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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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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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시절
'''이름'''
더글라스 드와이어 클락
(Douglas Dwyer Clark)
'''등록명'''
덕 클락
'''생년월일'''
1976년 3월 5일 (48세)
'''국적'''
미국
'''출신지'''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스필드
'''체격'''
188cm, 93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218번, SF)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05)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06)
한화 이글스(2008)
서울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2009~2010)
멕시칸 리그 -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2011~2013)
브론코스 데 레이노사(2014)
'''응원가'''
한화 시절: -We Will Rock You[1]
넥센 시절:등장시: Juvenile - Slow Motion
타격시: 대성 - 날 봐 귀순[2]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축배[3][4]
'''한화 이글스 등번호 25번(2008)'''
크루즈(2007)

'''클락(2008)'''

송광민(2009)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3번'''
다카쓰(2008)

'''클락(2009)'''

강병식(2010~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7번'''
이상열(2009)

'''클락(2010)'''

박성훈(2011~2015)
1. 소개
2. 선수 생활
2.1. 뒤늦은 야구의 시작
3. 한국프로야구
3.1. 한화 이글스 시절
3.2.1. 2009년
3.2.2. 2010년
3.2.3. 뜬금없는 방출
3.3. 방출 후
4. 연도별 성적
5. 이야깃거리
5.1. 별명
5.2. 인성 문제
5.3. 기타
6. 관련 문서


1. 소개


한화 이글스,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미국 출신의 외국인 타자.

2. 선수 생활



2.1. 뒤늦은 야구의 시작


야구를 늦게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땐 농구선수와 미식축구선수로 활동했고, 매사추세츠 대학에는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포지션은 와이드 리시버. 그런데 대학 입학 후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건 늦어도 엄청 늦은 케이스. 게다가 생물학 전공. 교사 자격증도 있고, 어머니와 남매들이 교사나 카운슬러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도 늦게나마 본격적으로 야구를 한 것 치고는 성적이 괜찮아서 대학 2학년 때 드래프트 20라운드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이 될 뻔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대학 3학년이었던 1998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됐다.
하지만 드래프트 지명 후 오랫동안 마이너 리그를 전전할 정도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이 29살인 2005년이 돼서야 메이저 리그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메이저 리그에서 콜업됐을 때 정작 맡았던 건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 정도. 이후 이듬해인 2006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도 자이언츠 때와 마찬가지로 대타로만 기용됐다. 2007 시즌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 스프링캠프 때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시즌 내내 AAA에 머물고 말았다.

3. 한국프로야구



3.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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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의 수비장면
2008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백인 제이 데이비스'를 연상케 하는 공수주를 겸비한 중견수로 초반기 큰 활약을 했다. 5월 중반까지 17홈런으로 홈런 1위, 최다안타 1위, 득점 1위, 도루 5위, 장타율 3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때가 얼마나 대단한정도였냐면... 시즌초반에 꾸준히 3번타자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승부처에 고의4구로 거르는 모습이 있었다. 이때의 한화의 4번타자는 그해 31개의 홈런을 때리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타자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클락이 시즌초에 얼마나 압도적인모습이었는지를 알수있다.
하지만 이 활약이 급격히 식어가는 사고가 발생했으니, 2008년 6월 2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중 1루로 달리다가 점핑캐치를 하던 박정권과 부딪쳐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5] 그 여파로 20-20 클럽은 달성했지만, 타율 2할 4푼대로 떨어져 한화와의 재계약은 실패.
이후 클락의 부진과 베이징올림픽 휴유증으로 인해 한화는 그동안 유지해오던 3위자리를 내주고 5위로 시즌을 마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어쨌든 하반기 부진으로 한화는 클락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빅토르 디아스를 영입했으나, 디아스는 62경기 15홈런 39타점으로 신나게 선풍기를 돌리다가 방출당한다. [6] 한화가 내보낸 클락은 히어로즈에서 펄펄 나는데…. 더군다나 친정팀 한화만 만나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잘하는게 아닌가? 클락이 한화 상대로 쓰리런을 쳤을 때는 클락 눈 밑에 점 찍은 사진이 돌기도 했다(…).
제이 데이비스 이후 용병 타자 중에 물건을 좀 건졌다 싶었는데, 한화 팬으로서는 이러저래 안타까움이 많은 선수이다.
시즌 최종 성적 125경기[7] .246 116안타 22홈런 25도루 79타점 96득점.
2008 프로야구 올스타전에도 서군 외야수로 출장했었다.

3.2. 히어로즈 시절



3.2.1.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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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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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에는 히어로즈와 계약했다. 배번은 33번. 주로 테이블 세터로 활약, 초반에는 슬럼프도 있었지만 타율도 3할 가까이 향상되고 2년 연속 20-20 클럽을 달성하는 등 호타준족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초반에는 3번 타순으로 나오다가 나중에는 1번 타자로 나오면서 좋은 활약을 했다.
성향상 클린업 트리오보다는 준수한 중견수 수비와 적당한 타격을 갖춘 수비형 플레이어다. 실제로 마이너 기록에서도 홈런수보다 도루가 많다. 홈런 개수가 많은 것은 규모가 작은 대전구장, 목동구장 덕이 큰 듯. 어쨌든 성실한 플레이에 매너 좋고, 이래저래 모범이 될 만한 외국인 선수로 야구팬에게 큰 호감을 얻었다. 외모+지성+야구실력+매너를 모두 갖춘 엄친아.
2009 시즌 최종 기록은 125경기 .290 141안타 24홈런 23도루 90타점 85득점.
시즌이 끝난 후 코칭스태프진에게 시계를 선물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였다.

3.2.2.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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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차 9회 초 2사 1, 2루 상황에서 타구를 다이빙캐치하는 모습.[8]
2010 시즌에는 중심타자였던 클리프 브룸바가 방출되었으니 클린업 트리오가 되었다. 등번호도 17번으로 변경.[9]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265 12홈런 12도루를 기록하며 그런 대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홈런은 솔로 홈런이 대부분이었고, 승패에 크게 영향이 없었기에 많이 까였다. 하지만 본래 스코어러 타입이 아니며 이택근, 클리프 브룸바 등 중심 타자들이 모두 떠난 탓에 견제가 심해진 탓도 커서 딱히 클락만 까기도 뭐한 상황이다. 히어로즈 타선 자체가 2009 시즌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WAR(승리 기여도)라는 스탯에 따르면 팀내 1위는 클락이었다. 타격 기록이나 인상에 비해 팀 승리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다만 그것을 알아주는 이가 적을 뿐이다….'''[10]
덕분에 팀 동료 애드리안 번사이드와 함께 성격은 참 좋은데 성적은 안 나온다며 팬들은 애정을 담아 두 사람을 깠다. 아니, 팀내 홈런 1위에다 타점 2위인데…. 물론 번사이드도 팀내 다승 1위였다(8승). 그리고 2010년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서군 2위를 기록해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3.2.3. 뜬금없는 방출


그러나 2010년 7월 24일, 넥센은 올스타전이 끝나고 방출통보(…)를 했다. 올스타전이 끝나고 대구역 계단에서 정신줄 놓고 있는 클락을 목격했다는 야구팬의 제보도 있었다.[11]
2010 시즌 성적은 92게임 347타수 92안타 타율 0.265 출루율 0.343 장타율 0.427 12홈런 12도루 50타점. [12]
사실 용병 타자로서는 부족한 성적이기 때문에 방출되어도 크게 할말은 없다. 대부분의 반응은 '''방출은 이해하지만 하필 올스타전 다음 날 방출 통보를 하느냐..''' 올스타전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힌 사진들이 방출 기사의 사진으로 쓰여서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워낙 사람 좋고 팬들에게 친절한데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정도 깊어서 히어로즈 팬들은 '''다음에는 누구냐'''며 좌절하고 있다. 거기다 클락을 내보내고 데려온 선수가 2009 시즌에 두산 베어스에서 시즌 중 방출을 당한 크리스 니코스키였다.[13][14] 그리고 클락이 방출된 후 넥센 타선은 그야말로 망했어요. 그렇잖아도 약한 타선이 좌타자 클락이 빠지고 우타자 일색이 되면서 더욱 약해졌다.[15]
클락의 경우 조건 없는 방출이기 때문에 어느 구단이나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었으나, 이때부터 한국프로야구 트렌드가 외국인 야수보다는 외국인 투수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됐기 때문에 당장 외야수가 급한 구단이 없었다. 그리고 2014 시즌부터 용병 보유한도 확대와 함께 타자 용병 보유가 의무화되었다 해도 거포 타입이 아닌 수비력이 좋은 외야수를 데려오기 위해 외국인선수 슬롯을 비워둘 구단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한국에서의 경력은 그렇게 끝났다.
한편, 같은 팀 동료 강정호는 미니홈피에 글을 올려 방출당한 클락을 위로했다.

3.3. 방출 후


2010년 8월 2일 히어로즈 갤러로 추정되는 목동 편의점 알바가 클락과 같이 찍은 사진을 인증했다. 이 곳[16]
민훈기 기자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야구는 계속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1시즌부터 멕시칸 리그의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Tigers de Quintana Roo)에서 뛰었다.[17] 2011 시즌 97경기에 나와서 타율 .315 21홈런 58타점 20도루 출루율 .423 장타율 .579를 기록했고,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2 시즌 성적은 98경기 .328 17홈런 69타점 18도루 출루율 .405 장타율 .567.
2013년도 여전히 선수로 뛰었다. http://espn.go.com/video/clip?id=8929027 영상의 1분 37초에 1점짜리 홈런을 기록하는데, '''7시간 28분 연장 18회'''까지 가는 접전을 멕시코의 승리로 끝내는 결승 홈런이다. 0분 20초에는 전 롯데, 한화 소속의 카림 가르시아도 나온다.
2013 시즌 성적은 60경기 .319 5홈런 38타점 10도루 출루율 .416 장타율 .465.
2013 시즌 이후 소속팀이 브론코스 데 레이노사(Broncos de Reynosa)로 바뀌었다.[18] 6월 7일 현재까지 2014년 성적은 30경기 타율 .272 1홈런 18타점 1도루 출루율 .341 장타율.360을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멕시코 리그에서 뛰다 2015년 1월 26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이 적발돼 50경기 출장정지에 처해졌다. 그 직후 은퇴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루키 팀인 AZL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옮겼다. 2016년에는 싱글A팀인 오거스타 그린재킷스(Augusta GreenJackets), 2019년에는 쇼트싱글A 팀인 세일럼 케이저 볼케이노즈의 타격코치를 맡았으며 2020년에는 AA팀인 리치먼드 플라잉 스쿼럴스(Richmond Flying Squirrels)의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4. 연도별 성적


<color=#373a3c> 역대 기록[1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한화
125
472
.246
116
25
3
22
79
96
25
68
.451
.33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히어로즈
125
486
.290
141
24
4
24
90
85
23
68
.504
.376
2010
넥센
92
347
.265
92
16
2
12
50
58
12
44
.427
.343
<color=#373a3c> '''KBO 통산'''
(3시즌)
342
1305
.267
349
65
9
58
219
239
60
180
.464
.353

5. 이야깃거리



5.1. 별명


클락이라는 이름 때문에 슈퍼맨[20], 시계신과 오리시계란 별명이 있다. 하지만 덕 클락의 덕은 duck이 아니다…. 물론 클락도 그 clock이 아니고…. 정확한 스펠링은 Doug Clark이다.

5.2. '''인성 문제'''


외국인 선수 치고도 성격이 너무 순해서 심판들이 만만하게 본 선수라는 평도 있다.
2008년 박정권과의 충돌로 박정권이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이라는 소식을 듣고 미안한 마음에 자진 결장을 한 예나[21], 2009년 WBC가 종료된 후 열린 시즌 첫 경기였던 두산 베어스전에서 타격 연습을 기다리고 있던 김현수에게 "세계의 큰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하는 걸 잘봤다."라며 악수를 먼저 청했던 것, 2년 연속 20-20 클럽을 달성하고 김시진과 히어로즈 코치들에게 시계를 선물 했던 미담 등 사람이 순하고 대인배스런 기질이 있었기에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2010년에 서군 외야수 중[22] 가장 많은 표인 65만 8253표를 얻은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데 위의 모습이 모두 '''가식'''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등장했다. 말썽꾸러기 용병 비화 ‘젠틀맨’ 가면 쓰고 치어리더실 들락날락 2014년 8월 3일자 일요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신사적이었으나 실제로는 통역 담당자들과 선수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고 이유 없이 치어리더실에 자주 드나들어서 구단 관계자가 지적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단순히 카더라성 기사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보통 카더라성 기사는 야구선수 A와 같은 식으로 명예훼손 문제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데 반해 이 기사는 굳이 아담 윌크, 루크 스캇, 틸슨 브리또 같이 멘탈 문제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밝혀진 선수들과 함께 언급을 했다. 덕 클락의 이미지가 좋은데다, 이미 다른 선수들의 에피소드만으로 기사 분량이 충분히 나오는 상황이며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한 가쉽성 기사로 사용했다고 볼 수도 없다[23]. 따라서 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 거기에 약물 문제로 적발되면서 다시 한번 덕 클락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이는 중.
또한 2010년 10월 정우영 아나운서가 뜬금없이 덕 클락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이자 가식덩어리라는 트윗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런데 이후 밝혀진 내용을 보면 정우영 역시도 위와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주지하고 비난 트윗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공개적으로 인성문제가 밝혀지기 전에 남긴 트윗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트윗에 '미국 백인'이라는 인종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갔기에(이 부분은 사과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2011년 야구선수 생활을 계속하고자 멕시코까지 갔던 최영필에게 옛 한화 이글스 동료로서 이것저것 편의를 제공해주었다는 일화[24]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푼 썰에 의하면, 국내 선수도 아닌데 팀원들을 집합시켜 본인도 고참 송지만도 황당해 했다고 한다.

5.3. 기타


마구마구에서 09클락에게는 슈퍼맨이라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효과는 '''다이빙 범위 증가.'''

6. 관련 문서


[1] 홈런 홈런 홈런!(덕클락!)(덕클락!)*2[2] 날려버려 클락~ 날려버려 클락~ 날려버려 히어로즈 덕 클락~[3] 날려라 덕클락~ 달려라 덕클락~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향해서~[4] 달빛요정 자신이 살아있던 당시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5] 당시 이호준1루수 공백을 수준급으로 메우고 있던 박정권은 정강이뼈가 세 조각으로 부러지며 그대로 시즌 아웃. 클락은 박정권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자숙의 의미로 경기를 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클락도 무릎이 아작이 났다고 한다. 당시 박정권은 백업선수라서 인지도가 없을 때라 한화 팬들은 듣보잡이 남의 팀 간판 타자 보냈다고 오히려 까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박정권SK의 레전드 타자가 될줄 누가 알았으랴…. 한편 클락은 이때 부상 사실을 속시원히 얘기하지 않아서 성적이 급전직하했는데 다른 의미로는 팀에게 큰 피해를 준 셈.[6] 언뜻 보면 괜찮은 성적 같지만 이 기간동안 볼넷이 17개, 삼진이 76개다. 풀시즌을 뛰었으면 150삼진 가까이 기록했을듯. 그리고 그의 수비력은 더가관인게.. 감독이 차라리 김태완을 우익수출전시킬정도였다. [7] 참고로 2008년 팀별 경기가 총 126경기였다. 박정권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자진 결장한 경기를 제외하면 전경기 출장이라는 뜻.[8] 이 다음 유한준, 강정호와 몸을 부딪히며 환하게 웃는다. 아아 시계신..[9] 이는 팀 동료 강병식이 미국에서 휴식중이던 클락에게 연락을 취하면서까지 정성스레 부탁했기에 변경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강병식은 이 해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한다.[10] 그리고 이 수치는 방출당한지 한참 지난 2010년 8월 중순까지 클락이 1위를 고수하였다.[11] 이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본인 야구인생에서 방출은 처음이었다고. 메이저 리그 데뷔 후 팀을 옮겼던 것은 계약이 만료돼서 새 팀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방출당한 것은 아니다.[12] 이 성적은 시즌이 끝날 때 까지 '''팀내 홈런 공동 2위, 타점 4위의 성적이다.'''[13] 이 때문에 히어로즈가 뒷돈을 받고 클락을 방출시켰다는 음모론도 떠돌았지만 클락 정도 성적의 외국인 선수를 뒷돈 주고 영입해야 할 정도로 외야수가 급한 구단은 없다.[14] 니코스키는 9경기 나와서 32 1/3 이닝 평균자책점 6.68 2승 6패로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15] 이숭용을 제외하고는 경험 있는 좌타자가 별로 없다. 강병식은 의외로 2010년이 첫 풀타임이고, 장기영 역시 경험이 부족했다.[16] 클락은 다음 날 미국으로 갔다. 사실상 이 사진이 한국에서의 클락 마지막 사진인 셈.[17] 칸쿤에 위치한 멕시칸 리그 팀이다. 칸쿤은 Quintana Roo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18] 타마울리파스 주의 레이노사 시에 위치한 멕시칸 리그 팀.[19]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20] 슈퍼맨지구에서 사용한 이름이 클락 켄트라서. 그리고 대전구장, 목동구장이 인조잔디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다이내믹한 다이빙 캐치를 보여줘서 붙여졌다.[21] 자진결장한 날, 박정권이 입원한 병원에 화환을 보냈다.[22] 내국인 외국인 모두 포함[23] 원래 이런 류의 신문은 정치스캔들이나 성과 관련된 기사가 메인에 올라오기에 스포츠는 신문의 후반부에 2~3면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하는게 보통이다. 거기다 본 기사가 실린 신문은 1면에 덕 클락의 이름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기사를 보고 싶은 사람은 보통 스포츠 신문을 사서 보거나 그냥 인터넷에서 직접 검색을 한다.[24] 최영필의 직접적인 표현을 인용한 ‘안 되는 한국말로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주려는 고마운 친구’ 라는 표현에서 볼 때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