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쉬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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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가 1997년에 '''내놓았어야 할''' 플래그쉽 대형 세단으로, 실제 출시가 성사되었을 시 '''국내최초 8기통 엔진 장착 타이틀과 국내 최대규모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대우자동차 연구팀의 노력과는 달리, 경영진의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엉뚱한 결과로 인해 결국 개발되지 못하고 영원히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단 개발 폐기는 아니었으며, 차후에 임원과 개발진들이 개발을 재개했지만 1999년 대우 사태로 폐기된다.
1997년 3월에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된 대우의 컨셉트카. 디자인은 대우가 인수한 영국 워딩 테크니컬 센터(DWTC)의 수석 디자이너 Ginger Ostle의 주도하에 개발되었고, 2세대 혼다 레전드(아카디아)를 기본 설계로 만들어진 전륜구동 대형 고급 승용차였다.[1] 여담으로 대우차 관계자의 말로는 막판에 디자인이 많이 변경이 되었다고 한다.
1997년 6월호 모터트렌드에서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오디오, 기어위치, 시간, 마일리지, 전화번호가 표시되는 '''LCD 계기판'''과 오디오 및 비디오 시스템, PC, 프린터, 팩스를 사용할 수 있는 '''뒷좌석 테이블'''을 적용하고, 안전장치는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 지능형 브레이크, 측면 에어백'''을 사용하였다고 밝혔다.[2]
1999년 초를 목표로 경쟁 차종[3] 보다 제원을 늘리면서 출시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1997년 12월에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쌍용 체어맨을 기함으로 선택하면서 베이퍼웨어가 되었다. 라인업 중복이 되었어도 쉬라츠의 4,000cc 엔진은 당시기준으로 국내 유일이라는 희소성 덕에 설계변형 등을 통해 활용해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굳이 차량과 같이 사장시킨 이유는 알 수 없다.[4] 이후 대우 P100 프로젝트로 양산 시도를 통해 살려보려는 최후의 시도를 했으나 회사의 경영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프로젝트가 사장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자료에 의한 쉬라츠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사진을 보면 1990년대 후반 당시 대우자동차 승용 라인업이었던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등과 유사성이 보이며 특히 상위급인 레간자와 많이 비슷해 보이는데, 이는 대우자동차가 디자인 기획 단계에서부터 나름 패밀리룩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전면부 디자인은 당시 대우에서 패밀리룩의 중심으로 마구 밀던 3분할 그릴을 집어넣으려고 별의별 고생을 다 한 티가 팍팍 난다. 그런대로 제법 잘 어울리는 편. 여담으로 쉬라츠의 휠 디자인은 이후 1999년에 출시된 누비라 2에 재활용 되었다.
만일 출시되었다면 4000cc[10] 의 메리트와 독자개발로 만들어지는 대우의 첫 고급 대형 세단으로서 높아질 브랜드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였지만, 출시 무산[11] 으로 1990년대부터 고전하던 대우자동차의 대형과 준대형 세단의 계보는 스테이츠맨[12] , 베리타스, 알페온, 임팔라로 이어지며 실패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13] 로얄시리즈 시절의 전성기를 끝으로 지금까지 스테이츠맨, 베리타스, 알페온, 임팔라가 대한민국에서 연전연패했던 이유가 쉬라츠의 저주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였다.
출시의 영향으로 쌍용자동차와의 M&A 계획 역시 없었을 동시에 쌍용자동차는 삼성과 합쳤을 수도 있거나, 외국 업체에 팔렸을 수도 있다.[14] 더불어 대우그룹 자체도 무리한 쌍용차 인수로 인해 금전적 손실을 줄이며, 그룹의 수명을 늘리고 부도를 회피할 수 있는 기회로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지난 일이지만''', 대우가 무리하게 쌍용자동차를 사들이는 바람에 둘 다 신세를 망쳤다.[15]
매그너스 사진 과거 이 문서에 쉬라츠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주장의 사진이 올라왔으나, 이는 매그너스의 개발 중 제작된 목업차량이다. 아직 쉬라츠의 사진은 컨셉시절 1/4 스케일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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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우자동차가 1997년에 '''내놓았어야 할''' 플래그쉽 대형 세단으로, 실제 출시가 성사되었을 시 '''국내최초 8기통 엔진 장착 타이틀과 국내 최대규모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대우자동차 연구팀의 노력과는 달리, 경영진의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엉뚱한 결과로 인해 결국 개발되지 못하고 영원히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단 개발 폐기는 아니었으며, 차후에 임원과 개발진들이 개발을 재개했지만 1999년 대우 사태로 폐기된다.
2. 상세
1997년 3월에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된 대우의 컨셉트카. 디자인은 대우가 인수한 영국 워딩 테크니컬 센터(DWTC)의 수석 디자이너 Ginger Ostle의 주도하에 개발되었고, 2세대 혼다 레전드(아카디아)를 기본 설계로 만들어진 전륜구동 대형 고급 승용차였다.[1] 여담으로 대우차 관계자의 말로는 막판에 디자인이 많이 변경이 되었다고 한다.
1997년 6월호 모터트렌드에서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오디오, 기어위치, 시간, 마일리지, 전화번호가 표시되는 '''LCD 계기판'''과 오디오 및 비디오 시스템, PC, 프린터, 팩스를 사용할 수 있는 '''뒷좌석 테이블'''을 적용하고, 안전장치는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 지능형 브레이크, 측면 에어백'''을 사용하였다고 밝혔다.[2]
1999년 초를 목표로 경쟁 차종[3] 보다 제원을 늘리면서 출시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1997년 12월에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쌍용 체어맨을 기함으로 선택하면서 베이퍼웨어가 되었다. 라인업 중복이 되었어도 쉬라츠의 4,000cc 엔진은 당시기준으로 국내 유일이라는 희소성 덕에 설계변형 등을 통해 활용해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굳이 차량과 같이 사장시킨 이유는 알 수 없다.[4] 이후 대우 P100 프로젝트로 양산 시도를 통해 살려보려는 최후의 시도를 했으나 회사의 경영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프로젝트가 사장된 것으로 보인다.
2.1. 제원
당시 자료에 의한 쉬라츠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3. 기타
사진을 보면 1990년대 후반 당시 대우자동차 승용 라인업이었던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등과 유사성이 보이며 특히 상위급인 레간자와 많이 비슷해 보이는데, 이는 대우자동차가 디자인 기획 단계에서부터 나름 패밀리룩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전면부 디자인은 당시 대우에서 패밀리룩의 중심으로 마구 밀던 3분할 그릴을 집어넣으려고 별의별 고생을 다 한 티가 팍팍 난다. 그런대로 제법 잘 어울리는 편. 여담으로 쉬라츠의 휠 디자인은 이후 1999년에 출시된 누비라 2에 재활용 되었다.
만일 출시되었다면 4000cc[10] 의 메리트와 독자개발로 만들어지는 대우의 첫 고급 대형 세단으로서 높아질 브랜드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였지만, 출시 무산[11] 으로 1990년대부터 고전하던 대우자동차의 대형과 준대형 세단의 계보는 스테이츠맨[12] , 베리타스, 알페온, 임팔라로 이어지며 실패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13] 로얄시리즈 시절의 전성기를 끝으로 지금까지 스테이츠맨, 베리타스, 알페온, 임팔라가 대한민국에서 연전연패했던 이유가 쉬라츠의 저주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였다.
출시의 영향으로 쌍용자동차와의 M&A 계획 역시 없었을 동시에 쌍용자동차는 삼성과 합쳤을 수도 있거나, 외국 업체에 팔렸을 수도 있다.[14] 더불어 대우그룹 자체도 무리한 쌍용차 인수로 인해 금전적 손실을 줄이며, 그룹의 수명을 늘리고 부도를 회피할 수 있는 기회로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지난 일이지만''', 대우가 무리하게 쌍용자동차를 사들이는 바람에 둘 다 신세를 망쳤다.[15]
매그너스 사진 과거 이 문서에 쉬라츠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주장의 사진이 올라왔으나, 이는 매그너스의 개발 중 제작된 목업차량이다. 아직 쉬라츠의 사진은 컨셉시절 1/4 스케일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참고 바란다.
4. 둘러보기
[1] 사진만이 공개된 당시에는 플랫폼도 독자개발했다는 설도 PC통신을 통해 퍼져나간 바 있었다. 물론 이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자동차생활 같은 전문 매거진들과 언론의 보도들을 통해 이러한 설은 일축되었다.[2] 이러한 편의장비나 안전장치는 1997년 또는 출시 예정연도 1999년에 나왔다면 자동차계의 혁신이 될 수 있었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많은 비용과 시간은 대우자동차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만 개발하고 나머지는 폐기할 가능성이 있었다.[3] 현대 다이너스티, 기아 엔터프라이즈, 르노삼성 PX [4] 이때 대우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5] 고급 적포도주의 종류 중 하나이다.[6] 대우 XK엔진으로 추정하며, 2500cc에 해당한다.[7] 엔진의 출처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대우자동차에서 독자개발하였다는 설이 아직까진 정설이지만, 대우 아카디아의 V6 혼다 엔진을 대우자동차가 개량했다는 설 또한 있다.[8] 초기 매그너스에 탑재된 대우 XK엔진으로 추정된다.[9] 대우자동차가 새롭게 개발하였던 배기량이며, V8 엔진에 해당된다.[10] 에쿠스보다 2년 먼저 '''국내 최초로 V8 승용차 타이틀 및 최대 배기량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것이다.[11] 당시 많은 자동차 팬들은 안타까워했다는 일화가 있다.[12] 다만, 이쪽은 핸들 위치만 왼쪽으로 옮기고 그 외 사항은 좌핸들에 최적화시키지 않은 막장급의 로컬라이징도 스테이츠맨이 망하는 데 한 몫 했다.[13] 오죽했으면 이 차량이 출시되었다면 과장을 보태 '''대우그룹이 IMF 사태를 견딜 수 있었다는 예측이 나올 정도이다.'''[14] 만약 쌍용자동차를 독일의 벤츠가 인수해서 합작 업체로 출범했으면 상용차 생산은 현대, 기아, 대우처럼 지속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이 벤츠로 인수되었다면 쌍용은 현대, 기아, 대우를 대체할 차종도 나왔을 것이고 거기다가 SUV의 일변도에서 탈피했을 수도 있다.[15] 대우는 쉬라츠 계획 취소 이후 워크아웃으로 해체했다면, 쌍용자동차는 중국 상해기차의 기술 유출과 투자 부재, 법정관리로 인한 부도 위기에서 마힌드라에 인수된 후 모기업의 적극 투자와 티볼리의 흥행으로 장장 15년에 걸친 긴 터널에서 벗어났으나, 2020년 현재 또다시 존폐위기를 맞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