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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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선수 및 현 KIA 타이거즈 코치. 포지션은 포수, 외야수, 1루수.[7] NC 다이노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성범의 친형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 시절, 좋은 포수 유망주로 손꼽혔다. 다만 3학년을 앞두고 팔꿈치 부상으로 유급한 경력이 있다.[8] LG 트윈스에 2차 6순위 지명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으나 낮은 지명 순위 탓인지 대학을 선택했다. 이후 동생인 나성범도 2차 4라운드에서 LG의 지명을 받게 되나 역시 대학을 선택하고 이후 나성범이 대학 최대어로 성장하게 되면서 연세대의 형제 배터리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LG 트윈스로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팔이 아파서 1년을 쉬었다. 1년 정도밖에 뛰지 못해 경험을 쌓고 프로에 가고 싶었다”2009 정기전호 SPORTS KU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LG 트윈스로 가기 싫었다기보다는 조인성 선배가 있는 LG에 가고 싶다고 대학 시절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9] 부모님이 프로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면 교사를 할 수도 있으니 대학 진학을 원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명 전에 미리 대학진학이 이야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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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시절 나성범과. 연세춘추
대학에서는 주전 포수이자 4번 타자로 팀의 주장이자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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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기연고전 승리 이후 연대 깃발을 들고 기뻐하는 까까머리 포수 나성용. 출처 (뒤에 이 선수가 보인다)
특히, 2009년 정기 연고전에서 포수이자 4번타자로 출전해 신정락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다. 신정락의 대학야구무대 첫 피홈런. 후레시맨 세러머니도 했다! 그러나 동생인 나성범이 완투하고도 연세대는 패배.
대학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서 2011 드래프트에서 외야수 고종욱과 함께 대학 최대어로 손꼽혔으며, 그 기대치에 걸맞게 한화의 3라운드 지명(전체 17순위)을 받게 되면서 프로에 입성하게 된다.
고교+대학 통산성적은 91경기 339타수 95안타 타율 .280 16홈런 77타점 6도루 50볼넷 84삼진.
2.2. 프로 시절
2.2.1.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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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시범경기에서 김광현에게 홈런을, 이후 박종훈에게 다시 홈런을 쳐 시범경기 2경기 연속 홈런을 쳐서 이름을 알렸지만 아쉽게도 개막 엔트리에 잠시 이름을 올린 뒤로는 2군으로 내려가 있었다. 이희근과 박노민, 정범모라는 큰 벽이 앞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화의 미래의 거포로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2011년 8월 10일, 1군 복귀후에 선발포수로 출전했다. 초반에 삼진을 2번이나 당하는 바람에 팬들이 뒷목을 잡긴 했지만 세번째 타석에서는 2루타를 쳐내며 데뷔 첫 안타와 첫 득점에 성공했다. 네번째 타석에서는 2사 만루상황에서 안지만을 맞아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안지만의 바깥쪽 돌직구에 삼진. 그걸 못치냐며 욕을 좀 먹긴 했지만 그래도 풀카운트 접전이란것에 팬들은 위안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포수로서는 상대방에게 털렸다. 도루를 4개나 내줬고, 너무 급하게 던지다 공을 바닥에 패대기 치기도 했다. 이는 처음으로 1군에 선발 출장한 포수의 경험 부족이라고 어느 정도 감안해 줄 수 있는 부분이었고, 팬들도 경험치 쌓이면 잘할거라며 넘어갔다.
2011년 9월 13일, 대타로 출전하여 140km의 직구도 커트 못해서 선풍기질 해버리는 스윙을 보여줘서 까였다.
2011년 9월 15일, 청주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인 쓰리런을 날렸다!
2011년 9월 16일, 역시 청주전 8회말에 어제에 이어서 팀이 10:7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임경완에게 쓰리런을 때려내며 2연속 홈런을 이어갔다. 그것도 어제에 이은 2연속 쓰리런.
타격폼이 좋고 힘이 있어 장타력이 기대되는 타자로, 2011시즌 후반기 1군 등록 이후 그 포텐이 야왕의 눈에 들었는지 지명타자나 포수 백업 출전 등으로 1군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러나 변화구 대처에 심하게 약한 모습을 보여 빈번하게 폭삼을 당하는 등, 일단 맞으면 멀리 날아가는데 정작 잘 맞히지는 못하는 문제를 보인다. 그가 가진 가능성 만큼이나 신인으로서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것. 게다가 포수로서의 능력을 보자면 리드나 블로킹은 그럭저럭 봐줄만 하더라도 송구 정확성에서 큰 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 다음 시즌에서도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은 잔여 일정 동안 1군에서 무엇을 깨닫고 비시즌 동안 어떻게 보강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
FA로 이적해온 송신영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결국 LG로 가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한화팬들은 군대 갈 나성용을 지명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 했고 신영누나의 한화행 이후 성적과 NC행 등으로 유망한 타자 한 명을 잃은 것 아닌가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2.2.2.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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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절.
어찌어찌해서 고등학교 시절에 지명을 한 번 받았던 팀인 LG로 이적해 2월 전지훈련에서 조윤준, 유강남 등과 주전 포수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김기태 감독의 인터뷰에서 보면 나성용이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는 느낌. 연습경기에서도 선발 포수로 계속 출장했다. 그리고 나성용의 2루 송구를 동영상으로 본 사람들은 나성용에게 '''나허용'''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결국 유강남의 급부상과 조윤준의 반등으로 인해 2군으로 직행했다. 팬들의 평가는 포수로는 무리라는 게 중론. 타격 잠재력은 아까우니만큼 2군에서 아예 외야수로 전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2 시즌 후 FA로 외야수가 많이 포함되므로... 일단 LG에서는 김재율과 더불어 희소가치 높은 오른손 거포인지라 타자로써의 가치는 높은 편인데, 포수로서 살아남기 힘들다면 2군에서라도 일찌감치 외야 훈련을 받는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다. 2012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2.3. 2013~2014 시즌
2012 시즌이 끝난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를 하게 되었으며 경찰청 유승안감독이 나성용을 외야로 전항시키기로 면담 후 결정되었다. 원 소속 구단인 LG 트윈스에서도 OK 했다고 한다. 하지만 2년후 다시 포수로 복귀...하는 줄 알았는데 구단 홈페이지에는 내야수(사실상 1루수)로 등록되어 있다.
2.2.4. 2015 시즌
5월 22일 1군에 콜업되어 당일 경기인 롯데전에 7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하게 되었다. 피는 속일 수 없는지, 2사 만루 상황에 김승회의 초구를 받아쳐서 '''그랜드 슬램을 때려내었다.''' 이 날 경기에서는 멀티 안타를 쳐내면서 훨훨 날아다녀 팀의 20-12 대승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LG로 이적후 첫 1군 데뷔전에서 첫타석 초구를 만루홈런으로 장식해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날 낮엔 퓨처스리그에서 상무 피닉스 야구단과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1루를 보던 중 2회초에 갑자기 빠져서 1군으로 콜업된 것이었다. 지갑도 제대로 못 챙기고 핸드폰, 장비만 챙겨서 그대로 사직 야구장으로 갔다고. 본인은 "뭘 잘못했길래 빠지라 그러나" 싶었다고. 기사 참조.
다음날인 23일에도 멀티 히트를 때려내었다. 하지만 팀은 11-19로 패배.
6월 2일 마산 vs NC 다이노스전에 대타로 출전해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 날 경기초반엔 동생 나성범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로서 역대 최초로 상대 팀들의 형제들이 같은 날 경기에서 동반 홈런을 치게 되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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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나성범은 형이 홈런을 치자 뒤돌아서 웃고 있었다. 팀은 지고 있는데 흐뭇한 미소를 보여서 팬들에겐 욕을 먹었다.
6월 13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4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시즌 3호 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팀은 역전패 하고 말았다. 같은 날 동생 나성범도 잠실 두산전에서 투런 홈런으로 선제점을 올렸지만 역시 역전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6월 26일 서울 NC 다이노스전에 대타로 출전해 우익수 쪽 큰 타구를 날렸으나, 동생인 나성범이 필사적으로 달려가 잡아 아웃시켰다.
7월 4일 대구 삼성전에서 6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였으나 3타수 무안타. 결국 7월 6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7일 퓨처스리그 벽제 경찰전에서 좌익수로 선발출장하여 첫타석에서 3점 홈런을 때려냈다. 벽제 야구장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지만 타격감 좋은 나성용을 2군으로 내리고 신재웅을 콜업한 날 정작 1군 경기는 대타자원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려 일부 팬들이 나성용의 2군행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양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타격재능은 이미 인정받았으므로 외야 코너 수비 연습을 위해 내렸다고. 나성용도 외야수비 포지션을 확고히 하고 내년 주전 경쟁을 노리겠다고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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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리그에서 주전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준수한 타격 성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역시 타구판단이 불안한 것이 단점. 예전에 경찰청 시절 마해영과의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타구판단이 어렵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
7월 15일자 경찰전 이후 펑고를 받는 팬 직캠이 갤러리에 공개되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7월 15일펑고 움짤 야간펑고 동영상 평범한 팝플라이도 호수비로 만들며 앞으로 구르고 무릎을 꿇는 등 몸을 날리자, 펑고를 치는 김우석 LG 2군 코치가 "영화 찍냐", "블로킹 하지마" 라는 등으로 쿠사리를 먹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희한한 점은 놓치는 공은 또 없고 좌익수로 나와 실책으로 기록된 것은 7월 15일까지 단 1개.
어쨌든 팬들은 타격재능이 있으니 수비만 안정적으로 하면 1군에서 곧 볼 수 있을 것으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7월 28일 부산 사직 대 롯데전에 콜업되어 7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하여 3타수 2안타 멀티히트를 기록했다.하지만 팀은 나성용의 2안타를 포함한 3안타만 뽑아내면서 영봉패를 당했다. 까방권을 얻나 싶었으나 주루사를 당할 뻔해 100% 까방권을 얻진 못했다.
8월 1일 말소되었다.
9월 16일 정성훈이 음주운전으로 1군에서 말소되고 대신 콜업되었다.
9월 25일 NC전에서 6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서 동생 나성범과 함께 형제 동 포지션 선발 출전을 기록했다.좀 까이기도 했는데, 0-3으로 뒤진 4회초 볼넷과 실책으로 2사 1, 2루의 기회를 맞았고 후속 타자 박지규가 상대 선발 해커의 공을 밀어쳐 3루수 옆을 빠지는 2루타성 타구를 날렸는데, 2루에 있던 나성용은 홈까지 파고들었으나 1루 주자 유강남은 3루에서 태그 아웃당했다. 문제는 나성용이 홈을 밟기 전 유강남이 아웃당해서 나성용의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다. 주루가 좀 아쉬웠던 부분. 물론 무리해서 3루까지 뛴 유강남의 주루 문제가 더 크다.
시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 우타가 부족했던 삼성에선 쏠쏠히 쓰일 듯. LG 팬들은 어이 없어했고, 삼성 팬들은 기대감을 가졌다.
2.2.5. 2016 시즌
류중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송구가 불안해서 외야수로 못 쓴다고 했다. 실제로 1루수 훈련을 받고 있다고.
2월 15일 SK와의 연습경기에서 대타로 나와서 2점홈런을 쳤다.
시범경기에서는 3월 10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 1루수 대수비로 출장한 후 2차례나 실책을 범하면서 12일 한화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수비도 수비지만 어차피 1군에 있어봐야 대타로 나와서 한두 타석에 들어서는 게 전부라서 타격감을 끌어올리기에는 2군에서 주전으로 나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여기에는 나성용이 수비 문제로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느라 주 포지션이 없는 점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11] . 결국 정규시즌도 2군에서 시작했고, 이후 2군서 1루 경험을 주로 쌓았다.
시즌 성적은 84경기 279타수 90안타 13홈런 53타점 53득점 1도루 타율 0.323. 나성용의 경우에는 타격보다는 수비에서의 성장이 1군 콜업의 과제였지만, 수비에서 별다른 성장세를 못 보였는지[12] 9월 확대 엔트리 대상자에서 빠졌다.
9월 23일 어깨 염증으로 보호 차원에서 빠진 윤성환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27일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서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다.
2.2.6. 2017 시즌
등번호를 53번에서 27[13] 번으로 바꾸었다.
전년도 1루수로서 송구에 부담을 느낀 것도 있고 타격에 매진하기 위해 마무리 훈련 동안 다시 외야수로 도전하게 됐다.
수비 때문에 올시즌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시즌 초반에만 잠깐 좌익수를 보다가 4월 중순부터는 다시 1루수로 나왔다. 4월 26일 김정혁, 박근홍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그리고 5월 4일 부진했던 최충연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내려간 후에는 좌익수로 나오다가 5월 31일 재크 페트릭과 안규현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둘을 대신해 김동호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다린 러프가 목 담 증세로 빠지면서 기존 선수들의 포지션 이동과 함께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하는 기회를 받았다. 5월 31일 경기에서 적시타를 친 것 외에는 2경기에서 7타수 1안타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고, 6월 3일 선발로 내정된 최지광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군 성적은 65경기 68안타 16홈런 50타점 41득점 타율 .309. 홈런만큼은 프로 입단 후 가장 많이 쳤는데, 삼진이 전년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 포수를 제외하면 제대로 한 포지션에서 뛴 적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1루수나 좌익수 모두 삼성 이적 전보다 삼성 이적 후에 더 많이 나왔다. 삼성 이적 전까지 대체 뭐했나 싶을 정도. 결국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3. 지도자 경력
삼성에서 방출된 후에는 우타 대타가 필요한 다른 팀들에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들이 있었으나,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경찰 야구단의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경찰 야구단이 해체됨에 따라 2019년 8월부터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2019 시즌 후 고향 팀 KIA 타이거즈의 잔류군 배터리코치로 부임했다.
4. 기타 사항
- 잘생겼다. 이미 인스타그램등에서는 수많은 얼빠들을 양산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에 걸맞게 팬서비스가 좋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자신이 동생인 나성범보다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동생인 나성범은 야구를 잘하기에 잘생겨보이는 것이라는 외모부심을 부렸다. 이 기사에서 1.자기가 더 잘생김. 2.조카가 성범이보다 잘생김. 3.성범이는 야구를 잘해서 잘생겨 보임이라는 개드립 겸 3단 까기(...)를 시전했다.
- 동생과 함께 매우 효자로 알려져 있으며 동생을 매우 살뜰히 챙긴다. 대표적으로 싸이월드에서 동생의 NC 지명 축하나 동생을 부탁하는 트위터 멘션 등이 있다.
- 나름 순둥순둥한 외모와는 다르게 6월 9일 두산전에선 배트를 부러뜨리거나 식빵을 굽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성격이 나름 불같은 편.
- 별명은 섹드. 황성용(현 황동채)과 같은 이유로, 이름의 한자를 멋대로 性+龍으로 해석했기 때문(...). 물론 실제로 그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成容이라고 쓴다. 이 별명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목격담이 갤에 올라왔다.
- LG 시절 \'나성용'이라는 이름에 착안하여 몇몇 팬들이 <나성에 가면>을 응원가로 쓰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만 곡을 감안했을 때 응원가로 쓰였다면 퀄리티가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생과 형의 타격폼 비교.
- 나성범과 타격폼을 비교해보면, 나성용 쪽이 배트를 좀 더 눕혀서 친다. 하지만 나성범이 타격폼을 수정하면서 이제는 나성범이 더 눕혀서 친다.
- 나성범과 마찬가지로 나성용도 엄청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1] 프로입단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고, 그 후 외야수로 전향했다. 엘지에서는 우익수, 삼성에서는 좌익수로 활동했다. 이후 1루수로 포지션을 재변경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수비력은 준수하지 못한 편이다. 프로필상 포지션은 외야수로 되어 있다.[2]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 그리고 동생 나성범 또한 1년 뒤에 LG의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단 이쪽은 나성용과 달리 2021년 현재 아직까지 LG로 오지 않았다.[3] 재활군[4] 나~ 나성용이야~ 알아서 기어~ 날려라 안타~ 날려라 홈런~ 이글스의 승리 위해 시원하게 날려줘~ 나~ 나성용이야~[5] 무~적 L~G 워워워워 나~성용 승~리 위~해 워워워워 나~성용[6] 삼성의 나성~용~ 워어~ 삼성의 나성~용~ 워어~ 삼성의 나성~용~ 워어~ 승리를 위해! 헤이! 나!성!용! 승리를 위해! 헤이! 나!성!용! (x2)[7] 포수로 입단했지만 2012년 외야수로 전향을 시도했고 다시 포수로 복귀했다가 제대 후 첫 시즌인 2015년에는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우익-좌익을 거쳐 1루에 정착. 실제 1군 경기에선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간간이 1루 알바를 뛰는 정도. 퓨처스리그에서는 좌익수로 주로 출전하며 외야 훈련도 받았다.[8] 원래 빠른 88년생이라 87년생인 양의지와 진흥고 동기인데, 1년 유급하는 바람에 최종적으로는 88년생들과 졸업하게 되었다.[9] 결과적으로는 조인성이 없는 LG로 가긴 했다. 그리고 조인성은 SK를 거쳐 나성용의 첫 프로팀인 한화로 오게 되었다.[10] 참고로 같은 팀에서 뛰는 형제들이 홈런을 친 적은 한번 있었다. 1986년 7월 31일 인천 롯데전 당시 청보 핀토스 소속 양승관, 양후승 형제가 기록했다. 팬들에게 유명한 조동화-조동찬 형체는 동반 홈런을 친 적이 없다.[11] 프로 입단 후 삼성에 오기 전까지 원래 포지션이었던 포수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에서 선발 출장이 가장 많았던 게 좌익수인데, 불과 18경기 밖에 선발 출장하지 않았다. 1루수의 경우에는 2016년 전까지 단 3경기 선발 출장한 게 전부였다.[12] 2군 경기를 직관한 팬의 말로는 아직도 수비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미흡하다고.[13] 투수 출신인 동생 나성범이 47번을 선호하는 것처럼, 포수 출신이라 27번을 선호하는 듯 하다. 고교-대학 시절에 27번을 주로 달았었고 LG 트윈스에서도 이적 한해 전에 27번을 달았었다.[14] 삼성에서 뛰었을 때였으며 현재 나성용은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의 코치다.[15] 청주 야구장에서 연속 이틀동안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