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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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대구 FC 소속 공격수.
2. 유소년 경력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에 입학했다. 숭실대에서 주력 공격수로 맹활약하면서, 한일 대학 선발전 대표와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되어 대학 무대에서 맹활약했다. 대학 무대에서는 좋은 피지컬을 앞세워 포스트 플레이를 이용한 골로 활약했다. 이때의 활약을 인상깊게 본 J리그 스카우터들이 박기동에게 접근했고, 결국 2010년 J리그2 FC 기후로 진출하면서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3. 클럽 경력
3.1. FC 기후
그러나 박기동은 J리그 진출 이후 부상을 당하며 전반기를 날려먹었고, 복귀 후에도 적응에 실패하면서 6경기 1골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구단의 재정 상황도 열악해지면서 결국 1년 만에 국내 무대 복귀를 선택하게 된다.
3.2. 광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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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011 시즌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생팀 광주 FC의 우선지명을 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비록 J리그에서 부진하긴 했어도, 대학 시절의 명성 때문에 기대를 많이 받았고, 팀의 간판을 만들기 위해서 팀의 초대 주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2011년 팀의 역사적인 첫 경기이자 본인의 데뷔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면서 활약, 팀의 첫 승을 안겨주었다. 첫 경기 멀티골이라는 이 엄청난 임팩트 덕분에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국가대표 발탁 얘기도 나왔을 정도였다. 결국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출장하며 A매치에 데뷔했다. 다만 문제는 이 개막전 이후로는 도무지 골맛을 보지 못했다는 점. 물론 신생팀이었던 광주 FC 전력이 약했던 탓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초반의 활약을 전혀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2011 시즌 최종 성적은 31경기 3골 5도움.
3.2.2. 2012 시즌
2012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전반기에 출전을 못했다. 후반기에 나와서 나름 활약하기는 했지만 명성에 비해 만족스러운 활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최전방 공격수 치고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했고 주로 2선에서의 패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31경기 5골 5도움이라는 그저 그런 기록으로 시즌을 마무리. 그리고 팀이 강등되자 세일이 벌어질 때, 팀의 원년 멤버인 '''박병주 + 8억원'''의 조건으로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3.3. 제주 유나이티드
3.3.1. 2013 시즌
제주로서는 나름 큰 투자를 해서 데려왔고, 그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프리 시즌의 평가전에서 '''또''' 부상을 당하며 전반기에 뛰지 못했다. 그리고 복귀 후에도 골 침묵에 빠지면서 교체로만 6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당시 제주에서는 만년 유망주라던 서동현이 드디어 어느 정도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할 때라서 제주로서는 박기동에게 기회를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3.4. 전남 드래곤즈
3.4.1. 2013 시즌
전남 이적 후에는 나름대로 기회를 많이 부여받았으나, 여전히 득점력이 살아나지 않아 18경기 1골 1도움에 그치면서 팬들의 혈압을 상승시켰다. 결국 점차 포텐이 터지기 시작하던 이종호에게 밀려 후반기엔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기용되기도 했다(...) 큰 키 덕분에 손정탁 클럽 멤버로 여겨지기도(...)
3.4.2. 2014 시즌
2014년에도 전남에 잔류했으나, 이번에도 딱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7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리고 팀 동료 박준태와 함께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에 입대했는데...
3.4.3. 상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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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상주 상무에서의 첫 시즌에 35경기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체출전이 많았다는 걸 감안하면 꽤 괜찮은 기록. 그리고 이어 2016 시즌에는 '''갑자기 포텐이 터져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5월까지 6골 4어시스트로 국내 공격수 중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중. 191cm 장신에 빠르고 활발한 움직임, 거기다 클래식 팀들을 상대로 통하는 득점 능력이나 2선 공격 지원 덕분에 상주 최고의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그렇게 2016시즌에 25경기 9골 8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 그간의 부진을 만회하듯, 군 복무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상주에서의 최종 기록은 60경기 15골 13도움.
3.4.4. 2016 시즌
2016년 9월, 전역하여 원 소속팀인 전남에 복귀했다. 상무에서의 상승세를 이어나갔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복귀 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5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떴고 1월 4일 연제민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이 확정되었다. # 수원 팬들은 공격수를 영입한 건 좋은데 왜 하필 로컬 보이인 연제민을 보냈냐며 아쉬워했다.
3.5. 수원 삼성 블루윙즈
3.5.1. 2017 시즌
수원 이적 후에는 또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ACL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 차례 놓치며 수원의 16강 진출 실패의 원흉이 되었다. 리그에서도 전반기 15경기 0골이라는 처참한 스텟을 쌓다가 28라운드 전남전 에서 드디어 첫 골을 기록했다. 김민우의 슈팅이 골대 맞고 나온게 박기동의 몸을 맞고 들어간 것. 비록 본인이 만들어낸 골은 아니었지만, 다행인 점은 연계 플레이로 골에 관여했고 피지컬로 최전방에서 비비면서 슈팅을 날리는 등[1]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 골 기록 후 점차 경기력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10월 1일 전북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시즌 2호골. 이어 10월 8일 포항전에서도 골을 넣어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또 쎄오타임이 작렬하며 승리를 놓쳤다. 10월 15일 스플릿 첫경기인 울산전에서 조나탄과 투톱으로 선발출전 피지컬로 울산의 수비진을 들쑤시며 승리의 숨은 공신이 된다.[2]
시즌 최종 기록은 25경기 3골. 본인이 목표로 했던 10골 7도움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시즌 막판에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 줬다.
3.5.2.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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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에 또 부상을 당하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또한 데얀, 김건희, 전세진, 유주안 등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 7월 25일 김포시민축구단과의 FA컵 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팀은 6:1로 대승을 거뒀으나 본인은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며 전세진과 교체되었다. [3]
8월 4일, 21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데얀과 교체되며 리그 첫 출장을 기록했지만, 역시나 부진했다. 피지컬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기대했는데 정작 몸싸움에서 밀리고 측면으로 빠져버리는 모습을 보여 팬들이 뒷목을 잡게 했다 (...)
8월 12일 22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서, 전봇대 롤을 소화했다. 데얀의 체력 안배를 위한 조처. 다만 이전 경기들에 비해 미약하나마 존재감은 보였다. 그러나 김건희의 입대 이후, 2선발 스트라이커가 꽤나 부진한 수원에게는 박기동의 부활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는 자신감이 크게 부족한 모습. 게다가 젊은 군필 자원인 한의권의 합류로 입지 또한 위태로워졌다.
8월 29일 전북과의 ACL 8강 1차전 경기에서는 데얀과 투톱을 이루어 출전했는데, 골은 없었지만 장점인 피지컬로 데얀을 지원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다만 또 부상을 당하며 김은선과 교체되었다.
10월 17일 제주와의 FA 컵 8강 경기에서 염기훈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밀어넣으며 드디어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10월 24일, 가시마와의 2차전에서는 후반에 최성근과 교체되며 출전, 본인의 장점인 힘과 높이를 활용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팀은 고질적인 수비불안으로 아쉽게 탈락.
10월 31일, 울산과의 FA컵 4강전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후반 이종성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하지만 팀은 패배해 탈락(...)
11월 10일, 리그에서 다시 만난 울산과의 경기에서 한의권과 교체되어 출전, 2-0으로 지고있던 후반 데얀의 만회골을 어시스트하고 이어서 울산의 이명재가 헤딩으로 걷어낸 공을 차 넣으며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1골 1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팀은 또 쎄오타임이 작렬해 3-3 무승부(...) 어째 본인이 잘할 때마다 팀이 승리를 놓치고 있다.
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와중, 현재까지의 모습만 보면 리그 1골, FA컵 1골로 여전히 아쉬운 모습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더티 플레이를 보여주는 빈도가 늘어나 비판받고 있다.
결국 리그와 컵을 합쳐 2골 2도움만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
수원에서도 2시즌동안 5골을 넣는데 그치며 상주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지 못했다. 후반기에 제법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부상을 자주 당하며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한게 아쉬운 점.
3.6. 경남 FC
3.6.1.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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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경남 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5억. 김종부 감독의 말에 따르면 말컹의 대체 자원으로 이용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결정력은 몰라도 피지컬은 비슷하니 의외로 괜찮은 영입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뤽 카스타이흐노스가 경남으로 오면서 주전 경쟁이 힘겨워 보인다.
2019 K리그 1 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룩의 슈팅을 골키퍼가 쳐낸 것을 밀어 넣으며 경남 데뷔골을 넣었다.
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게바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나 전민광의 자책골로 기록되면서 공격 포인트가 무산되었다.
15라운드 FC 서울전에서 1:1로 맞선 후반전 추가 시간 문전 앞 위험 지역에서 허술한 볼 처리로 박주영에게 공을 헌납하면서 오스마르의 결승골과 팀의 패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말았다.
3.6.2. 대구 FC (임대)
2019년 7월 23일, 대구 FC로 임대 이적하였다. 에드가의 장기부상 이후 김진혁이 입대한 상태라 마땅한 센터포워드가 없어 세징야가 원톱을 보는 등 고생했던 팀의 입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 영입이다. 선수 본인 입장에서도 자신을 선발로 쓰지도 않고 그나마 기용될 때는 윙으로 쓰려고 했던 감독 밑에서 안 맞는 축구를 이어가기보다는 누가 보기에도 톱으로 쓰려고 데려왔고 최소한 전임자의 부상 복귀 전까지는 주전이 보장된 팀에서 뛰는 게 나을 가능성이 높다.
24라운드 FC 서울전에서 선발 출전해 2골 뒤진 후반 37분경에 자신에게 연결된 공이 살짝 길었는데 뺏기지 않고 공을 지켜낸 뒤 세징야에게 연결하며 세징야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다만 공을 지키는 과정에서 유상훈의 발을 밟아 오심논란이 있다.
31R 전북 원정에서 선발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권경원과의 헤딩 경합 상황에서 권경원의 팔꿈치가 턱관절에 맞았고 의식을 잃었다. 이에 들것에 실려나갔고 에드가와 교체되었는데 경기 당일 방영된 9월 25일자 달수네 라이브에서 박문성이 대구측 관계자와 대화한 내용에 의하면 정밀 검사 결과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고 다행히 뇌출혈 등 심각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32R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교체 출전해 에드가와 함께 투톱에 섰다. 김우석이 올린 크로스를 박기동이 가슴으로 잡아놓은 뒤 발리슛으로 연결했는데 오승훈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며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했다. 이 득점은 박기동이 대구 FC에서 기록한 첫 골이자 대구 FC 창단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시키는 득점이었다.
3.6.3. 2020 시즌
6라운드 안산전에서 전방으로 때려놓은 볼이 상대와 경합이 붙었는데, 김태현의 태클이 공을 건들지 못해 골키퍼와 1:! 찬스를 맞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결승골을 기록했다.
8라운드 제주전에서 장혁진의 크로스를 제자리에서 헤딩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14라운드 대전전에서 프리킥 크로스를 머리로 잘 떨궈놓으며 황일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15라운드 아산전에서 수비수 맞고 나온공을 그대로 넘겨주며 백성동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16라운드 부천전에서 머리로 떨궈놓으며 정혁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20라운드 안산전에서 상대 수비수가 머리로 넘겨준 공을 머리로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훈련하던 도중,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기사에는 긍정적인 전망을 드러내고 있으나, 실제 상황은 심각하다고 한다.
26라운드 수원 FC전에서 복귀해 최준의 크로스를 머리로 밀어넣어 만회골을 기록했다.
승강플레이오프 대전전에서 교체 출전해 측면 돌파 이후 넘겨주며 고경민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시즌이 끝난 뒤 구단과 합의 후 계약을 해지했다.
3.7. 대구 FC 2기
계약 해지 전후로 대구행 루머가 슬슬 돌더니, 2021년 1월 5일 대구 FC로 이적했다. 2019시즌 하반기 임대 후 두 번째 대구 생활이다. 대신 이번에는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
4. 국가대표 경력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그 후로는 리그에서 부진하면서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2016년 상주에서 보여 준 엄청난 활약으로 잠시 국가대표 승선 가능성이 높아졌던 적이 있었다.[4] 하지만 끝내 국가대표 발탁은 무산되고 말았다.
5. 플레이 스타일
가장 돋보이는 장점은 피지컬. 191cm의 장신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하다. 또한 큰 키에 비해 발재간도 좋은 편인데, 주발이 어느 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양 발을 모두 잘 쓴다. 다만 프리킥 준비 상황에서 오른발 쪽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오른발을 조금 더 잘 쓰는 듯.
단점은 역시나 득점력 부족. 2011년 데뷔 후 8시즌 동안 넣은 골이 총 26골이다. 그나마도 상주에서의 기록을 빼면 11골(...). 골 넣으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까이던 강수일, 삼동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래 득점력보다 포스트 플레이가 장점인 선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은 스텟 생산량은 공격수로서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커리어 하이인 상주 시절에는 동료들과의 연계를 통해 본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며 만능 공격수와 다름없는 활약을 보여 줬는데, 이런 모습을 앞으로도 보여 줄 수 있을지가 관건.
유리몸까지는 아니지만 은근히 시즌 초에 부상을 자주 당하는 편이다.
6. 기록
6.1. 상주 상무
- K리그 챌린지 우승: 2015
6.2. 통산 성적
6.2.1. 클럽
7. 여담
- FM 2012에서 싸고 포텐이 펑펑 터지는 공격수로 나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했다.
- 전술한 광주에서의 데뷔전 멀티골 덕분에 국가대표 발탁설이 나오며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이때 '박기동, 국대 가자'라는 것을 누군가 오타를 내서 '박기, 동국대 가자'라고 하는 바람에 못 할 때마다 그래 가지고 동국대나 갈 수 있겠냐고 까인다 (...) 다만 박기동은 실제로는 숭실대학교 스포츠학부 07학번 졸업생이다.
8. 관련 문서
[1] 다만 상대 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혔다.[2] 첫번째 이영재의 자책골은, 정재용의 클리어 미스를 박기동이 가로채서 중앙으로 쇄도하던 산토스에게 패스하던 볼이 이영재를 맞고 들어간 것이다. 두번쨰 조나탄의 PK 역시, 리차드의 트래핑 미스를 박기동이 놓치지 않고 반대쪽에서 침투하던 조나탄을 향해 정확한 스루패스를 해며 벌어진 상황.[3] 반면 전세진은 날아다녔다.[4] 이때는 슈틸리케호의 주전 공격수였던 이정협과 김신욱이 팀을 옮긴 후 정체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박기동이 이 둘이 할 수 있는 능력은 다 보여 주고 있었다. 실제 인천전에서 박건하와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가 와서 관전했다.[5] 리그컵(2012년부터 폐지)은 4경기 출장