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준

 



'''임현준의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7번'''
김현우
(2010)

'''임현준
(2011)
'''

박상원
(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6번'''
손형준
(2013)

'''임현준
(2014)
'''

허승민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7번'''
두영진
(2013~2014)

'''임현준
(2015~)
'''

결번


<col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 No.57 '''
<colcolor=#fff> '''임현준
林玄埈 / Lim Hyun-Jun
'''
'''출생'''
1988년 12월 21일 (35세)
[image] 대구광역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5cm, 88kg
'''학력'''
본리초 - 대구중 - [image] 대구고 - [image] 경성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언좌타
'''프로입단'''
2011년 4라운드 전체 29번 (삼성)
'''소속팀'''
[image] '''삼성 라이온즈 (2011~)'''
'''군 복무'''
[image]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2~2013)
'''종교'''
불교
'''연봉'''
1억원 (9.1%↓, 2021년)
'''별명'''
좌승사자, 실장님[1]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선수 생활
3.1. 아마추어 시절
3.2. 프로 시절
3.2.1. 2011 시즌
3.2.2. 군복무
3.2.3. 2014 시즌
3.2.4. 2015 시즌
3.2.5. 2016 시즌
3.2.6. 2017 시즌
3.2.7. 2018 시즌
3.2.8. 2019 시즌
3.2.9. 2020 시즌
4. 이야깃거리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선수.

2. 플레이 스타일


'''좌완 언더 스페셜리스트'''
원래 좌완 정통파 투수였으나 도무지 올라오질 않는 구속 탓에 2015시즌 후반부터 사이드암 스로로 투구폼을 바꿨다. "왼손 언더헨드 안 돼" 편견 도전하는 삼성 임현준
바꾼 투구폼의 팔 각도가 2016년부터는 사이드암치곤 낮은 편이라 언더스로로 보는 시각도 있어서 2016년 3월 22일 시범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잠수함 투수로 지칭되기도 했다. 즉 굉장히 드문 좌완 사이드암/언더스로가 된 셈. 공식적으로 좌언좌타다.[2]
좌타 상대로 살인적인 피안타율을 선보이며 삼성의 좌타 전담 원포인트를 맡고 있다. 외국인 타자에게도 강하다. 가뜩이나 외국인 타자 입장에서는 언더핸드 유형이 생소한데 거기에 더해서 아예 좌완 언더핸드이다 보니 외국인 타자들이 낯설어하기 때문이다.

임현준은 사이드암으로 변신한 2016년 이후 왼손 타자를 타율 0.178로 막았습니다.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90명 가운데 이 기간 왼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이보다 낮은 건(0.173) 오른손 투수 하재훈(29·SK 와이번스) 한 명뿐입니다. 임현준은 같은 기간 외국인 타자를 타율 0.231로 묶었습니다. 이 3년 반 동안 외국인 타자 평균 타율은 0.297이었습니다.

[베이스볼 비키니] 프리미어12, 왼손 사이드암 임현준을 뽑자!


3. 선수 생활



3.1. 아마추어 시절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운영하는 리틀 야구단에 입단하여 야구를 처음 접했다가 5학년 때 대구 본리초등학교로 전학가서 본격적으로 학원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참조 대구고 재학 시절에는 1루수로 활약했다. 3학년인 2006년 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 때 팀의 에이스인 김건필과 다른 선발투수였던 이희성 대신 깜짝 선발로 등판, 6⅓이닝 동안 4피안타 무실점으로 천안북일고를 물리치고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를 눈여겨 본 경성대학교 야구부 윤영환 감독의 제의로 경성대에 진학해 투수로 전향했다.
경성대학교 1학년 때 67이닝을 던지며 8승 1패, 평균자책 1.61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4학년 고창성보다 더 뛰어난 성적이었다. 또, 단국대와의 대통령기 결승전에서는 4피안타, 7삼진, 1볼넷을 기록하며 완투승을 기록해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2학년 이후로 밸런스가 무너지고 잔부상에 시달려 1학년 때만큼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4학년 때 프로에 지명받기 위하여 다시 절치부심, 총 6개의 전국대회에서 팀의 두 번의 우승(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을 이끌고, 두 대회 모두 MVP를 수상했다. 4학년 때 기록은 22경기, 104⅔이닝, 평균자책 2.58, 8승(1번의 완봉을 포함해 총 6번의 완투승), 2패, 2세이브. 또한, 6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사사구는 32개를 허용해 제구력도 뛰어났음을 증명했다. 다만 4학년 중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되면서 혹사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3]

3.2. 프로 시절



3.2.1. 2011 시즌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4라운드로 지명되었다. 속구의 평균 구속은 떨어지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게임 운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스카우트팀에서는 선발투수로 크길 바라고 지명했지만 현장에서는 중간계투로 즉전감으로 평가했다.
마무리훈련 때부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고, 권혁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좌완 계투자리가 비면서 2011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4월 2일 기아와의 개막전 때 프로 첫 등판해 공 4개만 던져 승리투수가 되며 프로 첫 승도 기록했다.[4]
권혁이 돌아오기 전인 4월 15일까지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거의 매일 등판했으나[5], 권혁이 돌아온 뒤에는 등판이 뜸해진 편. 계속 1군에 남아 권혁과 좌완계투를 분담하며 1이닝씩 던지다가 6월 8일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6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12일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원포인트로 등판했다. 신인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 한때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2011 시즌 삼성 2군에서 이렇다할 좌완 선발투수가 박민규 외엔 없음에도 대학 시절까지 선발로 활약한 임현준을 선발로 육성하려는 계획은 없는듯 하다. 또한 류중일 감독은 다음 시즌에 조현근이 합류하게 됨으로써 임현준의 군문제를 먼저 해결하게 하려는 모양이며, 그렇기에 올시즌에는 임현준을 계투로서만 기용할 모양이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영욱과 함께 상무로 입대하게 되었다.

3.2.2. 군복무


입대 첫 해인 2012년에도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21경기 동안 1승 1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4.56으로 그리 좋은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2013년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제대했다.

3.2.3. 2014 시즌


4월 1일 당시 컨디션 난조였던 권혁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으나, 4월 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아웃카운트를 1개도 못 잡고 피안타 2개에 볼넷 1개를 허용하면서 4월 3일 2군으로 내려갔고, 다시는 1군에 못 올라온 채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 다만 2군에서는 선발 수업을 받으면서 23경기에 등판해 4승 6패 1홀드 4.7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피안타가 다소 많긴 했지만 그래도 프로 입단 4년만에 첫 선발이었음에도 92이닝을 소화했다. 이 해 갑작스레 모친상을 당한데다 팀에서의 입지도 줄어가자 절박한 마음에 2016년부터 사이드암 전향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3.2.4. 2015 시즌


시범경기에서 계투로 4경기에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했고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자체 평가전에서도 무실점을 했지만, 박근홍백정현에게 밀려 개막전 엔트리에는 탈락했다. 3월 30일 우동균이 2군으로 내려간 후 그 대신 3월 31일 1군에 올라왔다.
아무래도 좌완 계투로는 박근홍이나 백정현이 있다보니 4월 4일 LG전과 4월 12일 KIA전 등에 등판하는 등 띄엄띄엄 등판했고, 그나마 12일에는 홈런을 맞았다. 결국 4월 20일 김현우심창민의 복귀를 앞두고 권오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러나 2군에 내려간 뒤 부진에 빠지면서 이전처럼 선발로 투입되지 못하고 계투로 뛰고 있다. 2군으로 내려간지 약 2달 지난 후인 6월 25일에 1군에 올라왔는데, 그나마도 심창민의 부상으로 투수진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6]
7월 16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양팀 투수들이 너나 할것 없이 털리는 와중에 7회에 나와 7구로 3타자를 깔끔하게 막으며 의문의 호투를 했다. 그러나 7월 22일 KIA와의 경기에서는 10점 앞선 상황에서 등판했음에도 0⅔이닝 6피안타 6실점(4자책점)으로 부진하였다. 7월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9월 6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8일에 백정현이 1군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복귀가 미뤄지면서 그 대신 9일 1군에 올라왔다. 9월 26일 두산전에 등판했는데, 사이드암 스로[7]로 투구폼을 바꿨다. 아웃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오히려 좌타자에게 홈런을 포함해 3안타를 맞으며 3실점을 했다. 9월 27일 박계범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2.5. 2016 시즌



2월에 사이드암 투수가 된 건 양일환 코치와의 상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3월 9일 NC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서 임대한을 이어 팀의 3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2015시즌 9월에 등판했을 때보다 팔 각도를 더 낮춰 높은 언더핸드 스로에 가까울 정도가 됐다. 볼넷 하나를 주긴 했지만 1이닝 1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에서 6경기에 등판해 ERA 0.00을 기록했다. 생소함 때문인지 17번째 타자만에 피안타를 맞는 등, 시범경기 동안은 좌타 킬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 4월 1일 개막전에서 7회에 등판해 첫 타자 최주환을 몸 맞는 공으로 출루시킨 후 바로 권오준으로 교체됐다. 4월 3일 안지만정인욱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되면서 대신 성의준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한동안 등판이 없으면서 토미존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6월 들어 2군에 복귀했다. 옆구리 근육 손상이 있었다고. 타고투저가 극심한 퓨처스리그에서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9월 1일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1군에 올라왔다. 1군에 올라온 당일 KIA전에서 9회초에 등판해 1이닝 4피안타 1피홈런 4실점으로 부진했고, 결국 9월 2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2.6. 2017 시즌


대만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고 정규시즌도 2군에서 시작했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했지만 그동안 1군 성적이 안 좋았던 탓인지 다른 투수들에게 콜업 순번이 밀리다가 6월 6일 김정혁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당일 5이닝을 던진 레나도에 이어 등판했으나 0.2이닝 1탈삼진 3볼넷이라는 기괴한 피칭을 하고도 무실점을 기록했다.
8일 니퍼트가 선발 등판해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두산전에서 선발 안성무의 뒤를 이어 4회부터 3.2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기대 이상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이후 팀 타선이 상대에 블론세이브까지 안기며 연장전까지 접어들었으나 10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은 아쉽게 패했다.
이후 원포인트나 추격조로 기용되며 잘 던지나 싶었으나 15일 김대우에 이어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하나 잡고 2루타를 맞은 뒤 교체됐는데, 다음 투수 심창민이 적시타를 맞으며 시즌 첫 자책점을 기록하였다. 또 17일 SK전에서 5회 등판해 최충연이 남겨놓은 2명의 주자를 뜬공 아웃 하나 잡고 싹 다 분식한 것은 물론 자신도 4실점하며 2이닝 4실점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선발전원 안타를 허용하며 스코어는 14대 5가 되어 경기가 완전히 기우는데 일조했다. 결국 팀은 구자욱과 러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4:10으로 패배했다.
6월 28일 권오준백정현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되면서 대신 김승현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30일 현재까지 승패없이 9 2/3이닝 5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4.66을 기록하고 있다.
8월 4일 김대우를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8월 13일 선발로 내정된 황수범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2.7. 2018 시즌


시범경기에 등판하며 생존을 신고했다.
좌완 언더로 변신 하면서 데뷔 이후 1군에 가장 오래 있었던 '''커리어 하이''' 시즌.
3월 24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6회 2사에서 오재원을 7구 루킹 삼진으로 처리해 0.1이닝을 막으며 홀드를 기록했다. 3월 25일에는 0.2이닝을 막으며 추가실점을 막았다.
4월까지의 경기를 모두 끝낸 시점에서 좌타 상대 피안타율 0.143, 피OPS는 0.494를 기록하며 원포인트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6월 3일 NC전 한기주의 뒤를 이어 등판했지만 6구째에 박민우에 몸에 맞는 볼을 내주고 즉시 최충연과 교체되었다. 다행히 실점하지 않아 ERA는 5.51로 그대로 유지.
6월 20일 양창섭이 올라오며 2군으로 내려갔다. 2군 성적이 안 좋아서 콜업 기회를 잘 잡지 못하다가 8월 14일 아시안 게임 휴식기를 앞두고 백정현이 1군에서 제외되면서 대신 등록됐다.
9월 25일 9회에 1이닝을 잘 막으면서 경기를 끝냈다. 어쩐 일인지 ERA가 3.83으로 내려가 있다.
시즌 최종성적은 40경기 등판 27과 2/3이닝 평균자책점 3.90 WAR 0.65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는 꽤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3.2.8. 2019 시즌


1군 개막 엔트리에 유일한 좌완 불펜으로 합류했다.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의 역할이 막중할 것이다. 개막전엔 8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김성욱을 상대로 올라와서 이닝을 마무리했다.
3월 28일 롯데전에 9:6으로 리드 중이던 8회 말 2사 1, 3루 상황에 좌타자 아수아헤를 상대로 등판해 이닝을 마무리지음으로써 시즌 첫 홀드를 기록했다. https://m.dcinside.com/board/samsunglions_new/1914378
4월 마지막 주 우천 취소된 이틀을 빼고 4일 모두 등판을 했다.
어린이날 시리즈 키움을 상대로 3일 연속 등판을 했다. 현재 삼성의 유일한 좌완 불펜으로서 원 포인트 릴리프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해주고 있으나, 이후 월요일 하루 쉬고 또 화요일 등판, 하루 쉬고 또 목요일 등판을 하며 유일한 좌완 불펜인 것의 단점까지 보여주고 있다.
5월 10일 발표된 인터뷰에선 1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투수가 되고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5월 14일 최채흥롱 릴리프로서 불펜에 합류해 좌완으로서의 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거의 매 경기 등판하고 있다.
5월 21~23일 한화 시리즈에선 3경기 모두 출전했고, 하루를 쉰 후 키움전 8:10으로 역전한 8회초에 등판해 장영석을 공 2개로 잡은 후 내려갔다.
5월 25일 현재 필승조로 운영 중인 이승현, 최지광, 장필준 중에 경기 수는 27경기로 제일 많지만, 이닝은 16이닝으로 제일 적다. 참고로 이승현은 26경기 29.2이닝을 던졌다. 하지만 5월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한데, 이승현이 10경기에 출전해 12.1이닝 동안 이닝 평균 21.5개를 던졌지만, 임현준은 14경기에 출전해 6.2이닝 동안 평균 투구수가 고작 7.1개다. 3배가 차이 나는 투구수를 던지기 위해 불펜에서 몸을 풀며 던진 투구수까지 합치면 현재 제일 혹사가 심각하다.
위에서 언급된 본인의 소망을 장기적으로 이뤄주기 위함인지, 6월부터는 기울어진 경기에서 임현준에게 1이닝을 통째로 맡기는 경우가 꽤 늘었다.
9월 28일 SK전 10회초 2아웃 만루상황에 나와서 박정권 상대로 삼진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이닝에서 이학주가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8년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통산 3승째.
시즌 최종성적은 71경기 등판 42⅓이닝 소화에 ERA는 3.40, 1승 8홀드를 기록하며 전년도의 커리어 하이를 다시 갱신했다.
시즌 후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다.

3.2.9. 2020 시즌


노성호 영입으로 한결 부담이 덜해지면서 홀드 상황에서의 등판이 줄었고, 주로 동점이나 근소한 차로 밀리고 있을때 나오고 있다. 이닝은 적지만 6월까지도 ERA '''0'''을 유지중. #
6월 17일 두산전 4대 2로 앞선 상황에서 박세혁한테 초구 솔로홈런을 맞았다. ERA는 0.90.
노성호가 빠진 후 이승현이 전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졸지에 미친듯이 갈리고 있다. 벌써 커하시즌의 절반 가까이 가는 경기수를 나오기 시작했다. 6월 19일에는 급기야 '''4연투'''를 했고, 결국 제구 난조를 보이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9일 권오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8월 25일 대구 LG전 6회초 2사 1,3루 상황에서 올라왔는데, 오지환의 타석에서 2구째 홍창기가 도루실패로 아웃되면서 이닝이 끝나버렸다. 이후 팔카가 홈런을 치면서 승리투수를 요건을 갖추었으며, 이후 오지환을 2구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한뒤 장필준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 점수가 유지되면서 단 4개의 공을 던지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8일 대구 한화전 10회초 2사 만루에서 김윤수 다음 투수로 등판해 뜬공으로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ERA는 3.14.
9월 9일 한화와의 DH 2차전 4회 1사 만루에서 원태인에 이어 등판했으나 몸 맞는 볼-3루수 파울플라이-볼넷으로 0.1이닝 2사사구 무실점을 기록 후 우규민과 교체되었다.
9월 24일에서 삼성의 유일한 피안타를 기록해서 실점하였다. 책임 주자는 김윤수의 것이였다.
10월 6일 LG전에서 9회말 1사 2, 3루의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등판해 정근우를 자동 고의사구로 거른 후 오지환을 내야 뜬공으로 잡아낸 뒤 오승환과 교체되어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10월 15일 SK전에서 0.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함으로써 ERA 1점대에 진입했다!

4. 이야깃거리


투구폼.
자꾸 전 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을 닮아간다. 그래도 키가 185cm를 넘고 얼굴도 꽤 준수한 편. 2017년 즈음부터 인스타그램에도 미남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올라온다.
  • 롤모델은 대학 선배이기도 한 장원삼이라고 한다.
  • 한 때 볼드모트라고 불린 적이 있었는데, 과거 디씨에서 임현준이라는 이름의 악플러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임현준이라는 말이 디씨에서 금칙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임현준이 프로에 입단한 뒤로 금칙어에서 풀렸으나, 이 덕분에 디씨 삼갤에서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는 이름으로 볼드모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고 이젠 아무도 이렇게 부르진 않는다. 대신 2019년이 좌타자 상대로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좌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삼성
29
17⅓
2
0
0
2
1.000
3.12
20
1
12
9
8
6
1.85
2012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3
2014
1
0
0
0
0
0
-
-
2
0
1
0
0
0
-
2015
7
6⅓
0
0
0
0
-
11.37
11
3
2
6
10
8
2.05
2016
2
1
0
0
0
0
-
36.00
4
1
1
0
4
4
4.00
2017
11
10⅔
0
0
0
0
-
5.06
11
0
6
4
7
6
1.41
2018
40
27⅔
0
1
0
3
0.000
3.90
20
3
16
26
12
12
1.12
2019
71
42⅓
1
0
0
8
1.000
3.40
34
2
15
35
19
16
1.09
2020
51
25⅓
1
1
0
5
0.500
1.78
24
2
13
18
7
5
1.22
'''KBO 통산'''
(8시즌)
212
130⅔
4
2
0
18
0.666
3.93
126
12
66
98
67
57
1.34

6. 관련 문서


[1] 삼튜브가 미는 별명이다[2] 보통 좌완 사이드암의 경우 우타가 많은 프로에서는 투구폼의 특성상 비교적 잘 보이는 편이 되어버린다.거기에 좌완투수는 1루 견제에 강점을 가졌기 때문에 견제가 느려지는 투구동작인 언더나 사이드암을 기피하는 편(이 때문에 일부 잠수함 투수들은 견제는 오버로 하는 연습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제가 매우 힘들기 때문.). 게다가 투구 시 심장에 무리를 주기에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가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선발로는 부적격하단 소리다.) 이는 본인의 관리 여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두고두고 지켜볼만한 점. 실제로 같은 좌완 사이드암인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마츠나가 타카히로 역시 대학 리그와 사회인 야구에서는 선발로 뛰어왔으나 프로에 진출한 이후 불펜으로 전업했다. 처음에는 1이닝 셋업맨으로 던지다가 1시즌만에 원포인트로 전향.[3] 경성대 야구부는 한정된 투수자원으로만 마운드를 운영하는 혹사로 알려져있다.[4] 이후 삼성에서 첫 등판 승리투수가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5] 경기 수에 비해 이닝이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6] 참고로 심창민은 6월 24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는데, 하루 지난 후에 임현준이 1군에 올라온 것은 6월 23일에 계투로 3이닝을 소화해 어차피 1군에 올려봤자 바로 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7] 우타자를 상대로는 이전의 투구폼을 변칙적으로 쓰는 모습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