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신

 



'''김동신의 역임 직위'''
[ 펼치기 · 접기 ]






'''김동신(金東信)'''
[image]
'''1941년 ~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65년 ~ 1999년
'''임관'''
육사 21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참모총장
'''주요보직'''
육군 제51보병사단장
육군 수도군단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장성. 도일규 대장에 이어 33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후임자는 길형보 대장이었다. 동기는 김훈 중위의 아버지인 김척 예비역 중장이다.

2. 생애


1941년 3월 13일전라남도 광산군[1]에서 태어났다. 1960년광주제일고등학교(35회)를 졸업한 뒤 재수하여 1961년육군사관학교 21기로 입학하였다. 제1보병사단 12연대장, 대한민국 국방부 국외정책담당관 등을 지냈다. 장관급 장교로 진급한 뒤에 국방부 정책기획실 차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 차장, 51사단, 합참 전력기획부장, 수도군단,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2] 등을 거쳤다. 1996년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3]에 올랐다. 1998년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호남 출신으론 처음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1999년전역하였다. 참모총장 재임 시절에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송됐는데 정부가 참모총장인 그에게 장기수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도록 요구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전역 후에 새천년민주당에서 안보위원회 고문을 지냈고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냈다. 제주해협을 북한이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 때문에 질타를 받았다. 9.11 테러 당시 한국 국방장관이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책임으로 경질되었고 후임자는 이준이 임명되었다. 2004년에는 선문대학교에 출강했다. 2006년에 전시작전권 반환에 반대하는 장성들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국방장관 퇴임 이 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으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의 광주 북구 갑 지역구 공천에서 현직의원이었던 강기정 의원에게 밀렸고, 2016년에는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안보 전문가로 영입했으나 참모총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북풍 주작사건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청와대 직원에게 100만원을 찔러줬다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문제가 되어 영입이 취소되었다.
최근 들어 '예비역 장성단'의 9인 공동회장으로 선출되어, 문재인 정부의 9.19 군사합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비추고 있다. 천용택 전 장관도 같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새천년민주당 자체가 보수적인 측면을 띄는 인사들을 많이 영입했었다는 점과 김동신 본인이 예비역 대장 출신이라는 요소등을 보면 당연한 결과.
다만 2006년에 김동신 본인은 전시 작전권 반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제2연평해전 사태로 장관직에서 경질된 점 등을 고려하면 어찌 보면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3. 가족관계


부인 이혜정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4. 여담


광주일고 1년 후배였던 이수용 제독이 그가 참모총장이 된 1998년의 이듬해인 1999년에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광주일고 출신 유명 장성으로는 김장수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육사 27기), 박선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육사 35기), 이계훈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공사 23기), 김용우(1961)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사 39기)이 있다.

[1]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2] 수많은 대장 진급자를 배출한 요직이다. 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 육군 중장이 보임한다.[3] 최근 20년간 가장 많은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한 보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