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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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루시엔 제임스 "룩" 롱리
Lucien James "Luc" Longley
'''생년월일'''
1969년 1월 19일 (56세)
'''키'''
218cm (7' 2")
'''체중'''
120kg[1]
'''출신학교'''
뉴멕시코 대학교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1년 1라운드 7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지명
'''역대 소속팀'''
퍼스 와일드캐츠(NBL(호주)) (198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991~1994)
'''시카고 불스(1994~1998)'''
피닉스 선즈 (1998~2000)
뉴욕 닉스 (2000~2001)
'''지도자 경력'''
호주 농구 국가대표팀 (2013~, 어시스턴트 코치)
'''등번호'''
1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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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997'''
'''1998'''
1. 개요
2. 선수시절
2.1. 시카고의 주전 센터
2.2. 피닉스로 이적
2.3. 닉스에서의 은퇴
3. 플레이스타일
4. 평가
5.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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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역대 최초의 호주 출신 선수. 포지션은 센터. 한국에서 불리는 별명은 '롱리신'. 국내에서는 다른 의미(...)로 불스 왕조의 위엄을 표현해 주는 인물로 유명하다.

2. 선수시절


1969년 1월 19일 빅토리아의 멜버른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호주의 U-19 팀의 일원으로 참가할 정도로 농구 센스가 좋았으며, 1986년에는 호주 프로농구 리그(NBL) 팀인 퍼스 와일드 캐츠에서 데뷔하기도 했다. 1987년 미국에 위치한 뉴멕시코 대학교유학을 갔고 NCAA에서 뛰게 된다.

2.1. 시카고의 주전 센터


농구 선수로서는 괜찮은 신체 조건 덕에 1991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7피트 2인치라는 신장과 좋은 체격 조건을 갖췄지만, 일단 느렸고 운동능력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데뷔 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덩치에 걸맞게 힘은 상당히 강했으나 버티는 힘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2][3] 포스트업 기술도 없었으니 결국 무용지물... 그를 드래프트한 미네소타가 참지 못하고 루키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해버렸을 정도.[4][5] 불스에 가서도 초반엔 윌 퍼듀와 빌 웨닝턴이랑 세트로 묶여 불스의 바보 센터 3인방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6]
퍼듀가 로드맨과 트레이드되고 주전 센터로 올라섰는데 3연패 당시 시카고 불스의 주요 전술이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정석대로 돌아가지 못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불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코트를 세로로 나눴을때 공이 있는 쪽인 strong side의 반대쪽인 weak side에서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이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원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 공격전술은 한 명[7]이 로우 포스트[8]에서 자리를 잡으면 다른 2명[9]이 윙과 코너에서 자리를 잡아 삼격형 모양을 만들어 이 삼각형 위주로 공격을 하게 된다. 나머지 두 명은 반대쪽에 하이 포스트와 top of the key[10]에 자리를 잡게 된다. 당연히 농구에서는 포스트업을 주로 쓰는 선수가 빅맨이기 때문에 공격의 핵인 삼각형의 꼭지점 부분은 센터파워 포워드가 맡게 된다. 실제로 레이커스에서 필 잭슨이 도입한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이 역할을 샤킬 오닐파우 가솔이 각각 맡은 바 있으며 이게 더 정석적이다. 그러나 불스에서는 포스트업이 강한 빅맨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역할을 못하는게 없는 조던이 맡게 된 것.[11]
대신 원래 보통 포워드가 맡은 반대쪽 하이 포스트에 서 있는 역할을 롱리가 맡았다. 여기서 롱리가 허수아비가 아닌 사람 구실을 했는데 위에 언급했다시피 조던이 로우 포스트에 자리를 잡았는데 롱리 같은 엄청난 덩치가 골밑에 있으면 공간을 서로 잡아먹게 돼서 비효율적이 된다. 그러나 롱리는 골밑에서 무가치한 대신 중거리 슛이 평균 이상은 되어서 하이 포스트에서 버티고 있다가 조던이 빼주는 공을 받아 슛으로 연결시킨 것. 후술하겠지만 결코 중거리 슛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당시 센터 기준으로 평균 이상 정도였는데[12] 그나마 쓸모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것만 하게 시켰다. 조던이 로우 포스트에서 포스트업을 하면 당연히 더블팀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롱리에게 오픈 찬스가 많이 갔고, 자연스럽게 롱리는 시카고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물론 그 전성기를 일반적인 탑플레이어들의 전성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불스에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을 돌리면서 오픈 찬스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기본적인 패싱 센스는 있던 선수라 볼 돌리는 건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상대 센터를 괴롭힌 적도 있었지만 수비 자체는 형편없었다. 불스를 상대하는 특급센터들[13]은 평상시보다 더 활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샤킬 오닐과의 매치업이 대표적인데, 가끔씩 연속으로 오닐의 슛을 블럭한 적도 있었지만 바로 무자비하게 응징을 당하곤 했다. 둘은 덩치만 비슷했을뿐 매치업됐을때 오닐이 롱리를 탈탈 터는게 기본이었다. 물론 그 외 선수들을 틀어막아 불스 전체적으로는 실점을 매우 적게 했지만.
하여간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음에도 운동능력과 스피드가 딸리고 볼을 다루는 스킬도 부족하고 어리버리해서 요령도 부족하고 종종 쓸데없는 파울까지 저질러 필 잭슨과 조던의 속을 끓게 했다. 조던이나 피펜이 만들어 준 찬스를 어이없이 날리는 장면을 종종 보여줘 현지는 물론 당시 우리나라 NBA팬의 대다수 지분을 차지하던 불스팬들에게 장난 아니게 까이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은 98년 당시 기자들에게 센터 트리오인 롱리, 빌 웨닝턴, 조 클레인을 지칭하며 "내가 뭐랑 같이 뛰어야 되는지 알아요? 21피트 (6.3미터) 짜리 똥덩이리죠"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14][15]
그래도 3연패 과정에서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97-98 시즌은 출전시간을 경기당 평균 30분 가까이로 끌어올리면서 적극적으로 오펜스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당 평균 11.4점, 5.9리바운드를 거두는 쾌거(...)를 올렸다. 둘다 커리어 하이.

2.2. 피닉스로 이적


이 당시 롱리의 활약에 '''낚인''' 피닉스 선즈가 5년계약을 안겨주며 롱리를 데려가지만, 그의 활약은 어디까지나 트라이앵글 오펜스 한정이었다는것이 뽀록나 그 이후론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롱리는 스스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선수도 아니고, 골밑에서 득점감각도 별로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있지 않으면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불스에서 그는 역대급 수비수 세명과 같이 뛰었고 같이 뛰는 론 하퍼도 수비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 이 네 명이 수시로 헬프 수비수를 들어오는 혜택을 누렸다. 그러니 혼자 골밑 수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위력이 없었던 것. 또한 스탯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그 덩치에도 리바운드가 그리 강하지도 못했다. 결국 공격도 못해, 수비도 못해, 리바운드도 못해, 잘 뛰지도 못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던 것.
참고로 당시 그가 받던 연봉은 스스로의 연봉을 자진해서 깎았던 유타 재즈의 슈퍼스타 존 스탁턴보다도 많았는데, "스탁턴이 룩 롱리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는 당시 젊은 선수들이 별로 보여준 것도 없이 거액의 연봉을 받던 트렌드를 비판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롱리도 98 시즌 기준으로 29세라 그렇게까지 젊은 건 아니었지만.
롱리는 선스에서 첫시즌 게임 평균 8.7득점, 5.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게임 평균 6.3득점, 4.5리바운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킹콩센터' 패트릭 유잉이 포함된 4팀간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닉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2.3. 닉스에서의 은퇴


닉스 유니폼을 입고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그 후 발목부상으로 인해 2000-01 시즌 이후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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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호주로 귀국하여 오스트레일리안 부머스[16]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중이다.

3. 플레이스타일


뭐 하나도 눈에 띄는 능력이 없었다. 골밑에서 존재감이 없는 대신 패싱 센스나 중거리 슛은 좋았던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른 건 다 함량미달인데 그 두 가지 만큼은 그 당시 센터치고 평균 이상은 됐다는 뜻이지 결코 좋았던 게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폼에 걸맞지 않게(?) 80%대의 성공률을 자랑해 섣불리 파울작전을 쓰지 못하는 자유투, 센터치고 준수한 어시스트/턴오버 비율과 슛레인지. 딱 거기까지였다.
골밑 득점력은 형편 없었고 패스 플레이가 엄청난 것도 아니었고, 리바운드를 잘 잡는 선수도 아니었다. 블락 능력은 큰 키 때문에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거 하나 믿고 가기에는 영 좋지 못했다. 잘 하는 건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몇 안 되는 그를 써야만 했던 불스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꼭짓점에 박아서 조던이 상대 수비 끌어내면 오픈 찬스에 중거리 슛이나 쏘고, 아니면 볼 돌리는 거나 하게 시켰다.
수비력은 그 형편없는 공격력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았는데, 일단 너무 느렸다. 덩치에 걸맞게 힘은 센 편이었지만[17] 그 강한 완력을 활용할 줄 몰라서 포스트업에서 버티거나 백다운으로 상대 센터를 밀어내는 등의 파워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림 프로텍트 능력은 봐줄만한 정도. 물론 수비 상황에서는 리바운드는 로드맨이 버티고 있었으며 헬핑 디펜스도 좋은 팀이라 주요 길목만 막으면 다른 선수들의 협동 수비가 금방 이루어졌기에 센터가 할 거라곤 골밑에서 제대로 비벼주고, 블락슛을 제대로 날려주면 할 일 다 하는 거였다.[18]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전술을 벗어나면 별다른 힘을 못쓴다는 뜻이다. 실제로 피닉스 선즈는 그에게 거액을 배팅했지만 그대로 쪽박을 차버렸다는 것이 그 증거.
1996~98 3연패 당시 기준, 룩 롱리의 성적은 전 NBA의 평균 혹은 평균보다 약간 떨어지는 센터였고, 각 팀의 주전 센터로 한정하면 최하위권이었던 센터였다. 즉 NBA 평균적인 레벨의 팀에서는 도저히 주전을 맡을 수 없는, 그냥 1차 백업급 센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차 쓰리핏 때는 백업 센터였고 로드맨과 트레이드되어 팀을 옮기기 전까지 불스의 주전 센터였던 윌 퍼듀도 롱리와 공격력은 비슷했지만 수비가 훨씬 좋았고 리바운드도 최소한 주전 센터로서 자존심은 지켜줄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 수준이 떨어지는 센터를 데리고 72승, 69승이나 올렸으니 조던과 피펜, 그리고 조력자인 로드맨 등의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시카고 불스 입장에선 소중한 선수긴 했다. 그의 백업은 빌 웨닝턴, 말년의 로버트 패리쉬와 제임스 에드워즈 등이 맡았는데, '''40대였던''' 패리쉬와 에드워즈는 당연히 은퇴 직전이라 큰 도움이 안됐으며, 웨닝턴은 롱리외 마찬가지로 중거리슛과 패스 말곤 도움이 안됐는데 피지컬조차 롱리보다 떨어졌다. 이 때문에 롱리가 빠지면 차라리 쿠코치를 스타팅라인업으로 올리고 로드맨을 센터, 피펜을 파워포워드로 하거나 (로드맨이 매치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키가 큰 센터가 상대팀에 있으면) 쿠코치를 센터로 올리는 변칙라인업을 써야했다. 즉, 저런 롱리조차 없으면 비상이 걸릴 정도로 당시 시카고의 골밑사정은 심각했다.
성격도 엄청 순한 편이라 훈련 때마다 조던이 다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94-95 시즌 올랜도 매직과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노마크 오픈슛 상황에 샤킬 오닐이 쫒아오는 걸 보고 쫄아서 찬스를 놓치는 바람에 엄청나게 갈굼먹는 게 방송을 타기도 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19]

4. 평가


상기 플레이스타일에서도 나와있듯이 눈에 띄게 잘 하는 부분이 없는 평범한 백업~최하위팀 주전 수준의 선수였고, 하필이면 같은 팀 동료들이 워낙 쟁쟁했기에 못하는 부분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20]
다만 이러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가비지 멤버 수준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이건 너무 과도한 폄하이고... 그는 적어도 NBA에서 일정한 출전시간과 롤을 소화할만한 최소한 기량은 있었으며 아예 써먹지도 못할 폐급 선수는 아니었다. 그냥저냥 써볼만한 1차 백업센터 수준은 되었다는 소리.
롱리는 전성기 당시조차 NBA에서 백업선수~최하위 주전에 가까운 실력이었지만, 이것만 해도 당시의 비미국인 농구선수로서는 엄청난 것이다. NCAA나 타 해외리그에서 슈퍼스타로 이름날리던 선수들 중 극소수만이 NBA의 문턱이나마 넘어볼 수 있고, 그마저도 가비지타임 로테이션 멤버 수준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NBA를 뜨는 선수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난다. NBA에서 가비지멤버를 넘어 백업으로써 유의미한 출전시간과 역할을 할당받는 것 자체가 무시못할 성취이며, 적어도 롱리는 NBA에서 10년은 버틴 선수이다. 실제로 롱리는 NBA선수 자체를 많이 배출 못하는 호주 역사상 최초의 NBA선수이며, 호주에선 당연히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았으며 '''농구영웅''' 취급받는다. 한국으로 치면 허재나 서장훈 정도 위치의 선수. 물론 이 둘과 달리 호주에는 그를 능가하는 후배들이 몇 있다.
앤드류 보것이 루키 시즌 "난 롱리같은 선수랑은 다르다"는 디스멘트를 해서 안습한 이미지가 더해졌는데, 애초에 보것은 똘끼 넘치는 선수인데다 당시 드래프트 1순위였음에도 드래프트 뎁쓰가 낮다, 백인센터라 한계가 있다 이런저런 폄훼가 많아 저런 건방진 멘트를 남긴 것이다.
당시 불스 오펜스는 조던과 피펜, 쿠코치 등을 중심으로 돌아갔기에 롱리를 비롯 빌 웨닝턴 등 백인센터들은 몸빵으로 로포스트에서 자리만 채우고 노마크가 될 때 중거리 점퍼만 제대로 성공시키면 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처음문단에 기술된 것처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한 이해도가 나쁘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주전센터로 나왔고 조던, 피펜이 스크린을 받아 백 컷으로 갈때 롱리가 적시에 주는 패스도 불스의 주요 공격전술 중 하나였다. 물론 제대로 할 줄 아는게 그정도 외에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역할만 맡게 된 것이 사실이고, 그 극히 제한적인 역할마저도 쏠쏠하게 해냈다 정도이지 결코 수준높은 플레이를 보여준건 아니었다.
롱리의 문제는 1대1에서 기술보다도 팀플레이에서 센스가 형편없었다는 점이었다. 롱리는 사실 머리 자체는 제법 좋은 선수였고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한 이해도가 분명 있었다. 볼을 잡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때는 패스를 적재적소에 찔러주거나, 덩치를 이용해 득점을 해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심하게 떨어지는''' 순발력과 상황판단력이었다. 아래에 나오는 바보스크린의 경우도 그렇지만 순간적인 상황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엉뚱한 선택을 하고, 워낙 둔하다 보니 엉뚱한 장소로 이동했다가 제때 빠지지 못해 동료들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21] 사실 이 부분은 하일라이트로 보면 드러나지 않고 풀경기를 봐야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후대 팬들은 그의 둔한 움직임과 상황판단이 팀에 어떤 민폐를 끼쳤는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볼도 움직이면서 오픈 찬스를 만드는 전술이다. 그런데 롱리는 포스트맨으로서 역할이 제한적이고 롱2 위치로 빠져봤자 거기로 수비를 몰고 올 수 있을 정도로 슛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 스크린을 해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롱리는 조금만 공격흐름이 빨라지면 스크린을 걸 타이밍을 헷갈리기 일쑤였으며, 엄청나게 빨리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엔 너무 둔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09aE9Sq7qc 이 영상의 6분 18초부터 보면 조던이 매치업을 놓친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더블팀하다가 자기 마크맨을 완전히 놓치는 수비실수, 상대팀이 슛을 하는 즉시 자기 마크맨을 박스아웃하는게 빅맨으로서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멍때리고 있다가 완전히 놓쳐 골대 바로 밑까지 가게 하는 실수(다행히 리바운드는 다른 불스 선수 쪽으로 갔다)가 찍혀있다. 이 영상을 찍은 기자 말에 따르면 불스 코치진은 '''경기 내내 롱리에게 소리를 쳤다.'''[22] 사실 워낙 조던이 동료들에게 가혹한 편이라 그 대상이 되었던 롱리에게 동정론도 있지만, 롱리는 조던 뿐 아니라 잭슨을 포함한[23] 코치진들에게도 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답답한 선수였던 것이다. 실제로 조던은 초창기에만 둔한 카트라이트를 싫어하고 아니꼬워했지, 나중에는 카트라이트의 공헌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발언을 했으나 롱리에겐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카트라이트는 공격도 롱리만큼은 해주는 동시에 수비시 뒤를 든든히 받혀주는 좋은 롤플레이어였으나, 롱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
롱리보다 역동적인 센터였던 브라이언 윌리암스[24]가 96-97시즌 막바지에 불스에 합류한 뒤 롱리와 로테이션으로 나오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이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고 당시 불스 샐러리캡은 이미 상한선을 넘었기에 굳이 사치세를 내가면서 잡을 수 없었다. 즉, 필 잭슨은 제한된 환경에서 롱리라는 센터를 최대한으로 활용했고 롱리 또한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실행하였다.
만약 롱리 대신 블라디 디박, 릭 스미츠 같은 올스타 레벨의 센터가 팀에 있었다면 어마어마한 슈퍼팀 라인업(조던+피펜+올스타 센터라는 빅3, 리그 최고의 블루워커이자 당시까지도 All-NBA Team 바로 아랫급의 평가를 받은 로드맨+리그 최고의 벤치에이스 쿠코치 등)이 완성되어서 리그를 파괴했을 것이고 72승 이상의 위업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겠지만, 샐러리캡의 한계상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엔 현재와 달리 슈퍼스타끼리 뭉치는 추세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각 팀 에이스 선수들도 그럴 생각은 없었기 때문.[25]
물론 조던-피펜을 보유하여 리그를 지배해버린 팀이 올스타급 센터까지 바라는 건 당시 환경에선 과도한 욕심일 수 있으나, 적당한 주전급 센터만 있었어도 불스는 훨씬 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다.[26] 논지는 슈퍼팀처럼 센터까지 스타급으로 꾸렸어야하는데 아니라, '''센터가 그나마 평균이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당대 환경에서 센터포지션에 약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약점이고, 프런트의 역량에 따라선 이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불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
애초에 이 팀은 시카고 불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돈 안 쓰기로 악명이 높은 팀이었다. 90-91시즌 초중반까지 매번 주전이 점수를 벌려놓으면 벤치가 이를 날려먹는것에 질린 조던이 벤치스코어러 영입을 요구했고, 개인적으로 선호한 것이 바로 그의 대학선배이던 노장 월터 데이비스였다. 데이비스는 이미 36세노장이었고 기량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었지만 괜찮은 벤치득점원이었기 때문. 그러나 크라우스 특유의 이상한 협상방법으로 결국 모든 목표들을 전부 놓치고 트래이드 데드라인을 허무하게 보낸다. 사실 97,98시즌에 맥시멈 제도가 없었을때 조던을 잡느라 거액을 써서 묻히는 부분이지만, 시카고는 왕조 시절 돈을 더럽게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1차 3연패 기간동안에는 3년 내내 샐러리캡 밑이었다. 토니 쿠코치 영입을 위해 2백만달러 언저리의 여유를 남겨놨기 때문인데, 당시 샐러리캡은 1천1백만~1천4백만 달러수준이었다. 심지어 90-91시즌에는 팀 연봉이 27개팀 중 23위였고, 그 다음 시즌엔 장기계약에 묶여있던 조던, 피펜의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르고, 연봉에 불만이 많던 카트라이트, 그랜트, 팩슨 등 우승 공신들의 연봉을 전체적으로 올려주며 리그 3위, 그 다음 시즌도 4위가 되지만, 조던의 연봉이 빠진 94,95시즌은 둘 다 12위 (95시즌엔 그랜트 연봉이 빠지고 론 하퍼가 들어옴), 조던 연봉이 추가된 96시즌엔 오히려 15위였다. 전체적으로 시카고 불스는 팀 역사상 NBA에서 총 연봉 1위를 차지한 적이 97,98시즌 단 두번, 대부분 기간을 10~20위대에서 왔다갔다 할 정도로 투자 안하던 팀이다.
단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의외로 '롱리 말고 제대로 된 주전급 센터가 있었다면'이라는 IF를 적용하더라도 '''NBA와 불스의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불스는 피스톤즈를 넘어선 91시즌을 시작으로 센터포지션에 특별한 경쟁력이 없음에도[27] 두번의 쓰리핏을 해냈고, 막말로 조던이 6개를 넘어 7~8개의 반지를 거머쥐지 못 한 이유는 센터 문제가 아니라 조던 본인이 '''최전성기에 해당되는 나이에''' 은퇴를 한번 했던 것이 더 크다. 조던이 은퇴해서 없거나 어중간한 경기감각으로 막판에 복귀한 94, 95를 제외하면, 조던이 건재한 나머지 구간에서는 센터고 뭐고 불스는 우승을 해냈으니 팀에 롱리가 있던 카트라이트가 있던 '결과적으로는' 무언가 달라질 것이 없었다는 소리. 불스 프런트가 일을 좀 더 잘했더라면, 로스터에 좀 더 좋은 센터가 있었더라면 우승 하나하나의 과정이 더 쉬워질 순 있었을거라는 넋두리 정도로 이해하는게 적절하다. 단, 만약 조던의 1차 은퇴가 없었다면 하킴 올라주원이라는 당대 최강 센터가 이끌던 휴스턴을 파이널에서(94, 95) 만났을 여지가 높고, 이 시리즈가 성사되었다면 불스의 센터 약점이 정말 크게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8]

5. 기타


롱리의 위엄
  •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카고 불스 왕조의 2차 3연패 시절 주전 센터였다는 점 때문에 근래 들어 희화화 소재로 많이 언급된다. 가령 예를 들자면 룩 롱리가 농구 은퇴하고 야구선수로 외도하다 돌아온 대머리와 함께 72승 10패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든지, 조지 마이칸, 빌 러셀, 샤킬 오닐과 함께 쓰리핏을 이룬 NBA 역사상 단 네 명의 센터라는 등...[29]
  • 아이러니하게도 불스 왕조 1기, 2기의 주전 라인업을 통틀어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팬들 사이에서는 주목도가 높다. 1기 왕조의 멤버였던 BJ 암스트롱의 경우 현재도 나무위키에서 개인항목이 없고, 센터 빌 카트라이트나 2기 왕조의 주전 가드였던 론 하퍼, 주전급 식스맨 토니 쿠코치는 롱리보다 훨씬 나중에 개인항목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커리어 전체나 단기 시즌 임팩트가 롱리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론 하퍼는 특히 커리어 초기 클리퍼스 시절해도 평득 20점이 가능한 리그 상급 스코어러이자 슈팅 가드였는데, 부상으로 커리어가 처지고 나서부터 불스에 와서 반지 3개를 챙기면서 인지도를 얻은 대신 포인트 가드인줄 아는 사람이 매우 많다. 사실 더 심한 경우는 빌 카트라이트. 이 선수는 데뷔 이후 성장을 못한 특이 케이스긴 하지만 엄연히 롱리와 비교를 불허하는 올스타 출신 센터다. 평득 20점을 넘긴 시즌도 2번. 그러나 커리어 후반기에 불스로 왔고 그시절 득점력이 크게 뛰어나지 않았던 탓인지 대부분 롱리와 똑같은 수준의 식물 센터 취급을 받고 있다. 하향세긴 했어도 카트라이트는 불스에서 평득 10점 넘긴 시즌도 2번이다. 게다가 롱리와 달리 골밑 존재감과 수비력이 수준급이었던 선수다. 즉, 롱리는 공격력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위에 언급했듯 수비력은 극히 평범했다) 그나마 득점력도 수비형 센터인 카트라이트와 잘해야 비슷한 수준인 것. 또한 카트라이트는 조던과 공동 주장으로 무자비한 조던과 대비되는 따뜻한 성격의 리더 역할을 잘해줬다. 현실은 트레이드 대상이 찰스 오클리였던 탓에 조던에게 폭풍 갈굼당했다는 일화만 알려진 불쌍한 선수 취급은 덤.
  • 통산기록이 7.2점, 4.9 리바운드인 선수가 개인 항목이 있다는 데서 불스 왕조의 위엄을 알 수 있다.
  • 95-96시즌 휴스턴전에서 롱리가 조던 수비수 픽을 걸어주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 플레이 일화도 있다. 픽 이후 조던은 돌파를 시도 했으나 골밑에는 하킴 올라주원과 로버트 오리가 있었고 결국 오리에게 파리채 블락을 당했는데 다행히 쿠코치가 리바운드를 잡아 골밑 노마크였던 조던에게 다시 패스 하킴을 앞에두고 훅 슛을 성공시켰다?! 이미 조던이 공을 잡는 순간 공격 분위기가 1대1 모드였으나[30] 잘 해보려고 했던 롱리가 눈치없이 다가갔고 조던 공격흐름이 변경되고 말았다. 설사 픽이 완벽하게 이루어져도 상대방이 아직 전성기 시절의 하킴이라 올바른 공격전개도 아니었기에 롱리는 다시 한 번 욕을 진탕먹었다.
픽앤롤의 장점은 픽앤롤이 이뤄지면 순간적으로 매치업이 바뀌어 미스매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데릭피셔-샤킬 오닐이 존 스탁-칼 말론을 막을때 말론의 스크린 이후 순간적으로 발이 느린 오닐이 스탁턴과 매치업이 되고 185cm의 피셔는 206cm에 탱크같은 몸을 지닌 말론을 막아야된다. 레이커스가 유타에 그토록 털렸던 이유, 그리고 장신 론 하퍼를 스타팅 PG로 영입한 이유. 그런데 이 상황에선 조던을 센터치고 발이 빠르고 수비범위가 넓은 하킴이, 롱리를 키는 208cm에 달하는데다 운동능력이 매우 뛰어난 오리가 막게되어 미스매치의 의미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조던이 스크린을 활용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 롱리도 대단한 점은 조던이 인상 쓰면서 "i don't need a pick. get out of my way" (픽 필요없으니 꺼져.)라고 말했는데 문서 전반에 서술되어 있듯이 롱리의 성격상 전혀 위축되지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찌보면 멘탈 하나는 보통 멘탈이 아닌셈. 여러모로 재미있는 캐릭터이다.[31]

[1] 말년 기준. 시카고 시절엔 290파운드(130.5kg)까지 나갔다. 여담이지만 이 때 샤킬 오닐은 310파운드(138kg) 정도로 프로 커리어 통틀어 가장 슬림했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는 덩치는 둘이 비슷했다. 물론 바윗덩어리 같은 근육질인 샤크와 물살이 많은 롱리는 차이가 컸지만...[2] 포스트에서 버티는 건 단순히 힘만 무식하게 세다고 되는게 아니다. 220파운드 정도인 데니스 로드맨이 300파운드를 가볍게 넘기는 샤킬 오닐의 백다운을 버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하체 힘과 더불어 외부 힘에 대응해 균형을 잡고 자세를 제대로 잡는 (이걸 못하면 넘어지지 않으려 뒷걸음질 치다 자리를 뺏기기 십상이다)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롱리는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 따지면 로드맨보다 강했을 수 있지만 그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했다.[3] 슬램덩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힘을 자랑하는 강백호신현필을 처음 맞닥뜨린 직후에는 그의 덩치와 힘에 밀려 골 밑에서 밀려났지만, 신현필의 약점을 깨닫고선 자세를 낮춰 균형을 잡고 하체 힘으로 밀어붙이자 오히려 신현필이 꼼짝 못하게 되는 지경이 되었었다.[4] 참고로 1995년에 가넷이 합류하기 전의 미네소타는 전형적인 안습팀이었는데 롱리는 여기서도 붙박이 주전은 못했고 돌아가면서 나왔다.[5] 시카고 불스의 트레이드 상대는 백업 파워 포워드였던 스테이시 킹이었다. 참고로 스테이시 킹은 2010년대 들어 시카고에서 불스 전담 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불스 경기를 보면 찰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6] 소위 "2차 쓰리핏 기간"이라고 불리는 95~98 시즌의 불스는 1차 쓰리핏을 달성한 90~93 시즌까지의 불스보다 센터진이 매우 약했다. 1차 쓰리핏의 경우 부상과 나이로 전성기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지만 수준급 수비형 센터 빌 카트라이트가 있었고 그 뒤를 윌 퍼듀가 서포트하는 체제였지만, 2차 때는 퍼듀보다 더 실력이 떨어지는 롱리가 주전 센터였다. 물론 로드맨이 있긴 했지만 이때 로드맨은 부상과 나이 (35세~37세) 때문에 전성기 기량은 아니었다. 샤킬 오닐을 막을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조던과 비슷한 체격의 로드맨이 경기 내내 샤킬 오닐을 막을 수 있던 것도 아니고...[7] 주로 센터.[8] 골밑 가까운 곳.[9] 주로 가드와 포워드가 역할을 맡았다.[10] 자유투 서클 위쪽의 부분.[11]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던이 주구장창 포스트업만 했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포스트업을 하는 횟수 이상으로 외곽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1대1 플레이를 하거나 수비수를 스크린을 이용해 떼낸 후 공을 잡아 바로 슛하는 catch&shoot 플레이도 자주 했다. 자연스럽게 삼각형의 꼭지점 역할도 로드맨, 롱리 등이 맡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선수의 공격능력은 한심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꼭지점 위주로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공을 돌리는 역할만 했다. 그나마 로드맨, 롱리가 패싱 센스는 빅맨치고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잘 돌아간 것. 그렇기 때문에 코치 텍스 윈터가 고안해낸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원형에는 오히려 이 때 불스 왕조보다 레이커스 왕조 당시가 훨씬 가깝다.[12] 상당수 센터, 파워 포워드들이 (성공률과 별개로) 3점 슛을 성공시킬 수 있으며, 최소 중거리 슛은 무난한 현재 NBA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는 경기 중 3점 슛이 가능한 센터 자체가 별로 없었다. 물론 전부 다 잘하는 4대 센터나 아비다스 사보니스, 릭 스미츠, 블라디 디바치처럼 확률 높은 중거리 슛 능력을 가진 센터들도 있었지만, 평범한 센터 중에는 롱리처럼 15~18피트까지 공격범위가 안 되는 선수들도 있었다. 물론 롱리의 중거리 슛이 뛰어났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당시 파워 포워드들의 영역에서 센터가 중거리 슛을 무난히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센터들의 평균치는 넘어선 것이었다. 롱리의 수비, 리바운드, 포스트득점, 기동력, 점프력 등 모든 게 NBA센터 평균 이하였는데 패스랑 중거리 슛이라도 평균 이상이 아니면 그냥 가비지타임 전용 폐급 센터다. 롱리는 어쨌거나 최소 백업~식스맨 급은 되는 선수였다.[13] 대표적으로 동부라 자주 붙은 유잉, 샤크, 모닝[14] 조던이 어느정도 수준의 센터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센터들의 비중과 위상이 지금과 높았던 시대에 백업급 센터를 골밑에 세워둬야 하는 상황이 꽤나 답답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 1 식스맨이자 스몰포워드인 토니 쿠코치가 센터를 본 적도 있었으니. 덕분에 시카고는 플옵만 되면 센터의 공격비중이 높아지는 다른 NBA팀과 달리 조던의 공격비중이 높아져야 했다.[15] 사실 빌 카트라이트의 경우 이적해온 초창기에 전성기 시절 기량을 모두 잃어버린 그에 대한 불신+믿음직한 빅맨이자 친구인 찰스 오클리를 대가로 치른 것에 대한 불만으로 조던이 첫 시즌인 88-89시즌엔 그를 엄청 갈궜지만, 이후 3연패 기간동안은 그를 상당히 존중했다. 실제로 카트라이트는 당시 팀의 공동주장이었다. 그는 공격력은 없었지만 든든한 수비버팀목이었기 때문에 롱리가 그만큼의 존재감이라도 있었다면 저렇게 갈굼받진 않았을 것이다.[16] 호주 농구 국가대표팀의 애칭.[17] 의외로 힘은 상당히 셌다. 성격이야 순하지만 신경전 이후에 다른 빅맨이랑 시비 붙을 때 알론조 모닝이나 크리스 웨버를 완력으로 완전히 압도했던 거 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0qxxr9upzEc 특히 이 영상에서 보면 롱리가 모닝을 한손으로 가볍게 한번 밀치자 모닝이 발을 헛디딜 정도로 나가 떨어졌으며, 본격적으로 붙자 황소처럼 돌진하는데 근육질인 래리 존슨이 뒤에서 잡고 있는데도 전혀 저지를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걸 볼 수 있다. 사실 과거 미네소타에서 뛰었던니콜라 페코비치의 경우에서 보듯이 평균적으로 백인들이 비슷한 덩치의 흑인들에 비해 전체적인 운동능력은 훨씬 처지지만 힘은 오히려 더 강한 경우가 많다.[18] 그래서 2차 3연패 시절에 팀내 블락슛 1위가 롱리였다.[19] 사실 조던이 워낙에 동료들을 다그치는 성격을 지닌 선수라 실력이 안되는 선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이런 성격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1차 3연패 당시 호레이스 그랜트는 성격이 섬세하고 순한 편이라 조던의 갈굼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조던의 워싱턴 시절에 만난 콰미 브라운도 항목에 나와 있지만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울 정도로 조던을 두려워했다.[20] 실제로 주전치고 못하기도 했지만, 만약 평범한 팀 소속이었으면 그냥 적당히 흔한 백업 센터로 눈에 띄일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불스왕조 소속의 메인 센터다 보니, 그가 볼을 흘리고 바보같은 실수를 하는 모습이 허구헌날 전세계에 중계되면서 허접의 이미지가 강하게 씌여진 것.[21] 롱리같은 덩어리들이 낄끼빠빠(...)를 제대로 못할 경우 팀원들의 방해물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실제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인능력을 가졌지만 룩 롱리는 상대팀의 먹잇감이 되었다. 즉 롱리의 움직임 봉쇄를 통해 시카고의 트라이앵글을 망치는게 상대팀의 패턴중 하나였다.[22] 영상에서 나오는 필 잭슨은 (수비 실수에서) "젠장 루크!(Goddamn it, Luke!)" 박스아웃 실수에서 "늦었잖아! 젠장할 루크!(You're late! Goddamn it Luke!)"라고 한다.[23] 잭슨의 별명은 "Zen Master"인데다가 레이커스 시절엔 너무 흐름대로 가고 타임아웃도 안 부르고 여유를 부린다고 팬들이 불평했던 사람이다. 물론 잭슨도 경기 중에 화내고 욕하고 하곤 했지만, 그 유명한 바비 나이트나 돈 넬슨처럼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경기 내내 악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답답해할 정도였던 것.[24] 피스톤즈 이적 후 바이손 델리로 이름을 바꿈.[25] 예외적으로 바클리가 하킴, 드렉슬러, 케빈 윌리스가 있는 휴스턴으로 이적했지만 모두 30대 중반 나이에 이미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시점이었다. 또한 로버트 오리, 샘 카셀 젊은 선수들이 반대급부로 팀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선수 로테이션에서 문제가 발생되었고 결국 휴스턴은 서부결승에서 유타에게 패했고 다음해에는 서부8위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다시 한 번 유타를 만나 분전했지만 결국 2승 3패로 탈락했다. 최근 골든스테이트, 클리블랜드, OKC 등 빅 3 OR 4 구성과 그 이전 본격적 시발점인 된 07/08 보스턴 같은 최고수준의 로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26] 이 팀은 96-97시즌에 래리 버드권리가 없던 로드맨에게 무려 9백만달러 연봉을 주고 재계약 후 버드권리를 이용해 조던과 계약했는데, 9백만달러는 해당년도에 전성기이던 디켐베 무톰보 연봉과 비슷하다. 이 시대의 9백만 달러는 올스타급 연봉이다. 게다가 이때 로드맨이 받은 9백만달러는 그의 커리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액수다. (2위 시즌의 두배) 이 액수를 35세 노장에게 선사한 것. 실제로 그는 97시즌에 수비에서 기량저하가 역력했고 플레이오프에선 특기인 리바운드까지 문제였다. 물론 로드맨은 사이즈의 열세를 BQ와 활동량 및 운동능력으로 커버하는 언더사이즈 빅맨치고는 경이로울 정도로 늦은 나이까지 훌륭한 기량을 유지한 선수였고, 그 떨어진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도 충분히 리그 상급이었다. 불스의 두번째 전성기에 조던과 피펜 다음가는 기여도를 가진 선수인 만큼 마냥 오버페이라고 할 까진 아니지만, 계약 측면에서 '조금 더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는 것.[27] 물론 1차 쓰리핏의 카트라이트는 2차 쓰리핏의 롱리보다 인정받는 편이지만, 그마저도 나이가 있다 보니 보드장악력이나 공격력이 결코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는 편이었다.[28] 불스는 리그를 지배한 1차 쓰리핏 구간에도 하킴의 휴스턴 앞에서만큼은 상대전적에서 매우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정규시즌의 조던과 플레이오프의 조던은 다르지만, 플옵에서 월등히 강해지는건 '''하킴 역시 마찬가지.''' 때문에 조던이 은퇴하지 않은 1차 쓰리핏 직후의 불스가 다른팀은 몰라도 휴스턴을 파이널에서 만났다면 승리를 장담하기는 매우 어려웠을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29] 빌 카트라이트도 쓰리핏을 달성했지만, 우스개로 하는 말이고 최소한 그 시대를 지배한 최고의 선수들의 전유물이던 3연패를 롱리가 달성했다는게 포인트[30] 오리는 사이드스텝이 빠른 선수가 아니라 비슷한 키의 케빈 가넷에게도 정신없이 털렸는데, 가넷보다 빠른 조던이라면 아이솔레이션으로 손쉽게 제치고 중거리슛을 넣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다른 세 명의 선수들은 눈치를 채고 다 코트 반대쪽으로 몰려가서 조던에게 공간을 줬는데, 롱리만 눈치없이 필요도 없는 스크린 걸어주러 가면서 하킴을 데려간 것이다. 결국 조던은 중거리슛 옵션이 봉쇄되고 베이스라인 돌파쪽에는 하킴이 지키고 있어 어쩔수 없이 중앙으로 돌파했는데 골밑엔 클라이드 브렉슬러와 따라온 하킴까지 있었다. 이들을 제치고 어찌어찌 레이업을 올려놓긴 했으나 그 사이 따라온 오리에게 블럭을 당한 것. 손쉬운 중거리 점퍼 하나가 사실상 트리플팀을 제치고 올리는 더블클러치라는 초고난이도 플레이로 바뀌엇으니 조던도 열받을만하다.[31] 당시 조던은 이미 역대 넘버 1위치였으나 1차 복귀 이후 다음 시즌이라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시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