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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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南 / Hainam(민어) / Hǎinán(보통화 한어병음)
1. 개요
2. 지리
3. 기후
4. 인구
5. 언어
6. 역사
7. 관광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북부와 위도가 비슷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동남아시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곳은 중원과 극히 멀며 기후도 중원과 달리 사바나성 기후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하이난성. 서쪽 바다 건너편에 베트남이 위치해 있다.약칭은 경(琼, Qióng, 정체자로는 瓊). 과거 이 지역을 경애(瓊崖), 경주(瓊州)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다.
구글 지도 한국어판에서는 '에노'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나온다. 영어로는 Hainan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모종의 이유로 벨기에의 불어권 에노(Hainaut) 주[1]와 혼동된 것 같다. 사실 구글 지도 한국어판은 발음들이 워낙 엉망이라 그냥 영문판으로 보는 게 더 속 편하다.

2. 지리


섬의 넓이는 33,210km²로 경상도보다 조금 크며 타이완 섬보다는 약간 작다. 이름의 유래는 그냥 이름 그대로다. 바다(海)의 남쪽(南). 진짜 심플하다.
중국에서 가장 넓은 섬이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 섬을 자기네 영토라 주장하므로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저렇게 말하지 않고 두 번째로 큰 섬이라고 한다.
섬 최고봉이 우즈산(五指山)이다.

3. 기후


섬의 남부는 중국 대륙에서 얼마 안 되는 열대기후, 정확하게는 사바나기후에 속한다.
북부 하이커우는 1월 평균기온이 17도, 남부 싼야는 19도로 겨울이 없고 4철 내내 덥고 습하다. 북부 베트남과 같다.[2]
기후가 열대기후인 만큼 태풍도 자주 상륙한다.

4. 인구


인구는 870만 명 정도로 인구밀도는 상당하지만 대만 섬보다는 낮은 편이다. 섬 인구의 80%가 한족이고, 다음이 타이족과 연관 있는 이 섬의 원주민인 리(黎)족으로 15% 정도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섬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는다.

5. 언어


리어와 민어를 쓰는데[3] 하이난어라고도 한다. 대만어라 불리는 민남어와 같은 민어 계열이지만 푸젠성대만 등지의 다른 민어 방언들과 전혀 대화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사실 이 곳의 경우 섬의 특성 상 홀로 동떨어져 있어 민북어나 민남어 등 타 민어 계열과는 이질적이 되었고 그나마 광동성 동부 차오저우 지역의 치우차우와 조금 가깝지만 이들과도 이질화되었다.
또한 여러가지 사료를 보았을 때 중세 및 근세까지는 리어나 민어 말고도 오스트로네시아어 계통의 언어도 일부 쓰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우선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리족은 태국인과 동계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 종족들은 근세 이후 남하해 전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으로 이동한 듯 하다.
물론 통용어는 중국 본토 전 지역이 다 그렇듯 표준중국어로 표준중국어가 모어는 아니더라도 다들 교육을 받았으면 할 수 있다.

6. 역사


기원전부터 백월의 일파였던 여족이 살던 땅이었고[4], 기원전 3세기 초에 남월에 의해 정복당하며 기원전 110년경까지는 본토의 광둥성광시좡족자치구, 그리고 북부 베트남과 함께 남월의 영토였다.
이후 남월이 한나라의 정복군주 한무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한나라의 군현으로 편입되어 중국사의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무제 정복 당시의 인력은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고, 삼국시대에는 손권이 이곳으로 인간 사냥을 보내기도 했다. 육손이 반대했지만 강행했는데 득보단 실이 컸다.[5] 오나라의 지배는 느슨했고, 하이난이 좀 더 중국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건 약간 더 뒤였다.
이 곳은 한나라 시절부터 지금의 중국 북중부에 국한되었던 전통적 의미의 중원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변방 중의 변방, 오랑캐의 땅, 유배지 취급을 받았다.
이후로는 주애(珠崖)나 경애(瓊崖)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유배지로서 소동파가 이 곳으로 유배오기도 하였다. 대만 섬이 중국사의 범주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다가 청나라 강희제 대에서야 확보되어 경영된 거와는 달리 하이난은 한나라 시대부터 비록 직접지배는 못 받았을지언정 확실히 중국의 일부로 포섭되어 광동의 부속 도서 취급을 받았으며[6], 중원이나 연경, 강남 등과 한참 먼 거리 덕에 유배지로 각광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하이난 유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나마 나올 희망이나 있던 본토 유배와 달리 하이난은 살아서 다신 못 나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극악으로 먼 거리와 극악으로 덥고 습하고 태풍이 자주 오는 기후, 그리고 배가 아니면 왕래가 불가능한 환경 때문. 이러한 극악의 고립된 환경은 파촉 지방 정도가 비견할 만 하다. 비슷한 취급을 받은 곳은 현재 베트남 중부 다낭 일대인 일남군으로 일남은 더위가 화끈한 열대 지방이며 거리도 절망적으로 멀어 아예 유배갈 때 장례식을 치를 정도였다.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먹은 뒤 일본 제국삼국간섭으로 랴오둥 반도 대신 하이난을 요구하려다가 포기하였다. 이유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이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광동군벌 등본은의 지배를 받았으나 1926년국민혁명군 4군 군장 리지선이 원정하여 중국 국민당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중국 국민당은 이 지역을 하이난 특별행정구라는 행정구역으로 통치했다. 그러다가 중일전쟁에서 하이난을 공격한 일본군은 중국 국부군을 대패시키고 하이난을 점령한다. 이렇게 일본군의 점령으로 일본 제국의 짧은 지배를 받다가, 일본 제국이 원자폭탄 2방으로 패망하고 철수하자 중국으로 반환, 국민당이 접수한다.
그러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대패한 후에는 바이충시 휘하 18만 대군이 넘어가, 본토에서 결판이 난 지 오래인 1950년까지도 중국 국민당이 통치했다. 대만도 그렇지만 당시 인민해방군의 빈약한 해공군 전력으로 바다 건너의 섬을 공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이 그 해 5월 1일에 민간에서 징발한 어선 수백 척을 동원하여 하이난에 상륙하여 공세를 벌이자 결국 국민당은 여기서 철수했다.[7]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에 들어간 이후로 광둥성에 속해 있다가 1988년 하이난성이라는 별개의 성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중국의 개방 정책과 함께 광둥성 선전시산터우, 주하이, 중산, 포산, 산웨이, 푸젠성 샤먼시, 푸저우시 등과 함께 경제특구로 섬 전체가 지정되면서, 1990년대까지는 특별행정구가 아닌 국내 경제특구임에도 중국 인민은 출입증이 필요했다.
2010년대 이후 그간 듣보잡으로 외면하던 한국인들도 하이난 관광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기 시작했으며 원래 많이 찾아오던 러시아인 관광객들의 수도 항공편 증가로 더 늘어났다. 거기에 2013년 이후 하이커우가, 시진핑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일대일로 정책으로 인해, 해상 실크로드가 개발되어 중요도가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후베이성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서 티베트, 내몽골과 함께 그나마 조용한 몇 안되는 곳인데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의 특성 상 그런 게 큰 듯 하다.

7. 관광


따스한 지역이라 중국에서는 관광 겸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외국인 무비자 입국지인 한국의 제주도마냥 여기도 외국인 좀 끌어보려고 중화인민공화국 육지 쪽인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광저우 등 일부 지역처럼 무비자를 시행하는데 이들 지역과 달리 하이난은 여행사를 통해 신청할 경우 굳이 복잡한 절차 없이 무비자가 보장된다.
한국인들은 골프 여행 등으로 제법 많이 간다. 1년 내내 따뜻하고 그린피 싸고 꽤 오래 걸리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보다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인에게 해변 휴양지로서 하이난은 아무래도 태평양 섬들이나 동남아시아의 푸켓, 코타키나발루 등 유명 휴양지는 물론 하다못해 저가항공이 잔뜩 취항하는 일본 오키나와에 비해서도 인기가 저조한 편이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홍보가 덜된 탓인 듯 하다. 사실 하이난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듣보잡 여행지였으며 2009년 이후 이 곳을 중국의 하와이라 하며 띄우기 시작한 걸 감안해야 한다.
일단 중국 내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상당히 북적북적한 편이며 홍콩인들도 크루즈 목적지 중 하나가 하이난이라 많이 찾는 편이다.

8. 기타


한국에도 동일 지명인 해남군이 있지만, 스케일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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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필드 4에서 하이난 리조트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앙에 위치한 호텔을 붕괴시킬 수 있는 Levolution이 등장한다.

9. 관련 문서



[1] 한국어로 '에노'로 발음된다.[2]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실상 이 섬 전체, 더 넓게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홍콩, 마카오보다 남쪽에 위치한 거의 모든 지역이 열대기후가 되다시피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대만도 북부는 아열대, 남부는 열대기후이다. 열대기후 지역에 있는 대만의 대도시로는 가오슝이 있다.[3] 민어는 푸젠성 쪽 방언으로 민남어/대만어가 여기 속한다.[4] 다만 21세기 들어 여족이 원래 토착민이 아닌 중국 남부로부터 들어온 민족이었다는 얘기가 학계에서 슬슬 나오고 있기는 하다. 물론 그런 식이면 구 대륙인 아시아에서 넘어갔다고 보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대부분은 원주민이 아니라는 소리라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족을 하이난 섬 원주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5] 오나라는 이 때 대만류큐 심지어 일본 열도 큐슈 남단까지 정벌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손권의 인간 사냥은 한족의 대만 진출 시도 첫 사례이기도 하다.[6] 대만은 대만해협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풍랑이 심하면 배편이 끊길 정도로 접근하기가 어려웠으나 하이난은 대륙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경영되어 왔다.[7] 이곳을 접수하고 그 다음 최종 목표가 바로 대만 섬 점령이었는데, 미국이 대만해협에 군함을 파견하고 당해 6월 6.25 전쟁이 터지면서 대만 진공을 무기한 보류했다. 하이난이 몇 개월만 더 버텼다면 지금 와선 대만과 같이 공산화를 피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만과는 달리 하이난의 바다 폭은 강 수준으로 좁아서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공산군도 민간 어선을 징발해 건너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