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철
[clearfix]
1. 소개
전 OB 베어스의 투수, 현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총괄코치.
2. 선수 시절
인천 출신으로, 인천고-인하대를 거쳐 1991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OB 베어스에 입단한다. 프로 2년차인 1993년부터 두각을 나타내 1993년 10승, 1995년 15승을 기록하며 김상진과 함께 OB의 원투펀치로 활약했으며,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등 1승(0패) 1세이브를 기록해 큰 경기에 약한 김상진, 김경원을 대신해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검에서 4급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이었지만, 국방부가 공익근무요원의 방송 출연, 운동경기 출장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2년을 야구공을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1997년 8월에 소집 해제된 후에는 자동차 전복 사고로 허리 부상을 당했고, 내야땅볼 수비 과정에서 발목 골절상[5] 을 입는 등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결국 1998년 시즌 후 이재만과 최훈재를 상대로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되었다[6] . 이후 SK 와이번스에 창단지원선수로 선정되어, 현금 20억에 SK로 이적했다. SK에서 중간계투로 뛰다가 2003년 두산 베어스에 복귀한 뒤 2004년에 은퇴했다. 마지막 경기는 KIA 타이거즈와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이었는데 연장 10회에 구원 등판해 승리를 기록하고, 연장 12회 마지막 공격에서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서 호쾌한 헛스윙 삼진을 기록하셨다.
[image]
조계현과 같이 17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7]
3. 지도자 시절
이후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코치로 일했다. 이 시기에 김상현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해주었다. 2008 시즌 후 일본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 귀국 후 2010년 박종훈 감독의 부름을 받아 LG의 불펜코치로 일했다. 하지만 박종훈 감독이 LG 트윈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2011년 11월 1일 부로 3년 만에 다시 두산 베어스의 1군 투수코치로 돌아가게 되었다. 2013 시즌 후 정명원이 kt wiz로 자리를 옮기자 메인 투수코치직을 승계했다.
2014년 5월까지는 두산의 투수진이 선발 불펜 가릴 것 없이 몇 명 빼고 죄다 삽질 중이라 투수코치인 그도 팬들에게 많은 질책을 받았다. 심지어는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권멍청'''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투수들의 투구폼을 고쳐서 얻는 성과라곤 없고, 2014년 노경은의 대삽질과 조금씩 부진하기 시작하는 니퍼트의 주 원인으로 지목당하고 있다.
결국 8월 11일 부로 2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다만 송재박 수석코치를 함께 내린 것 때문에 말이 많은 편.
그렇게 2014년은 이광우 - 가득염 체제로 어찌어찌 버텼으나, 다시 이광우와 보직을 맞바꿔 1군으로 또 올라왔다.
그리고 무능력한 인물인데도 여전히 2015년에도 1군 코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김태룡, 홍성흔과 함께 2015년 돡갤 3대 주적. 2015 시즌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시즌 시작 전 김강률의 투구 폼을 수정해 주며 제구를 잡아 주고 구속을 높여 준 것과 시즌 초중반 오현택이 부진할 때 투구 폼을 교정해 준 것이 있다.
2015년 6월 봉와직염으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 한용덕이 1군 투수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같은 달 11일 다시 1군으로 복귀, 대신 불펜코치로 갔다. 그 전에는 가득염이 대타로 불펜코치를 맡았다. 2016년 시즌에는 이현호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2017 시즌 초반 두산 투수진이 부진하면서 원흉으로 욕을 먹고 있다. 팬들은 왜 2군에 이강철 투수코치를 박아놓고 1군에 권명철 투수코치를 쓰냐며 한탄하는 중. 결국 4월 18일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잔류군으로 쫓겨났다. 정작 이강철 코치는 2군 감독으로 옮겨갔으며, 한용덕 수석코치가 다시 투수코치를 겸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8 시즌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팬들은 절망 그 자체... 다행히 이강철이 수석 겸 메인 투수코치로 확정.
이영하에게 포크볼의 그립을 전수해주며 그에 따른 성적이 좋아졌고 업적이 하나 더 늘었다. 2018시즌 이현호가 다시 투구폼을 바꾸고 기량이 어느정도 되돌아온 것을 보여주자 돡갤은 다시금 이현호의 투구폼을 뜯어고친 것에 대해 권명철을 깠다.
그리고 2018 시즌 종료 후 이강철 수석코치가 kt wiz의 감독직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메인 투수코치를 맡을 가능성이 농후해졌지만 다행히도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메인 투코는 박경완의 불알친구인 김원형이 맡게 되었다. 어쩌면 투수, 불펜코치보다는 수석코치가 더 맞을수도 있다. [8]
그러나 7월 19일에 2군 투수총괄코치로 내려갔다.
4. 연도별 성적
5. 여담
- 별명은 불곰, 슬라이더 권.
- 장원진과는 30년 지기로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공익으로 2년 간 함께 근무했으며, 은퇴 후에는 나란히 두산 2군의 코치를 맡았다.
- 팬서비스가 좋다. 라이트 팬들이 싸인을 요청하면 장난으로 “니들이 내 선수시절때 알어?” 이러면서 장난도 친다.
[1] 1988학번[2] 4월 18일부로 강등[3] 7월 19일부로 강등[4] 하지만 권명철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정규시즌 경기에 등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99 시즌 개막 직전 시범경기에서 발목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5] 권명철이 해태로 트레이드된 후인 1999년 시범경기에서 당한 것이다.[6]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것도 컸는데 권명철 뿐 아니라 당시 이 사건에 관련된 OB 주축 선수들이 같은 시기 타 팀(김상진 - 삼성 김상호 - LG)으로 떠나야 했다[7] 해당 자료는 2010년 7월 말~8월 초에 만들어진 자료로 추정된다. 2010년 8월 17일까지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가며 29연속까지 기록한 뒤 다음 경기인 26일 넥센전에서 7이닝 4실점을 기록.[8] 두산 수석코치는 최근 차기 타팀 감독 자리로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