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총

 


1. 개요
2. 남총 기록이 있는 고위 여성
3. 남총 기록이 있는 고위 남성
4. 남총 캐릭터


1. 개요


'''男寵'''
고위 여성(혹은 남성)의 남첩(男妾).
군주의 남총은 유럽사에서는 로얄 미스트리스와 마찬가지로 내연남에 불과했고, 동아시아사에서는 후궁과 달리 공식적인 작위가 없어서 별개의 벼슬을 줘서 권력을 부여했다. 그래서 여왕/여제(혹은 남성 제왕)의 남총들은 그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과분한 벼슬을 받아 정치를 잘못한 사례가 많다.
역사적으로 드물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라 현대의 한국산 창작물들에서는 군주의 남첩도 후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실존한 군주의 남총들은 후궁의 내명부 업무가 아닌 문관·무관 벼슬을 했기 때문에 후궁과는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사에서 여성 군주의 남첩이 후궁처럼 공식화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남녀 간 생식 기관의 차이다. 동아시아사에서는 적서를 엄하게 따졌기 때문에 자식의 친어머니가 정실인지 측실인지 역시 중요했다. 하지만 여왕/여제가 여러 명의 남자를 거느릴 경우, 한 달 이상의 간격으로 1명씩이랑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이상 아이의 친아버지를 알 수 없어서 적서를 가리기 어렵다. 또 후궁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후계 생산이 있는데, 남첩을 아무리 들여봤자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몸은 여성 군주의 몸 하나 뿐이다. 그래서 남편 1명의 생식 기관이 멀쩡하다면 굳이 국고를 탕진하는 남첩을 추가적으로 둘 이유가 없다.

2. 남총 기록이 있는 고위 여성


동아시아사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일반적인 여성은 남첩을 두는 것이 불가능했고, 남편보다 권력이 강한 고위 여성만 남첩을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허용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권력이 있으니 할 수 있었던 것 뿐이지 남총을 둔 여성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음란한 요부'로 간주되어 후세까지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3. 남총 기록이 있는 고위 남성


동성애 또는 양성애 성향을 가진 고위 남성들도 남총을 두었다.

4. 남총 캐릭터


[1] 정사에서는 매우 총애했다고만 나오며, 후대의 연극들에서 이 둘을 동성 연인으로 묘사했다.[2] 다만 공민왕의 동성애 기록은 후대 조선에서의 왜곡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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