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용

 


'''이숭용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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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2000'''
'''2003'''
'''2004'''


'''2007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0번'''
장덕영(1992~1993)

'''이숭용(1994~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0번'''
팀 창단

'''이숭용(1996~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0번'''
팀 창단

'''이숭용(2008~2011)'''

오재일(2012)
<color=#373a3c> '''KT 위즈 등번호 71번'''
팀 창단

'''이숭용(2014~2018)'''

이강철(2019~ )


'''kt wiz 단장'''
'''이숭용(李崇勇)'''
'''생년월일'''
1971년 3월 10일 (53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서울용암초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
'''포지션'''
'''1루수''', 외야수[1]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4년 2차 1라운드 지명 (전체 1번,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4~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1)'''
'''지도자'''
kt wiz 타격코치 (2014)
kt wiz 1군 타격코치 (2015~2016, 2018)
kt wiz 2군 타격코치 (2017~2018)[2]
'''프런트'''
kt wiz 단장 (2019~)
'''테마곡'''
핵폭탄과 유도탄들 - 라면과 구공탄[3]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프런트 경력
5. 해설자 경력
5.1. 사사구 진행자
5.1.1. 약물 복용 의혹
6. 평가
7. 여담
7.1. 봄숭용?
8.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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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t wiz의 단장.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XTM의 야구 해설자로 활동하다가 2014년부터 kt wiz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2018년 10월 18일에 kt wiz의 단장으로 선임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태평양 돌핀스 시절


서울용암초, 중앙중, 중앙고를 거쳐 경희대 시절 국가대표로 차출되었고 어느 정도 준수한 활약 덕에 1994년 신인 지명회의 2차지명에서 전체 1번으로 태평양 돌핀스에 지명됐다. 계약금 5천만원을 받고 입단한다.
첫 해에는 팀내 프랜차이즈 거포 김경기와의 내기를 했다. 당시 김경기에게 '''"제가 선배님 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못하면 외야로 떠나겠습니다."''' 등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신인 주제에 라커룸에서 쉬고 있는 김경기에게 무턱대고 말했다고. 참고로 이 당시 김경기는 리그 홈런 랭킹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4] 기량이 만개했을 때이며 팀에서는 독보적인 4번타자였다.
그래도 개막전에는 역전 홈런을 치는 듯 좀 하는 듯 했으나 체력 저하로 타율 0.224 홈런 3개를 기록한다. 이 때 이숭용은 외야수[5]로 정착한다. 김경기가 회상하기를 '''"저 어린 후배에게 감명받았다. 남자답게 도전하고, 당당하게 경쟁하고, 깨끗이 승복하고, 이게 사나이잖아."라고.'''[6] 그리고 나중에 서로 친목질하는데 왜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지 자주 TV에서 둘이 보인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김경기이며 김경기 역시 가장 착하고 성실한 후배가 이숭용이라 했다.
95년에는 선배 김경기와 1루수를 번갈아서 뛰면서 프로데뷔 첫 두자릿수 홈런을 치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image][7]
현대 유니콘스 시절
현대로 구단이 인수되고 첫해 주로 좌익수로 있었고 주전 중견수로 활약한 98년을 제외하곤 00년까지 시즌 중 1루와 외야수를 이동해가면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01시즌엔 주전 중견수로, 02시즌엔 주전 1루수로, 다시 03시즌엔 주전 중견수로 매해 팀의 상황에 맞게 포지션을 이동하면서 활약했다. 그리고 04시즌부턴 붙박이 주전 1루수로 고정된다. 물론 간간히 중견수로 나오기도 했지만 06시즌부턴 그마저도 없이 1루수로만 나왔다.
1996년 팀이 이변을 일으키며 정규리그에서 4위를 하는데 중심타자로서 공격력에 보탬이 되었다. 97년엔 커리어 중 가장 좋으면서 리그에서도 상위권의 타격 생산력을 보였고 이후에는 뛰어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중상급의 성적을 냈다. 신인급이던 2~3년차엔 하일성에게서 "저 선수 펀치력 있다"는 호평도 들었다.
1997년 데뷔 첫 3할 돌파를 하지만 팀은 가을야구에 탈락한다. 다만 팀내 고과는 외야수 박재홍(야구) - 투수 정민태 다음으로 가는 순이다. 3위다(하지만, 규정타석에는 약간 도달하지는 못했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포수도 아니면서 규정타석 미달인데 고과 3위라면 얼마나 잘 했는지 알 수 있다. )
1998년 팀의 첫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천야구 첫 우승을 즐겼다.[9] 다만 2000년까지는 성적이 평범했기 때문에 팀에서는 보통이었다. 특히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꾸준한 성적으로 타격이 완전히 만개하여 2001 규정타석 첫 3할 02년에는 최다홈런 19개 03년에는 개인 최다안타와 최고장타율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2004년에는 개인 최다타점인 85점을 기록했다.
2005년에 주장직을 맏형 김동수에게 넘긴다. 시즌 전반기에만 13홈런을 치면서 홈런 랭킹 1순위에 들더니 무릎부상으로 시즌 중간에 아웃되며 결국 망해버렸다.[10] 대신 홈런왕은 같은 팀 용병이던 래리 서튼이 이어 받았다. 이후에 1루수에 들어오는게 바로 포수 출신이었던 '''이택근'''.[11] 이듬해 역시 전반기 좋은 활약을 보이다가 점점 순위권 바닥까지 떨어졌다. 현대의 마지막 해 이숭용은 4월 ~ 5월 사이 양준혁과 타격왕 대결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심한 발목부상으로 4할 타율이 깨지면서 0.350 타율 역시 마지막 경기 뛸 때까지 0.301 수직하락 하면서 이숭용의 시즌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숭용이 타격에 부진할 때 이택근 - 정성훈 동갑내기 둘이 메꿔 주었지만 노장 베태랑 전준호, 송지만 등이 부진하면서 현대 선수단 성적에도 악영향을 줬다. 그래도 본인은 아쉬운거 뒤로 한 채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7년 12월 KBO에서 시상하는 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소속팀인 현대 유니콘스는 오랜 재정난을 문제로 2007시즌을 끝으로 해체를 통보했다. 설상가상으로 현대 유니콘스 재창단을 노렸던 KT마저 협상문제로 창단 백지화를 선언해버리는 바람에 자칫하단 7개구단 체제로 갈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왔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이숭용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당시 눈물을 흘리며 "8개 구단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해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2.3. 우리, 서울, 넥센 히어로즈 시절


[image]
2008년 2월 그렇게 어렵사리 팀을 구하게 된 이숭용 및 팀원들은 성적 7위 찍었다. 그리고 창단 과정에도 연봉협상 난항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고참급이자 팀의 중심인 송지만 전준호 김동수 이숭용만 자꾸 연봉삭감을 하는데 반대로 FA가 되어버린 정성훈만 연봉 상승 이것은 팀 전지훈련을 가는데에 영향을 준다.
2009년 역시 전년도 마냥 비슷하게 가다가 2대 감독으로 선임된 김시진 감독 아래서 뛰게 된다, 단 시즌초에 너무나도 어수선한 팀 때문에 송지만과 쌍으로 엮여 2군으로 10일간 유배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전준호 역시 시즌 중후반에 복귀가 되었다. 훗날 캡틴을 밀려고 했던 어떤 똘끼가 LG로 이적했다. 그래서 자리는 함께 현대 시절 뛰던 친구가 받았다.
8월 중순 말에 삼성/롯데/기아 상대로 4강 티켓이 걸려있는데 이 경기에서 각각 승패를 거듭 반복하면서 광탈하고 팀은 6위로 전년도보다 1단계 상승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에는 구단주 때문에 팀이 제대로 돌아갈 날이 없었다.
2010년도에는 선수들이 다 시궁창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다만, 이숭용은 마치 07년 마냥 타격이 잘되다가 또 불볕더위 여름이 오면서 헛방망이 질하면서 망쳤다.

2.3.1. 2011시즌


2011년 4월 5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 파울 플라이로(...) 통산 6,000타수를 달성했다. 통산 6번째로 달성된 기록이다.
2011년 4월 27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는 통산 1,700안타를 달성했다. 통산 7번째 기록이며, 현역 선수 중에서는 장성호, 송지만, 이종범에 이어 4번째.
히어로즈의 1루를 조중근[12], 장영석 등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맡았지만, 마감시한을 앞두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병호'''가 1루에 정착하면서 기회를 점점 잃어갔다.
갑자기... 2011년 9월 5일, 각 언론 매체를 통하여 '''현역 은퇴'''를 전했다. 은퇴 경기는 9월 18일이 될 것이라고.
9월 6일 1군 복귀를 하였다. 2011년 9월 16일 두산전에서 통산 2,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8회 박병호 대신 1루수로 출전. 그리고 팀은 끝내기 역전승으로 레전드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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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왕조의 황태자가 현역 생활을 마감하기로 한 것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였다.[13] 특히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이 소식이 들리기 3일 전부터 한화 이글스에 스윕을 당한지라 분위기가 초상집이었는데 이 소식이 들리자 공황상태가 벌어졌고, 3,000경기 50살까지 하라는 의미에서 제작 중이었던 댓글북은 은퇴 선물이 되어 버려서 눈물 바다가 돼버렸다.
그리고 대망의 2011년 9월 18일, 본인의 통산 2,001번째 경기이자 은퇴 경기인 목동 삼성전에 선발 출장했는데, 턱돌이가 레드카펫을 깔고 옛날 왕들에게 사용하던 햇빛 가림막을 드는 연출을 했다. 이숭용이 첫 타석에 들어서며 3루 1루 관중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했고 환호성이 울려퍼지며 상대 팀 포수 진갑용조차 포옹을 하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 날 경기는 4:2로 넥센이 삼성에 승리하며 은퇴 경기를 치른 이숭용에게 유종의 미를 안겨 주게 되었다. 그 날 선발로 등판한 문성현이 승리하였으며, 상대 선발은 '''장원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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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최훈 작가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을 패러디하여 '''영원한 캡틴'''의 표현을 담아 카툰을 만들었다. 18시즌 동안 통산 '''2,001경기''' 출전. 통산 타율 2할 8푼1리, 1,727안타, 162홈런.
김동수, 양준혁, 김민재, 전준호, 박경완에 이어 프로 통산 6번째로 2,000경기에 출전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은퇴했으며, 태평양 입단 이래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00경기 출전의 위업을 이뤘을 때 수많은 언론사들이 '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2,000경기 출전'이라는 문구를 언급하며 이 소식을 전했다. 사실 팀이 중간에 현대에서 넥센으로 재창단 되긴 했지만 현대의 선수단, 프런트가 그대로 넥센으로 인수되면서 사실상 인수형식으로 재창단된 것과 선수 본인은 한 번도 타 팀으로 이적한 적이 없기에 KBO에서는 이숭용의 '''단일 팀''' 2,000경기 출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념패까지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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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7일 KBO에서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이며, 분명히 '''한 팀에서만 뛰면서 2,000경기를 출장한'''이란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구글 검색창에 '이숭용 2,000경기 보도자료'를 타이핑하면 해당 문서파일의 전문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중거리형 교타자 스타일로, 2할 8푼대를 왔다갔다하는 타율에 전성기 시절엔 두자릿수 홈런도 곧잘 칠 정도로 장타력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준수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박병호에게 넘겨 줄 때까지 키움 히어로즈의 1루를 지켰다. 신인 시절인 1994, 1995년과 2007년을 제외하면 매년 100경기 이상 출장하며 통산성적과 비슷한 성적을 찍어주는 늘 '''꾸준한''' 선수였다. 또한 수비력도 그 당시 1루수 중 최상급[14][15]. 1루 수비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쉽다는 말이 있었으나 1루 수비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것을 깨우쳐준 선수이기도 하다. 다만 팀의 멤버들이 너무 화려했던 터라 구 유니콘스/히어로즈 팬을 제외하면 큰 주목은 못 받은 편. 그래도 외모가 좋아서 여성 팬들에겐 인기가 제법 있었다. 그래서 '''황태자'''라는 별명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황태자는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 그런데 일부 팬들은 이 별명을 '''서른 넘었는데 아직까지 황태자'''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존경의 뜻으로 사용한다.
1994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했고,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히어로즈로 재창단됐기 때문에 비록 공식적인 계보는 끊겼지만, 현대 유니콘스의 후신으로 간주되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뛴 선수 중 '''태평양 시절을 경험한 마지막 선수'''다. 보통 해체/인수된 팀의 최후의 현역선수는 고졸신인인데 '''태평양 출신중에서는 이숭용보다 선수 생활을 길게 한 이가 없다.'''[16] 2011 시즌에는 돌고래팀 출신의 마지막 현역 선수였다. 특히 2007~2008년 현대 해체 당시에는 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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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3년 10월 18일 이숭용이 kt wiz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2015 시즌 중 황병일 2군 감독이 1군으로 콜업되어 1군 타격코치와 수석코치를 겸임함에 따라, 이숭용은 1군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상술한 이유 때문일 수 있고, 지도자 경험이 짧은 것도 요인이 된 듯하다.
시즌이 지날수록 평가가 좋아지고 있다. 여름 들어서면서 KT 타선이 불이 붙더니 순위 경쟁하는 팀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면서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리고 다니는 중. 심지어 빠따의 팀이라는 넥센 상대로도 맞불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말은 실천되었다. 819 대첩 그것도 친정팀 상대로 ㄷㄷ...
그리고 결국 2018년 시즌 중에 1군 타격코치로 돌아왔는데, 이숭용이 복귀하자마자 타격 사이클이 귀신같이 살아나면서 또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잇따른 주축 선수의 줄부상에는 숭용매직도 어쩔 수 없는 모양.
타격코치로서 타자가 삼진을 선채로 당하는 것에 부정적이지 않으며, 항상 자기 스윙을 자신있게 가져가라고 지시한다. 기사 이에 대해서는 '''“서서 삼진 당할 때에는 주로 꽉 찬 공이다. 빠른 공이든 변화구든 보더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공은 건드려도 파울이다. 상대 투수가 던진 잘 제구된 공을 어설픈 스윙으로 갖다 대다 아웃당하느니 볼 궤적을 지켜보며 삼진을 먹는 게 다음 타석을 위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상대가 잘 던진 공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공은 적극적인 스윙으로 공략하라는 게 타자들에게 하는 얘기다. 투수가 완벽한 공을 던지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라고 밝혔으며, 타자가 타석을 마친 뒤 들어올 땐 항상 '''"어땠어?"''' 라는 단 석 자만 건넨다고 할 정도.

4. 프런트 경력


2018년 10월 18일 임종택 단장과 김진욱 감독이 2018시즌 성적 부진을 통해 사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kt의 신임 단장으로 부임했다. 구단 체질을 개선하고 체계적이고 전문성 있는 육성 운영 시스템 정착을 위해 창단 뒤 처음으로 야구인 출신인 이숭용 단장을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기사
단장 부임하자말자 첫 인터뷰에서 전임 감독에게는 상당히 무례한 발언을 했다. 전임 감독이 3년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2년 만에 물러난 상황인데, 인터뷰를 통해 두 전임 감독들을 '실패자'로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17] 즉 오랫동안 선수시절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코칭스태프로 합류한 kt wiz 침체기 시절을 지우고 싶다는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본인 역시 코치로 1대 조범현, 2대 김진욱 감독을 보좌한 코칭스태프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팀의 부진에 공동 책임이 있음을 고려하면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평. #
이후 2018년 10월 20일 두산 베어스 이강철 수석코치를 새 감독으로 낙점하며 본격적으로 단장직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임 발표 시기 때문에 또 논란이 되었다. 이건 이강철 항목 참고..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확실히 비호감 인사가 되었다.
이후 이강철 감독 취임식에서 "이강철 감독의 재계약을 위해서 열심히 뛰겠다."말을 했다가 여러모로 네티즌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임기를 시작하는 감독에게 재계약 운운하는 것은 예의에서 어긋났다는 반응. 더군다나 KT 2군의 열악한 환경까지 베댓에서 언급되었다. 그나마 2019년 이강철 감독 첫 시즌에선 5강의 희망이 보이고 소통을 중요시하겠다는 목표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고, 2020년에는 마침내 첫 가을야구 진출을 플레이오프 직행으로 이루어냈다.
2020년 12월 4일 롯데 자이언츠와 신본기 박시영 <-> 최건 3라 지명권을 트레이드했다
신본기 박시영 <-> 최건 3라 지명권이라는 윈나우 무브를 보여줬음에도 윈나우에 걸맞지 않은 무브를 보여주고 있다.
가격 차이로 로하스를 놓친건 그렇다쳐도 1선발로는 애매한 데스파이네쿠에바스를 모두 재계약해버린 것이다. 또 지원없이 페넌트레이스 2등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올린 이강철 감독에게 분명히 필요한 선수가 시장에 나왔음에도 FA 영입은 전무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11일 주권이 연봉조정 신청을 하면서 형평성 드립을 치고, 선수 본인의 권리주장이라고 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돈으로 이슈가 되는 모양새가 우려된다고 선수 본인에게 전달하는 바람에 이숭용은 10개 구단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18]
거기다가 13일에는 직전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도 FA신청을 하지 않았던 유원상의 연봉이 8000만원에 그쳤다는게 알려지면서 불펜을 천대하냐며 덤으로 까이는 중.

5. 해설자 경력


당초 은퇴 후 계획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해외 지도자 연수 후 넥센의 코치로 복귀한다고 알려졌지만, 본인이 제 3자의 시각에서 야구를 보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이유로 2012년부터 XTM의 해설을 맡은 이후 2013 시즌에도 계속 해설로 활약하고 있다. 현역 시절에 입담이 꽤 좋았기에 해설 시작 전에는 그의 해설에 대해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해설 시작 후의 평가는 역시 실전은 다르다란 평.
'''베테랑을 매우 편애'''하는 해설을 하며, 구단들의 베테랑 홀대에 대한 지적 또한 굉장히 많이 한다.[19] 넥센 시절 자신이 받은 푸대접에 악이 받친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20] 그리고 야구계에서 유망이 전도한 선수나 최근에 활약하는 선수에 대해 굉장히 칭찬을 자주 한다. 듣고 있다보면 이기고 있는 팀이나 최근 잘하고 있는 팀에게 편파라고 느껴질 정도로 잦은 칭찬을 하고 별다른 해설이 없다. 이건 뭐 칭찬자인지 해설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로 지적되는 문제는 특유의 징징대는 듯한 어투와 내용이 부실한 해설. 이것저것 현상에 대한 지적은 많이 하는데, 그것이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주기 딱 좋다.
이쯤 되자 히어로즈 팬들도 해설접고 코치 연수나 떠나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쯤되자 제2의 양준혁이란 말도 있으니 원... 그러나 구체적인 성향을 따지면 알맹이는 있는데 이를 전달하지 못하는 양준혁과 전달력은 있는데 내용이 부실한 이숭용의 해설은 서로 정반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밑에서 언급되는 인터넷 방송 사사구에서 하차한 뒤 해설에만 집중하는지 웅얼거리는 발음이나 위에서 언급 된 말 끝이 징징거리며 늘어지는 어투가 상당히 말끔해졌다.

5.1. 사사구 진행자


코리아볼닷컴에서 진행하는 '''사사구'''란 채널에 이병훈, 이용균 기자, 임용수와 함께 출연했다. 점점 막장으로 흘러가는 사사구 진행자[21] 중 그나마 상식적인 말을 한다는 평을 받았지만[22] 2013년 5월 이병훈 해설과 함께 김광현은 에이스가 아니다. 박진만이 늙어서 힘이 떨어졌다. 최정 그거 인터뷰 더럽게(…) 못 한다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발언을 하는 바람에 SK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 적이 있다.[23]
그러나 2012년 5월 28일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대형 사고를 사사구에서 치게 되는데......

5.1.1. 약물 복용 의혹


> '''이용균''' : 옛날에 약물 검사 안하던 시절에 옛날에, 요만한 잠 안오는 약 있다면서요, 초록색 약.
> '''이숭용''' : 솔직히 얘기해서 저도 먹어본 적 있어요, 한국시리즈 때. 집중력이.. 진짜 막 사람이 막 흥분이 되면서.
> '''이용균''' : 그게 무슨 커피 50잔인가 100잔의 양을 농축해 놓은…
> '''이숭용''' : 혀에다 넣고 마시는 건데, 시리즈 때 먹어봤는데 그 대신 단점은 그걸 먹으면 하루종일 잠을 못 자요. 와, 먹으니까 진짜, 이렇게 약간 업이 딱 되고 진짜 눈이 막 이만해져 ㅇ_ㅇ
> '''이용균''' : 공이 막 이만하게 보인다 하더라고요, 집중력이.
> '''이숭용''' : 그래요? 그건 모르겠는데, 눈은 딱 이렇게 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눈이 딱 이렇게 되면서 막 이렇게 되더라고요. (가슴에 손을 불끈하면서)
> '''정수근''' : 이 위원님, 제가 살면서 다른 건 다 해봤는데 약은 안 해봤어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 (막 웃으면서)
> '''이용균''' : 각성제에요, 각성제. '''근육을 키우는게 아니라.''' 카페인이 아주 강하게 농축된 각성제인데, 그걸 먹은 어떤선수가 공이 정말 이만하게 보인다고. 근데 어떤 선수는 그걸 먹고 바로 잤대요.
2013년 5월 27일 사사구 방영분에서 현대 유니콘스 시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고농축 카페인'''을 복용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최악의 말실수를 터뜨렸다. 그러나 동시기에 벌어진 임찬규 물벼락 사건 때문에 묻혔다.
참고로 이숭용이 말한 고농축 카페인은 1999년부터 IOC 공식 금지약물이었다가 2003년 이후로 금지약물에서 제외되었고,[24] 이숭용이 마지막으로 출전한 한국시리즈가 2004년 한국시리즈였다.[25] 다만 제외 시기와 상관없이 약물을 복용한다는 것 자체가 도의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장 법적으로 무죄인 로저 클레멘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보면. 하물며 저렇게 약물[26]을 복용한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방송에서 대놓고 말한다는 거 자체가 이숭용 본인이 약물에 대한 별 다른 자각이 없다는 것과 약물 청정리그라는 KBO 리그의 현주소와는 거리가 있다.
여담으로 2009년 마해영이 자서전에서 KBO의 약물의혹을 폭로했을 때, 이숭용은 '''"다른 선수가 약물 복용하는 것을 본인이 봤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나. 증거 없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마해영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마해영이 폭로한 약물도 이숭용이 말한 것과 같은 농축 카페인이었다.
이게 논란이 되자, 해명을 내놨는데 기사'''"방송의 재미를 위해 외국인 선수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과장했다."'''고 밝혔다. 물론 '''만만한 게 용병이냐'''라는 터무니없는 변명이라고 까였다. [27]
공교롭게도 동시기에 임찬규 물벼락 사건으로 아구계 전체가 시끄러운지라 사태는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사사구 다음 회에 이숭용이 직접 사과함으로써 일단락은 됐다. 다만 이 사건 이후 '약캡'이라는 별명이 생기는 등 이숭용 자신의 깨끗한 이미지에는 큰 타격을 입었다.

6. 평가


매우 꾸준한 타자이며[28] 현대 시절부터 뛰어온 팀 내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베테랑 중의 베테랑. 성적뿐만 아니라 팀 분위기를 이끄는 히어로즈의 캡틴으로서 팀의 정신적 지주이다. 코칭스탭진이 선수들을 결집시켜 준다면, 이숭용은 선수로서 후배들을 껴안아준 셈. 잇다른 선수팔이로 분위기가 개판이 된 히어로즈에게는 명실상부한 대들보였다.
통산 성적으로 따진다면 안타나 홈런이나 모두 순위권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숭용의 최대 포인트는 바로 '''주장으로서의 존재감'''이다.[29] 주장이자 팀의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잘 뭉치게 하여 2008~2010년에 넥센 히어로즈가 모두의 우려를 깨고(!?) 6~7위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전력난이 심했던 2008, 2010년에 그의 역할은 빛을 발했다고...
그리고 그의 꾸준함을 증명하듯 역대 출장 7위, 안타 13위에 올라있다.
이숭용의 앞뒤에 있는 선수는 장종훈, 김재현, 박재홍 등 이름만 대도 누구나 다 아는 스타 플레이어들인데, 유명세도 덜하고 특급 시즌을 보낸 적도 없는 이숭용이 이들 사이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꾸준하고 성실한 선수였는지 증명해 준다.'''
다만 그 꾸준함에 비해서 임팩트가 있던 시즌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 사실상 야구라는 스포츠는 꾸준함보다는 한시즌의 임팩트에 더 가치를 두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라제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10년간 매년 15개 이상의 홈런을 친 타자와 8년까지 별게 없다가 2년을 30개씩 친 타자가 있으면 꾸준함으로 봤을때는 전자가 잘하는 것이지만 연봉은 후자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클로저 이상용에서도 김상덕 감독이 선수들 집합에서, 10년 동안 15홈런을 꾸준히 친 타자 A와, 8년 동안 1개도 못치다가 2년 동안 40홈런을 친 타자 B의 경우, 통산 홈런은 A가 훨씬 많지만 FA시장에서의 평가는 B가 훨씬 높다는 말로 임팩트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7. 여담


* 별명은 '''캡틴''', 그리고 이름과 합친 '''숭캡'''이 가장 유명하며, 이 밖에도 '''미스터 쾌남''',[30] '''마지막 황태자''', '''숭늉''', , 등등의 별명도 있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1루수였지만, 팀 사정에 따라 외야수로 뛰기도 했다.
* 현대 시절 당시 안타 하나당 만원씩 불우이웃 성금을 냈다고 한다. 29분 50초 부터...
* 히어로즈가 창단 초 재정 위기에 몰렸을 때[31] 김용달 코치가 이숭용, 송지만을 데려오고 싶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타격의 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어 밀어치고 당겨치는, 거기에 인내심이 더해진 타격 기술을 LG 트윈스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32]SK 와이번스가 1루 공백이 생겼을 때 SK에게 팔릴 뻔 했다. 이 분+1억 트레이드 대상이라는 충공깽스러운 일이었다.[33]
* 넥센 히어로즈의 1루 주루코치인 홍원기보다 두 살이 많은 탓에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홍원기 코치에게 절대 "코치님"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인지 이숭용이 1루로 출루하고 홍원기 코치가 이숭용의 장비를 받아줄 때 농담섞인 욕설(!)도 자주 했다고. 뭐 그래도 둘이 친하니 그랬겠지만. 그 예로 2009년 어느 날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이숭용이 출루한 후 홍원기 코치와 나누었다던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 이숭용 : "야, 장비."
> 홍원기 코치 : ….
> 이숭용 : "안 받고 뭐해~ X바~"
> 홍원기 코치 : "아 형, X바가 뭐에요…. 그래도 명색이 제가 코치인데…."
> 이숭용 : (수비하는 김주찬을 힐끗 보며) "야, 니가 듣는 건 안 괜찮고, 뒤에 주찬이가 듣는 건 괜찮냐?"
'''김주찬'''은 이 상황을 계속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홍원기는 무한도전 타인의 삶에서 제대로 보복한다. 이숭용과 바꾼 정준하가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치자 옆에서 한소리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온다.
* 본인이 기억에 남는 한국시리즈 장면은 199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의 2점 홈런,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을 때라고 한다.
* 컬투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를 컬투의 김태균에게 소개받았다고 한다.
* 2011년 3월 26일 무한도전정준하무한도전 타인의 삶에 출연하여 야구계와 예능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원래 무한도전 타인의 삶 이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였지만(1회는 박명수와 재활의학과 현역 의사가 서로의 삶을 체인지), 정준하와 이숭용이 서로 동갑내기라는 점과 사회인 야구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또 어릴 때 꿈이 야구선수 였던 정준하의 요청이 출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image]
진짜 정준하처럼 파마까지 했다고 한다[34]. 절대 가발이 아니다.

어쨌든 본방에서 이숭용은 무도 멤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심지어 볼뽀뽀 세례까지 받을 정도였다. 반면 박명수는 이숭용의 기세에 밀려 찬밥신세(...). 김장특집에서 여장까지 불사하는 등 무한한 예능감을 발휘했다. 김장특집 미션 중 아줌마들(+등빨 좋은 제작진)의 스크럼을 뚫고 무를 탈취해오는 미션에서 프로 운동선수 답게 엄청난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유일하게 무 2개를 가져오는데 성공. 참고로 그 전의 원판 김장특집에서도 오직 정준하만이 이걸 성공했었다. 김장 도중 이숭용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는데, 직접 김치를 담가보니 아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새삼 깨달아서 그랬다고…. 그리고 이후 동갑내기인 정준하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 그의 은퇴식이 열렸던 9월 18일, 목동 야구장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정준하였다. 은퇴경기 시작 전에 등장하여 이숭용과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샤이니종현도 은퇴 경기에 관람을 왔었다. 이 멘션을 보니 넥센 팬인듯.
* 오랫동안 몸담은 팀인 만큼 넥센에 여전히 애정이 큰 모양이다. 넥센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잠깐 출연했는데 코치 일을 마치고 바로 넥센의 포스트시즌 중계를 시청하면서 응원했다. 근데 아쉽게도 역전패해서 탈락했다.
* 마구마구에서 타석에 등장 시 꾸준함의 대명사라는 소개가 자주 언급되어 나온다. 이효봉 위원은 특히 캡틴의 부재가 큰 2012년 넥센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멘트를 날렸는데 후임 1루수인 박병호가 완벽하게 그 빈자리를 메웠다.
* 벤치 클리어링의 숨은 강자이기도 하다. 가정적인 면모와 신사적 이미지로 부각이 잘 안 되지만 보스턴 시절부터 싸움에 자신있고 벤치 클리어링에 적극적으로 나선 김선우가 맥을 못춘 상대가 이숭용이다. 2010년 넥센과 두산의 벤치 클리어링 당시 김선우를 질질 끌고간 것은 유명하다.
* 서울을 거쳐 넥센 히어로즈가 되었을 때는 이미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KBO에서 이숭용을 짬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벤치 클리어링이 났을때 양팀 선수단의 가운데에 서서 중재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곤 했다. 현대 시절 날고 기던 선수단을 하나로 묶을수 있던 카리스마란 이런것이었다.
* 김선우하고는 또다른 인연이 있는데, 김선우가 KBO 역사상 처음으로 12초 룰을 어기게 한 타자라고 한다. 김선우가 7회까지 역투를 하고 있자 이숭용이 타석에 빠르게 들어서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싸인을 교환하는 도중 12초 룰을 어기게 됐다고. 이숭용의 말로는 이후 김선우가 흔들리며 완봉도 날아갔다고 한다.(이숭용의 기억으로는 김선우의 승리도 날아간 것 같다고.

확인 결과 2010년 6월 20일 경기이다. 8회말 2-3상황에서 김선우가 12초룰을 어겨 이숭용이 볼넷으로 1루출루 그후 투수 앞 땅볼때 김선우의 송구실책으로 1사2루 상황에서 송지만의 안타로 1:1동점 추후 장기영의 우중간 적시타로 승리투수와 더불어 패전의 멍에까지 씌웠었다.) #

7.1. 봄숭용?


은퇴한 후에는 거의 잊혀졌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별명으로 '''봄숭용(…)'''이 있다. 4~5월에는 불꽃타를 휘두르며 팬들을 설레게 하지만 막상 시즌이 끝나고 보면 그냥 이숭용스러운 성적을 찍었기 때문. 사실 활약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이유도 매년 시즌 초에는 맹활약하며 언론에 이름이 자주 언급되다가, 여름 이후에 극도로 부진하며 언론은커녕 경기에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2012년 9월 26일 한화-두산전 해설에서 밝힌 바로는 자신도 그 별명을 알고 있다고. 또한 선수들이 해도 안 될 때가 있으니 욕하기보다는 격려를 달라고 했다. 예를 들어,
* 풀타임 첫해인 1996년 5월에만 '''타율 .333에 5홈런 20타점으로 맹활약'''. 그런데 시즌 끝날 때 성적은 타율 .281에 홈런 12개 47타점으로 '''5월 이후에 달랑 7홈런 27타점 추가(…).'''
어쨌든 극악한 타고투저 이전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별 거 아닌 12홈런만으로도 홈런 13위. 때문에 이 당시 구 현대 팬들은 이숭용이 아주 대단한 타자가 되리라 믿었는데……, 그리고 전설이 시작된다(…).
* 1998년 5월까지 홈런 5개. 그런데 시즌 전체 홈런수는 10개….
* 1999년 5월까지 홈런 6개. 그런데 시즌 전체 홈런수는 14개….
…로 매년 초 팬들에게 성장할듯 말듯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결국 성장 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 2002년 5월까지 무려 11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을 설레게 하지만, 남은 시즌 동안 추가된 홈런은 달랑 8개.[35]
* 2005년 '''봄숭용 전설의 시즌. 5월까지 13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 단독 1위에 오르지만, 남은 시즌 동안 추가된 홈런은 단 1개.'''[36][37]
* 2006년 5월까지 3할1리[38] '''5홈런 20타점'''이었는데, 시즌 종료시 성적은 2할8푼7리에 '''7홈런 43타점'''으로 '''그러니까 여름 이후에 단 2홈런 23타점만을 추가했다.''' 물론 특별한 부상 따윈 없었다(…).
* 2007년 여름까지 3할4푼~5푼으로 타격왕 경쟁을 했다. 2005년 초반과 마찬가지로(이때는 홈런왕) 언론에서도 노장이 생애 첫 타이틀 도전한다며 설레발 쳤지만 후반기에 부상으로 공백기가 있었고 복귀후 가을에 타율 급하락. 다른 해와 달리 부상이 아쉬운 해였다.
아쉽게도 07년 이전 기록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07년 이후 4년간 전후반기 성적만 요약해서 보자면,
* 2007년~2010년 이후 전후반기 성적
* 전반기 299경기 281안타 10홈런 타율.305 출루율.390 장타율.397
* 후반기 124경기 90안타 1홈런(…) 타율.237 출루율.309 장타율.290
사실 보기와 달리[39] 장타율이 낮은 편이다. 통산 성적만 보면 늘 2할 8푼대에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매우 꾸준한 타자지만, 그저 봄에 좀 많이 타올랐다가 '''여름을 버틸 수가 없었을 뿐(…).'''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난히 마구마구[40] 프로야구매니저 등의 야구 게임에서 능력치를 짜게 주는 감이 있다. 마구마구에서는 이름 있는 선수는 누구나 하나쯤 있는 레어도 없는 안습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너무 꾸준하다 못해 몬스터 시즌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인터뷰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4, 5, 6월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은 4, 5, 6월에 모든 걸 쏟아부어왔고,''' 후배들도 그래줬으면 싶다는 건데….
그런데 한국시리즈에서는 '''진짜 괴물같이 활약했다.''' 현대의 한국시리즈 경기를 보면 이숭용이 정규시즌에 비해 정반대라는걸 알 수 있다. 짧게 펼쳐지는 큰 경기인 '''한국시리즈에서 진짜 펄펄 날아다녔다!'''[41]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태평양
84
210
.229
48
19
1
3
16
27
3
32
.371
.328
1995
83
267
.255
68
16
'''4'''
(9위)
11
45
37
5
28
.468
.32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현대
124
371
.280
104
18
'''4'''
(9위)
12
47
45
5
'''67'''
(9위)
.447
'''.389'''
(6위)
1997
121
341
.311
106
'''28'''
(8위)
3
9
61
41
3
'''68'''
(8위)
.490
'''.419'''
(5위)
1998
107
363
.280
101
26
1
10
45
39
6
43
.438
.351
1999
109
307
.264
81
12
2
14
39
43
2
58
.453
.380
2000
104
281
.285
80
14
0
15
50
49
2
42
.495
.377
2001
124
430
.300
129
'''29'''
(6위)
1
10
64
53
4
56
.442
.378
2002
125
422
.284
120
18
2
19
76
63
7
52
.472
.361
2003
133
'''511'''
(3위)
.294
'''150'''
(8위)
25
0
18
'''76'''
(10위)
70
4
51
.448
.355
2004
133
468
.280
137
'''29'''
(5위)
0
9
'''85'''
(7위)
60
0
71
.412
.382
2005
105
330
.252
83
13
0
14
55
45
1
55
.418
.357
2006
119
370
.286
106
12
0
7
43
44
3
'''66'''
(10위)
.376
'''.389'''
(10위)
2007
95
299
.301
90
19
1
2
34
39
2
44
.391
.39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우리
109
333
.270
90
10
0
3
27
37
1
41
.327
.349
2009
히어로즈
114
362
.296
107
20
3
4
52
47
8
50
.401
.376
2010
넥센
124
328
.270
90
15
0
2
30
37
5
39
.338
.350
2011
88
146
.253
37
7
0
0
12
7
1
19
.301
.337
<color=#373a3c> '''KBO 통산'''
(18시즌)
'''2001'''
(7위)
'''6139'''
(10위)
.281
1727
'''330'''
(8위)
22
162
857
783
62
880
.421
.369
[1] 03시즌까지 꽤 출전한 편이며 주로 중견수로 많이 나온 편이고 96시즌엔 주전 좌익수로 활약했던 적도 있다.[2] 6월 18일부로 1군 승격[3]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이숭용[4] 실제로 1994년 김경기는 사상 최초의 좌타 홈런왕이 된 김기태에 이어 시즌 홈런 랭킹 2위에 올랐다.[5] 사실은 첫해엔 지명타자로 대부분의 경기에 나왔다.[6] 사실 새파란 후배가 저렇게 얘기를 한다면 싸가지 없는 놈이라며 군기잡이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지만 평소 대인배적 풍모를 보였던 김경기였기에 그냥 넘어간 것 같다.[7] 사진은 2005년 시즌 사실, 이숭용에게 있어서 오랜만에 홈런 상위권을 찍고 있던 시즌이였다. 알다시피 무릎 부상으로 완전히 시즌을 접었다.[8] 이숭용에게 사인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꽤 해준다는 소리가 자자하다. 예전에 방송에서 팬들이 음식비도 대신 내주고 택시비도 대신 내줬다고 할 정도면 어느정도 감이온다 라고 보면 된다.[9] 199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중견수로 출전해서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선제 투런 홈런을 터뜨렸고 9회초 마지막 수비 때는 우승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런데 공을 잡아낸 뒤 따로 챙기지 않고 담장 밖의 외야석 관중에게 그 공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당시는 본인 스스로도 우승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보니 우승구에 대한 상징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이숭용 스스로도 나름 팬 서비스라고[8]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나중에 팀 선배들과 프런트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고(...) 한다.[10] 구단 역사 최악의 커리어 7위를 기록함[11] 사실 이택근은 데뷔 시즌인 03시즌에 사실상 주전 1루수로 뛰었고 04시즌부턴 송지만의 영입으로 이숭용이 주전 1루수로 출전하게 되어 05시즌까지 1루 백업과 대타로 있다가 타격에서 재능을 보이며 06시즌부터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았고 상당한 활약을 보인다.[12] 시즌 중반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곧바로 아웃되었다. 비록 많은 출장은 아니지만 3할 1푼 까지 치고 있었다.[13] 왕조의 전반기를 함께한 현대의 최고 타자 레전드인 박재홍이 현역이었기에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14] 그래서 박병호가 트레이드되고 1루 주전을 차지하자 모든 넥센팬들은 이숭용의 수비력의 존재감을 실감했다. [15] 이숭용은 1루를 믿고 맡길수 있는 병호가 있어 은퇴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16] SK 와이번스소속이었던 전준호가 이숭용과 함께 데뷔한 1994년 신인 선수였다. 그러나 전준호는 부진하다가 2011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숭용이 가장 마지막까지 경기에 출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셈.[17] '''"KT는 이제 신생 구단이 아니다. 5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실패를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실패하면 일어나기 쉽지 않다. 실패하지 않을 감독 후보를 찾을 것이다. 경험도 있어야할 것 같고…. 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하겠다"'''라는 발언. 차라리 '실패' 대신 '시행착오'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나마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18] 강동훈은 KT 프런트가 삽질을 한 상황에서 그나마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콜업하며 수습을 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이숭용은 프런트를 포함한 구단 전체의 업무를 총괄하는 단장이기 때문에 절대 프런트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19] 대표적인 예가 2013년 이병규 선수.[20] 이때 왠지는 몰라도 전준호도 같이 언급되기도 한다(...)[21] 이병훈이 사사구를 그만둘때까지 사사구가 올라온 날이면 이병훈이 한 발언으로 각종 야구커뮤니티가 난리가 났었다. 특히 자주 무시당하던 LG 트윈스 팬들과 한화 이글스한테는 더더욱.[22] 다만 이숭용도 말이 너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23] SK팬들을 그 무엇보다 들고 일어나게 한 것은 바로 김광현은 에이스가 아니다 라는 발언이었다. 또한 최정이 인터뷰을 못하는 것도 SK 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만 '''그거'''라고 표현한 것에 분노한 것.[24] 약물로서 문제가 없어서 제외된 게 아니라, 검사 신뢰도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제외된 것이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사람도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다는 모양.[25] 추가로 진행된 인터뷰에 의하면 시기는 1998년 한국시리즈라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한 발언 때문에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다는 의심만 사고 말았다.[26] 야갤에선 김진욱 감독이 커피를 워낙 많이 마시는데 그러면 김 감독은 약물중독자냐라는 반박이 있다. 하지만 비록 커피에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더라도 '커피'라는 기호식품이 아닌 '카페인이 농축되어 있는 각성제'라고 구체적인 약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단기전인 한국시리즈에서 복용이라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거기에다 김진욱 감독은 지도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전임지도자의 위치로 수행했지, 선수 겸 감독이나 플레잉코치같이 선수로 직접 경기에 나서지 않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27] 추가로 진행된 인터뷰에 의하면 시기는 약물 지정이 되기 전인 1998년인데, 그렇다면 브룸바가 아닌 스캇 쿨바나 스트롱이 된다. 투수보다 타자들이 쓰는 약물임을 감안하면 정황상 쿨바일 가능성이 높다.[28] 봄에만 반짝했든 뭐했든 간에 15년 가까이 매년 비슷한 성적을 찍어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29] 특히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을 때는 흥분한 히어로즈 선수들을 그만해. 라는 한 마디로 잠재웠다.[30] 인천아재들 한정으로 지어진 별명. 유래는 태평양화장품의 남성 화장품 '미스쾌남'이다.[31] 그 외에 프런트이광환 감독 vs 고참 선수들 이렇게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32] 송지만의 경우는 우타거포가 없는 LG 트윈스에게 이숭용+송지만 ↔ 무명신인+ 25억 틀드 설이 있다. 이것보다 더 유명한 설은 08시즌 중 이성열+심수창+현금을 받고 송지만을 LG에 넘기려 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취소되었고, 이성열과 심수창은 넥센에 왔다?! [33] 당시 김성근 SK 감독과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이 직접 만나서 정상호 ↔ 이숭용 맞트레이드에 합의하였으나, 발표 직전 히어로즈 프런트가 현금 1억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무산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히어로즈 이광환 감독은 이숭용 등 히어로즈 고참선수들과 극심한 불화를 겪고 있었고, SK 와이번스는 줄부상과 부진으로 1루수 포지션에 공백이 생긴 상태에, 정상호는 아직 그저 그런 백업 포수였다.[34] 본인이 직접 '''13만원'''을 들여 한 파마라고 밝혔다.[35] 여담이지만, 이숭용이 2002년에 홈런을 제일 많이 쳐낸 시즌이다.[36] 본래 2004년 시즌 후 무릎부상이 있었다고 한다. [37] 이때 이숭용 뒤로 송지만, 서튼이 줄줄이 붙어 있어서 현대가 홈런 1, 2, 3위를 독식하는게 아니냐는 설레발이 있었다.[38] 사실 5월 중순까지는 3할1푼대로 타격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이 해는 예년보다 추락이 일찍 시작됐다(…).[39] 186센티에 85킬로그램으로 신체조건만 보면 홈런타자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승엽과 타격자세가 비슷했으니…. 어떤 팬은 '''"이승엽과 이숭용의 공통점은 타격자세와 4월뿐"'''이라고 말하기도(…).[40] 2011년 9월 28일 업데이트로 레전드카드가 추가되었고 현재는 여러번 재평가 하면서 레어카드 2장이 출시되었다. 소속팀은 현대 유니콘스[41] 통산 한국시리즈 최다안타, 최다득점. 최다 우승확정 포구(1998년, 2003년, 2004년) '''4번 중 3번의 우승 확정 아웃카운트를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참고로 2000년 우승확정 포구를 한 사람은 좌익수 김인호이다. 또한 한국시리즈 관련 기록은 추후에 박진만박한이에 의해 깨졌지만, 이숭용과 그 둘의 한국시리즈 출전 경기수 차이를 감안하면 이숭용이 얼마나 한국시리즈에서 날아다녔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