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한문혼용체

 





國漢文混用體
1. 개요
2. 역사
3. 양상
4. 비슷한 예
5. 혼용하는 정도
5.1. 극한 국한문혼용체
6. 기타
7. 같이 보기


1. 개요


[image]

고요한 女學校(여학교뒷모퉁에는 참말 나혼자보기에는 아까운 情景(정경이 있다 새빨간뺨。 나려감은눈。 가느다란몸집。

둘이는 정답게 어깨를 겨렀다。

말할듯이 말할듯이 말은 못하고 손짓발짓 愛嬌(애교만피우는 어린斷髮女學生(단발여학생 점잔을 빼면서도 그를어루만지는 上級生(상급생 이들이 아마도 말많은 동무들의 問題人物(문제인물인듯십다。

▲ <女性> 1937년 7월號 女學生 스케치. 레즈비언의 연애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한자한글을 섞어 쓰는 문체. 구한말, 일제시대, 대한민국 초기에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법학 관련 서적 등에서는 국한문혼용체를 그대로 썼었지만, 오늘날에는 보기 어렵다.

2. 역사


국한문혼용체가 사용된 선조(宣祖) 언간 (1604년)
국한문혼용체는 일본어의 현행 화한혼효문(和漢混淆文)을 연상시키지만, 일본어의 가나 혼용문이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국한문혼용체의 역사는 일러야 근대부터로 그 역사가 무척 짧다. 한글 창제 이전에 공문서에서 쓰이던 이두문은 그 자체가 한자어를 그대로 두고 문법적 표현으로 이두를 사용하는 혼용문이었으나[1] 이는 국한문혼용체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문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훈민정음 언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더라도 한자 옆에 음을 달거나 아예 음 옆에 한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일본의 요미가나(読み仮名)와 비슷한 용법이다.[2] 과거 한국에서 한글은 주로 한문과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문과 한글을 모두 아는 선비가 다른 선비에게 글을 보낼 때는 둘다 한문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한문 문장으로 글을 쓸 것이고, 한문을 모르지만 한글은 아는 아내나 어린이, 아랫사람에게 글을 쓸 때는 상대방이 글을 못 알아먹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한글로 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의 왕실에서는 궁이 넓어 아침문안을 제하면 왕이나 왕족들끼리 전할 것이 있을 시 글로 적어 보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라고 해도 여자에게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받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여성이면 한글을 쓰는 식이다.
최초의 근대적 국한문혼용체는 1895년에 나온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길준 자신은 최대한 국문(한글)을 살려 쓰려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그가 지은 책을 본 사람들은 언문을 섞어 쓴 것은 문장이 아니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한문이야말로 '''격조 높은 문장'''으로 여겨졌던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신문이나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고, 갑오개혁으로 국한문혼용체를 쓰기로 규정하면서 사용 빈도가 더더욱 늘어났다. 이 시기를 즈음으로 해서 외세의 침탈에 대한 반작용이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고유의 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순한글로 된 신문이나 인쇄물은 물론이고 한문과 한글전용 사이의 일종의 과도기적인 형태로 국한문혼용체로 된 신문이나 인쇄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나 잡지에서 국한문혼용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지속적으로 국한문혼용체가 쓰였으며,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국한문혼용체는 비교적 최근까지 쓰였다. 불과 반 세대 이전인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학생 이상의 식자층은 일상생활에서도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고 이해했으며[3], 고졸 이하 학력의 일반인이라도 일상생활에 쓰일만한 국한문혼용체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의 국내 주요 신문들은 세로쓰기, 국한문혼용으로 발행되었다. 신문이 가로쓰기, 한글 전용으로 바뀐 것은 한겨레신문을 제외하면 1990년대 중반 들어서다. 이때가 민주화와 시기를 같이 하지만 사실 정책적으로 한글전용을 실시한 것은 박정희 정부였다. 박정희는 한글전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눈 뒤 한글전용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그는 대학생들이 가져온 한글전용 계획을 살핀 뒤 1968년 5월 내각에 1973년을 목표로 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자신도 문서 작성과 명패 등을 모두 한글로 바꾸었다. 10월에는 목표년도를 1970년으로 3년 앞당기게 하는 등, 7개항의 강력한 한글전용 지시를 다시 내렸다. 거기에 한자 교육을 일시적으로 폐지하기까지 했다. 물론 엄청난 반발로 인해 중·고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재개하게 되었지만, 한자 교육 자체가 이미 크게 축소되었고 그 때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의 중역이 되기까지 대략 25년 정도 걸렸는데 그게 1990년대이다. 동시에 사회 전반에 걸쳐 컴퓨터가 보급되고, 전산화,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한문혼용체 사용은 더욱 위축되었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 1946년 사이에 간행된 로동신문세로쓰기에 국한문혼용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에는 아직 국한문혼용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한글 전용이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은 로동신문이 가로쓰기로 발행되기 시작한 1948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남한 역시 동년 한글날에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한글 전용을 법제화한 바 있다. 남한에서 한글 전용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에 비해, 북한에서는 한글 전용이 별다른 논란이나 마찰 없이 비교적 빠르게 보급되었다. 물론 이는 당의 방침에 대한 저항이나 이의가 원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북한 체제의 성격이 한몫한다고 하는데 몇달 속성 교육으로 한글을 뗀 사람들이 국한문혼용체로 된 글을 제대로 읽을리 없으니 추가적으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편의성을 우선시한것이다.
한편 연변에서는 북한의 영향으로 국한문혼용체는 잘 쓰이지 않고 국한문병용체가 주로 쓰인다. 그래도 남북한과는 다르게 한자를 쓰는 비중이 높다. 연변자치주의 공용어가 조선어(한국어)라지만 엄연히 중국에 속하고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쓰이는 공용어표준중국어라 연변 주민들은 한자를 기본적으로 배우기 때문이다.[4]

3. 양상


유독 법전 같은 문서에서 이러한 국한문혼용체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동음이의어에 의한 의미 해석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도 일반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례의 한자를 남발하고, 그 뜻을 일반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는 고유어가 있으면 고유어로,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한자어로 바꾸고, 한글을 전용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추세이며, 따라서 최근 제정 또는 개정된 법들은 한글로만 적혀 있다.
중간과정으로 잠시 '한문(漢文)'식으로 괄호를 사용해 한자를 같이 병기하던 시기가 있다. 게다가 법령은 원문 그대로 적어야 하는 원칙이 있어, 시중에 나온 법전을 보면 한자만 적힌 법, 한자를 병기한 법, 한글만 적힌 법이 전부 실려 있다. 참고로 최초로 한글화된 법은 다름아닌 민사소송법이다. 일본의 화한(和漢)혼용문을 그대로 가져와 국한문혼용체로 쓸 경우에 오히려 이런 혼란이 더 심화된다.
아시아나항공은 2020년 현재까지도 일부 기종의 좌석 앞의 안전문구는 '救命胴衣는 座席 밑에 있습니다', '着席中에는 安全帶를 매십시오'[해석]와 같은 국한문혼용체로 적혀있다. 물론 한자를 모르면 영어를 보면 되지만, 한자도, 영어도 모르는 어린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원래는 대한항공도 아주 옛날엔 국한문혼용체 안전 안내문구를 사용해왔으나, 2000년대 중반 들어 모두 한글전용 및 영문으로 표기하고 있다.

4. 비슷한 예


비슷한 예로 근래에는 한글과 로마자를 섞어 쓰는 국영문혼용체도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나, 한글 전용이 확산되면서 국영문혼용체의 사용 빈도 역시 국한문혼용체 못지않게 줄어들었다. 이공계를 비롯한 학문에서는 당장 사용되는 개념이나 장치들에 마땅한 한국어 번역이 없어서 현재도 국영문혼용체가 빈번하게 쓰이는 편이나 그 외에는 사실 보기 어렵다. 사실 한국인 교수가 한국말로 강의를 해도 영어 교재 영어 PPT에 하는 말도 조사만 빼면 전부 영어이다. 당장 도서관에 가서 80년대 이전에 출판된 대학 교재들이나 각종 논문들을 보면 국문, 한자, 영문이 뒤범벅된 환상적인 문장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독자가 영문을 읽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주로 대학생 이상의 고학력층을 대상으로 한 서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5. 혼용하는 정도


섞어 쓰는 정도는 글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으로 1980~90년대 신문에서 쓰인 고유명사, 약어만 한자로 표기하는 정도의 국한문혼용으로부터[5] 심한 경우 기미독립선언서 원문같이 조사만 빼놓고 모두 한자로 범벅해놓기도 한다. 이렇게 쓴 글에서 조사만 일본어로 바꾸면 얼추 일본어와 비슷해지지만, 오늘날 이렇게 쓴 글은 명사 투성이라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한자를 음과 훈으로 읽어 한자를 써도 고유어를 살리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한문독법에서 훈독이 사라져[6] 한자를 음으로만 읽기 때문에, 기미독립선언문 같은 심각한 국한문혼용체는 토씨 외에는 고유어의 씨가 말라버린다. 개화기 이후의 과도기 문체에서, 얻다를 '得다', 열다를 '開다' 따위로 적는 등[7] 명사뿐 아니라 동사까지 외자 한자에 '다/하다'만 붙여 쓰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으로 요즘에는 영어에서 나타나는 'get하다', 'open하다'처럼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좋지만 모르는 사람은 꽤나 답답한 문체이다.

5.1. 극한 국한문혼용체


'''實質的意를有하는諸單語'''를漢字或漢字語로標記한當히極限的國漢文混用體다。卽助詞乃至語尾와幾種의例外를除한餘는全部漢字로標記한다고說해도無妨하다。如此히文을記할境遇、文章의形은加一層現代日本語文章과似할事다。何故라하니、假名漢字交文을用하는日本語에서는漢字語는勿論實質的意를有하는固有語도亦是大部分他와似한意를有하는漢字와對應시켜標記함으로因해서다。그러나韓國式極한國漢文混用文과假名漢字交文의間에는幾種의決定的差異가在한데、一:現代日本語에서는實質形態素라도普通漢字로記하지않는單語가在한다。

▲ 위 예시는 아래 첫번째 문단의 일부를 극한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한 것이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여러 단어'''를 한자나 한자어로 표기한 극단적 국한문혼용체다. 조사 혹은 어미와 몇 종의 예외를 뺀 나머지는 전부 한자로 쓴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쓸 경우, 문장의 형태는 훨씬 현대 일본어의 문장과 비슷할 것이다. 가나·한자 혼용문을 사용하는 일본어에서는 한자어는 물론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고유어도 역시 대부분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한자와 대응시켜 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극단적 국한문혼용체 글과 가나·한자 혼용문 사이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첫째는 현대 일본어에서는 실질형태소라도 보통 한자로 표기하지 않는 단어가 있다는 거다. '이', '그'와 같은 비인칭 지시대명사는 일반적으로 「これ」、「それ」라고 쓰지 「此れ」、「其れ」라고 쓰진 않는다. 둘째로는 한국인은 한자를 읽을 때 무조건 음으로 읽지만, 일본인은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라는 두 가지의 읽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기미독립선언서는 이러한 문체를 택하고 있다. 단, '것'을 '事'로 쓴 것은 선언문과 다르다. 이로 인해 선언문을 직접 소리내어 읽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반 동아일보도 이러한 문체를 사용했다. 예시 1:동아일보 창간호 예시 2: 동아일보 1922년 신년호

6. 기타


  • 국한문혼용체에서는 띄어쓰기가 간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 의미는 한자, 문법적 요소는 한글로 쓰니 띄어쓰기가 없어도 가독성이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어문 규정으로는 국한문혼용체라도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 새나루 입력기는 일본어 입력기처럼 단어 단위로 한자를 변환하므로, 컴퓨터에서 한자입력이 상당히 쉬워진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여기
  • 한국어 위키백과의 일부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별도로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위키백과의 형태로 개설하는 것은 실패하였다.

그 대신에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추진했던 이들이 국한문혼용체 방식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한자위키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자어를 모두 한자로 변환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글전용체와 다르지 않으나 어쨌든 국한문혼용체로 읽을 수는 있다. 바로가기
  • 구글 번역기에서, 국한문혼용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붙여넣은 다음, 중국어 ▶ 중국어 간체로 번역하면, 한자 부분만 간체자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중국어 번체에 포함된 한자만 변환되므로, 일부 한국식 한자(眞) 등이나, 일본식 신자체(楽) 등은 무시된다. 주의할 점은,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없는 언어이므로 띄어쓰기도 모두 제거되니 주의하자. 이것은 버그가 아니다.
  • 김어준의 파파 이스 118화에 출연한 강원국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국민의 정부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옥중서신 같은 글조차 깨알같이 국한문혼용체로 쓰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8] 김대중 대통령의 문체 때문에 연설문 한번 고쳤다 하면 비서실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던 모두가 모여들어 "이 암호는 무엇이냐" 하고 해독하기 바빴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권위주의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메일이나 한글 97같은 컴퓨터, 인터넷 등 문명의 이기가 있음에도 대통령 부속실에서 감히 대통령께 이메일을 쏘냐고 했을 정도니 매번 비서실에서 출력한 원고를 들고 몇십 분을 배달가서, 이후 대통령이 적어준 수정 원고를 보고 비서실장이 "이거 뭐라고 쓰신거예요?"라고 물어볼 수 있을리가...
  • 한국어로 번역되는 자치통감강목은 국한문혼용체로 번역되고 있다. 정작 본편인 자치통감이 권중달 교수에 의해서 한글전용으로 번역된걸 생각하면 상당히 미묘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듯 하다. 아마도 이쪽은 전통 한학자들이 번역에 참여해서 그럴듯.
  •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동심 파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국한문혼용체[9]에 영어까지 더한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나눠줬다. 해석

7. 같이 보기


[1] 표기상으로는 다 한자라서 척 보기에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20세기에 개정 출판된 대명률직해와 같은 곳에서는 이두 표현에 대해서는 윗줄을 그어서 표시해두기도 한다.[2] 현대에도 혼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괄호를 사용하는 대신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3] 일례로 서강대에서는 90년대까지 읽기/쓰기 교양수업에서 독후감을 국한문혼용체로 쓰지 않으면 페널티를 매겼다.[4] 물론 중국 본토는 간체자를 쓰는 나라이므로 이들은 한국/대만의 정체(번체)자와 달리 간체자를 쓴다.[해석] '구명동의(구명조끼)는 좌석 밑에 있습니다', '착석중에는 안전대(안전띠)를 매십시오'.[5] 조선일보동아일보 같은 언론의 경우 지금도 이렇게 쓴다. 예를 들면 '北核'.[6] 훈독의 흔적이 남아있기는 하다. 훈독 문서 참조.[7] 이렇게 되면 형태가 일본어 동사와 비슷해진다.[8]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세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당 교육과 일제시대의 공교육을 받았으니 그만큼 한자가 더욱 익숙했고, 1990년대 초반까지도 한자를 많이 아는것이 교양의 척도로 여겨저서 같이 3김으로 묶여있던 김영삼김종필도 정치성향과는 관련 없이 평소에 국한문혼용체로 글 쓰기를 즐겨했다. 오히려 박정희처럼 한글전용을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 이단아로 평가되었다.[9] 다만 한자어에 해당하는 단어 모두 바꾼 건 아니다. 동심이 파괴되는 부분만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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