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현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더 크로스의 2대 보컬.
2. 데뷔 이전
더 크로스의 1기 보컬인 김혁건의 탈퇴 이후 새롭게 영입된 2기 보컬로 유명하지만, 실은 대학생 때부터 전북대학교 밴드부 싱건지에서 보컬로 활동하면서 대학 가요제에 몇 번 참가하여 수상한 경력도 있고, 락타운21에서 일명 '인터넷 노래짱'으로 얼굴을 알리고[10]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거의 준급 연예인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2002년에 개설된 팬카페의 회원 수가 무려 4만 명을 넘어갈 정도였는데,[11] 일반인의 이름으로 개설된 팬카페 회원이란 것을 감안하면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김경현의 탄탄한 가창력과 쭉쭉 뻗는 고음, 그리고 상당한 인기를 눈여겨 본 것이 바로 더 크로스의 소속사인 GF엔터테인먼트[12] 였고, 2004년 2월에 남자 '''솔로'''[13] 오디션에 합격하며 이때부터 더 크로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3. 더 크로스 시절
소속사의 지대한 관심과 과거의 빛나는 명예와는 달리, 연예인으로서의 김경현은 출발이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1기 보컬인 김혁건의 계약 파기 및 탈퇴로 인한 보컬 교체,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수많은 루머와 악플이었다.
2003년에 데뷔한 그룹 더 크로스는 1집 앨범 타이틀곡 《Don't Cry》로 많은 10~20대 남성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성을 별로 잡지 못한 데다[14] 불법 다운로드까지 겹쳐[15] 사실상 상업적으로 실패한 상황이었다. '''이는 일개 네티즌의 평가가 아니라, 당시 더 크로스의 소속사였던 GF엔터테인먼트와 리더 겸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이시하가 직접 밝힌 피셜이다.''' 경제적 이익을 내야 하는 소속사에서는 보컬을 한 명 더 영입해 SG워너비처럼 3인조 체제의 R&B 그룹으로 노선을 바꾸자는 제안을 했고, 여기서 이시하는 찬성했지만 정통 록을 고집하던 김혁건은 반대했다. 이로 인해 소속사-이시하-김혁건의 의견 차이로 대립 상태가 몇 달 동안 이어지던 끝에, 참다못한 이시하는 산으로 들어가 칩거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하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해가 쌓이던 김혁건이 지인에게 '''와전된 소문을 전해 듣고,''' "이시하와 김경현이 자기 몰래 2집 앨범 작업을 했다는" 글을 팬카페에 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에 이시하는 '''작업'''이 아니라 '''칩거'''를 했으며, 김경현은 2004년 2월에 남자 '''솔로''' 오디션에 합격하고 곧바로 전주로 내려가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즉 루머였던 것.''' 소속사에서는 급히 김혁건의 글을 삭제하고 해명글을 올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김혁건의 팬들은 소속사의 해명을 믿지 않아 양쪽의 의견도 전부 듣지 않은 채로, 이시하와 특히 김경현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악플을 달면서 루머를 퍼트리는 만행을 저질렀다.[16]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김경현이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2004년 6월 중하순 이전에''' 이미 김혁건은 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해 더 크로스를 탈퇴하였고, 이시하의 언급에 의하면 김경현은 '''2004년 8월 말에''' 더 크로스 새 멤버로 내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김경현이 다시 전주로 내려가 2학기를 다니고 있었던 '''2004년 9월 중에''' 소속사 측에서 김혁건과 재계약을 시도했지만 불발되었고, 결국 김경현은 김혁건의 계약 해지와 탈퇴가 전부 마무리된 '''2004년 10월 초에''' 더 크로스 2기 보컬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요약해서 서술하자면 '''더 크로스 보컬 교체와 김경현은 무관했으며, 가장 무고한 사람이 가장 무거운 누명을 뒤집어쓴 셈이었다.'''
3.1. 2집 Rush(2005)
수많은 논란 끝에 더 크로스 2집 활동을 시작하였다. 보컬 교체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고, 곡이 발표된 직후에도 1집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 탓에 기존 보컬 팬들에게 많은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그와 반대로 각종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에 성공하며, 1집 때보다는 비교적 안정된 시작을 하게 됐다.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타이틀곡 《떠나가요, 떠나지 마요》가 《Don't Cry》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으로 접근했기에,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17] 때문에 조금은 도화선이 붙어 음악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예능 방송 등에도 출연해 이전보다는 더욱더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면서, 원래대로라면 1집 가수로만 기억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더 크로스를 존속시키는 데 초석을 밟는다.
2집 발매 직후, 당시 음악 방송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여 본격적으로 존재를 알린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마는데, 바로 김경현이 예의 없이 윤도현에게 고음 배틀을 신청한 것이 안 좋은 의미로 화두가 되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경현의 대사는 사실 이미 대본 상에 있었던 연출이었다. '''즉 짜고 치는 고스톱.''' 실제로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대본에 충실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으며, 김경호 출연 분량에서는 대놓고 인증이 되기도 했었다. 사실 이것 외에도 같은 방송 분량에서 이시하의 언더그라운드 발언과 함께[18] 김혁건 측의 비하와 오해의 대상이 되었다.[19] 결국 진실이 묻힌 채 김경현은 예의 없이 고음 배틀을 했다는 루머가 지금도 가끔씩 보이지만, 이는 분명 방송 측에서도 인증했던 '''대본 상의 연출이다.'''
3.2. Part 1 - Dream(2006)
2006년 월드컵 붐에 편승해 야심차게 준비한 앨범으로, 당시 응원가 투표에서 버즈 다음으로 2위에 링크되는 등 의외의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월드컵의 성적 부족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귀국과 동시에 묻혀 버렸다. 그나마 월드컵과 무관한 후속곡인 《Time》으로 활동을 이어나갔고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스케줄 이동 중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여 잠시 활동을 접어야만 했던 비운의 앨범이다. 만약 2006년 월드컵이 2002년 월드컵 때만큼 성적이 좋았고 또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3.3. 눈물이야기 제1탄 사랑하니까, 3집 Magician(2007)
그렇게 월드컵이 조용히 지나가고, 2007년 초 3집 발표 이전에 눈물이야기 제1탄 사랑하니까 앨범이 발표되었다. 발표 직후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1등을 싹쓸이하는 신화를 이룩했고, 동남아권, 특히 말레이시아에서는 그 동방신기를 몰아내고 인기를 석권하는 데까지 성공하여 해외 진출의 발판까지도 마련하는 등, 이 곡으로 인해 더 크로스는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 시대를 맞이하며 이제껏 있었던 악평들을 대거 잠재우게 되는 계기까지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 아이돌 붐 때문에,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성기'''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이돌 문제도 문제이지만, 3집의 후속 타이틀인 《시간이 지나도》가 《사랑하니까》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고, 또 소속사의 생각인지 이시하의 생각인지, "코스프레 + 락(일명 코스락)" 이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심각한 무리수를 둔 것과 김경현의 실수들이[20] 겹쳐 "라이브가 어색한 가수" 9등을 차지하며 씁쓸하게 3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3.4. Alive The Cross(2008)
《사랑하니까》의 여파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2008년 《하루만 한 번만》[21] 을 야심차게 준비했고, 실제로 곡은 물론 뮤직비디오 티저까지도 괜찮게 나왔다. 그러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도 전에 잔인했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려 가위질을 당해 뭔가 이도저도 아니게 편집이 되었고,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음원 유출 대란'''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 활동 자체를 시작도 해보기 전에 완전히 암흑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당시 몇몇 '''김혁건 팬들에게조차''' 이건 너무 불쌍하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암울했던 시기였고, 김경현 본인 역시도 한동안 심각한 방황기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전술했던 아이돌 붐이 급격하게 강해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앨범 활동도 길게 하지 못한 채 쓸쓸한 퇴장을 해야만 했다.
3.5. Gift(2009)
하루만 한 번만 활동기 시절 얻은 교훈도 있고, 또 당시의 음악계에서는 더 이상 방송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네버엔딩》과 《미친 사랑》으로 디지털 활동만 했다. 타이틀인 《네버엔딩》은 제목에서 유추되듯이, 작곡가인 이시하가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22] 더 크로스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쓴 곡이며, 후속곡인 《미친 사랑》은 역대 더 크로스 음원들 중에서도 특히 상당한 애절함이 담긴 곡이다. 그리고 실제로 김경현의 파란만장하다면 파란만장했고 암울하다면 암울했던 더 크로스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4. 솔로 이후
2009년 8월에 이시하가 군입대를 하고,[23] 2010년 1월에 GF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더 크로스를 탈퇴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여담으로 팬들의 말로는, 이때 미모에 물이 제대로 올랐다고.
참고로 보컬 교체와 사고 시기를 착각하거나, 김혁건의 교통사고로 김경현을 영입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 특히 스타킹과 슈가맨이 방영된 이후에 이러한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잘못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김혁건이 2004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거나, 김경현이 2012년에 영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2011년 6월에''' 전역한 이시하는 거의 동시에 전역한 김혁건과 해묵은 오해를 풀고, 더 크로스 재결합에 성공하며 GF엔터테인먼트와도 재계약했다. 김경현은 본인의 솔로 활동을 계속하다 '''2011년 12월에''' 입대를 했으며, 더 크로스는 복귀 준비 중 '''2012년 3월에''' 김혁건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예정된 컴백이 연기돼 버렸다. 다시 말해 '''보컬 교체와 사고는 관련이 없으며, 김혁건의 교통사고로 김경현이 영입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4.1. 버즈 민경훈 비난 사건
2005년 11월, 김경현이 버즈 민경훈을 비난했던 글이 2010년 뒤늦게 알려져 잠깐 화제가 되었다. 김경현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B모 그룹 M모군, 그렇게 건방 떨다 다친다" 라는 익명의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내용인 즉슨, 자신이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무시해서 열 받았다는 이야기. 게다가 얼마 못가 실시간으로 B모 그룹의 M모군이 버즈의 민경훈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가며 일이 커질 것만 같았으나, 때마침 싸이월드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 김경현이 직접 디시인사이드 민경훈 갤러리에 자신을 인증해 해명글을 올렸는데, 일단 피해자인 버즈 팬들 측의 입장에선, 김경현의 해명글이 단순한 변명글로 보일 여지가 매우 강하다. 사실상 내용의 대부분이 당시 상황 설명들 뿐이었고, 정작 중요한 사과 문구는 마지막 한 마디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김경현에게 사과와 동시에 상황 설명을 요구한 것은, 싸이월드를 통한 버즈 팬들 측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 물론 당시 싸이월드를 하지 않았던 이들도 많았기에, 버즈 팬들 측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삼가자.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인 미니홈피에서, 그것도 암시 조로 특정인을 비난한 김경현의 언행은, 다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자신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사실상 그의 인사를 못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주 김경현의 미니홈피에는 민경훈이 인사를 했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타인에 대하여 비난의 표현을 썼다는 자체는, 사실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의 입장이었던지라 죄질이 가볍지 않게 여겨지긴 하나, 그에 앞서 인간 대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민경훈의 잘못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비록 본인이 선배이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먼저 건넨 인사를 무시한 사실은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기도 하며,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호의를 무시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사건에 대해선 김경현 본인도 수 년이 지나간 지금까지 가수 생활의 오점으로 생각하면서 많이 반성하고 있으므로, 예전의 잘못을 가지고 과하게 비난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또한 민경훈 역시 과거의 연예계 생활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모습들이 있었기에, 이제야 이런 부분을 지적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4.2. 연예병사 사건
김경현은 2011년 12월 입대 후 대구화생방대대에서 일반병으로 9개월 정도 복무를 하다가, 홍보지원대에서 몇 차례의 제의가 들어와 서류 심사 후 간단하게 합격을 받았다. 그렇게 연예병사로 발탁되어 수많은 무대 행사를 뛰어다니는 동안, 군인들 사이에서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는 더 크로스 때보다 더 대단하다는 평이 있었을 정도인데, 실제로 위문열차에서 걸그룹 이외에 앵콜을 받은 '''남자 가수'''는 당시 박효신과 김경현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가수들과 달리 시원시원한 보이스가 장병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기에 가능했던 인기였을 듯.[24]
하지만 김경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던 이 연예병사 시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연예병사 사건이었다. 물론 사건의 주범인 SE7EN과 상추와는 달리[25] '''핸드폰 소지'''가 문제가 되어[26] 가벼운 징계 처분만[27] 받고 별 탈 없이 무난히 전역한 사실상의 마지막 연예병사이다. 전역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심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후술하겠지만 인성 자체가 착한 사람이라서 향후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 봐야 할 듯.
4.3. 아프리카TV 출연
2013년 전역 이후 김경현은 콘서트를 마치고 신곡 발표 직전, 노래하는코트 방송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Don't Cry》와 신곡인 《끝이래》를 열창했다. 과도한 콘서트 후유증으로 인해 성대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갭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 때문에 이 방송은 레전드 방송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으며, 이제껏 있었던 김경현의 악평들을 모조리 뒤집어 버렸다. 아무튼 이러한 사례 덕분에, 나이가 3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경현의 포텐셜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리고 2016년 김경현은 최군 방송에도 출연하여, 경직되었던 코트 방송과는 달리 엄청난 입담과 똘기를 보이며, '''가수로서의 실력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돋보인 방송을 하였다.''' 물론 반응 역시도 의외로 예능적이라며 칭찬이 대다수였지만, 간혹 골수 안티로 추정되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방송에 들어와 비하하는 글을 게시하며 도발했다. 하지만 김경현은 오히려 "네, 김혁건 씨가 더 잘 불러요" 라고 대답하여,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 그 안티들은 채팅방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김경현의 인성이 제대로 빛을 발한 케이스.
2017년에는 세 번째로[28] BJ임다의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11월 18일 열리는 대전 락밤 홍보를 위해서 출연한 것이라 밝혔다. 전반부에는 시청자와의 소통, 보컬 트레이닝 등 여러 콘텐츠들을 진행했으며, 후반부에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 《당신을 위하여》, 《Don't Cry》를 열창하였다. 임다를 능가하는 수준의 아재개그를 주고받거나 임다의 별풍선 리액션을 따라하는 모습도 보였고, 락타운 시절의 이야기도 언급되었으며 전기고문 창법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했다.[29] 그리고 예전에 비해 김경현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욕설들이 많이 줄어든 편이다.
4.4. 인터내셔널 앨범, 그리고 팬들의 활약
2014년, 김경현은 전술했던 《사랑하니까》로 인연이 깊은 말레이시아에서 첫 인터내셔널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한국에 정식으로 발표된 앨범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일부 열성 팬들은 눈치를 곧장 챘고, 음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30] 하지만 해당 음원을 서비스하던 사이트에서 한국 계정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고,[31] 울며 겨자 먹기로 온갖 경로를 다 찾아 봐도 음원을 구할 수가 없었다. 몇몇 팬은 김경현에게 부탁을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정작 그걸 부른 본인에게조차 음원이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팬들도 할 수 없이 포기하는 듯해 이대로 묻히는 분위기가 2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4월 1일, '''어느 팬에 의해 아마존닷컴에서 음원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반쯤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날짜가 날짜였던지라 처음에는 낚시로 의심했던 팬들은, 이윽고 확실한 사실임이 판명나자 단체로 음원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다른 팬을 통해 김경현은 자신이 불렀던 노래의 음원을 '''무려 2년 만에'''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멜론이나 다른 음원 사이트에 앨범명인 'The Closure'라고 검색하면 음원이 나오고, mp3 다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4.5.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연
2017년 3월 9일,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4 하하 편에 실력자로 출연하여, 2010년 이후 거의 7년 만에 방송에 얼굴을 보이고 더 크로스의 히트곡 《Don't Cry》를 열창했다. 이후 다음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했다.
그 후 2017년 7월 6일,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4 마지막 회에 재조명 스타 랭킹 2위로 출연하여, 주니퍼와 함께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과 《Don't Cry》를 열창했다.
그리고 2019년 너목보 시즌 6 첫 회에서는 오프닝 가수 100명 중 한 명으로 나왔고, 린&환희 편에서도 데뷔 이전 락타운이란 사이트에서 동시대에 활동했던 가수인 김길중을 응원차 방문했다.
4.6. 랭킹쇼 123 출연
2017년 9월 1일, 랭킹쇼 123에 출연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Don't Cry》를 불렀으며 몇몇 출연진들이 알아보기도 했고, 또한 부활 1대 보컬 김종서와 폐활량 테스트를 하면서 진성으로 19초를 끌었다. 참고로 김종서는 22초. 그리고 결과는 폐활량 초속 10미터, 크기 114.8데시벨, 주파수 463헤르츠, 990점 만점에 900점으로 1위.
여담으로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김경현의 롤모델은 김경호인데, 그에 반해서 김경호의 롤모델은 김종서다.
4.7. 복면가왕 출연
당시에 유튜브 댓글을 보면[32] 왜 복면가왕에 나가지 않냐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2015년 가을 쯤에 작가도 만나고 필요한 자료도 보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99차 경연에서 우리집 재건축 완료!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는 가왕 옷 벗길 자 누구인가! 해와 바람과 같이 노을의 《청혼》을 부르고 의외로 근소한 3표차로 승리했다. 여기서 판정단인 카이는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마동석의 눈물이 느껴졌다고 평했으며 김구라는 SG워너비의 김진호 같다고 평했다. 또한 해와 바람은 발성 호흡이 길어서 부럽다고 평했다.
2라운드에서는 안 뽑으면 끝까지 쫓아간다! 추노와 겨루면서 K2 김성면의 《유리의 성》을 불렀으며 묵직한 저음에서 몰아치는 고음으로 몰입도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여기서 김호영이 그의 정체를 정확히 눈치챘으며 판정단인 이윤석은 '록 발라드 흥행 시절의 감성에 젖어들게 만들어서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무대였다'고 평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 인터뷰에서, 복면가왕 제작진에게 섭외 전화를 받고 기뻐서 운전하는 도중에 샤우팅을 질렀다고. 그리고 원했던 복면가왕 무대에서 노래하는게 즐거웠고 앞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전하면서 퇴장했다.
방송이 나간 뒤에 본인의 SNS에 인증샷을 남겼으며, 2라운드에서 탈락했기에 부르지 못했던 3라운드 곡은 2019년 4월 대전 콘서트에서 부르겠다고 예고했다.[33] 또한 그의 정체를 눈치챈 네티즌들 대부분은 가왕과의 맞대결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패배한 게 아쉬워서 재도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4.8. 불후의 명곡 출연
여름 특집 3탄에 KCM과 함께 출연해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듀엣으로 불렀다. 그리고 과거 어려운 형편으로 방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KCM이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으며, 본인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5. 근황
참고로 이시하와 김경현의 더 크로스는 해체된 상황이다.[34] 일각에서는 이것 역시 예전의 김혁건처럼 불화로 인한 탈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펼치는 의견들이 있지만, 불화는 절대로 아니고 이들은 서로의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김경현은 지금도 이시하를 포함해서 예전 소속사 직원들과 사장과도 호형호제하면서 원만히 지내고 있으며, 더 크로스에서 활동했던 시절의 자부심을 느낀다.
현재 김경현은 방송 활동보다 각종 행사 및 축제 같은 곳에서 주로 활동을 하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으며, 대학 축제에서는 거의 날아다닌다.[35] 또한 본인의 이름을 걸고 2015년 상반기부터 "락이 빛나는 밤에"[36] (일명 락밤) 콘서트를, 2016년 하반기부터 "클럽 투어" 콘서트를 전국 투어로 동시에 진행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소속사가 없어서 리미터 해제된 가수인지라, 돌아다니는 동영상들만 봐도 더 크로스 시절보다 훨씬 발전된 가창력에 음악적 자유도까지 높아져,[37] '''거의 궁극체가 되어 가고 있다.''' 자기 전문 분야인 락이나 발라드뿐만이 아닌 댄스, 뮤지컬 넘버에 '''랩(!)'''(넉살 《Nuckle Flow》 커버 영상)까지 독특한 방식으로 소화해서 부르는 모습은 압권. 하지만 락밤 콘서트에서 불렀던 《좋니》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채널에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종종 업로드하는데, 상당히 높은 조회수를 보이면서 네티즌들도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38] '''그 와중에 인성갑 인증은 덤. '''
그리고 소속사 없는 가수로 활동한지 약 5년 만인 2019년 9월부터 소속사에 들어가서 활동하게 됐다.[39]
5.1. 역대 락이 빛나는 밤에 목록(by. ARP 엔터테인먼트)
- 2015년 4월 4일 토요일, 대전 휴지 콘서트홀
-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대전 휴지 콘서트홀
-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부산 시민회관 소극장
-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서울 강남구민회관 대강당
- 2016년 6월 18일 토요일, 경산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 챔버홀
- 2017년 4월 15일 토요일, 서울 플랫폼창동61 레드박스
- 2017년 4월 29일 토요일,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국제문화회관 백마홀
-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서울 종합예술실용학교 SAC아리랑홀
- 2018년 3월 31일 토요일, 대전 믹스페이스
- 2018년 6월 16일 토요일, 서울 스테이라운지
-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 대전 서구문화원 아트홀
- 2019년 4월 27일 토요일, 대전 믹스페이스
-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서울 성수아트홀
5.2. 역대 클럽 투어 목록(by. 조은라인 엔터테인먼트)
- 2016년 9월 10일 토요일, 대구 클럽헤비
- 2016년 10월 8일 토요일, 부산 인터플레이
-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대전 인스카이투
-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서울 프리버드
-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대구 클럽헤비
- 2017년 7월 9일 일요일, 서울 스테이라운지
5.3. 번외 콘서트 목록
- 2015년 1월 24일 토요일, 서울 노리터 플레이스
- 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서울 스테이라운지
-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서울 롤링홀
-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서울 일지아트홀
6. 가창력
평소 벨팅 창법을 사용해 노래를 부르고, 엄청난 고음과 함께 넓은 음역대가 장점이다. 진성 기준 음역대는 최저 '''0옥타브 라♯(A♯2)'''[40] ~ 최고 '''4옥타브 도(C6)'''[41] , 가성 기준 음역대는 최저 미상[42] ~ 최고 '''4옥타브 미(E6)'''[43] . 참고로 한창 쌩쌩할 때는 '''4옥타브 파♯(F♯6)'''까지 올라갔으며, 유튜브에 음역을 측정하는 영상이 있다. 그래서 생긴 별명 중에 하나가 '''"조선의 마지막 4옥타브 락커."''' 실제로 부른 노래들 중에 4옥타브 음역이 나오는 노래는 무려 아홉 개다.[음원][커버]
또 다른 특징은 매우 파워풀한 샤우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명 천둥 샤우팅 또는 불꽃 샤우팅이었지만 너목보에서 마치 소리가 전기같고 전기고문 당하는것 처럼 김경현의 몸전체가 비브라토에 맞게 움직여서 전기 고문 창법이 되어 버린 그것이다. 라이브 무대를 보는 경우, 샤우팅 구간만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피가 머리 위로 역류하는 듯한 경험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성량도 아주 커서, 마이크를 잡은 손을 '''앞으로 쭉 뻗어서 부르는데도 멀쩡히 잘 들린다.'''
몇몇 안티들은 깔 만한 게 없었는지 음색이나 감정으로 시비를 거는데, 사실 여기는 개인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불렀던 《새벽길》이나 《유리의 성》같이 잔잔한 곡이나 록발라드풍의 곡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듯, 음색과 감정 표현도 그리 부족한 편은 아니다. 결국 무조건 비난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이외에도 2017년 11월 서울 콘서트에서 《좋니》를 부르다가 삑사리가 났던 탓에 중음이 비는 가수라고 까는데, 애초에 중음이 비었으면 《당신을 위하여》, 《떠나가요 떠나지 마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 《사랑하니까》 등의 비교적 중음인 노래들은 거의 음정이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들은 콘서트마다 꼬박꼬박 부르는 곡이며, 실제 라이브 시에도 불안하긴 커녕 '''반주와 환호성 소리가 노래에 가볍게 묻힌다.''' 그러므로 중음이 비었다는 비난도 사실 거의 억지에 가깝다.
7. 여담
- 가수로서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몸이 상당히 좋다. 본인이 운동 중독이라고 말할 정도로, 20대 때에도 유명했지만 30대인 지금도 그 이상으로 건재하며, 보디빌더 급까지는 아니라도 거의 전문 헬스 트레이너 수준의 스펙을 지녔다.[44] 이를 반증하듯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 달리는 댓글이나 각종 특별 출연 방송분들의 채팅창들을 보면 노래 실력만큼이나 거론되는 것이 바로 몸 이야기.
- 팔씨름의 광이고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전문 프로 급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거의 가볍게 이기는 수준. 2010년 11월 14일 첫 솔로 콘서트에서 5명 이상의 남성 관객들과 핸디캡 팔씨름 레이드를 했었는데 한 명 빼고 전부 이겼다. 한편 군 시절 선임인 KCM과의 대결에서는 힘도 못 쓰고 졌다고 한다.
- 프로필에도 기재되어 있듯이, 원래는 전북대학교 물리교육과 출신으로 장래 희망 또한 교사였다고 한다. 실제로 데뷔 전에 학원에서 수학 강사 알바를 하기도 했으며, 더 크로스 시절에는 자신의 모교에 교생실습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가수의 꿈을 위해서 교사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고.
-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브레이크 댄스를 했었고, 20대 시절 각종 댄스 영상들을 보면 실력도 괜찮은 편이다. 데뷔 당시 지인들은 당연히 댄서로 데뷔했다고 생각했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콘서트나 대학 축제 등에서 댄서의 영혼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과거 싸이월드 시절 게시글의 3할 이상은 거의 야구에 관한 이야기였고, 오프라인 상에서도 친한 지인들과 아마추어 팀을 만들어 즐겼을 정도.
- 더 크로스 시절부터 축구 게임 위닝일레븐의 광이었다. 시리즈별로 장단점과 특이성을 다 꿰고 있는 건 물론이고, 실력도 어느 정도는 된다. 최군 방송에서 한 시간 가량 플레이를 하기도 했는데, 최군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그렇게 발리진 않았다.
- 흡연을 아예 하지 않으며, 음주 역시 특별한 자리가 아니면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주량 자체도 적은 편으로, 맥주 1~2캔이나 소주 1~2잔이면 취해서 잔다고 한다. 참고로 본인은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30대가 되어서까지 자유자재로 고음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대 관리를 위해 커피와 녹차도 마시지 않으며, 오미자차와 유자차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 생활 습관이 은근히 바람직하다(?!) 아무리 늦어도 7시 30분까지 일어나서 12시 이전에 잠든다고. 본인의 가장 친한 친구 왈, "전 세계에서 그 시간에 잠드는 연예인은 아마도 너밖에 없을 거다!!!"
- 의외로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데뷔 이전 장발부터 시작해서 단발, 묶음, 파마, 샤기컷, 금은발, 투블럭, 가르마 등등...그런데 대부분 어울린다.
- 입대 이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역 이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보컬 레슨을 했었다. 현재는 하지 않는 듯.
- 악동 콘서트 때부터, 《Don't Cry》와 《당신을 위하여》를 2집에 수록된 자신의 버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Don't Cry" 의 경우, 뒷부분 가사의 일부가 "So you don't so you don't so you never dream my heart" 으로 1집과 확실한 차이가 나며,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 25대 가왕전에서 불렀던 그 버전 맞다.
- 2016년 하반기 한정으로, 《Don't Cry》 후렴구의 샤우팅 기록을 계속해서 경신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목 관리를 위해서, 앞으론 이 정도로 긴 샤우팅을 하진 않겠다고 한다.
- 락밤이나 클럽 투어 콘서트 이외의 스케줄을 절대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일정을 하나도 모르고 있다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뒤늦게 확인한 팬들의 통곡은 덤.
- 《Don't Cry》 후렴구의 샤우팅 기록을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늘리고 있다. 콘서트가 아닌 일반 축제 또는 행사 무대라도 20초는 이제 거의 기본 수준이며, 2017년 4월 대전 게릴라 콘서트에서는 무려 28초를 기록했다. 최근엔 그나마 10초 정도로 줄어든 편인데...2018년 1월 서울 단독 콘서트에서 28초를 "한 번 더" 기록했다.
8. 발매 앨범
솔로 앨범만 작성. 더 크로스 시절 앨범은 여기 참조.
8.1. 나쁜 남자의 고백
8.2. 끝이래
8.3. 소리내(신이 보낸 사람 OST)
8.4. The Closure
8.5. 그런 여자
8.6. 흔적
8.7. Don't Cry Part 2
[1] 네이버 프로필에는 171cm, 63kg으로 나오는데, 본인의 입으로 실제 신장과 체중을 직접 공개했다.[2]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무대 아래의 원래 성격은 의외로 상당히 소심한 편이다.[3] 4학년 2학기 때 제적. 참고로 이유는 학사 경고 누적. [4] 일단 공식적으로는 무종교다.[5] 독실한 불교 집안 출신에, 자신도 군대에서 수계까지 받았다.[6] 2018년 11월 12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7] 블랙시추를 친자녀처럼 키운다. [8] 첫 공식 스케줄 기준으로, 이전에도 비공식 스케줄이 있었다. 참고로 김경현 본인은 팬들이 알아내기 전까지 자신의 데뷔일도 모르고 있었다...[9] 현재 솔로 활동 중.[10] 김경현뿐만 아니라 김병수, 연규성, 김길중 등 많은 프로급 일반인이 발굴되었다.[11] 참고로 당시 더 크로스 팬카페의 회원 수는 2만 명도 채 되지 못했다.[12] 과거 듀크, 이정수, 김혜수, 한채아 등이 소속돼 있었던 회사.[13] '''더 크로스 2기 보컬 오디션이 절대로 아니다.''' 문자 그대로 "솔로" 오디션이며, 더 크로스의 보컬 교체가 없었다면 솔로로 데뷔했을 것이다.[14]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45위를 차지한 것이 전부다.[15] CD나 음반을 직접 사서 듣는 시대였던지라 음원 유료 다운로드 시스템이 없었으며, 2003년 기준 소리바다 불법 다운로드 1위 곡이 바로 《Don't Cry》였다.[16] 2004년~2005년 당시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주장만을 무조건 따르는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고, 팩트체크라는 개념 또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김혁건의 팬들의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17] 물론 《Don't Cry》가 부족한 음악이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중적인 의미에서.[18] 윤도현이 김혁건의 존재를 묻자 이시하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라고 했는데,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은 인디 가수들을 비하하는 말이라며 김혁건 측에서 분개했었다. 그런데 인디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나중에 들어서야 제대로 정립된 것이지, 당시에는 구분이 애매해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을 암묵적으로 사용하던 시기였다. 이 부분은 이시하가 경솔했던 걸 따지기 전에, 김혁건 측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민감했던 부분이 있었다.[19] 그런데 김혁건 본인도 약 10년 뒤 강연 100°C, 라이프 콘서트 등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을 몇 차례 사용했었다. 이 부분은 해명이 필요한 듯하다.[20] 실제로 자신에게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밝혔으며, 평소 라이브 무대는 괜찮지만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21] 이 곡은 이시하 작곡이 아니라, 당시 더 크로스 밴드로 활동했던 전윤기가 작곡한 곡이다.[22] 활동기 내내 겹친 각종 악재로 인한 인기 부진 + 아이돌 전성시대 + 멤버들의 군입대[23] 상근예비역 행정병이고, 이때 김혁건도 특전사로 입대했다.[24] 당시 군에 입대한 장병들 대부분은 더 크로스의 음악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이기에 이러한 추억보정도 한 몫 할 듯 싶다.[25]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장 21에서 세븐과 상추가 외출하기 2시간 전쯤 외출했다가 택시 타고 모텔로 복귀한 2명 중에 1명이었다.[26] 일각에서는 김경현도 안마방에 다녀오지 않았냐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은 영화를 보러 갔던 것이고, 후임의 카드로 결제를 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리고 간부 허락 하에 외출한 것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징계 사유는 "핸드폰 소지"다. 제발 오해하지 마라.'''[27] 영창 4일로 끝났으며, 당시 전역까지 남은 기간이 3개월 미만이었기에 전출을 면하고 홍보지원단에 잔류하다가 전역했으니, 그나마 처지가 나았던 편이다.[28] 엄밀하게 말하자면 딱 세 번째는 아니고, 이전에도 몇몇 방송들에 게스트로 가끔 출연했다.[29] 여담이지만 이후 다른 콘서트에서 전기고문 창법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자신은 정말 재밌고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30] 참고로 그 앨범엔 《Don't Cry》의 '''영어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31] 말레이시아 계정으로만 구매가 가능했으며 이런저런 절차가 상당히 복잡했고, 쉽게 말해 '''사실상 구매가 불가능한''' 음원들이었다.[32] 특히 《Gethsemane》, 《In God We Trust》 영상 업로드 이후, 그리고 너목보 출연 이후.[33] 여기서 공개된 3라운드 곡은 어렵기도 소문난 김경호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였다. 참고로 위에도 나와있듯이 김경호는 그의 롤모델이다.[34] 더 크로스 문서에 서술된 대로, 김혁건이 복귀한 상태다.[35] 실제로 대학 축제나 행사 무대를 보고 입덕하는 케이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무대에 올라가면서 하는 말이, 제발 폰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36] 별이 빛나는 밤에 패러디.[37] 더 크로스 시절엔 콘셉트 유지가 발목을 잡고 있어, 공중파에서는 본 실력을 못 내기가 일쑤였다.[38] 심지어 댓글에 답글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달아준다.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참고로 다른 사람이 올린 자신의 무대 영상들에도 간간이 댓글을 다는데, 안티들이나 악플러들의 병림픽 현장에 나타나(!) 직접 일단락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39] 현재 피에스타 출신 가수인 예지가 소속돼 있으며, 당시에 단발머리 출신 미교가 소속돼 있기도 했었다.[40] 《바라보기》[41] 《지켜내지 못한》[42] 아마 진성 음역대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43] 《In God We Trust》 3단 고음 버전. 본인 유튜브로는 레#까지 올라갔으나 이후 콘서트에서 여러번 미까지 올렸다.[음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끝이래》, 《지켜내지 못한》(도) / 《흔적》(도♯)[커버] 《In God We Trust 2015》, 《With Me》(도) / 《매일매일 기다려》, 《For 2000 AD》(레) / 《In God We Trust 2017》(레♯)[44] 그냥 힘 뺀 상태로 있어도 특히 상체 부분 근육이 육안으로 또렷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