대형 사고였으나 여자분은 아니라고 하고, 옆에서 장원삼이며 이현승이 말리는 데도 사태 파악 못하고 정신 못 차렸다고. 다음 날 무지 욕 얻어머먹고 냉대당했는데 어찌저찌 풀긴 한 듯하다.
- 현대-히어로즈 시절의 1군과 2군을 오가던 정명원 투수코치가 가장 아꼈던 선수이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1] 당시 현대는 강정호, 김영민, 황재균, 유선정, 유재신, 신현철을 이 드래프트에서 모두 뽑았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2017년 김세현과 유재신이 트레이드로 기아로 이적한 걸 끝으로 모두 은퇴하거나 흩어졌다..[2]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입대 동기인 이동훈에게 맞아 고막이 터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동훈은 동해지역 부대에 일반병으로 전출됐다고 한다.[3] 싸이에 '수정과 잣같애' 라는 말을 쓴 것에서 비롯됐다.[4] 연봉 삭감으로 인해 보험금을 납입할 수 있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중도해약으로 이미 납입한 보험금의 대부분을 못 돌려받게 됐는데 야구계 출신 보험설계사가 또 보험가입을 권유했다는 일화[5] 2007년도 임태훈은 신인상을 받았다. 2위 투표는 조용훈이였다. 임태훈 이후로 순수 고졸 1년 풀타임 신인 선수가 신인상을 받기 까지는 무려 10년이나 걸렸고 투수로는 12년이 걸렸다.[6] 언젠가 연락이 닿으면 방송에 나왔으면 하는 야구팬들이 많았다.[7] 황영조, 이봉주 등 많은 마라토너를 배출했다.[8] 그 별명의 창시자는 클리프 브룸바.[9] 생맥주 이야기를 그리 했다고... 다카쓰 신고는 항상 경기 후에 먹는 버릇도 있고 좋아하니 일본 시절에도 저런 버릇이 있었다.[10] 싸움은 조용훈이 빌려준 플레이스테이션 CD를 강정호가 주지 않자 달라고 했는데 그날 기분이 안좋은 강정호가 선빵을 날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조용훈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화날수 있는 일. 김세현, 신현철, 황재균이 맞짱 심판을 봤다고.. 현대 2군시절 플레이스테이션을 자주 했었다고 한다.[11] 셋 다 현대에 있던 시기는 다르지만, 팀의 필승조로 있었다. 정작 조용준은 조용훈이 2007년 1군에 있을때 1군에 없었고 재활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조웅천은 당시에 SK에서 뛰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