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프리드먼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image]
1975년

1976년

1977년
레오니트 칸토로비치
티알링 코프만스

'''밀턴 프리드먼'''

베르틸 올린
제임스 미드
[image]
Milton Friedman (1912년 7월 31일 - 2006년 11월 16일)
1. 소개
2. 생애
3. 연구
3.1. 신자유주의
3.2. 자유
3.3. 복지 정책
4. 어록
5. 여담
6. 관련 문서


1. 소개


미국경제학자, 통화주의(monetarism)[1]를 제창하였고 1970년대 이후 미시경제학을 더불어 주류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유태인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191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출생하였다. 15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을 앓다가 숨지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1928년 16세에 장학생으로 인근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그는 숱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아침에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파는 점원으로, 점심 무렵에는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고, 밤에는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1932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한 그는 1933년 시카고 대학교[2][3] 에서 석사 학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4]. 학위를 받은 이후 1935년부터 10년간 미국 재무부, 국립자원위원회 등에서 근무했고 1946년 시카고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약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이러한 인생 역정 때문에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제로 이루어낸 학자로도 손꼽힌다.
고전적이며 보수적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옹호자로 1976년에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5]을 수상하였다. 자유시장 내 정부가 맡는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학자로 시장의 장점과 정부 개입의 단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정치철학은 미국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견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그는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주의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반(反) 케인즈 학파의 창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어찌보면 1970년대 이후 정부실패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의 경제 전문가들은 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나 충실하게 따른 국가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에 비판적이었으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이 꽤 오래 성공적이자 죽기 전에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이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알다시피 2008년 금융위기로 그린스펀의 재량적 통화정책은 비판을 받는다.

3. 연구


프리드먼은 현대 영미경제학에서 통화를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강조하는 통화주의를 창시했다. 통화주의의 아버지로 한때 시카고 학파를 이끈 거두이다. 통화주의를 통해 경제분야에의 정부 적극개입을 주장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개입주의를 철학사상뿐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분석,비판했다.
기존 케인즈의 개입주의를 비판하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미시경제학적 접근을 주로 했던 반면에, 거시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이 거시경제학인 케인즈 경제학을 더 엄밀하고 본격적으로 비판해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기존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주로 유럽에서 활동한 탓에 세계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데 반해, 프리드먼은 미국에서 활동한 탓에 미국과 영국의 경제정책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는 불황이나 인플레처럼 국민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서 통화량(경제 내에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 혹은 화폐공급량)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기존 케인즈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불황의 원인은 투자의 부족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확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격심한 인플레나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제교란은 대부분 통화교란(급격한 통화량의 팽창이나 수축)때문에 발생한다고 했다.
1930년대 대공황도 주가폭락이 아니라 미국의 통화당국에서 잘못된 통화량 억제정책을 실시해 통화량이 1/3가량 급감한 것에 직접적으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즉, 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통화교란을 낳고 이는 다시 경제의 교란을 초래한다는, 케인즈주의와 정반대의 분석을 했다.
당장 학부 수준에서 화폐금융론을 배우면 프리드먼 법칙(Friedman rule), 프리드먼의 k-퍼센트 준칙(k-percent rule)등을 듣게 될 것이다. (언론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말한 프리드먼 법칙과 헷갈리면 안된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화폐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일정한 통화증가율을 공시하고 이를 장기에 걸쳐 매년 철저히 준수하는 준칙이다. 특정비율을 정한 간단한 규칙이라는 점에서 k% 준칙이라 불린다. 정부는 이 준칙만 지키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통화교란) 발생으로 인해 경제의 혼란(심한 인플레나 대불황)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축소하여 경제주체들이 계획에 입각한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행할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적정 통화증가율은 평균 실질경제성장률보다 약간 높은 수치로 고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를 1980년대 초반 시행해본 결과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 전제들로 인해 잘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1993년까지 M2 통화량목표제가 유지되고 있었고, 2000년까지 연준은 통화량지표를 정책의 보조 지표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 정책에서 준거와 재량의 혼용이 겹쳐지며 중요도는 상당히 하락했다. 현재는 통화량 목표제 대신 이자율 목표제가 일반적이다. 21세기에서 프리드먼의 이론적 함의는 유효하나 정책제안은 유효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정확한 수치를 맞추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미리 고시한 일정 증가율을 엄격하게 계속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추후에 케인즈경제학자들도 화폐가 중요하고 인플레가 심각한 문제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인정하고 1960년대부터는 통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개입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좀더 세밀한 이론으로 정책배합(policy mix)과 필립스 곡선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인플레기대심리와 자연실업률가설에 의해 오류임이 반증되었다.[6]
또한, 프리드먼이 지적한 것 중 현대 거시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념이 인플레 기대심리(inflation expectation)이다. 이것이 지적된 후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거시경제학 이론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인플레 기대심리란 인플레의 변동을 예상하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경제행위를 스스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1년간 물가상승률이 현재의 연 5%에서 연8%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자금의 대출자는 명목이자율을 3% 더 요구하고 자금의 차입자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도 예상 물가상승률에 맞추어 임금을 더 받길 원하고 기업도 그만큼의 임금 지불을 대비하게 된다. 이러한 인플레 기대심리때문에 케인즈경제학의 저금리정책과 조정개입의 효과가 없음을 프리드먼은 주장했다.
의외로 프리드먼은 통계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순차적 표본 추출(sequential sampling)에 기여했다.
199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의 출현을 예언하였다!

3.1. 신자유주의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프리드먼

세계 대공황케인즈를 설명하는 프리드먼
노벨상 수상 이후 아내인 로즈 프리드만과 함께 대중들을 위한 서적들을 출판했고 TV프로그램 강연에도 출연하였다. 저서와 강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서 자신의 이론과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대한 많은 설명이 들어있다.
대표적인 대중 대상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
국어
영어
자본주의와 자유[7]
Capitalism and Freedom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
Bright Promises, Dismal Performance: An Economist's Protest
대학 퇴임 직후 미국 공영방송[8]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경제, 사회 철학을 소개하는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라는 한 시간짜리 TV시리즈 열편을 3년간 만들어 1980년에 방송했었다. 이 프로젝트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신나는 모험이었다고 본인이 회고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여러 외국에서도 방송되었고 상기에 제시된 책으로 같은 해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그 후 14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를 간략하게 소개 하자면 프리드먼은 현대의 자유주의가 진보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고 원래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부활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유주의(liberalism)가 현대 영미사회에서 진보주의(progressivism, progressive liberalism)와 원래의 자유주의 두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자유주의의 원래의 의미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사용되던 것과 같이, 개인자유를 유일한 궁극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중시하여 개인의 사회활동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반대하는 주장, 즉 자유지상주의였다. 따라서 복지와 균등배분을 자유주의의 전제조건으로 보고 이를 위한 정부 개입의 부활을 옹호하고 나선 20세기 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 진보주의)와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혹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명명하게 됐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 불렀는데 반대자들이 고전적 자유주의자[9]와 구분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이들이 신자유주의가 만든 해악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들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전, 정확하겐 역사 이래 항상 있어온 배금주의(拜金主義)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오히려 자유가 적은 나라에서 돈으로 바꿀수 없는(혹은 바꾸면 안되는) 가치인 성(性), 공정한 재판, 인신(人身), 교육 기회 등이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보다 돈으로 해결하기 쉽다는 주장이다. 개입이 늘수록 자유는 줄어들고 개입의 여지가 늘어나며 점점 인간의 자유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제한들은 준칙으로 정하고 개인 재량에 맡기는 것이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한다고 본다.
경제적으로도 시장 논리에 따른 민영화를 주장하는데 그가 예로 들은 1970년대 미국 철도 회사와 정치권의 결탁으로 인한 복마전을 설명하며[10] 한계기업이 퇴출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낭비를 거론하고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시장 경제에 따라야 함을 주장한다.[11]
그리고 가장 큰 편견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사회보장제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해서는 근로 의욕 제고를 주문하지만 고아나 장애인, 노인 같은 노동이 불가능 또는 제한적인 계층에 대해서 다 굶어 죽으라고 한푼도 주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그와 같은 계층이 고통을 겪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초 생활 보장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사회보장이 필수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소득이 적은 계층 즉 차상위 계층에 대해선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주장했는데 가구 수 기준 최소 생계비를 보장하는 제도로 예를 들어 4인 가족 최소생활비는 150만원인데 월 평균 소득이 100만원이라면 50만원을 '(-)세금'[12] 즉 보조금으로 지급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재 프리드먼이 주장한 부의 소득세는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져 2000년대 이후 국세청에서 근로장려세제(EITC) 제도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정부 재원 충당에는 집값 상승으로 집주인들이 얻은 이윤 만한 게 없으며 그들의 수익은 특권이자 불로소득이라고 주장하는데 심지어 '''추잡한 부당이윤'''이라고까지 말한다!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밀턴 프리드먼과 서브프라임-
프리드먼이 그냥 추잡한 부당 이윤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택 소유자들이 지가 상승으로 부가 늘어났다고 하면 그 지가 상승분에 해당하는 만큼 '''신규 주택을 짓는데 그 지가 상승분을 재투자'''해야 하는데 그들(주택 소유자)은 땅값 상승으로 번 돈을 다른 이를 위해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해서 돈 벌었다"는 식으로 자기의 사치에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주택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그 세원으로 계속 '''주택 공급'''을 늘려가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프리드먼은 또한 교육 격차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70년대 미국에서도 현재 한국처럼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를 우려하고 '''저소득층 가정에 사교육 쿠폰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본인이 가난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교육 덕분에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으니 교육에 신경 쓸만도 하다. 비슷한 사교육 지원 제도는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잠시 검토된 바 있다.

3.2. 자유


프리드먼은 자유는 문명의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함을 역설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다양한 시도에서 유익한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고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정부는 결코 개인 행동의 각양각색(variety)과 다양성(diversity)을 복제할 수 없다.

-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17

나아가서 프리드먼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답게 자유가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적 자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했다.[13]
또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볼때에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 파시즘 치하의 스페인과 이탈리아, 군국주의 차하의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정치적 자유가 박탈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가 아닌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즉,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조건이라고 했다.[14]
자본주의에서만 정치적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은 경제적 시각으로 설명했다.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려면 기존의 체제를 바꾸자는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사회주의 사회와 같이 경제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이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또한, 경제적 자유는 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을 분리시킨다.

정치적 자유란 개인이 그 동료들로부터 강요를 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30

즉,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협은 권력의 집중이다. 시장경제는 경제적인 힘을 수많은 경제주체 사이에 분산시킨다. 이에 비해 정치권력은 기본적으로 분산이 어렵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는 정치권력과 경제력이 결합되어 권력집중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여 결과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보호한다. 이런 관점에서 프리드먼 역시 예전의 애덤 스미스처럼 경제주체 내부의 독점과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기업이 경쟁력을 가져서 커지는 것은 장려하고 사업 분야를 확장해도 된다. 하지만 시장의 경쟁 기반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에서도 특정 집단(과두)으로의 권력 집중이나, 특정 집단에 의한 정책의 과대대표 등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3. 복지 정책


최근 기본소득제에 대한 오해가 팽배하다. 기본소득제는 기본원리가 프리드먼이 복지제도로 주장한 '부(負)의 소득세'에 기인한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프리드먼이 주장한 부의 소득세 제도의 취지를 알아봐야 된다. 프리드먼은 각종 공공복지제도들이 빈곤퇴치라는 본래의 목적을 실현하기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으므로 기존의 공공복지제도를 모두 철폐하고 대신에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이 제도는 원래 1940년대 줄리엣 라이스-윌리암스라는 영국의 여성 정치가가 처음 제안했던 것을 프리드먼이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정부가 소득세의 면세점(point)과 보조율을 적절히 정하고, 그 면세점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는 부의 소득세, 즉 보조금을 현금으로 정부가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소득세의 면세점이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2천만원이고 보조율이 60%라면, 연소득이 2천만원인 4인 가족은 소득세를 내지도, 보조금을 받지도 않는다. 연소득이 1천만원이 4인 가족은 세금을 안 낼 뿐 아니라 2천만원과 1천만원의 차액인 1천만원에 대해 60%의 보조율을 적용해 6백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즉, 총소득이 자신의 소득과 보조금을 합한 1천6백만원이 된다. 소득이 전혀 없는 4인 가구는 2천만원의 차액에 60%의 보조율을 곱한 1천2백만원의 보조금을 받으므로 총소독이 1천2백만원이 된다. 이 제도는 몇가지 장점이 있다.
  • 현금으로 보조해 주고 그 사용은 수혜자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기 때문에 수혜자가 자신이 가장 필요한 용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제도는 용도가 정해진 현물보조(공공의료혜택, 저렴한 공공주택, 식품보조, 학비보조 등)보다 수혜자에게 더 큰 효용을 준다. 수혜자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격체임을 인정한다면, 용도를 지정해주는 현물보조보다 현금보조가 더 효율이 좋을것임은 자명하다.
  • 빈민만을 돕는 정책이다. 따라서 특정 집단에 속하기만 하면 부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들(농산물 가격 지지제도, 노인연금제도, 수입제한, 면허제도 등)이 갖는 결점을 피할 수 있다.
  • 시장가격기구를 왜곡시키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도, 수입제한제도, 농산물가격제도 등은 가격기구를 왜곡시킴으로써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적다. 면세점 이하의 소득이라 해도 취직을 해서 소득을 얻으면 얻은 소득의 일정 비율은 내 소득의 순증대로 연결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취업할 의사를 갖게된다. 프리드먼은 보조율이 너무 높으면 근로의욕을 감소시킬 것을 염려하여 50%의 보조율을 제안했다.
  • 공공복지제도의 운영비용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고 기존의 다른 모든 공공복지제도를 폐지하면, 잡다한 기존의 여러 제도의 운영비가 절약된다. 프리드먼의 계산에 따르면 1961년 미국의 공공복지제도의 운영비를 절약할때, 미국의 최저소득계층 20%에게 가구당 3천달러씩 지원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제도는 미국 일부 지방정부 수준에서 시행된 적이 있지만 프리드먼의 주장 그대로 다른 모든 공공복지 제도를 없애고 이 제도만으로 대체한 국가는 아직 없다.
-
또한 프리드먼은 교육에 대한 지원제도를 제안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일정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안정된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가치에 대한 공통된 합의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지 않고는 안정된 민주사회가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타당하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직접 공립학교만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당사자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고 당사자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여 교육기관 간 경쟁을 촉진하고 교육선택의 폭을 확대시킬 것을 의도했다. 이는 모든 수준의 교육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이것이 교육증서(education voucher) 제도인데,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모두 병존시키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승인된' 학교 교육에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일정액을 부모에게 지원하고, 부모와 학생은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때, 선택한 학교에 정부가 발급이 이 증서로 등록금을 납부하고, 학교는 이 증서를 정부에 제출하여 돈을 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때문에 정부의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도 공립학교 운영을 위한 세금을 납부하는 부모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도 교육에 경쟁과 다양성을 도입하고, 또한 교사들의 획일적인 급여도 개선하는 작용을 꾀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직업교육의 경우엔 그 혜택이 본인 당사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므로 본인이 온전히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대신에 정부의 특별융자로 학자금 대출을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4. 어록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정의로운 정책인지 악의가 깔린 정책일지 생각하는 건 제일 큰 실수다.

자유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없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있다.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임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분명히 그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다.[15]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단,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사기나 속임수 없이 자유 경쟁에 임하는 것이 그것이다.

모든 세금이 나쁘지만 가장 덜 나쁜 세금은 토지세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

임시 정부 프로그램[16]

만큼 영원한 것은 없다.

연방정부에게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 같은 건 없다.[17]

부패란 정부가 시장효율성에 규제로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5. 여담


  • 윤석열 대한민국 검찰총장이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프리드먼의 저서 중 하나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은 바 있다. #

6. 관련 문서


[1] 화폐 가치 안정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어디까지나 통화량 팽창이 주원인이라 지적했고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프리드만의 주장대로 급속한 통화량 팽창이 원인임이 실증결과로 나왔으며 현재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다.[2] 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시카고 학파의 본산이다.[3] 배우자인 로제(결혼 전 이름은 로제 디렉터(Director))를 여기서 처음 만났다. 석사과정 당시 교수가 학생들을 성의 알파벳 순서대로 자리에 앉혔는데, D로 시작하는 로제의 옆에 앉은 사람이 F로 시작하는 프리드먼(Friedman)이었다고 한다.[4] 박사 시절 밀턴 프리드만이 사사한 사람이 쿠즈네츠 곡선으로 유명한 사이먼 쿠즈네츠다[5] 수상연설에서 '내 주장이 세상에 받아들여졌다면 이 상을 받지 못하고 당신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조크를 했다. 노벨경제학상은 다른 분야의 노벨상에 비해 역사가 짧으며 스웨덴 중앙은행을 통해 수여되는데, 프리드먼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 역시 없애버리고 매년 일정 비율로 통화를 증가시키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6] 근거자료?[7] 일반인들 대상으로 썼다고 보기엔 꽤 어려운 책이다.[8] P.B.S, U.S. Public Broadcasting System.[9] 18세기부터 19세기 방임경제 시대, 20세기 경제학의 스펙트럼 상으로는 하이에크를 필두로 한 신오스트리아 학파와 유사하다.[10] 미국은 공식 국영기업은 없다. 그러나 방산업체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기업들은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 규제로 인한 진입장벽 덕에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19세기 이래 철도회사들이 화물수송과 여객수송을 전담하였는데 고속도로와 민간 항공기의 출현으로 여객수송 비율은 현격하게 떨어졌는데 오랫동안 정부와 주정부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철도회사들이 로비로 정치인들에게 우리 지역에 철도 노선이 사라진다 하여 보조금을 타먹고(막상 유권자들도 열차는 타지 않으면서 노선이 없어진다 하면 서운(?)했기에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텅빈 열차는 열차대로 돌고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 세금은 세금대로 보조금을 퍼먹는 상황을 고발한다.[11] 비슷한 예로 마거릿 대처 등장 이전 영국에서 채굴비 높은 석탄 광산을 유지하며 고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막상 석탄은 쓸데가 별로 없어서 연료용 석유를 수입했다.[12] 쉽게 말해서 세금의 환급이지만 애초에 원천징수시에 부양가족과 월소득을 고려하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환급할 세금이 없다. 그래서 사실상 현금보조에 해당한다. 노동 의욕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노동을 할수록 보조금이 늘어난다.[13]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22.[14]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24.[15] 대우 명제를 이용하면, 자본주의 없이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16] 단통법은 기본적으로 3년 시한을 두고 만든 법이지만 사실상 영구히 지속되고 있다.[17] 아마 보수층에서 가장 즐겨 인용하는 프리드먼의 어록일 듯. 다만 프리드먼이 최초로 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