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맷 리볼버

 


'''르맷 리볼버'''
''LeMat Revolver''

[image]
현대에 재생산된 르맷 1861(.36 혹은 .44 구경)
'''종류'''
리볼버
'''원산지'''
[image] 프랑스
[image]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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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역사'''
1861년~1865년
'''개발'''
장 알렉산드르 르마
'''개발년도'''
1855년
'''생산'''
존 크라이더
샤를 프레데리크 지라르
런던 아모리 컴퍼니
피에타 사
'''생산년도'''
1856년~1865년
1985년~
'''생산수'''
약 2,900정
'''사용국'''
[image] 아메리카 연합국
[image] 프랑스 제3공화국 국민방위정부
'''사용된 전쟁'''
남북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기종'''
'''파생형'''
핀파이어 탄약
센터파이어 탄약
카빈
'''제원'''
'''탄약'''
.42(.44)[3], .36
20게이지(산탄)
'''급탄'''
전장식 9발들이 실린더
단발식 활강포(산탄)
'''작동방식'''
싱글 액션
단발식(산탄)
'''전장'''
356mm
'''중량'''
1.86kg
'''발사속도'''
9RPM
'''탄속'''
190m/s
'''유효사거리'''
36m (40야드)
'''최대사거리'''
90m (100야드)

1. 개요
2. 상세
3. 매체에서의 등장
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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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리지널 르맷, 센터파이어 모델, 카빈 모델을 소개하는 Forgotten Weapons의 영상.
뉴올리언스에 살던 장 알렉상드르 르마(Jean Alexandre LeMat, 1821 ~ 1895)가 설계한 전장식 퍼커션 캡 흑색화약 리볼버이다. 리볼버 주제에 '''9발'''짜리 장탄수와 추가로 산탄을 발사할 수 있는 언더배럴이 달린 것이 특징.
이름의 유래가 된 설계자는 프랑스인이지만 실제로 주로 사용한 국가는 미국(정확히는 아메리카 연합국)이었으므로 미국식으로 발음된 이름을 표제어로 한다.

2. 상세


장 알렉산드르 르마는 182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했으나 의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184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미군 소령이었던 프랑스계 미국인 P. G. T. 보우리가드(Pierre Gustave Toutant-Beauregard, 1818 ~ 1893)의 사촌과 결혼하였는데, 보우리가드는 열정적인 발명가이기도 했던 르마의 아이디어에 금전적 지원을 해 주기도 했다. 르마는 1855년 뉴올리언스에서 이 총을 설계해 이듬해인 1856년 특허를 받았으며, 보우리가드가 이 리볼버의 생산을 지원해 주었다. 1859년 필라델피아의 존 크라이더라는 사람에 의해 프로토타입을 포함해 100정이 안 되게 첫 생산이 되었으며, 벨기에 리에주와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약 2,900정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럽산 리볼버들은 영국으로 운송되어 품질 보증 마크를 받았다.
르마는 자신의 총이 용기병기병들의 주무기가 되길 바래서, 1859년 자신의 후원자인 보우리가드 소령과 파트너십을 맺어 미군에 본격적으로 리볼버를 홍보하려 했다. 보우리가드는 남부 탈퇴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에 최초로 합류한 군인들 중 하나였으며, 남북전쟁의 서막을 알린 섬터 요새 포격도 지휘했다. 파트너가 남부에 붙었으니 당연히 자신의 리볼버도 남부 측에 팔 수 있게 되어, 약 5,000정의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약 900정이 남군 육군, 600정이 해군으로 납품되었다. 이 리볼버를 남부 측이 들여오는 방식이 특이했는데, 유럽 등 해외에서 생산한 뒤에 영국을 거쳐 남부로 수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남부 지역에 무기를 자체 생산할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을 경유해 간다는 것을 이용해 영국산인 것처럼 속여 북군의 해상 봉쇄를 뚫고 약 2,500정이 남군에 보급될 수 있었다. 다만 영국산 리볼버도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르맷 리볼버는 전쟁 내내 남부군, 특히 보우리가드나 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를 비롯한 장교들에 의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보우리가드가 전쟁 내내 쓰던 개인 리볼버는 박물관에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외에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국민방위정부[1]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여담으로 르마는 남북전쟁 종전 이후에 프랑스로 귀국했으며, 보불전쟁에서 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1865년 남북전쟁 종전과 함께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소량씩 생산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1985년 이래로 이탈리아의 피에타(Pietta) 사가 오리지널 모델을 재생산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르맷 리볼버는 .42 구경 리볼버 탄환과 20게이지 산탄을 사용하며, 남북전쟁 당시 대부분의 화기가 그랬듯이 퍼커션 캡을 끼우고 흑색화약과 탄환을 총구를 통해 꼬질대로 집어넣는 전장식 리볼버였다. 산탄을 발사하려면 위 동영상처럼 해머의 끝을 아래쪽으로 꺾어 주면 되었다. 남북전쟁 중에 .35 구경 리볼버 탄환과 28게이지 산탄을 사용하는 모델도 나왔으나, 독자 구경을 사용했던 탓에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해 당시 리볼버 탄환의 주류였던 .36 구경이나 .44 구경 모델도 나왔다. 그러나 이 모델의 대다수는 북군의 해상 봉쇄에 막혀 사용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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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파이어 모델
센터파이어 모델
[image]
센터파이어 카빈
후미장전식 총과 탄피가 새롭게 등장하자 르맷 리볼버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핀파이어 탄약을 사용하는 모델과 센터파이어 탄약을 사용하는 모델을 출시했다. 이 중에서 핀파이어 모델은 극히 희귀하며, 센터파이어 모델은 핀파이어보다야 잘 팔렸지만 때마침 등장한 더블 액션 방식에 밀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센터파이어 모델을 이용한 희귀한 카빈 모델이 존재한다.

3. 매체에서의 등장


언더배럴 산탄을 발사할 수 있는 9연발 리볼버라는 점 때문에 서부극 장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 - 업데이트로 추가. M1 Irons라는 이름으로 리볼버임에도 불구하고 주무기 카테고리에 등장한다. 그러나 외형만 닮았다 뿐이지 완전히 다른 리볼버로, 장탄수는 9발이 아닌 6발이고[2], 스윙아웃 방식으로 장전하며, 언더배럴 산탄총은 아예 구현하지 않았다.
  • 헌트 쇼다운 - LeMat Mk.2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전장식 모델링을 사용하는데, 장전은 후장식으로 하며 황동 탄피를 사용한다. 실제 총기처럼 권총탄 9발과 산탄 1발을 사격할 수 있다. 산탄 장전은 웨블리 리볼버처럼 중절식으로 하는데, 실제 르맷 리볼버는 이렇게 산탄을 장전할 수 없다. 1950년대 TV 시리즈인 '조니 링고'에 유사한 모델이 나오는데 이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와일드 웨스트 - Lemat 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밸런스를 위해 게임 내 리볼버와 같이 장탄수 6발이며, 언더배럴 산탄총은 구현해 놓지 않았다.

4. 참고 자료


[1] 나폴레옹 3세 항복 이후 파리에서 프로이센에 항거해 자체적으로 설립한 공화정부.[2] 좀비 모드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면 원래대로 9발이 되기는 한다. 그래도 여전히 장전은 6발만 한다는 게 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