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클럽 경력

 





1. 제주 유나이티드 FC


'''2007-2011'''

'''총 95경기 9골 12어시스트'''


1.1. 2007 시즌


2007년 보인고등학교 졸업 후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2007년 4월 11일 인천과의 리그컵 원정경기(0:1, 제주 승)에서 프로데뷔했고 정해성 감독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아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오승범, 김재성 등과 함께 제주의 중원을 먹여 살렸지만 팀의 성적이 워낙 저조한데다 데뷔 초반 잦은 부상으로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1.2. 2010 시즌


그러나 2010년 제주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돌풍의 중심으로 함께 떴다. 플레이오프 포함 5골 12어시스트, 2010 시즌 K리그 도움왕이자 주간 베스트 11 최다 선정자이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막판 3경기 연속 선발 풀 출장에 그나마도 그 중 두 경기는 연장전이었던 상황에서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르러 소속 팀으로 복귀했는데, 이틀 뒤 전북 현대 모터스과의 플레이오프에 선발 출전해 풀 경기를 뛰었다. 이 때 부상을 당하고 '경미한 부상이니 괜찮다'며 또 이틀 뒤 FC 서울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경기 초반에 태클 당하면서 부상이 악화되었지만 그 와중에 1도움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부상의 여파로 2차전에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후반 아디에게 역전골을 허용하자 긴급히 투입되어 투혼을 발휘했지만 워낙 컨디션이 나빠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2010 K리그 시상식에서 판타스틱 플레이어, 베스트 11, 도움왕을 수상하며 삼관왕에 올랐다.#

1.3. 기록


  • K리그 준우승 : 2010

2. VfL 볼프스부르크


'''2011-2014'''

'''34경기 0골 2도움'''

[image]
2010년 시즌을 마치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가능한 중소 리그,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팀'''으로 가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각종 커뮤니티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대체 거기가 어딘데.'''
2010년 초 블랙번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진출하진 못했다. 국가 유공자 자녀이기 때문에 병역은 6개월 공익(일명 육방)[1]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해외 진출에는 문제가 없다. 제주는 일찍이 해외에서 콜이 들어오면 대승적 차원에서 보내겠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2011년까지 제주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각 팀에서 군침을 흘리는 중.
후에 스위스 리그의 영 보이즈의 오퍼가 들어왔지만 팬들의 반응은 부정적. 가네 마네를 놓고 설레발이 이어지다가 아시안컵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슈투트가르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에서도 입단 제의가 왔다는 기사가 나오더니만 1월 29일 카타르에서 독일로 바로 출국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보이즈는 되도 않는 FIFA 제소 드립을 치면서 이적 협상을 방해하려 했지만 이미 계약서 싸인 한 선수에게 제소 드립을 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에 모두 헛소리로 치부했다. 아무리 바이아웃을 제시했어도 일단 이적 동의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제주에게 통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제주는 통보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에이전트가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에야 이중 계약을 시도할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봤을때 볼프스 부르크로의 이적은 너무나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아시안컵 폐막 후 이적 건이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더니 각종 설레발과 찌라시는 뒤로 하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이 성사됐다.

2.1. 2010-11 시즌


큰 기대를 얻고 진출한 유럽이었지만 하필이면 팀이 막장 일보 직전의 팀이었다. 분데스 챔피언의 위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강등 권을 헤매는 팀에서 반년 간 제대로 기회도 얻지 못한다. 그나마 시즌 막판 출전 빈도가 늘어나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2010/11시즌: 10경기(선발 1경기) 1도움'''
분데스리가: 10경기(1) 1도움
DFB 포칼컵: –

2.2. 2011-12 시즌 초


2011-12 시즌을 앞두고 손흥민이 있는 함부르크 SV가 공개적으로 임대 이적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절차 다 밟아둔 상태에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이적을 파탄내면서 결국 잔류했다. 한국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했지만 이 사건 때문인지 프리 시즌에 자주 선발 출장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독재자''' 마가트 감독의 '''똘끼'''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 폭풍 영입과 폭풍 방출로 팀 케미스트리는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포지션 경쟁자가 주야장천 몰려오며 결국 시즌을 암울하게 시작한다. 역시나 예상대로 전혀 경기 출장을 못했는데, 시즌 전반 막판 갑작스럽게 기회를 여러 번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포지션인데, 공미는 그렇다 쳐도 때에 따라 '''윙'''이나 '''스트라이커'''로 썼고, 당연히 한국 팬들은 데꿀멍. 경기력은 실전 감각이 쌓이며 좀 좋아졌으나 역시 어울리지 않은 위치에서 고전했다.
이렇게 참으로 희한한 시즌을 보내던 중, 겨울 이적 시장에 볼프스부르크가 역시나 폭풍영입을 하면서 다시 상황이 미묘해지던 찰나에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이 성사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마가트가 구자철이 마음에 들어서 키워주고 싶었는데' 며칠 전의 '''뮌헨과의 경기에서 놓친 1:1 찬스''' 때문에 임대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2011/12 시즌: 12경기(선발 7경기) 1도움'''
분데스리가: 12경기(7) 1도움
DFB 포칼컵: –

2.3. FC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2012-2013'''

'''37경기 8골 3도움'''


2.3.1. 2011-12 시즌


[image]
중요한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데다가 강등권을 전전하던 팀을 안정권으로 올려놓는 활약을 하는등 말 그대로 팀의 에이스였던 시절.[2]
이적 후 첫 경기에서 60분에 교체 투입되며 바로 데뷔전을 치렀다. 구자철 투입 이후 그때까지 뻥축을 구사하던 팀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좋은 볼 간수와 수비가담을 보여줬고 양민팀에 오면서 자신감이 붙은 건지 마르세유 턴까지 보여주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감독도 후한 평가를 내리며 첫 단추를 잘 끼운 모습.
레버쿠젠 원정에서 1-0으로 뒤지던 후반 분데스리가 데뷔 골이자 팀의 동점골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3골 더 먹고 4-1로 완패.#
3월 17일 26차전 1.FSV 마인츠05와의 홈경기에서도 동점골인 2호 골을 기록하며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6경기에 나서서 2골 1도움을 기록 중.# 3월 25일 브레멘전에는 경기 종료 직전 슈팅이 어시스트로 인정되는가 싶었지만... 후에 취소되었다.[3] 3월 31일 28차전 FC 쾰른 경기에서 전반 18분 선취골을 기록, 2:1 팀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에서 정대세와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가운데 시즌 3호 골을 터트리셨다.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후 8경기 3골 1도움이란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구자철이다. 더불어 이 승리로 팀이 강등권을 탈출했기에 더더욱 값어치가 컸다.
4월 7일 29차전 리그 2위인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도 전반 23분 동점골을 기록하며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런 활약 속에 강등 위기에 몰렸던 아우크스부르크가 리그 잔류를 확실히 해냈고 요스 뤼휘카이 감독이나 서포터들도 구자철의 완전 이적을 원했지만 팀 재정문제로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5월 5일 마지막 리그 34차전 함부르크와의 경기. 손흥민과의 맞대결에서 상대방 수비 마크를 완벽하게 벗어나며 분데스에서 첫 헤딩골을 기록하였다.# 세레머니로 2011년 5월 6일에 자살한 윤기원 선수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의 세레모니로 K리그 팬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거기에 아이러브사커에서 원정 간 팬들이 가져간 '''Pride of K-league'''라는 플랜카드도 카메라에 잡히며 여러 가지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팀은 1:0으로 승리하며 최종 순위 14위를 기록.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모두 15경기에서 뛰며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시즌을 끝냈다. 이 5골은 공격수 사샤 묄더스(5골 3도움)와 함께 팀 내 득점 1위 기록이지만 묄더스가 30경기를 뛰며 기록한 걸 생각하면 구자철은 그 절반만 뛰고 넣은 득점 1위이었기에 '''그에 대하여 감독이나 선수들이나 서포터들이나 지역 언론이 에이스라고 칭송하며 완전 이적을 놓친 걸 아쉬워한 게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 '''
그리고 6월 4일 아우크스부르크와 임대 연장에 합의하고, 등번호 7번을 받았다.#
'''2011/12시즌: 15경기(선발 14경기) 5골 1도움'''
분데스리가: 15경기(14) 5골 1도움
DFB 포칼컵: –

2.3.2. 2012-13 시즌


하지만 12-13 시즌에선 부진에 빠졌고 팀은 18위 꼴찌로 추락했다. 시즌 첫 골은 12차전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기록했지만 2:4로 팀은 패했다.#
2012-2013년 DFB 포칼 16강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프랑크 리베리와 거친 실랑이를 벌였다. 볼 경합을 하는 과정에서 구자철은 리베리의 허벅지를, 리베리는 구자철의 종아리를 걷어차게 되었다. 구자철이 넘어진 후 리베리가 사과의 제스쳐를 보였으나 구자철은 그대로 일어나서 돌진하였고 리베리는 구자철의 얼굴을 밀쳐냈다. 이후 구자철이 다시 접근하여 리베리의 뺨을 쳤고, 리베리가 그대로 주먹으로 응수했다. 리베리는 당연히 퇴장 당했으며 시비의 발단이 된 구자철도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팀은 마리오 고메스, 샤키리에게 골을 내줘 2:0으로 탈락하게 된다.#
2013년 지동원이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면서 한국인 선수 동료랑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새해 첫 리그 경기 18차전 뒤셀도르프전에서 시즌 3호 골을 기록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팀은 17위이지만 16위랑 1점차로 어느 정도 강등권 탈출희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더불어 팀내 공동득점 2위이다.(1위는 역시나 전번 시즌의 팀 내 득점왕 사샤 묄더스가 6골을 기록 중)다만 같은 2위인 토비아스 베르너가 15경기 출전에서 3골, 구자철은 11경기 출전해 3골을 기록 중.
그리고 마지막 34차전, 강등 여부가 걸린 중요한 경기. 18위로 강등 확정된 퓌르트와 벌인 이 경기에서 3:1로 이기면서 팀은 리그 15위로 역전, 극적으로 리그 잔류를 해내며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더불어 지동원은 이 경기에서 75분에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하며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2012/13시즌: 22경기(선발 19경기) 3골 2도움'''
분데스리가: 21경기(18) 3골 2도움
DFB 포칼컵: 1경기

2.4. 2013-14 시즌 초


볼프스부르크로 돌아왔지만 예전처럼 제대로 경기에 나오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말리와의 A매치 경기에서 골을 넣었으나, 이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해 그 이후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다.
구자철이 최근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회고한바에 따르면 당시 감독은 아우크스부르크 임대에서 돌아온 구자철을 굉장히 신뢰했었다고 한다. 임대 당시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 이후 구자철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시즌 초반에는 계속 선발로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순항하던 도중 리그 경기에서 결정적 실책을 범해 상대팀에 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이후 훈련장에서 팀동료 누군가가 중국 운운하는 인종차별을 했고 이에 분노한 구자철은 이적을 선언했다고 한다. 거기에 부상까지 겹치며 여러모로 안풀렸던 시기라고 말했다.
'''2013/14시즌: 12경기(선발 9경기)'''
분데스리가: 10경기(8)
DFB 포칼컵: 2경기(1)

3. 1.FSV 마인츠05


'''2014-2015'''

'''42경기 8골 3도움'''

[image]
결국 2014년 1월 18일 1.FSV 마인츠05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년 여름까지다. 이적료는 500만 유로, 한화로 약 72억원. 마인츠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다.
이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당시 감독 토마스 투헬과의 썰을 언급했는데 구자철이 12-13 시즌 말기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임대가 끝날 무렵부터 투헬이 지속적으로 구자철에게 너를 무조건 영입할 것이다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볼프스부르크로 돌아간 뒤에도 두 달 동안 투헬이 경기 잘 했다며 문자를 보낼 정도였다. 결국 구자철은 13-14 시즌 중반에 마인츠로 이적했는데 이 때 투헬이 처음 한 말이 자신이 감독하면서 처음으로 선수와 밥을 먹었다고 한다. 이후, 투헬이 도르트문트로 부임하고 구자철도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을 때 두 팀이 포칼에서 붙었고 경기 후, 구자철은 투헬에게 인사나 하려고 도르트문트 버스를 탔는데 그 때 투헬이 이적한 선수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한 적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구자철은 마인츠 시절 유누스 말리와의 로테이션 때문에 출전 시간에 불만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그럼에도 투헬과 여전히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3.1. 2013-14 시즌


2월 2일 19차전 SC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벌인 경기에서 팀 동료 박주호가 리그 데뷔 골을 터뜨린 데 이어 구자철도 후반 13분 유누스 말리 대신 교체 투입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후반 42분 추가골을 터트려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드디어 구자철이 좋은 팀에서 잘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후 포지션 경쟁자인 유누스말리에게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내주고 측면공격수, 중앙미드필더등 몸에 맞지않는듯한 옷을입은 모습을 보이며 팀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지언론에서는 팀내 최대 이적료인 구자철이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꾸준히 마인츠와 결별설을 보도하였다.
'''2013/14시즌: 14경기(선발 8경기) 1골 2도움'''
분데스리가: 14경기(8) 1골 2도움
DFB 포칼컵: –

3.2. 2014-15 시즌


[image][image]
2014년 8월 8일 유로파리그 3차 예선전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 FC[4](그리스)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예선이긴 하나 본인의 유럽대항전 첫 골이다. 앞서 열린 안방경기 트리폴리스 전에서도 도움을 기록하며 1-0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팀은 원정에서 1-3으로 패했고 1승 1패를 주고받았지만 골득실이 2득 3실점으로 뒤쳐져서 탈락했다.
8월 16일 헴니처(3부리그)와 DFB포칼 경기에서 구자철은 2-2로 맞선 후반 28분 한발 앞서가는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20분 연장혈투 끝에 5-5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 돌입해 4-5로 져 포칼 첫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맛봤다. 구자철과 박주호도 각각 두 번째와 네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했지만 결국 승리는 놓쳤다.
8월 24일(이하 한국시간) SC 파더보른과의 2014-15 분데스리가 홈경기 1차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후반 추가시간 4분 동점 페널티킥을 넣으면서 극적으로 2-2로 비겼다.# 초반 4경기에서 3골 1도움을 넣으며 맹활약을 했으나 팀이 3경기 연속 무승이라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리고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초반의 기세가 무색하게 최악의 폼을 보여주었다. 선발 기회를 꾸준히 잡고 있으나 대표팀에서나 소속팀에서나 활약이 전혀 없다. '''그러다가...'''
계속 팀에서 자리를 못 잡다가 2015년 3월 15일 지동원의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전반 20분에 교체 출전했다. 팀 동료 조나스 호프만의 부상으로 갑자기 들어갔으나 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결정적으로 경기 종료 직전 6개월 만에 골을 넣었다!!'''# 골 넣은 후 세리머니를 전혀 하지 않았다. 경기 직후 후스코어드닷컴에서 MOM을 먹었다.# 경기를 본 누리꾼들도 대체적으로 오랜만에 감각이 돌아왔다며 호평을 내렸다.
4월 11일 레버쿠젠과의 홈 경기에서 동료들이 얻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두 번 성공시켜 페널티킥으로만 멀티골을 달성하였다.## 이 날 손흥민도 한 골을 넣어 코리안리거들이 합쳐 3골을 넣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하였다.
5월 17일 쾰른 전에서 1골을 넣으며 리그 5호 골을 기록했다. 컵 대회까지 합쳐 시즌 7호골.#
'''2014/15시즌: 26경기(선발 19경기) 7골 1도움'''
분데스리가: 23경기(16) 5골 1도움
DFB 포칼컵: 1경기(1) 1골
유로파리그 예선: 2경기(2) 1골

3.3. 2015-16 시즌


교체로 2경기를 출전했다.
30일 국가대표팀 합류로 귀국하면서 토트넘과 도르트문트로 각각 이적한 손흥민과 팀 메이트 박주호에 대해 새 팀에서 잘하라며 덕담을 했다.
31일 한국에 돌아온 지 하루도 안 되어 독일로 재 출국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구자철의 이적을 강력히 요청하였고, 이를 거부해오던 마인츠에서도 수락하면서 계약이 성사되었다.
'''2015/16시즌: 2경기(선발 0경기)'''
분데스리가: 2경기(0)
DFB 포칼컵: –

4. FC 아우크스부르크


'''2015-2019'''

'''118경기 15골 6도움'''

2015년 8월 31일 오피셜이 뜨면서 아우크스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다. 2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2년 만에 아우크스부르크에 복귀하였고 등번호는 19번을 부여받았으며, 이적료는 클럽 레코드를 기록했다. 이로써 홍정호, 지동원과 함께 유럽 무대에서 코리안 리거가 3명이 한솥밥을 먹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5] 하지만 이적 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라오스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레바논전 출전 가능 여부도 불분명했으나 박주호와 함께 베이루트에서 선수단에 합류했고 레바논 원정경기에 출전했다.

'''2012-2013, 2015-2019'''

'''155경기 23골 9도움'''


4.1. 2015-16 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
[image]
9월 13일 뮌헨 전에서 선제골을 감각적인 힐킥으로 어시스트했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상대가 상대인데다 오자마자 활약해 주었기 때문에 아욱국 입장에서는 낙관적이라 여길만 하다.
이후에도 주전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답답한 아욱국의 공격진에서 그나마 공격을 풀어주는 선수긴 하지만, 혼자 경기를 뒤엎을 정도는 아니다. 16년 2월 19일 기준으로 스탯은 3골 1어시스트.1호골 2호골3호골
2월 22일 하노버96와의 경기에서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로 두명의 선수를 벗겨낸 다음, 측면으로의 드리블 돌파를 하다 중앙쪽으로 컷인해서 자신감 넘치는 중거리슛으로 시즌 4호골을 넣었다.4호골
3월 6일 레버쿠젠을 상대로 혼자 5, 6, 7호 골을 몰아치며 '''프로 데뷔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6] 그야말로 이날 경기를 지배했다. 인자기가 접신한 듯한 기막힌 위치 선정은 덤. 그런데 수비가 어이없게 말아먹어서 3:0으로 이기다가 자책골까지 넣고 3:3으로 비겼다.[7] 참고로 이 기록은 아욱국의 1부 리그 최초 해트트릭 기록이라 한다.(...) 여담으로 경기 막판에는 8호 골까지 넣을 기회가 있었으나 하필 위치를 잡는 순간 '''주심이 구자철의 앞을 지나며 시야를 가려버리는 바람에''' 8호 골과 경기 4연속 골은 무산되었다.
[image]
4월 3일 마인츠를 상대로 8호골을 넣었으나 팀은 4:2 패배를 당했다.8호골
해당 시즌의 총평은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해외 진출 이후로 최다골을 기록하고 팀을 강등에서 구해낸 일등공신이 되었으니, 개인적으로도 만족한 시즌이 되었을법 하다. 전반적으로 해외파들의 성적이 지지부진했던 시즌에서[8] 이들의 공백을 메운 셈이기도 하다.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공격형 미드필더 부문 전체 5위에 랭크됐다. 팀 상황상 정해진 포지션 없이 측면과 중앙, 2-3선을 오가는 와중에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2015/16시즌: 36경기(선발 32경기) 8골 1도움'''
분데스리가: 27경기(24) 8골 1도움
DFB 포칼컵: 1경기
유로파리그: 8경기(7)

4.2. 2016-17 시즌


슈스터 감독 부임 이후의 아우크스부르크는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는 단조로운 플레이가 잦았고, 자연히 구자철이 볼을 잡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후반기에는 바움 감독이 부임하며 아우크스부르크의 롱볼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후반기를 기대해보자.
포칼 컵에서 5부리그 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대 0 승리에 기여했다.
다름슈타트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크로스로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후 뮌헨과의 리그 경기에서도 노이어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시즌 1호골을 달성했다. 다만 팀은 1-3으로 패했다.
한국시간 2월5일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크로스 패스를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동점골, 종료직전 마지막 공격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3:2역전승을 이끌어내며 양팀중 최고평점을 받았다.
한국시간 2월18일 바이엘 레버쿠젠전에서 1어시스트를 했으나 언론은 혹평을 내렸다.
한국시간 3월4일 RB 라이프치히전에서 선발출장했지만 큰 활약은 하지 못하였다. 팀은 2:2.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판정이 났다.귀국해서 재활했다.
'''2016/17 시즌: 25경기(선발 24경기) 3골 4도움'''
분데스리가: 23경기(22) 2골 3도움
DFB 포칼컵: 2경기 1골 1도움

4.3. 2017-18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로 날려버린 반년, 다시 공격형 미드필더로 돌아오다.'''
프리시즌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다. 사우스햄튼전 세트피스 1골을 기록했다.# 개막전에도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12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구자철의 폼이나 입지는 썩 좋지 않다. 바이어와 라니 케디라가 투미들의 메인 옵션이며, 특히 바이어가 이번 시즌 준수한 폼을 보여주면서 구자철이 자리를 비집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 여기에 바이어를 보좌해줄 수 있는 역할로는 라니 케디라가 더 좋은 자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미로 올려서 쓰기엔 그레고리치가 이번 시즌 꽤나 잘해주고 있어서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다. 지동원만큼은 아니겠지만 현재 팀에서의 처지는 약간 붕 떠있는 상황.
그리고 후반기 첫 경기였던 함부르크 SV와의 18라운드 경기에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 했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오른쪽 사이드에서 카우비가 올린 크로스를 순간적으로 박스로 침투하여 멋진 헤딩으로 연결하여 골을 만들어냈다. 후반기 첫 경기에 만들어낸 마수걸이 골. 이는 구자철이 아우스크부르크에서 넣은 20번째 골이었다.
특히 구자철의 득점은 지난 '''2017년 2월 6일에 열린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 이후 거의 1년만에 만들어낸 골'''이기에 더욱 값진 골이었다. 팀은 구자철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며 후반기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월 5일 프랑크푸르트전에서 팀의 선취골을 득점하면서 3:0 승리를 이끌어냈다. 역시 수비형 미들보다는 공격으로 나서는 쪽이 활약이 좋은 편.
2월 27일 도르트문트전에서 주장완장을 차고나와 1-1무승부를 거두었다.
'''2017/18시즌: 29경기(선발 23경기) 2골'''
분데스리가: 28경기(23) 2골
DFB 포칼: 1경기(0)

4.4. 2018-19 시즌


'''아욱국의 레전드로...!!'''
8월 25일 리그 1라운드 뒤셀도르프와의 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9월 22일 리그 4라운드 베르더 브레멘과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0-2로 팀이 끌려가던 전반 추가시간, 좌측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한번 트래핑하고 바로 슈팅으로 연결, 시즌 첫 골을 신고했다. 그러나 후반 23분 부상으로 모라벡과 교체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가 김태호를 영입할 때 구자철을 협상장에 불러서 설득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팀 내에서 한국 선수 홍보대사를 자청하는 중이라고 한다. 중국화 논란이 있는 후배들보다 꾸준히 유럽에 남아서 후배들의 길을 터주는 구자철이 선배로서 훌륭하다는게 드러났다.
12월 28일 헤르타 BSC와의 2018-2019 분데스리가 1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전반 39분 균형을 맞추는 골을 터뜨렸다. 팀은 2대2로 무승부.
2018-19시즌 분데스리가 20라운드에서 마인츠 05와의 경기에서 교체출전해 분데스리가 통산 '''200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팀도 3-0으로 승리.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시 FA 선수가 되어 팀을 떠날 수 있다. 이미 독일 2개 구단에서 오퍼가 왔고 라리가, CSL 오퍼도 왔다고 한다. 잔류 혹은 도전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잔류를 택할 경우 구자철은 아우크스에서의 입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주전 경쟁이 필요 없고 구단에서 은퇴까지 책임질 것은 확실하다. 팬들은 아욱국에서 남아 은퇴까지 해서 구단의 레전드가 되기를 바라는 여론이 많은 편이지만, 그는 도전을 택했다. 현재 어디로 갈지는 에이전트와 측근들도 모르고 있으며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또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무조건 떠난다고 한 것은 아니여서 도전할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오퍼가 없으면 잔류할 수도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레코드에서 구자철이 가지는 위상은 상당하다. 현재 팀내 역대 출장횟수 7위, 득점랭킹 17위, 어시스트 랭킹 12위인데 만약 구자철이 재계약을 하고 아우스부르크 선수로써 54경기 이상, 7골 이상, 7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면 수치상으로 역대 출장횟수 2위, 득점 랭킹 9위, 어시스트 랭킹 4위까지도 도달이 가능하다. 특히나 출전횟수 2위는 구자철 위로 현역이면서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뛰는 선수가 1등 다니엘 바이어 한명 뿐 이라서 54경기를 뛰기만 한다면 확정인 기록이다.
'''2018-19시즌: 28경기(선발 21경기) 2골 1도움'''
분데스리가: 26경기(19) 2골 1도움
DFB 포칼: 2경기

5. 알 가라파 SC


8년간 독일 무대를 누비고 떠나 카타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5.1. 2019-20 시즌


카타르 스타즈 리그 데뷔 6경기 만에 데뷔골을 신고했다.
카타르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원볼란치)로 뛰고 있다.
카타르 스타즈 리그 22경기중 18경기에 출전하며, 적어도 88분이상씩 사실상 풀타임 활약을 보여주고있다.

5.2. 2020-21 시즌


10월 6일 컵대회에서 시즌 1호골을 기록했다.
10월 19일 리그 1호골이자 시즌 2호골을 기록했다.
11월 16일 컵대회에서 시즌 3호골을 기록했다.
11월 27일 리그 2호골이자 시즌 4호골을 기록했다.
2021년 1월로써, 12경기 동안 총 3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1] 구자철의 형이 ROTC로 장교로 복무를 이행해 그 혜택을 축구선수인 동생에게 양보했다는 얘기가 있다. 수행 연기자 이병헌 등이 대표적인 육방 복무자이다. 가장 최근에 육방으로 복무 중인 유명인사는 연기자 김영광. 대신 육방 때문에 "피끓는 청춘"의 개봉을 보지 못했다.[2] 이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공격포인트에 있어서는 팀 내에서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심지어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골을 넣기도 했으니..[3] 분데스리가는 골키퍼의 슈퍼세이브로 이어지는 리바운드골, 골포스트에 맞은볼을 받아쳐서 넣은골을 어시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이 골은 골라인을 넘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심한 편이다.[4] 2017년 장결희가 입단한 팀이다.[5] 이전에도 3명이 유럽권에서 같은 팀에 있던 적이 있었으니,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현영민, 이호, 김동진이 뛴 적이 있었다. 딕 아드보카트가 제니트로 감독을 옮기면서 이호와 김동진을 데려간 영향이었다. 하지만 이런 진풍경은 현영민이 6개월만에 울산 현대에 복귀하면서 오래가진 못했다.[6] 레버쿠젠은 이전 라운드에서도 클라우디오 피사로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브레멘에 1-4로 대패했다. 레버쿠젠 입장에서는 치욕의 기록인 셈.[7] 이 경기를 극적으로 비긴 레버쿠젠은 잔여 9경기에서 8승 1패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따냈다.[8] 당시 해외파로는 손흥민, 기성용, 박주호, 지동원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손흥민은 훗날의 위상과는 달리 토트넘 홋스퍼 FC의 첫시즌은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며 박주호 또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백업으로도 나오질 못하는 상황이었고 기성용 또한 어수선하던 팀 분위기 속에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