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1. 개요
冠村隨筆
충청남도 출신의 소설가 이문구가 지은 자전적 소설집.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연재된 8편의 소설들이다.
2. 상세
어린 시절의 체험을 회상하면서 근대화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농촌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1972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일락서산(日落西山)』,『화무십일(花無十日)』,『행운유수(行雲流水)』,『녹수청산(綠水靑山)』,『공산토월(空山吐月)』,『관산추정(關山芻丁)』,『여요주서(與謠註序)』,『월곡후야(月谷後夜)』등 여덟 편의 중 ·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에 들러 옛 터전을 둘러보며 떠오르는 감상을 위주로 쓰고 있다.
중심이 되는 내용은, 6.25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타관 생활을 떠도는 주인공이 그 때를 회상하면서 불행을 초래한 시대적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이 이문구의 대표적인 소설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1970년대 초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민족의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산업화 과정에서 점차 소외되기 시작한 농촌의 현실 문제를 연작이라는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통해 사회적 관심사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수필'이라는 말이 나오듯이 이 작품은 하나의 회고담의 형식을 취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하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가운데 소설적 구조를 꾀하고 있다.
소설이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필적 성격이 강하고, 모두 실제 체험에서 기반한 것이라 사실상 자서전에 가깝다. 실제로 이 소설의 집필 동기가 과거 6.25 전쟁 당시 남로당 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하다 처형당한 아버지와 형으로 인한 연좌제의 화가 작가 본인에게도 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즉 작가 자신이 먼저 커밍아웃함으로서 살아남을 방도를 찾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관촌수필인데, 해당 연작 시리즈 중에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공산토월"편이 이런 사정에 의해 쓰인 부분의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공산토월편이 발표된 이후 젊은 문인을 보호하려는 문학계의 움직임 덕에, 그는 연좌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은 오늘날 볼 수 없는 여러 지방 사투리, 방언들을 구수하게 구사하여 생동감과 현실감을 주는 한편,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소설의 여주인공격인 옹점이를 할아버지가 옹젬이라고 부른다든가, "죽음"을 잔디찰방[1] 이라고 표현한다든가, 여러 번 반복해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표현들이 여럿 존재한다.
소설은 휘몰아쳐서 딱 끝내 버린 것이 아니라, 각종 산문 잡지에 투고한 단편을 엮어서 소설로 낸 것이다.
3. 작품의 표현상의 특징
◆ 갈래 : 연작소설, 단편소설, 자전적 소설, 농촌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1940년대와 1970년대 어느 겨울, 관촌이라는 농촌 마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이 소설의 미학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문체이다. 고풍스런 말투, 한학적 소양이 없이는 알기 어려운 어구, 명문의 후예로서만 알 수 있는 세간과 풍습에 관련된 말들이 많아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제재가 그렇더라 해도 이렇게 여실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가 그런 생활에 젖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가 고향 방문을 통해 받는 정서는 아픔이다. 실향민이란 말로 표현되는 정체성의 상실에서 오는 아픔이다. 그것은 물론 시대적 아픔(전쟁)의 소산이다. 전쟁은 이 긍지 높은 가족사를 단절시켰고, 그 상흔은 실향민 의식으로 남아 그를 여전히 괴롭힌다. 그가 아픔을 지속하는 한 전쟁의 참혹함은 계속된다. 작가는 이 자전적 소설에서 명문 후예로서의 긍지와 권위를 박탈당한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아픔에 젖어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복고적 정신으로 그려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1인칭 독백체로 서술로 회고적 정조를 불러일으키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어와 향토색 짙은 고유어를 사용함으로써 토속적인 정서를 강하게 풍긴다. 특히 이 소설에서 미학적으로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문체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어와 향토색 짙은 고유어의 사용, 고풍스런 말투, 한학적 소양이 없이는 알기 어려운 어구, 명문의 후예로서만 알 수 있는 세간과 풍습에 관련된 말들이 작품 속에서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작자가 이러한 문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은, 작자 스스로가 그런 생활에 젖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단편 목록
4.1. 일락서산
4.1.1. 줄거리
나는 성묘를 위해 근년들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처럼만에 찾아든 고향은 옛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비애감에 젖는다. 그 중에서도 맨 먼저 가슴을 후려친 것은 왕소나무가 사라져 버린 사실이었다. 왕소나무가 서 있던 거리엔 외양간만 한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 굴뚝만이 꼴불견으로 뻗질러 서있던 것이다. 또한 내가 살았던 옛집의 추레한 주제꼴은 한결 더 가슴이 미어지는 비감을 더해 주면서, 어느덧 실향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한다.
나는 먼저 할아버지 산소부터 성묘를 한다.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은 나는 순간적으로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의지한 할아버지가 당신의 헛묘(가분묘)를 굽어보고 서 있는 환상에사로잡힌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팔순의 고령이셨다. 인생에서 은퇴하다시피 왕조의 유민으로 은둔자적하던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복고주의적 향수를 버리지 못했는데, 내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런 향수를 못이긴 자위책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천자문을 떼자마자 내 하루의 일과를 짜 놓고 그 일과표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도록 했다. 내가 할 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사랑에 나가 할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요강과 놋타구를 가시는 일도 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배운 것은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오랫동안 이웃해 살았던 낯익은 사람들이 여럿 남아 있음을 떠올리고 그네들을 방문할까 하지만 그네들을 방문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고 망설인다. 마을을 아주 떠나던 날까지도 일가 손윗사람 아닌 이에게는 무슨 경어나 존칭을 써 본 적이 없던 나였다. 할아버지의 지시였고, 곁에서 배운 버릇이었다. 안팎 동네사람의 거지반이 행랑이나 아전붙이었으므로 하대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지론이요 고집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안팎 삼 동네를 다 뒤져도 친구랄 만한 친구랄 게 있을 수 없었던 고적한 소년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가급적이면 알 만한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마을을 돌지 않기로 작정한다.
봉건적 세계 속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고색창연한 할아버지의 가훈을 깨뜨리고, 전혀 반대 방향의 풍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할아버지의 전근대적인 가풍에 반발하기 위해서 싹튼 것은 물론 아니었다. 아버지의 길은 당신 스스로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수삼 년 전만 해도 몇 척의 어선을 가진 선주였던 아버지는 광복을 전후해서 종래 회고조의 가풍이나 실속 없는 사상을 스스로 뒤집어 엎는 데에 서슴지 않았다. 사농공상의 서열을 망국적 퇴폐풍조로 지적했고 '무산계급의 옹호와 서민 대중의 사회적인 위치를 쟁취한다.'는 구호와 함께 그것의 실천을 앞장서서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변형되어 남로당과 합세했던 것은 그로부터 다시 많은 시일이 흐른 뒤의 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집안은 완전히 쑥밭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에게서와는 달리 한없는 거리감과 두려움만을 가졌었다. 툭하면 경찰서에 불려가고 연행돼 가던 신분이었음에도 언제나 의기왕성하며 투지만만한 아버지를 보며 나는 외경스러움과 동시에 무정한 거리감, 아니 차라리 공포감을 느꼈었던 것이다.
변변한 친구도 없이 유년 시절을 보내는 나에게 옹점이는 잊지 못할 친구 역할을 해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친정에갔다가 허드레 심부름이나 시킬 요량으로 데려온 아이었다. 옹점이는 마음이 착하고 어른 앞에서는 소견이 넓었으며,이들에게는 남달리 인정이 많았다. 또한 그릇을 잘 깨는 덜렁쇠였고, 참새 못잖은 수다쟁이기도 했다. 나는 읍내로 나가는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탱이를 돌 어름, 잠시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 번 옛집을 보았다. 이어 칠성 바위 앞으로 눈을 보냈는데, 정작 기대했던 그 할아버지의 환상은 얼핏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의 넋만은 벌써 남의 땅이 되어 버린 칠성 바위 언저리에 아직도 묵고 있을 것만 같았음은 웬까닭이었는지 몰랐다. 다시 한 번 옛집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4.1.2. 등장인물
- 나: 소년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은 '나'로 구분됨.
- 할아버지: 엄격하지만 자상스런 면모도 지니고 있는 봉건적 인물
- 아버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 공산주의자로, 진보적 인물
- 옹점이: 나의 집의 부엌 살림꾼. 수다스럽고 조심성이 없지만 인정이 많고 장난끼가 많은 인물
4.2. 화무십일
4.2.1. 줄거리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 나는 관촌 이발소 앞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소반장사의 뒷모습에서 엉겁결의 착각으로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윤 영감을 떠올린다. 그 해에 있은 일들을 회고하면 시방도 몸서리가 나며 끔찍스럽고 생지옥으로만 여겨지던 해였으니까.
그 무렵에는 부황(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병)안 난 집이 드물고 채독(채소를 먹음으로써 위장 해하는 독기)들지 않은 사람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윤 영감네 일가가 관촌부락에 떠들어온 것도, 그렇게 죽지 못해 삼동을 물리고 해가 원수같이 길어지기 시작한 여름, 육순이 바라뵈는 귀밑머리 허연 늙은이가 턱밑이 안보이게 등이 굽은 노파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나'의 어머니는 전쟁통에 집안의 어른들을 모두 여의어서 남자라고는 어린 아들밖에 없는 집안을 이끌어 간다. 당시 집안은 난리가 나던 해에 농작물을 치안대에 의해 모조리 압수당한 여파로 매우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서원에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장리 쌀을 내주어 겨우 연명해 나가는 처지였다. 이와 같이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피난민들에게 서슴없이 빈방을 내주곤 하였다.
아무 일이나 며칠 간만 부려주어 며느리와 젖먹이 어린것까지 네 식구 굶지만 않게 해달라. 한끼에 밥 두 그릇씩만 주면 모자라는 만큼은 며느리를 내보내어 보태서 먹겠다고 했다. 장리 쌀로 연명해 나가던 형편이지만 이듬해 농사를 위해서는 선머슴이라도 둔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는 영감네 식구들을 받아들인다. 전쟁통에 피난을 다니던 윤 영감 일가가 솔이 엄마를 며느리로 맞게 된 것은 임진강을 건넌 직후 부모를 따라 도강을 했으나 폭격이 한 차례 거쳐간 뒤 고아가 되어버린, 두고 보기가 딱한 처녀의 부모 시체를 묻어 주고 동행하게 되는데, 그 처녀는 피난지에서 윤 영감의 아들 학로와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 두 늙은 이는 보리죽을 먹고 초야를 치룬 학로 내외를 상전 받들 듯 살았다. 그 뒤, 허우대만 그럴싸하면 덮어놓고 잡아다가 군인을 만들던 판이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낼 수 없었던 윤 영감은 그 아들을 낮에는 늘 가마니 속에 담아두고 밤으로만 걸어 다니면서 피난살이를 한다. 부득이 대낮에 이동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가마니에 담은 아들을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그러던 윤 영감 일가가 결정적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은 며느리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읍내의 여관에 일을 다니면서부터이다. 솔이 엄마의 외박이 잦아졌다. 일에 바쁘다 보면 통금에 걸려 못 들어 온다는 그녀의 변명을 학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가정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학로는 의처증에 시달렸다. 학로가 여관으로 찾아가 솔이 엄마 머리채를 끌어와 머리를 깎아 들여앉히고 그 대신 학로가 돈벌이를 하러 발벗고 나서면서 한동안은 영감네 셈평이 펴이고 학로도 의욕이 생겼다.
그러나 얼마 후 학로가 다시 열패감에 젖어 가정 분란이 재연되고, 어머니는 밤마다 문간방에서 일어나는 폭력 행위를 가로막아 말리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엄마가 여관에 머물던 서울 사내와 눈이 맞아 급기야는 유일한 혈육인 솔이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해 버렸다. 이후 아내의 가출로 충격을 받은 학로마저 뒷산 밤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고 죽어 버림으로써 윤 영감 일가는 결딴이 나 버리고 만다. 결국 둘만 남게 된 윤 영감 내외는 며느리보다는 집안의 대를 이을 손주를 찾을 겸하여 소반 장수의 길을 정처 없이 나서게 된다.
4.2.2. 등장 인물
- 나 : 윤 영감네를 회고하는 관찰자적 인물
- 어머니 : 양반 집안의 며느리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피난민들을 돕는 따뜻한 인정미의 소유자
- 윤영감 : 피난 길에 '나'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는 노인. 집안이 풍비박산하자 소반 장수가 되어 손자를 찾아 나선다
- 솔이 엄마 : 윤 영감의 며느리. 서울 사내와 야반도주한다
- 윤학로 : 스물여섯 살. 윤 영감의 외아들. 의처증이 심한 그는 결국 아내가 도망가자 목을 매고 자살한다
4.2.3. 작품 알아보기
화자가 직접 자신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는 수필 같은 소설이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 와 1인칭 독백체의 문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소외, 갈등, 농촌의 어려움 그리고 그 해체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삶의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관촌수필 연작들에서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농촌 공동체이다. <화무십일(花無十日)>의 경우 그 세계는 '나'의 어머니를 통해 형상화 된다. 어머니는 전쟁을 겪는 동안 집안이 풍비박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윤 영감 일가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통에 환갑상을 받지 못하게 된 윤 영감에게 환갑상을 차려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순박하고 인정스러운 전통적 인간상을 그려 볼 수 있다. 한편 이 인간상에다 따뜻함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감을 더해 주는 요소는 충청도 보령 지방의 토속적인 사투리이다. 작가는 잃어버린 고향 말과 속담 등을 풍부하게 찾아 씀으로써 훈훈한 농촌의 정취를 되살려 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주제가 인정의 세계를 보여 주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제목 ‘화무십일 : 花無十日’이라는 제목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즉 ‘열흘 붉은 꽃이 없고 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인데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윤 영감 일가의 몰락을 통해 짙게 드러나는 인생은 허무감이 참주제에 해당한다. 농총사회의 공동체 정신과 농민들의 순박함을 부각시킴으로써 근대화의 파행성을 비판하는 다른 연작들과 비교할 때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주제인 것이다.
4.3. 행운유수
4.3.1. 줄거리
나와 10살도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옹점이는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친구 같은 존재이다. 사기전 옹점 근처에서 낳았다고 옹점이라고 불린 그녀는 교전비비(혼례 때 신부가 데리고 가던 계집종)과 향품배(지방의 낮은 벼슬아치)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녀는 10살 아래인 나에게 누나처럼, 친구처럼, 어머니처럼 자상하고 다정하다.
부엌데기인 그녀는 가끔 덤벙대고 입도 걸고, 선머슴같이 사납긴 해도 음식이면 음식, 바느질이면 바느질 못하는 게 없다. 정이 많기로는 지나가는 거지 쌀 퍼다 주고, 누구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만 두고 보지 못한다. 비밀리에 집에 드나드는 공작원들을 두둔해 비밀경찰과 맞짱까지 뜨는 대찬 여성이다. 그런 그녀는 배운 적 없이도 혼자서 글을 떼고 노래도 곧잘 불렀다. 그녀는 미군들이 지나가며 던져주는 침 뭍은 초콜렛이나 비스켓 따위에 “저것들이 조선인을 다 거지로 아는가베, 빌어먹을 잡것들!” 하고 분개하기도 한다.
어려서 부모 형제와 떨어져 남의 집 부엌데기로 살던 그녀는 우리와 제2의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광복이후 남로당과 합세했던 아버지로 인해 집안은 몰락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세월은 흘러 옹점이는 시집 갈 나이가 되고 시집간 지 보름 만에 남편은 전쟁통에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그만 죽고 만다. 그녀는 시댁에서 갖은 구박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떠돌이 약장수 패거리 속 가수로 전락한 옹점이를 본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4.3.2. 등장인물
- 옹점이 : 우리 집의 부엌 살림꾼으로, 경망스럽고 조심성이 없지만, 정이 많고 장난끼가 많은 인물이다.
- 나 :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은 나로 구분되며,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이다.
- 어머니 : 양반 집안의 며느리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피난민을 돕는 따뜻한 인정미의 소유자
4.3.3. 작품의 표현상의 특징
① 서술자는 ‘나’로 일관하고 있다.
② 서술자인 ‘나’의 눈으로 옹점이에 얽힌 일들을 회상한다.
③ 서술자인 ‘나’가 주관적 입장에서 주인공 옹점이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④ 대화 부분에서 특히 충청도 특유의 방언이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 진술되어 있어서 생생한 느낌을 준다.
⑤ 옹점이를 평가하고 있는 마지막 대목에서만 현재의 시각으로 진술했고, 나머지는 옹점이에 관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4.3.4. 행운유수의 의미
행운유수라는 이 작품의 제목에는 총 3개의 의미가 존재한다.
이를 토대로 보았을 때 3번의 내용은 옹점이의 성격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볼 수 있고 1,2번의 내용은 옹점이의 인생과 비교해 보았을때 반어적 성격을 짙게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①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일의 처리가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음
③마음씨가 시원하고 씩씩함
4.4. 녹수청산
4.4.1. 줄거리
'나'보다 여남은 살 정도 더 먹은 대복이는 우리 집과 사립문 하나 사이를 둔 옆집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이사 와 살기 전 우리 집은 행세 깨나 해본 양반 찌꺼기로 볏백이나 거두던 지주였다고 한다. 대복이네 집은 고지기나 마름, 또는 행랑작것들이 거처했던 별채 행랑이었던 것으로 대복이 어머니도 원래 그 푸네기였다고 한다.
아비인 조서방과 대복 어미, 대복이 이렇게 셋이 살던 그 집안은 가난에 찢어지는 살림을 하고 있었다. 조서방은 남의 집 품팔이를 하여 하루하루 저 먹을 끼니 정도만 해결하고 손버릇이 좋지 않아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엇이든 챙겨가는 대복 어미는 시키지도 않은 우리 집 허드렛일을 하며 얻어 가는 밥과 반찬들 또는 슬쩍 해간 것들로 먹고살고 있었다. 그때 이미 장정으로 진일 마른일 없이 한번 손댔다 하면 또려지게 마무리를 낼 줄 알았고, 백중 장터에서 난장판이 서면 씨름선수로 나가 돼지 새끼를 타올 정도로 힘도 장사였던 대복이는 지금 생각하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때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라 다들 생각했고, 철없던 난 그를 친구로 생각했고 대복이 또한 허물없이 막냇동생 대하듯이 같이 놀아주기도 했던 것이다. 대복이 뒤만 따라다니면 모든 걸 내 맘대로 장난해도 겁날 게 없던 그리운 시절..그것은 내가 일곱 살 나던 해부터 한 이태 동안의 비록 짤막한 세월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다시금 꿈결 속에 본 대자연처럼 그지없이 아름답고, 은하를 헤엄쳐가는 듯한 심란한 향수에 잠기게 하며, 때로는 나 혼자나 알고 죽을 것 같이 비밀스럽고, 혹은 물려줄 수 없는 소중한 재산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 무렵 대복이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미 '희망 없는 애'라는 별명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대복이는 물총새를 잡거나 꿩, 산토끼, 조개와 게 등 잡고자 마음만 먹으면 못 잡는 것이 없는 나에게는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이었다. 이웃 동네에서 먹을 것이 없어 우리 동네로 게잡이를 오는 경우가 있으면 돌아가는 길목에 서서 세금이랍시고 그들이 잡은 게를 한 움큼씩 뺏는 것 역시 대복이의 몫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우리 읍내도 전에 없던 일들이 생겼다. 여기저기 미군들이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근처 대천해수욕장을 드나드는 미군들이었던 것이다. 대복이는 이들을 상대로 심부름을 해주며 돈을 얻어온다며 대복 어미가 무척 자랑스러워하던 양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대복이를 앞세운 순사가 들이닥쳐 그동안 대복이는 미군들 심부름을 해서 돈벌이를 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을 해왔던 것이 들통났다. 비록 대복 어미와 나만 알고 쉬쉬했던 일이긴 했지만 이때 이미 대복이는 변해버리기 시작했다. 언사가 거칠어지고 행동 또한 후레자식 소리 듣기에 알맞은 짓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엔 고질화된 도벽이 소까지 훔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발발하였다. 그해 7월 그믐께 인민군 손에 옥문이 열려 출옥한 대복이가 돌아왔다. 전쟁통에 폐허가 되어버린 우리 집안 꼴을 확인하자 목놓아 울어버릴 만큼 정도 많은 사내였던 대복. 새롭게 살아볼 각오를 하는 듯 보였던 대복이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참봉집 손녀딸인 순심이를 건드리려 하여 강간 미수로 붙들려 들어갔다. 가세가 기울긴 했어도 근본이나 내려오던 범절은 아직껏 서슬이 살아 잇던 참봉 댁 손자로 그 시절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았던 순심이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또 한번 욕지거리를 먹을 짓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대복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복이가 순심이와 결혼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되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일로 또 갇히게 된 대복이는 가을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왔다. 이번에는 국방군들이 올라와 그를 풀어줬다고 했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자유의 몸이 되고 있는 대복이었던 것이다.
대복이가 풀려났다는 얘기를 들은 참봉댁에선 밤이고 낮이고 대문을 걸어 잠그고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얘기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복이가 순심이가 사라진 참봉댁 머슴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사람들 모두 조만간 무슨일이든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가슴 졸이고 이를 지켜보았으나 얼마가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이제는 대복이가 변해 사람 노릇을 하는 거라 여기기 시작했다. 대복이는 정말 충직스러운 머슴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영장이 나왔다 하면 그건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그때, 대복이에게도 영장이 나왔건 것이다. 입영 전날 더운밥 한 그릇 먹일 형편이 못 되는 대복이네 집 형편을 알고 있는 어머니의 배려로 우리 집 대청에서 나와 겸상하여 저녁을 먹은 대복. 이십여 년을 그렇게 가까이 지내오고도 그가 우리 안마루에 발 벗고 올라앉아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음날 대복이는 눈물범벅인 어미와 아비의 배웅을 받으며 전장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날 상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그리도 소식이 없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던 순심이가 나타난 것이다. 새하얀 얼굴을 한 순심이가 경찰에 의해 잡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좌경 구호와 노래를 가르쳐 경찰들이 그렇게 잡으려고 했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순심이가 대복이가 사라지는 날 경찰에게 잡힌 것이다. 사연인즉은 이랬다. 인민군이 북으로 올라가고 국방군이 남에서 올라오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순심이는 골방 구들장을 떼어내고 그 밑에서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대복이에게 들킨 것이다. 이에 대복이가 이 집의 머슴으로 들어갔던 이유도 밝혀졌다. 어쩌면 숨어있는 순심이를 지키기 위한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대복이지 않을까 싶다. 출정하는 날 순심이 어머니는 신작로 초입까지 나가 대복이를 배웅했지만 순심이는 방고래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순심이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것이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구들장을 나와 밖을 몰래 엿볼 수 있는 변소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복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입덧이었다.
4.4.2. 작품의 주제
산업화로 인한 농촌의 파괴와 인간애 촉구, 한국 전쟁으로 인한 명문의 몰락과 그 후예의 명문의식.
4.5. 공산토월
4.6. 관산추정
4.6.1. 줄거리
날이 새면 누구도 도깨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땅거미가 어리기 시작하면 마실 마당마다 반드시 쑥내 짙은 모깃불에 비껴 앉아 바다 건너 불을 먼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조무래기들은 도깨비불만 보면 네 그르니 내 옳으니 하며 짜그락거리기 일쑤였고, 그러면 나이 좀 있는 사람이 얼른 쉬쉬하면서, 도깨비가 듣겠다고 나무라주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나’는 도깨비불을 무서워해 어른들이 먹탕곶 개펄께를 그만 보라고 타이른 밤이면 반딧불만 자주 날아도, 뒷덜미가 선뜩하고 떨떠름하여 담 밑에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또, 갯가에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일 때 여우 우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럴 때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손에 막대기 하나씩을 들고 갯가에 모였다. 안개에 길을 잃어 바다로 들어갔다가 개펄에 빠져 못 나온다고 생각하여 그 여우를 잡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할 때 개펄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짓가랑이만 걷어올렸을 뿐 누구도 개펄에 먼저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고. 단지 안개가 걷혀 여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여우를 잡았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매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여우소리를 들은 후에 항상 안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인데, 어디선가 상여 나가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여우 잡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여우를 잡으려고 저마다 하나씩은 들고 오는 와중에 빈손으로와 남이야 어찌 생각하건 말건 된 소리 안 된 소리를 혼자 왜장치듯 지껄이는 ‘유천만’. 나의 어릴 적 친구인 복산이의 아버지이다. 유천만은 왜정 때 징용으로 끌려가 고생을 심하게 한 덕으로 병을 얻어 여기저기 아프다는 핑계로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이미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집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손재주가 좋고 눈썰미도 좋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 상수리를 따서 묵을 쒀 그걸 팔아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 나갔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남편 유천만보다 열배는 낫다하여 그녀를 ‘만만이’라고도 불렀다. 힘을 못 써 논다면서 뒷짐지고 이웃 동네 마실 마당만 어슬렁거리던 유천만이었으나, 막상 힘든 일이 생길 듯하면 맨 먼저 걷어붙이고 덤비던 것도 유천만이었다. 여간내기가 아니고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을 그는 서슴없이 달려들어 수월하게 해치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댓가가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해봤자 가축의 내장이나 고기 부스러기를 얻어가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험한 일을 찾아 나서서 했다. 동네 강아지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받으러 가는 사람도 유천만이었다. 그는 새끼 강아지를 받아 장터에 팔아 담뱃값도 하고 탁배기잔도 걸치면서 정작 집에는 쓰지 않았다.
복산이는 그런 사람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복산이는 좋은 아이였다. 마음만 따지고 보면 작은 대복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였는데 하는 행동은 천만이와 만만이가 반반 섞여 있는 듯 했다. 특히 자기 어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좋아서 산에가 한 보따리의 도토리를 주워오거나 가재를 잡으면 내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한 깡통씩 잡는 듯 모든 일에 성실하고 야무졌다. 또한 어려운 살림의 아이답지 않게 어른을 어려워하고 아이들을 골고루 겸애하였으며 도둑질에는 손도 안대는 듯 바른 아이였다. 어느 봄날 새벽, 다른 때와 같이 여우소리가 들려 대복이와 갯가에 나갔지만 그날따라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와 대복이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다시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부엌에서 몰래 밥을 먹던 나는 옹점이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새벽녘에 유천만이 죽었다는 것이다. 평생 마누라 고생이나 시킨 그가 한 순간에 가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는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지만 복산이는 여전이 관촌 부락에 살며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다시 관촌에 내려왔을 때의 마을은 옛날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변해있었다. 나에게 관산은 복산이었다. 복산이는 천만의 자식답게 남의 뒤치다꺼리 해주느라 바쁜 생활을 살고 있다. 그런 복산이가 있어 나에게는 고향이 존재한다. 복산이의 집에 들어가 그에게서 아내자랑과 셋째 이름에 대한 일화를 들으며 밤을 보내던 중 현재 그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잡으려는 형사들의 잠복수사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형사들에게 간 복산이를 뒤로 하고 나는 먼저 잠에 든다. 언제 잠이 들어 얼마를 잤는지 잠결에 무슨 소리가 있어 나는 눈을 떴다. 얼핏 스치는 소리가 다시 있었다. 나는 불현 듯 개펄에 빠진 안개 속의 여우를 그려보고 그것이 여우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어나며 담배와 성냥을 더듬었고, 이윽고 성냥을 키자 복산이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저 낚시쟁이들 등쌀에 새벽잠두 달게 못 자....”나도 도로 누우면서 쓴 담배를 붙여 물었다.
4.6.2. 작품의 주제
포근하던 한내가 도시에서 밀려들어온 소비문화와 퇴폐의 하수구로 전락한 실상을 그림
4.6.3. 등장인물
- 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로 구분되며 너무 많이 변화한 관촌 부락에 실망하는 인물
- 복산이: 시간이 지나도 고향에 계속 남아있는 관촌 토박이. 예의 바르고 성격이 좋다. 또한 매사에 부지런한 인물.
- 복산 어머니: 손재주와 눈썰미가 좋아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내고 가정에 신경 쓰지 않는 유천만 때문에 혼자 가족을 이끈 인물
- 유천만(복산 아버지): 남들이 안하는 것을 매번 하는 것으로 보아 부지런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안일에는 거의 손도 안 대기 때문에 게으르다고도 볼 수 있음.
4.6.4. 작품의 표현상의 특징
도입부의 ‘바다는 밤으로 더 가까이 오면서 길잡이 바람만 되돌아가 구름으로 솔면...’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나’의 회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4.7. 여요주서
4.7.1. 전체 줄거리
관촌역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리는 ‘나’는 십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인 ‘신용모’를만난다. 둘은 다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용모’는 지금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느름새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이 곧 열리는 재판에 넘겨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가 이유를 묻자, 그는 몇일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느름새에서 읍내로 나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려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꿩을 잡은 어린아이가 그 꿩을 팔고있었다. 평소에도 신용모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는 그 아이가 파는 꿩을 읍내로 나가서 팔면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읍내로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시장에서 그 꿩을 팔고 있던 중 한 남자가 그를 끌어내었다. 그 남자는 사람들에서 최 순경이라고 불리는 형사였고 그를 체포한 것이다. 알고보니 그때는 야생동물보호법이 실시되고 있었고 꿩을 잡는 것이 불법이였던 것이다. 신용모는 잡히고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형사의 욕설과 폭행이었다. 누구와 척을 지기보단 자신이 잘못으로 하는 것이 평소 그의 성격이었다.
그는 결국 법정에 섰고 판사는 그에게 야생동물을 잡았다는 이유로 그를 나무랐다. 그 때 그는 상당히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도 인격이 있는데 야생동물의 물격보단 더 소중할 것이라면서 판사의 말을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벌금 2만원을 선고받고 만다.
4.7.2. 등장인물
* 나-신용모의 상황에 대한 위로를 해주면서 신용모의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듣는 이해심 깊은 사람이다.
- 신용모- “늘 몰라”라는 뜻의 장부석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평소에도 매우 착하고 순진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 최 순경- 야생동물보호법을 어긴 신용모를 체포한 후에 신용모의 진술을 전부 거짓말이라고 보면서 스스로 죄를 인정하라고 협박을 하는 고지식하고 남의 말에 귀를 열지 않는 인물이다.
4.7.3. 작품 주제
공권력의 횡포로 인한 농촌의 어려움
4.7.4. 당시의 시대 상황
이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로 사회적인 제재가 현재와 비교하여 매우 심한 것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특히나 최 순경은 그 당시의 공공기관의 어두움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야생동물포획 금지법과 두발단속등도 그 당시 시대상황을 느끼게 해준다.
4.7.5. 작품의 표현상의 특징
사투리의 잦은 사용으로 향토적인 느낌을 줌 신용모의 순수함이 공권력의 횡포로 피해를 입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 세태를 비판함
4.8. 월곡후야
5. 수능에서의 위상
행운유수, 녹수청산, 화무십일은 이 소설편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며, 이 부분에서 대부분 수능 지문이 출제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자그마치 3회 출제된 드문 케이스이고,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었다.
불수능으로 악명높았던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슬몃슬몃'[2] 이라는 문구를 지워 놓고 이곳에 들어갈 적절한 문구를 고르라고 문제를 냈는데, 언어적 센스가 있어야만 풀 수 있었던 문항으로 평가된다.
6. 기타
박찬욱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1992년 11월 9일부터 1993년 2월 16일까지 SBS에서 드라마로 방송됐으며, 이문구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았다. 윤여정, 양동근, 박근형, 성동일 등이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