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콩코드

 

기아자동차중형 승용차
'''콩코드 · 캐피탈'''[1]

크레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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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뉴 콩코드 (페이스리프트)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둘러보기


1. 개요


KIA CONCORD[2]

'''頂上(정상)의 수퍼세단'''

제5공화국 시절에 규제된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7년에 풀리면서 승합 및 화물차 담당으로 묶여 있던 기아자동차에서 국내 승용차 시장에 복귀했을 때 출시한 전륜구동 중형 승용차.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초기에는 소하리공장에서 만들다가 1989년부터 아산공장으로 생산라인을 옮겼다.

2. 상세


마쓰다카펠라 GC형(3세대)[3], 즉 당시 마쓰다의 카펠라 3세대을 면허 생산한 모델이다. 마쓰다의 F 엔진(직렬 4기통 DOHC/SOHC, 1,800~2,000cc)을 사용했다. 후에 2.0 RF 디젤과 LPG 모델도 추가되었다. 이 때 쓰인 RF 디젤 엔진은 뒤에 초대 스포티지에 인터쿨러가 들어가서 얹혔을 정도로 기아자동차가 관심을 많이 가지던 엔진.[4] 참고로 콩코드 디젤은 기아차 최초의 디젤 승용차라는 특징이 있다.
1987년에 2.0 SOHC와 1.8 SOHC가 먼저 출시되었고[5], 1991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 1992년에는 2.0 DOHC 모델도 출시되었다. 경쟁사 중형차 모델들에 비해 전장과 휠베이스가 짧고 공차중량도 가벼웠고, [6] 엔진 및 서스펜션의 성능은 뛰어나서 고속도로에서 추월할 차가 없었다. [7]
하지만 중형차치고 짧은 전장 및 휠베이스 때문에 실내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했고,[8][9] 당시 중형차 3파전이 붙으면서 넓은 실내공간을 앞세우며 다크호스로 군림한 현대 쏘나타와 1980년대 국내 럭셔리 세단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대우 로얄 시리즈에 밀리며 실제 판매량에 있어서는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스포티함과 첨단 이미지[10]를 겸비하며 변호사, 의사같은 전문직 고소득 종사자 오너 드라이버들의 중형차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며 나름 선전한다.[11][12] 또, 이전에 기아가 만들었던 피아트 132도 중형차로서는 경쟁 모델들보다 작으면서도 고성능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콩코드 등장 당시에는 아직 피아트 132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콩코드는 '작고 고성능인 중형차'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중형차 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얻을 수 있었다. 콩코드 출시 이전의 티저 광고나 출시 직후의 광고에서도 푸조 604와 피아트 132를 생산했었던 기아산업이 고급 승용차를 다시 만든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피아트 132의 후속으로 포지셔닝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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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룡 교수가 현역 카레이서 시절인 1992년부터 한동안 콩코드를 몰고 카레이싱에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레이싱에서 유일한 적수는 다름아닌 현대 스쿠프였다고 할 정도로 DOHC 엔진을 장착한 콩코드는 최강의 성능을 자랑했다. [13] 실제로 콩코드의 가솔린 엔진은 여러 곳에서 써먹었다. 후속차인 크레도스도 그렇고 스포티지도 그랬고 심지어는 포텐샤, 군용 레토나에서도 이 가솔린 엔진을 썼다. 배기량에 비해 연비도 좋은 편이라 디젤, LPG 모델은 택시로 사용하는 일도 많았다.[14]
캐피탈은 콩코드의 차체를 그대로 갖다 쓰고 배기량이 작은 1.5리터 엔진을 얹어[15] 만든 가지치기 모델에 불과하다는 흑역사같은 전력이 있다. 실제로 멀리서 보면 구분이 거의 안 가기도. .[16][17] 차급이 다르지만 최근의 경우를 본다면 르노삼성 SM7 1세대 모델과 르노삼성 SM5 2세대 모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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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스테이션 왜건형도 만드려고 했지만 양산하지 않았다. 차량의 양산이 되지 못한 이유는 한겨레신문 1997년 6월 16일자 주말자동차 시대 '왜건' 바람이라는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으로는 왜건 차량인 아반떼 투어링이 각종 영 좋지 못한 악재가 터지면서 판매량이 부진했기 때문에 출시를 망설이다가 결국 크레도스를 출시하며 크레도스를 기반으로 한 파크타운을 만들며 양산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1995년에 크레도스가 출시되면서 단종되었다. 후속인 크레도스는 콩코드와 같은 뛰어난 동력 성능을 이어갔다. 크레도스의 경우는 GC형 카펠라의 후속인 GD형 카펠라를 건너뛰고 그 후속인 마쓰다 크로노스(GE형)의 언더바디를 공유했는데, 실제로 호환 가능한 하체 부품이 많다고 한다.[18]
2020년 현재, 어쩌다가 한 번쯤은 보이는 동시대 현대 쏘나타, 대우 프린스에 비해 매우 보기 힘든 차량이되었다.

3. 여담


  • 단종 이후 한동안 추억의 자동차로 인식되었으나, 2004년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이 비자금의 해외유출 관련한 조사차 검찰출두 당시시 다 낡은 1990년식 콩코드를 타고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여론의 평가는 벌금을 낼 돈이 없다고 주장했던 전재용이 낡은 차를 타고 와서 정말 돈이 없는척 언론 플레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평가였고 지금도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5년, 전재용이 미국에서 과속으로 경찰에 적발되었는데, 당시 타고 있던 차량은 2003년식 벤츠 E320이었다고 한다(...).
  • 영화 1987에서 최환 부장검사(하정우 역)이 극중에서 타는 차로 뉴 콩코드(페이스리프트)가 나온다. 하지만 뉴 콩코드는 1991년에 출시했으므로 고증오류.[19]

4. 둘러보기




[1] 캐피탈은 1990년 DOHC 엔진 출시 후 준중형으로 분류된다.[2]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Concorde)와는 철자 끝 e가 빠진 것이 다르다.[3] 3세대 GC형 카펠라는 스포티한 성능과 핸들링을 강조했는데, 기본기가 상당히 좋은 차라서 1983년 일본 Car of the Year(올해의 차)를 수상한 전력도 있고, 유럽(특히 독일)에서의 평가도 매우 좋았다. 아래에 써있는 콩코드의 조종성이 탁월한 원인.[4] 베스타록스타에 들어간 R2 디젤 엔진은 여기서 배기량을 2,200cc로 늘린 엔진이다. 사실 베스타의 R2 엔진이 국내에서는 2년 먼저 선행 적용된 것이지만.[5] 이중 2.0 SOHC는 베스타 EGI에 들어갔다.[6] 경쟁차종인 1988년에 출시된 쏘나타(Y2)보다 전장 및 휠베이스가 10cm 이상 짧았고, 공차중량도 200kg이나 적었다. 에스페로 2.0 보단 50kg 더 무거웠지만 출력이 높고 엔진 반응이 빨라 경쟁이 되지 않았다.[7]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동급보다 한 단계 더 큰 그랜저(1세대, V6 3,000cc SOHC 모델)보다 가속력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8] 전장이 457cm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현재 팔리고 있는 현대 아반떼보다 약 8cm 짧은 정도로 후속인 크레도스와는 무려 14cm가 차이난다. 게다가 휠베이스는 겨우 2,520mm에 불과했다. 이보다 훨씬 전에 나왔던 스텔라의 휠베이스가 2,580mm였고, 경쟁차인 쏘나타의 휠베이스는 2,650mm, 로얄 시리즈의 휠베이스는 2,668mm였으니 콩코드의 휠베이스는 엄청나게 짧았던 것이다. 심지어 '소형차'인 대우 르망의 휠베이스가 2,520mm로 '중형차'인 콩코드의 휠베이스와 같다.(물론 르망의 원판인 오펠 카데트E가 우리나라의 준중형 급에 해당하는 'C 세그먼트' 급인 까닭도 있다.) 이는 원래 콩코드의 원판인 마쯔다 카펠라 3세대 모델이 준중형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명목상으로는 중형차로 마케팅되었지만 전폭이 1.7m 미만으로 일본기준 5넘버차(소형차)에 해당하다보니 일본에서는 법적으로는 소형차로 분류되었다. 카펠라가 제대로된 중형차 취급을 받은 것은 바로 다음 모델인 4세대부터이다.[9] 다만 일본시장에서는 최종적으로 단종될때까지 전폭이 1.7m를 넘지 않았다. 5세대부터 해외형과 일본형이 따로 나온게 그 예시였고, 1989년에 들어서야 일본 내에서 세액이 배기량에 따라서 정해진 것이 카펠라를 중형차로 인식하게 한 배경이었다. 마쓰다의 중형차가 전폭이 1.7m를 넘기게 된 것은 카펠라의 후속인 마쓰다 아텐자가 등장하면서 생긴 일이다.[10] 당대에 있어서 충격의 장치였던 디지털 계기판을 장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할 물건. 콩코드를 시작으로 많은 차량들이 디지털 계기판을 장착했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이후로 사라졌으나 근래들어 기아 레이를 시작으로 점차 부활의 기미를 엿보이는 중.[11] 이를 의식했는지 대우자동차는 로얄 시리즈 후속작인 대우 프린스 CF에 성형외과 의사로 이름높은 남궁설민을 모델로 기용하며 콩코드를 견제하기도 했다.[12] 참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 콩코드를 탔다고 한다.[13] 다만 박정룡 교수가 둔중할 것이라고 예상되던 콩코드를 타기 전에 프라이드를 타고 모터스포츠에서 날아다닌 것을 감안하면 1980~1990년대 기아차의 스포티함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14] 덕분에 택시로 많이 쓰던 은색 콩코드는 늦은 시간 중심가 유흥가를 지나다 교통 체증에 걸려 서 있있을 때 다짜고짜 뒷문을 열고 "홍은동 갑시다!" 어쩌고를 외치는 취객이 타는 일이 종종 있었다.[15] 그래도 1990년에 양산된 B5 DOHC 엔진이 한국 최초의 16V DOHC 엔진이다. 광고에서도 이 사실을 자랑할 정도. '''고회전형''' 엔진이었으며, 세피아는 이를 약간 디튠해서 이용했다.[16] 실제로는 변신 안 된다. 기본 차체는 같은 것을 썼기에 도어와 유리는 모두 같은 것을 쓴 것은 맞다. 후방 부품의 경우 범퍼는 같은 것을 사용하였고 트렁크의 경우 플라스틱류 부품과 램프류만 교환하면 콩코드 개조가 되었을지라도.. 펜더, 전면 범퍼, 와이퍼 암이 들어가는 파츠, 후드, 주유구(콩코드는 원형, 캐피탈은 사각형)등에 소소하게 차이를 두었기에 개조를 위한 호환 부품의 범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콩코드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판금작업이 필수였기에, 실제 콩코드 개조 차량은 없었거나, 있었어도 굉장히 큰 범위의 작업이었기에 시도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앞서 기술된 것도 뉘앙스가 조금 잘못되어 '변신 가능하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느낌이 그랬다는 얘기이다(다만 일부 부품을 활용해 콩코드’풍’ 개조는 가능했을 듯). 실제로 변신 가능하면 콩코드 판매에 지장이 있을 것이 뻔하므로 기아에서 여기저기에 호환이 절대 안되는 부분을 만들어 변신 불가능하게 했던 것이다.[17] 이후 한참 지난 LF 쏘나타/뉴라이즈도 개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18] 마쓰다 크로노스(GE형)의 언더바디를 공유해서 만든 GE형 포드 프로브도 크레도스의 언더바디와 호환되는 부품이 꽤 있다고 한다.[19] 심지어 초기형 콩코드는 1987년 10월에 나왔으므로 그 당시에는 나오지도 않은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