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가와쿠보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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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카와쿠보'''
川久保玲 / かわくぼ れい
'''출생'''
1942년 10월 11일, 일본, 도쿄도
'''국적'''
일본 [image]
'''학력'''
게이오기주쿠대학
'''브랜드'''
COMME des GARÇONS
1. 개요
2. 디자인 특징
3. 생애
3.1. 유년기
3.2. 1969년-2003년
3.3. 2003년-2018년
4. 기타


1. 개요


'''최근 디자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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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꼼데가르송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사장.

2. 디자인 특징


아방가르드계의 대모라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 드리스 반 노튼마틴 마르지엘라 등과 함께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자이너이다. 이 말은 달리 본다면 대중성, 즉 상업성 측면에서는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꼼데가르송의 오뜨 꾸뛰르 의상중 하나는 딱 한 벌 팔렸다. 구매자는 아주 잘 아는 갑부 지인이 그냥 하나 사준것.. 참고로 꼼데가르송의 주요 구매 셀렙중 한명이 '''레이디 가가'''이다.
그래서인지 한번은 상업성의 극치를 달리는 마크 제이콥스를 디스한 적도 있다. 제이콥스가 다소 예술성을 강화한 디자인을 발표했을 때, '어설픈 드리스 반 노튼'이라 말했다고... 이에 제이콥스는 "내 작품이 싫은 사람은 그냥 구경을 마라."고 응수.

3. 생애



3.1. 유년기


레이 가와쿠보는 1942년 10월 11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주디스 서먼이 더 뉴요커에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부모의 세 자녀 중 맏이였다... 레이 가와쿠보의 아버지는 메이지의 위대한 교육자 겸 개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설립한 명문 대학인 게이오기주쿠대학의 행정관으로 일했으며 서양 문화의 옹호자이자 여성 인권에 힘쓰셨던 분"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비록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로서 공식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었지만, 가와쿠보는 1960년도에 자신의 아버지가 일하고 계셨던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입학해 미술과 문학을 전공했다. 1964년 졸업 후, 가와쿠보는 일본의 섬유 회사 아사히카세이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고, 1967년에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2년 후, 그녀는 "소년들처럼"의 프랑스어인 '''Comme des Garsons (꼼데가르송)'''이라는 라벨로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3.2. 1969년-2003년


1969년, 가와쿠보는 자신의 회사인 Comme des Garsons Co. Ltd 도쿄에서 일했고 1975년에 그곳에서 그녀의 첫 부티크를 열었다. 가와쿠보는 여성복부터 시작해서 1978년에는 남성복 라인을 추가했다. 3년 후, 그녀는 1982년 프랑스 파리에도 부티크를 열면서 블라디슬라브 바친스키와 함께 매 시즌 파리에서 그녀의 패션 라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꼼데가르송은 반 패션적(Anti-Fashion)이고 모든 규칙과 관습들을 거부하는 해체주의 의복을 중심으로 한다. 1982년, 꼼데가르송을 설립한지 약 10년이 지난 후, 가와쿠보는 "3년 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불만족스러워졌다. 나는 내가 좀 더 방향적이고, 더 강력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패션에서 우리는 1920년대나 1930년대에 행해진 일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했다. 우리는 민속적인것에서 벗어나야 했다. 0부터, 무()에서부터, 전에 하지 않았던 일, 이미지가 강한 일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고 언급한다.
1980년까지 꼼데가르송은 많이 번창했으며 주디스 서먼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 150개의 프랜차이즈 상점, 80여명의 직원, 그리고 연간 3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1980년대 동안 가와쿠보가 의상에 주로 사용했던 색상검은색과 짙은 회색, 흰색이었다. 이러한 가와쿠보의 검은 색상의 옷에 대한 강조는 일본 언론들이 그녀를 '까마귀'라고 묘사하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 의상들은 종종 몸에 두르는 형태와 미완성된 가장자리와 함께 구멍과 일반적인 비대칭 형태를 띠고 있다. 파리 패션쇼에서의 데뷔부터 미()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한 그녀는 기자들이 가와쿠보가 디자인한 옷에 "'''히로시마 시크 (Hiroshima Chic)'''"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와쿠보는 자신의 의상에 컬러 팔레트를 늘려갔으며, 이로 인해 그녀의 의상들은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가와쿠보는 단순히 악세사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업의 모든 측면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비전의 일부분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고 그래픽 디자인, 광고, 상점 인테리어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크게 관여하고 있다. 도쿄 아오야마에 위치한 꼼데가르송 스토어는 파란 점으로 장식된 경사진 유리 파사드로 유명하다. 이것은 가와쿠보와 건축가 퓨처 시스템즈(Future Systems),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와사키 타카오가 협업해 설계했다. 가와쿠보는 1990년대 초에 자신만의 매거진, 'Six'를 출판했다. 이 잡지특징텍스트가 거의 없고 주로 그녀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진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96년에느 전문적인 미술 출판물인 'VISIONAIRE'의 객원 편집자를 맡기도 했었다. 가와쿠보는 상당히 은둔적이고 언론계에서는 수줍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혁신적인 창작물에 대해 더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2002년 이전부터, 가와쿠보는 LGBT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그녀의 의류액세서리홍보하는 광고 캠페인에 사진인용하며 LGBT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해왔다.

3.3. 2003년-2018년



4. 기타


영국인 남편 아드리안 조프는 꼼데가르송의 매니징 디렉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